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6,017자)
십이운성 — 열두 이름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정우가 풀려난 지 닷새째, 마을 단톡방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두 달 동안 하루에 몇백 개씩 쌓이던 글이 하루에 열 개도 안 올라왔다. 그 열 개도 대부분 택배 공동 구매나 마을 상수도 공사 안내였다. 정우라는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냥 그 이름을 지나쳐 갔다.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할머니 집 대문의 붉은 페인트 자국은 정우와 미연이 지운 뒤에도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살인자라는 세 글자 가운데 살 자의 받침만 시멘트 결 사이에 끼어 끝내 빠지지 않았다. 정우는 아침마다 대문을 나서면서 그 받침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그날 아침 정우는 읍내 물류센터에 면접을 보러 갔다. 미연이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갔다. 정우는 서울에서 일할 때 입던 셔츠를 다려 입었는데, 두 달 사이에 살이 빠져 목둘레가 헐렁했다.
“떨려요?”
“아뇨.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정우는 버스에 올랐다. 창가에 앉아 미연에게 손을 흔들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미연은 그 화면에 무엇이 떠 있는지 알았다. 어젯밤 정우가 보여 준 것이었다.
*
어젯밤 정우는 할머니 집 사랑방에서 휴대전화를 미연에게 내밀었다. 무료로 사주를 풀어 준다는 누리집 화면이었다. 생년월일만 넣으면 표가 나오고, 표 아래에 글자마다 이름이 붙어 있었다.
壬戌일. 일지 戌, 관대. 월지 戌, 관대. 연지 巳, 절.
그리고 그 아래 굵은 글씨로 풀이가 있었다. 절(絶). 끊어질 절. 인연이 끊어지고 하는 일이 끊어지는 운. 연주에 절이 있으면 조상 덕이 끊긴 사주.
“미연 씨.”
정우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미연은 대답하려다 한 박자 늦었다.
“네?”
“이거 진짜예요? 끊어질 절. 저 이력서 넣은 데마다 연락이 끊겨요. 이거 때문이에요?”
미연은 화면을 오래 보았다. 장생, 목욕, 관대, 건록, 제왕. 그 뒤로 쇠, 병, 사, 묘, 절, 태, 양. 열두 개의 이름이 있다는 건 알았다. 아직 배우지 않았다. 내일 배울 차례였다.
“모르겠어요. 내일 선생님한테 물어볼게요.”
정우는 휴대전화를 거두었다. 실망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냥 지친 얼굴이었다.
*
승수는 그날 오전 카페 구석 자리에서 미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릎의 붕대는 얇아졌고 목발 대신 지팡이가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미연이 정우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승수가 공책을 펼쳤다. 열두 칸짜리 표가 이미 그려져 있었다.
“정우 씨가 끊어질 절 봤지요.”
“어떻게 아세요?”
“그 누리집 내가 아는 데예요. 다들 거기서 겁먹고 와요.”
승수가 표의 칸마다 이름을 적었다. 장생, 목욕, 관대, 건록, 제왕, 쇠, 병, 사, 묘, 절, 태, 양.
“십이운성이에요. 천간 하나가 열두 지지를 지나가면서 기운이 차고 기우는 모양을 열두 단계로 나눈 거예요. 『자평진전』에 그 이름들이 어디서 왔는지 적혀 있어요.”
승수가 제본한 종이 뭉치에서 한 장을 펼쳤다. 「음양의 생사를 논함」이라는 편이었다.
氣之由盛而衰,衰而復盛,逐節細分,遂成十二。而長生、沐浴等名,則假借形容之詞也。
“기지유성이쇠, 쇠이부성, 축절세분, 수성십이. 이장생, 목욕등명, 즉가차형용지사야. 기운이 성했다가 쇠하고, 쇠했다가 다시 성하는 것을 마디마다 잘게 나누니 열둘이 되었다. 장생이니 목욕이니 하는 이름은 모양을 그리려고 빌려 온 말일 뿐이다.”
“빌려 온 말.”
미연이 그 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假借形容之詞. 빌릴 가, 빌릴 차.
“책은 그다음에 사람의 한평생에 빗대서 하나씩 설명해요. 장생은 사람이 막 태어난 것, 목욕은 태어난 뒤 씻기는 것, 관대는 자라서 갓과 띠를 두르는 것. 건록은 벼슬에 나아가는 것, 제왕은 가장 왕성한 때. 그다음 쇠, 병, 사. 기운이 다해 가는 거지요. 묘는 흙에 묻히는 것. 절은 기운이 끊어진 것.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태, 양.”
“절 다음에 태가 와요. 끊어진 자리에서 새 기운이 엉겨 태가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양, 어미 배 속에서 길러지는 것. 그다음엔 다시 장생이고요. 돌아가요. 처음 산에서 상생을 배울 때 수에서 목으로 돌아가던 것처럼.”
