33화(6,178자)
십이신살 — 이름이 큰 별들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정우가 고소장을 낸 건 풀려난 지 열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미연은 그 사실을 고소장이 접수된 뒤에야 알았다. 정우는 할머니 집 사랑방 문턱에 걸터앉아 접수증 사진을 보여 주면서, 마치 남의 일을 말하듯 덤덤했다.
“명예훼손이요. 도해 원장. 단톡방에 올린 거, 지역 카페에 올린 거, 방송에서 한 말. 윤지호 기자님이 캡처해 둔 거 다 넣었어요.”
“혼자 갔어요?”
“할머니랑요. 할머니가 경찰서 민원실 의자에 앉아서 계속 그러더라고요. 우리 정우 이름에 붙은 거 떼어 내러 왔다고. 민원실 직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세 번 되물었어요.”
미연은 웃었다가, 정우가 웃지 않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정우의 손톱 밑에 검은 흙이 끼어 있었다. 아침마다 할머니 밭의 언 흙을 뒤집는다고 했다. 이력서를 넣은 곳 열한 군데 가운데 연락이 온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정우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으면 아직도 「계룡산 이장 사건 용의자」라는 기사 제목이 맨 위에 떴다.
“조정을 하재요. 형사조정. 검찰청에서 사람들이 중간에 서서 합의를 붙여 본대요. 다음 주 목요일.”
“가요?”
“가야죠. 원장이 사과하면 끝내고, 안 하면 끝까지 가고.” 정우가 손톱 밑의 흙을 엄지로 밀어냈다. “미연 씨도 와 줄 수 있어요? 저 혼자 그 사람 얼굴 보면 말을 못 할 것 같아서.”
미연은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사랑방에서 승수에게 물었다. 거기 따라가도 되느냐고.
“정우 씨가 불렀으면 가는 거지요.”
“가서 뭐라고 해요? 원장은 분명히 사주 이야기를 꺼낼 거예요. 신살이니 뭐니.”
“그럼 신살부터 배워야겠네요.”
승수는 아랫목에 앉아 무릎에 담요를 덮었다. 할머니 집 사랑방은 아궁이에 불을 때는 방이라 아랫목은 엉덩이가 델 만큼 뜨겁고 윗목은 입김이 보일 만큼 찼다. 미연은 늘 그 경계선쯤에 앉았다. 처음 이 방에 들어온 날 미연이 숙소 장판 이야기를 하자 할머니는 장판은 장판이고 구들은 구들이라고 했다.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
“신살은 별의 이름이에요. 명식에 어떤 글자가 어떤 자리에 있으면 거기에 이름을 하나 붙여요. 이름이 다 커요. 겁살, 재살, 천살, 망신살.”
“망신살이요? 망신살 뻗쳤다, 할 때 그 망신살이요?”
“그 말이 거기서 나왔어요.”
미연이 아랫목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뜨거워서 도로 물러났다.
“그럼 그것도 진짜 있었던 거예요? 저 대학 때 발표하다 바지 지퍼 열린 거, 그날 망신살이었어요?”
“그날 생일 기준으로 뭐가 들어왔는지 계산해 보면 이름은 하나 붙일 수 있겠지요. 지퍼는 계산이 안 되고요.”
미연은 공책 뒷장을 펼쳐 내가 뛴 것 목록 아래에 작게 적었다. 지퍼. 그리고 지웠다. 이건 뛴 게 아니라 그냥 부끄러운 거였다.
승수가 공책 새 장에 표를 그렸다. 열두 칸이었다.
“십이신살이에요. 기준이 되는 지지 하나를 정하고, 그 지지가 속한 삼합의 무리에 따라 나머지 열두 지지에 이름을 차례로 붙여요. 이름은 이 순서로 돌아요.”
승수가 한 칸에 하나씩 적었다. 겁살, 재살, 천살, 지살, 연살, 월살, 망신살, 장성살, 반안살, 역마살, 육해살, 화개살.
