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6,442자)

형·파·해·원진 — 부딪치지 않고 어긋나는 것들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아침 여덟 시 오십 분, 경찰서 앞 주차장에 서울 번호판 검은 승용차가 들어왔다.

미연은 경찰서 정문 건너편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 형사가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왔다. 승수도 목발을 짚고 옆에 앉아 있었다. 승수도 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는데 왔다. 둘 다 서로에게는 왜 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차에서 영수가 내렸다. 어젯밤의 수염을 깎았고, 양복을 입고 있었다. 너무 오래 옷장에 있던 양복이라 어깨가 조금 컸다. 손에는 영감의 일기장이 들려 있었다. 영수는 주차장 한가운데 서서 경찰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아홉 시까지 십 분이 남아 있었다. 영수는 그 십 분을 다 썼다. 한 번도 차 쪽으로 돌아보지 않고.

여덟 시 오십구 분, 영수는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현관 앞에서 오 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 형사는 영수에게 수갑을 채우지 않았다. 둘은 나란히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위에서 영수가 한 번 멈췄다. 일기장을 오 형사에게 내밀었다. 오 형사가 받았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미연은 그제야 숨을 쉬었다. 언제부터 숨을 참고 있었는지 몰랐다.

“왔네요.”

“왔어요.”

승수가 목발을 무릎 사이에 세웠다.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섰다가 아무도 태우지 않고 떠났다. 기사가 두 사람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

조사는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미연과 승수는 정류장에서 경찰서 일층 민원실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민원실은 따뜻했고, 정수기 옆에 종이컵이 쌓여 있었다. 승수는 붕대 감은 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아 공책을 펼쳤다.

“기다리는 동안 하나 해요.”

“지금요?”

“지금이 제일 맞는 날이에요.”

승수가 공책에 열두 지지를 다시 둥글게 적었다. 육합의 가로줄과 충의 맞선이 지난 수업들에서 이미 그려져 있었다. 이번에 승수가 그은 선은 모양이 이상했다. 삼각형도 아니고 마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어긋난 선들이었다.

“합은 붙는 거, 충은 부딪치는 거였지요. 오늘은 부딪치지는 않는데 어긋나는 것들이에요. 형, 파, 해, 그리고 원진.”

刑者,三刑也,子卯、巳申之類是也。

“형자, 삼형야, 자묘, 사신지류시야. 형은 삼형을 말하니, 子卯와 巳申 같은 것이다. 지난번 『자평진전』 같은 편의 맨 첫 구절이에요. 합과 회와 충을 읽느라 거꾸로 왔네요.”

“형은 벌 준다는 형이에요?”

“형벌의 형이지요. 그래서 다들 무서워해요. 寅巳申, 丑戌未, 이렇게 셋이 얽히는 걸 삼형이라 하고, 子와 卯는 둘이 서로 형을 한다고 해요. 그리고 辰, 午, 酉, 亥는 같은 글자가 둘 있으면 스스로를 형한다고 해서 자형이라고 하고요.”

“스스로를 벌 준다.”

“니체가 그래요. 연지와 일지에 辰이 둘. 『자평진전』은 子卯와 巳申을 예로 들었는데, 子卯를 보통 예의 없는 형이라고들 해요. 너무 가까워서 함부로 하는 사이라는 거지요.”

미연은 공책을 받아 적다가 펜을 멈췄다. 영수의 표가 떠올랐다. 어젯밤 승수에게 혼나고 줄을 그었던 그 표. 壬子, 庚戌, 庚子, 己卯. 일지 子, 시지 卯.

“영수 아저씨 표에 子卯가 있어요. 일지랑 시지에. 붙어서.”

승수가 고개를 들었다. 미연은 승수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았다. 어젯밤처럼. 그래서 먼저 말했다.

“알아요. 일지는 배우자 자리, 시지는 자식 자리라고 배웠으니까, 그 둘이 형을 한다고 아들을 해칠 팔자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거요. 그건 그냥 子와 卯가 그 자리에 있다는 거예요. 그 아저씨가 정우 씨를 거기 넣은 건 그 아저씨가 한 일이고요.”

승수가 한참 미연을 보았다.

“그거 내가 하려던 말 그대로예요.”

“어제 혼났으니까요.”

“어제 혼난 사람이 오늘 남의 말을 빼앗아 가네요.”

미연은 웃었다. 민원실 창구의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파와 해는요?”

“파는 깨뜨린다는 뜻이에요. 子와 酉, 卯와 午, 이런 짝들. 해는 해친다는 뜻이고요. 子와 未, 丑과 午, 寅과 巳. 형과 충보다 약하게 봐요. 그리고 원진. 子와 未, 丑과 午, 寅과 酉, 卯와 申, 辰과 亥, 巳와 戌. 서로 꺼리고 미워한다는 이름이에요.”

미연은 자기 표를 보았다. 일지 子, 시지 未. 해에도 있고 원진에도 있었다.

“저 子未예요. 해이기도 하고 원진이기도 해요.”

“그렇네요.”

“제 일지랑 시지가 서로 미워한대요.”

“그래서 미연 씨는 자기를 미워해요?”

미연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두 달 전이라면 그렇다고 했을 것 같았다. 채용 중단 메일을 받던 날, 끈기의 사람이라는 자기소개서 첫 줄을 지우던 날. 지금은 잘 모르겠다. 미워하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었다.

“그건 글자 말고 저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죠.”

“그렇지요.”

미연은 다른 표들을 떠올렸다. 정우 辛巳, 戊戌, 壬戌. 연지 巳, 월지 戌. 巳戌원진. 엄마 庚戌, 己丑. 丑戌형. 그리고 승수는 酉와 午와 未와 卯. 卯와 午는 파였다.