미연은 열두 칸을 다시 보았다. 절은 끝이 아니라 태의 바로 앞이었다.
“그럼 정우 씨 절은요?”
“정우 씨 일간은 壬이에요. 양간은 순서대로 돌아요. 壬은 申에서 장생, 酉에서 목욕, 戌에서 관대, 亥에서 건록, 子에서 제왕. 그렇게 가다가 巳에서 절, 午에서 태, 未에서 양.”
미연은 손가락으로 칸을 따라가며 셌다. 申, 酉,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巳.
“정우 씨 연지 巳가 절이고, 월지랑 일지 戌은 관대예요. 갓 쓰고 띠 두르는 거요. 성인이 되는 거.”
“누리집이 그 말은 했어요?”
미연은 어젯밤 화면을 떠올렸다. 관대라는 글자는 작게 지나갔고, 절만 굵었다.
“절만 크게 써 놨어요.”
“사람들은 무서운 이름을 크게 쓰지요. 그래야 다음 화면을 누르니까.”
승수가 표를 미연 쪽으로 밀었다.
“미연 씨 것도 해 봐요.”
미연은 자기 지지를 하나씩 대 보았다. 壬, 申에서 장생, 酉에서 목욕, 子에서 제왕, 未에서 양.
“저는 장생, 목욕, 제왕, 양이에요. 이름만 보면 좋아 보여요.”
“이름만 보면요.”
“선생님 거는요?”
승수가 잠깐 웃었다. 그 웃음에 무언가 숨긴 게 있었다.
“癸는 음간이에요. 음간은 거꾸로 돈다는 학설이 있어요. 그렇게 돌리면 癸는 卯에서 장생, 申에서 사, 未에서 묘, 午에서 절, 酉에서 병. 그런데 음간도 양간과 같이 돈다는 학설도 있어서, 어느 표를 쓰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져요. 그것부터가 이 이름들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예요.”
“거꾸로 도는 표로 하면요?”
“내 표에는 연지 酉가 병, 월지 午가 절, 일지 未가 묘, 시지 卯가 장생이에요.”
미연은 손가락을 접어 세었다. 병, 절, 묘.
“선생님 사주에 병, 절, 묘가 다 있어요.”
“있지요.”
“무덤이랑 끊어짐이랑 병이 다 있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앉아 계세요?”
“무릎은 멀쩡하지 않아요.”
미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계산대 뒤에서 한결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자평진전』은 이름만 빌린 말이라고 했어요. 운성 이름이 무섭다고 그게 실제 죽음이나 병이나 끊어짐이 아니에요. 기운이 어느 마디에 있는지 그려 보려고 빌려 온 그림이에요. 그리고 그 그림이 지장간으로 확인한 뿌리랑 다르게 나올 때도 많아요. 그러면 뿌리를 먼저 봐요.”
“정우 씨 壬의 뿌리는요?”
“그건 미연 씨가 찾아봐요. 지장간 배울 때 했잖아요.”
미연은 정우의 지지를 다시 보았다. 巳, 戌, 戌. 巳 안에는 丙, 庚, 戊. 戌 안에는 辛, 丁, 戊. 물이 없었다. 壬의 뿌리가 될 물이 지지에 없었다.
“뿌리가 약해요. 그런데 그건 절 때문이 아니라 지지에 물이 없어서예요.”
“맞아요. 운성 이름 하나 보고 무서워하는 것보다 그 말이 훨씬 정확해요. 그리고 뿌리가 약하다는 게 정우 씨가 약한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고요. 두 달을 유리 너머에서 버틴 사람이에요.”
미연은 유명인 표를 꺼내 무릎 위에 펼쳤다. 좋은 이름 쪽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손가락이 丙寅에서 멈췄다. 간디와 히틀러.
“丙은 양간이니까 순서대로 돌아요. 丙은 寅에서 장생이에요. 맞죠?”
“맞아요.”
“그럼 간디도 히틀러도 일지가 장생이에요. 둘 다 막 태어난 기운 위에 앉아 있어요. 누리집에 넣으면 둘 다 장생, 새로 시작하는 힘, 이렇게 굵게 나오겠네요.”
“아마 그렇겠지요.”
“장생은 좋은 이름이고 절은 나쁜 이름이라면, 히틀러가 정우 씨보다 좋은 사주예요?”
승수는 대답하지 않고 미연이 스스로 답하기를 기다렸다. 미연은 표를 덮었다.
“이름이 좋아도 낙인이고, 이름이 나빠도 낙인이에요. 둘 다 빌려 온 말이에요.”
“그 말을 정우 씨한테 해 줘요. 내가 하면 설교가 되고, 미연 씨가 하면 근거가 돼요.”
“왜요?”
“미연 씨는 두 달 전에 꽃집 아인슈타인이었으니까요. 겁먹었던 사람이 겁을 걷어 낸 말은 잘 들려요.”