“삼합 기억나요? 세 글자가 모이는 조건.”
“申子辰, 寅午戌, 巳酉丑, 亥卯未. 네 무리요.”
“그 무리마다 이름이 붙는 자리가 달라져요. 예를 들어 기준 지지가 巳酉丑 무리라면, 寅이 겁살, 卯가 재살, 辰이 천살, 巳가 지살, 午가 연살, 未가 월살, 申이 망신살, 酉가 장성살, 戌이 반안살, 亥가 역마살, 子가 육해살, 丑이 화개살이에요.”
“이걸 다 외워요?”
“표를 보면 돼요. 중요한 건 표가 아니라 기준이에요.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의 같은 글자에 다른 이름이 붙어요. 옛날 책들은 주로 태어난 해의 지지, 연지를 기준으로 했어요. 요즘은 날의 지지, 일지를 기준으로 하는 사람도 많고요. 둘을 섞으면 안 돼요.”
“섞으면요?”
“아무 이름이나 붙일 수 있게 되지요. 이름이 열두 개고 기준이 둘이면,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고를 수 있으니까.”
미연은 펜을 멈췄다. 그리고 공책을 앞으로 넘겨 정우의 명식을 찾았다. 辛巳, 戊戌, 壬戌. 시는 몰랐다.
“해 봐도 돼요?”
“해 봐요. 기준부터 밝히고.”
미연은 혀끝을 깨물고 표를 짚었다. 연지는 巳. 巳는 巳酉丑 무리였다. 아까 승수가 불러 준 줄을 따라 내려갔다.
“연지 기준이면…… 戌이 반안살이에요. 정우 씨는 월지도 戌, 일지도 戌이니까 반안살이 둘.”
“반안은 말 안장이라는 뜻이에요. 말 위에 안장을 얹고 앉는 자리. 옛 풀이에서는 대개 오르는 자리, 높은 데 앉는 자리로 읽어요.”
“피 볼 이름이 아니잖아요.”
“일지 기준으로도 해 봐요.”
일지는 戌. 寅午戌 무리였다. 미연은 승수가 옆에 적어 준 寅午戌의 줄을 따라갔다. 이 무리에서는 亥가 겁살이었고, 巳가 망신살, 戌이 화개살이었다.
“일지 기준이면 연지 巳가 망신살, 월지 戌이 화개살이에요. 일지 자기 자리는 기준이니까 빼고요.” 미연은 표에서 고개를 들었다. “어디에도 피라는 말이 없어요.”
“없지요. 도해 원장이 쓴 피 볼 살 둘은 십이신살이 아니라 다른 표에서 온 거예요. 괴강, 백호. 일주 두 글자가 어떤 짝이면 붙이는 이름이에요. 그건 다음에 따로 봐요. 오늘 알아 둘 건 이거예요. 신살에는 표가 여러 개 있고, 표마다 기준이 있다. 기준을 안 밝히는 사람은 고르고 있는 거다.”
미연은 그 말을 공책 맨 위에 적었다. 기준을 안 밝히는 사람은 고르고 있다.
“그럼 신살은 다 쓸모없는 거예요?”
승수가 담요를 고쳐 덮었다.
“그걸 오래전에 따진 사람이 있어요.”
승수는 『자평진전』의 뒤쪽 권을 펼쳤다. 「성신은 격국과 관계가 없음을 논함」이라는 편이었다. 별과 신살의 이름이 격국과 상관없다는 제목부터가 노골적이었다.
八字格局,專以月令配四柱,至於星辰好歹,既不能爲生尅之用,又何以操成敗之權?
“팔자격국, 전이월령배사주, 지어성신호대, 기불능위생극지용, 우하이조성패지권. 팔자의 격국은 오로지 월령을 사주와 맞춰 보는 것이다. 별의 이름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것은, 생과 극에 쓰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성패를 쥐겠는가.”
승수가 다음 줄로 손가락을 옮겼다.
況於局有礙,即財官美物,尚不能濟,何論吉星?於格有用,即七煞傷官,皆爲美物,何謂凶辰乎?
“황어국유애, 즉재관미물, 상불능제, 하론길성. 어격유용, 즉칠살상관, 개위미물, 하위흉신호. 하물며 명식의 판에 걸림이 되면, 재물과 벼슬처럼 좋다는 것도 도움이 안 되는데 길한 별이 무슨 소용이냐. 격에 쓰임이 있으면 칠살과 상관 같은 것도 다 좋은 것이 되는데, 무엇을 흉한 별이라 하겠느냐.”
미연은 한자를 따라 읽다가 七煞에서 멈췄다.
“이 살, 경찰이 낫 가져가던 날 본 그 살이에요. 경금대살.”
“같은 글자예요. 이 책을 쓴 사람은 살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쓰임이 있으면 좋은 것이라고 말해요. 거꾸로 좋은 이름이 붙은 것도 판에 방해가 되면 소용없다고 하고요. 그런데 이 사람도 신살을 아예 지우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먼저 볼 것과 나중에 볼 것의 순서를 따진 거예요. 우리 순서표에서 신살이 몇째 줄에 있지요?”
“다섯째 줄. 세부.”
“그러니까 일간도, 월령도, 관계와 힘도 안 보고 신살부터 꺼내는 사람은 순서를 거꾸로 하고 있는 거예요.”
미연은 그 한문을 공책에 한 자씩 베꼈다. 손이 시려 글씨가 삐뚤어졌다. 다 베끼고 나니 자정이 넘어 있었고, 아궁이 불은 사그라들어 아랫목 열기도 한풀 꺾여 있었다.
*
형사조정실은 지청 별관 삼 층 끝에 있었다. 긴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의자가 마주 놓였고, 테이블 머리에는 조정위원 두 사람이 앉았다. 한 사람은 은퇴한 교장 선생님이라고 자기를 소개했고, 다른 한 사람은 변호사였다. 미연은 정우의 요청으로 동석이 허락되어 벽 쪽 의자에 앉았다. 할머니는 정우 옆에 앉아 핸드백을 무릎 위에 꼭 끌어안았다.
도해는 십 분 늦게 왔다. 짙은 회색 개량 한복에 털조끼를 덧입고, 서류 가방 대신 보자기에 싼 책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들어서면서 조정위원들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고, 할머니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정우에게는 숙이지 않았다.
조정위원이 고소 내용을 읽었다. 단톡방 글, 지역 카페 글, 방송 인터뷰. 피를 볼 팔자, 살 낀 놈, 그 아이 시주를 알면 확실하다.
“원장님, 이 글들 직접 쓰신 거 맞습니까?”
“맞습니다. 숨길 것 없습니다.”
도해는 보자기를 풀었다. 낡은 책 몇 권과 손으로 그린 표 한 장이 나왔다.
“다만 저는 사람을 헐뜯은 게 아닙니다. 학문적 소견을 말한 겁니다. 명리는 수천 년 내려온 학문이고, 이 표에 다 나와 있습니다. 저 청년의 일주는 壬戌, 괴강과 백호가 겹친 자리예요. 십이신살로 봐도 망신과 화개가 끼어 있고요. 마을이 흉한 일을 당했을 때 그 기운을 짚어 주는 게 제 일입니다. 결과적으로 범인이 아니었다니 유감이지만, 사주가 틀린 건 아닙니다.”
정우의 손이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할머니가 그 주먹 위에 손을 얹었다.
조정위원인 변호사가 펜을 내려놓았다.
“원장님, 여기는 학문을 따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글 때문에 고소인이 입은 피해를 따지는 자리예요. 사과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사과할 일이 아니라서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은퇴한 교장 선생님이 미연 쪽을 보았다. 정우가 미연을 돌아보았다. 미연은 일어서지 않았다. 앉은 채로 공책을 펼쳤다. 다리가 떨렸다.