미연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공책 뒷장의 내가 뛴 것 목록은 이제 한 장을 넘어가 있었다.
*
정우는 오후 세 시 버스로 돌아왔다. 미연은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우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떨어졌어요?”
“면접관이 제 이름을 검색했대요. 면접 보기 전에. 무혐의로 나왔다고 했더니, 그래도 회사 이미지가 있어서 곤란하대요.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미안하다는 말은 처음 들었어요. 마을에서는 아무도 안 했는데.”
정우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미연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둘이 마을 쪽으로 걸어 들어갈 때, 할머니 집 두 집 아래 대문 앞에서 한 남자가 장작을 패고 있었다. 예순 넘은 마을 사람이었다. 미연은 그 얼굴을 알았다. 사건 다음 날 골목에서 정우가 순찰차에서 내릴 때 제일 먼저 대문을 닫았던 사람이었다.
남자가 도끼를 내려놓고 둘을 보았다. 그리고 정우에게 말했다.
“나왔구먼.”
“네.”
“그래, 다행이다. 근데 너희 아버지가 그랬다며.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집 핏줄이…….”
정우가 걸음을 멈췄다. 미연은 정우의 어깨가 굳는 것을 보았다.
“아저씨.”
정우의 목소리가 낮았다.
“두 달 전에 우리 집 대문에 빨간 페인트로 뭐라고 썼는지 아세요? 아직 다 안 지워졌어요. 살 자 받침이 남았어요. 아저씨는 그날 아침에 저 보고 대문 닫으셨잖아요. 저 그거 봤어요.”
남자가 도끼 자루를 다시 쥐었다. 놓았다.
“나는 페인트 안 칠했다.”
“알아요. 누가 칠했는지는 몰라요. 근데 아저씨는 대문 닫으셨어요. 그리고 지금 또 핏줄 얘기 하시잖아요. 저 사과 받으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그냥, 이번엔 대문 닫지 마시라고요. 우리 할머니 지나가실 때만이라도.”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작 하나를 모탕 위에 세웠다. 도끼를 들었다가 내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은 닫지 않았다. 열어 둔 채였다.
정우는 그 열린 대문을 한참 보다가 다시 걸었다. 미연은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우가 먼저 말했다.
“미연 씨, 저 방금 너무 했어요?”
“아니요.”
“사과는 안 하던데요.”
“대문은 안 닫았잖아요.”
정우가 그 말을 곱씹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날 저녁 미연은 할머니 집 사랑방에서 낮에 승수가 그린 열두 칸을 정우에게 보여 주었다. 장생에서 양까지, 그리고 양에서 다시 장생으로 돌아가는 화살표.
“절 다음에 태래요. 끊어진 자리에서 새 게 엉긴대요.”
“그거 그냥 좋은 말로 바꾼 거 아니에요?”
정우가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미연은 그 의심이 좋았다. 두 달 전 거북바위에서 미연이 승수에게 한 말과 같았다. 결국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 거 아니에요?
“좋은 말로 바꾼 게 아니라, 원래 책에 그렇게 돼 있어요. 이름은 빌려 온 말이래요. 『자평진전』에요. 끊어질 절이라는 이름만 크게 쓴 건 그 누리집이고요.”
미연은 공책에 받아 적어 온 한문을 보여 주었다. 假借形容之詞. 정우가 한 글자씩 짚었다.
“빌릴 가, 빌릴 차.”
“정우 씨 한자 알아요?”
“구치소에서 천자문 읽었어요. 할 게 없어서.”
미연이 웃었다. 정우도 처음으로 웃었다. 낮에 정류장에서 본 그 웃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우 씨 표에서 진짜 봐야 할 건 절이 아니래요. 뿌리예요. 지지에 물이 없어요. 壬인데 아래에서 물이 안 받쳐 줘요. 그건 이름이 아니라 진짜 글자예요.”
“그럼 저 약한 거예요?”
“선생님이 그러는데, 뿌리가 약한 거랑 사람이 약한 거랑은 다르대요. 두 달을 유리 너머에서 버틴 사람이래요.”
정우는 한참 열두 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그 누리집을 열었다. 끊어질 절이 굵게 떠 있었다. 정우는 그 화면을 잠깐 보다가 꺼 버렸다. 지우지는 않았다.
“내일 또 이력서 넣을 거예요. 열한 번째.”
“열 번 떨어졌어요?”
“오늘까지 열 번이요. 숫자는 셀 수 있잖아요. 근거 보임.”
미연은 그 말에 웃다가, 사랑방 창밖을 보았다. 마당 너머로 할머니 밭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내일 아침 정우는 또 그 언 흙을 뒤집을 것이다. 절 다음에 태. 끊어진 자리에서 무언가 엉기려면 흙부터 뒤집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