“원장님,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도해가 미연을 알아보았다. 철학관에서 한 번, 마을회관 앞에서 한 번 마주친 얼굴이었다. 도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산에서 공부한다는 아가씨.”
“십이신살 망신과 화개는 무슨 기준으로 뽑으셨어요?”
“기준이야 당연히…….”
“일지 기준이죠? 戌이 기준이면 寅午戌 무리라서, 연지 巳가 망신, 월지 戌이 화개예요. 저도 그렇게 나왔어요.” 미연은 공책을 테이블 위로 밀었다. “그런데 원장님 책들은 대부분 연지 기준이잖아요. 연지 巳로 하면 巳酉丑 무리라서, 정우 씨 戌 두 개는 다 반안살이에요. 말 안장, 높은 데 앉는 자리요.”
도해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신살은 기준을 여러 개 쓰는 거예요, 아가씨. 다 봐야 해요.”
“그럼 반안살 이야기는 왜 안 하셨어요? 다 보셨으면요.”
변호사 조정위원이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적었다. 할머니가 미연을 보았다. 미연은 숨이 차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리고 괴강, 백호요. 壬戌일이 백호에 들어가는 거 맞아요. 근데 그 표에는 丙戌도 들어가요. 정우 씨 할머니 일주가 丙戌이에요. 할머니도 백호예요. 찰리 채플린도 정우 씨랑 똑같은 壬戌이고요. 원장님 표대로면 이 방에 피 볼 사람이 둘이에요.”
할머니가 핸드백을 꽉 쥔 채 도해를 노려보았다.
“내가 피 볼 팔자면, 자네가 우리 손자 일로 피를 보게 될 거야.”
교장 선생님이 기침을 했다. 웃음을 참는 기침이었다. 미연은 공책을 다시 끌어와 마지막 장을 펼쳤다. 어젯밤 시린 손으로 베낀 한문이 삐뚤삐뚤했다.
“『자평진전』에 이런 말이 있어요. 별 이름이 좋니 나쁘니 하는 건 생극에 쓰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성패를 쥐겠느냐. 원장님 보자기에 있는 그 책들 가운데 하나예요.”
도해는 미연이 가리킨 책을 보지 않았다. 대신 조정위원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는 이 일로 사과하지 않겠습니다. 재판으로 가시지요.”
조정은 그렇게 결렬되었다.
*
지청 건물을 나서자 겨울 해가 벌써 기울고 있었다. 정우는 주차장 끝까지 말없이 걷다가,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문을 닫은 다음에야 미연에게 돌아섰다.
“반안살이 진짜 있어요? 말 안장?”
“연지 기준이면요.”
정우가 웃었다. 풀려난 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그런데 그 웃음은 금방 꺼졌다.
“근데 미연 씨, 저 안장에 앉을 말이 없어요. 이력서 열한 군데 다 떨어졌어요.”
미연은 대답할 말을 찾다가, 찾지 못했다. 이름 하나 떼어 냈다고 자리가 생기지는 않았다. 반안살이 둘이든 망신살이 하나든, 정우는 내일 아침에도 언 밭을 뒤집을 것이다.
“재판 가면 오래 걸린대요.”
“알아요.”
“그래도 갈 거예요. 사과는 받아야겠어요. 저 말고, 할머니한테.”
차 안에서 할머니가 창문을 내렸다.
“둘이 뭐 해. 추운데. 미연이 너 오늘 품삯은 저녁밥이야.”
미연은 차에 올랐다. 뒷좌석에 앉아 공책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기준을 안 밝히는 사람은 고르고 있다. 맨 위에 적은 그 줄 아래에, 미연은 오늘 한 줄을 더 보탰다. 기준을 밝혀도 자리는 안 생긴다. 자리는 다른 데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