“다들 하나씩은 있네요. 형이든 파든 해든 원진이든.”

“이름이 많으니까요. 합, 충, 형, 파, 해, 원진. 이 이름들을 다 걸면 여덟 글자 안에서 어딘가는 걸려요. 안 걸리는 표가 드물어요. 그러니까 이름이 걸렸다는 것만으로는 아무 말도 못 해요. 어제 미연 씨가 겹친 두 표처럼.”

미연은 공책에 적었다. 어긋남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긋난 자리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 아래 작게. 오늘 아침 그 아저씨는 계단에서 한 번 멈췄다.

*

오후 네 시가 넘어서 민원실 문이 열렸다. 오 형사가 들어왔다. 얼굴이 하루 사이에 십 년은 늙어 보였다. 의자를 끌어다 미연과 승수 앞에 앉았다.

“다 말했어요.”

미연은 무릎 위에서 두 손을 꽉 쥐었다.

오 형사는 수첩을 펼치지 않았다. 외운 것처럼 말했다. 서울에서 하던 인테리어 사업이 망해 빚이 삼억이 된 것. 어머니 밭을 리조트 부지로 팔아 갚으려 한 것. 어머니가 도장을 안 찍자 이장과 짜고 읍내 가게에서 어머니 이름으로 막도장을 새겨 위임장을 만든 것. 그 위임장으로 계약금 이천만 원을 먼저 받은 것. 그날 오후 진짜 도장을 받으러 밭에 갔다가 실패하고, 서울로 가는 척 읍내 모텔에 들어간 것.

“그날 저녁에 이장이 먼저 정우 씨를 계곡 쉼터로 불렀어요. 할머니를 설득하라고. 안 그러면 네 아버지 위조한 거 터진다고. 정우 씨는 무슨 소린지 모르고 화를 내고 먼저 내려왔대요. 아홉 시 삼십사 분에 이장이 한 번 더 전화를 걸었을 때는 정우 씨가 위조가 뭐냐고 되물었고요. 그게 이장 휴대전화의 마지막 통화였어요. 그건 정우 씨가 처음부터 우리한테 한 말이랑 똑같아요. 위조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만 빼고. 그건 아버지 얘기라서 못 했던 거고.”

승수가 눈을 감았다.

“정우 씨가 내려간 뒤에 이장이 회관 이층 사무실에서 서울로 간 줄 알던 영수 씨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아홉 시 사십칠 분. 할머니가 저렇게 버티면 나는 빠지겠다, 위조한 거 내가 덮어 줄 이유가 없다, 도장값 두 배 아니면 다 불겠다. 영수 씨가 차를 몰고 다시 들어왔어요. 열 시 사십일 분. 오는 길에 어머니 집 평상에 들러서 그 서류 봉투부터 챙겼대요. 안에 위조 위임장 사본이 섞여 있었으니까.”

“봉투.”

미연이 중얼거렸다. 무청 더미 위의 봉투. 다음 날 아침 없었던 봉투.

“그리고 쉼터에서 이장을 만났어요. 말다툼을 하다가 밀쳤고, 이장은 바위 아래로 떨어졌어요. 머리를 다쳤는데 의식이 있었대요. 소리를 냈대요. 영수 씨가 열한 시 오십일 분에 119를 눌렀다가 끊었어요. 그리고 열한 시 오십팔 분에 등산로 입구를 빠져나갔어요. 이장 사모님이 남편이 안 들어온다고 신고한 게 밤 열두 시 반이었고, 사람들이 찾았을 때는 이미…….”

오 형사가 말을 멈췄다. 부검 결과는 머리 손상과 저체온이었다고, 그건 조금 뒤에 덧붙였다.

민원실이 조용해졌다. 정수기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하나 더.” 오 형사가 목소리를 낮췄다. “위조 일을 도해 원장도 알았대요. 시행사 풍수 자문료를 받고 있었고, 위임장 날짜를 길일로 잡아 준 게 그 원장이래요.”

미연은 그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놀라지 않는 자기가 이상했다.

“정우 씨는요?”

“검찰에 구속 취소 요청 들어갔어요. 오늘 저녁엔 나올 거예요.”

*

다섯 시 반, 경찰서 복도에서 그 일이 일어났다.

영수가 조사실에서 유치장으로 옮겨지는 길이었다. 이번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같은 시각, 정우가 구치소 호송차에서 내려 석방 서류를 쓰러 복도로 들어왔다. 오 형사가 시간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복도 한가운데서 둘이 마주쳤다.

미연은 민원실 유리문 너머로 그것을 보았다. 정우가 걸음을 멈췄다. 영수도 멈췄다. 둘 사이에 형사 둘이 있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리는 유리문을 넘어오지 않았다. 입 모양만 보였다. 아빠.

영수가 고개를 숙였다. 수갑 찬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아들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오래 숙이고 있었다. 형사가 팔을 잡을 때까지.

정우는 그 자리에 서서 아버지가 복도 끝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참 그쪽을 보았다. 그리고 벽에 등을 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두 달 동안 유리 너머에서 할머니에게 맛없다고 거짓말하던 얼굴이 그제야 무너졌다.

미연은 유리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지금 저 복도는 미연의 자리가 아니었다.

*

경찰서 정문 앞 계단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예순 즈음이었고,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미연은 그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 형사가 그 여자 앞에서 모자를 벗듯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누구인지 알았다.

이장 민병철의 아내 정숙자였다.

정숙자는 계단 위에서 경찰서 유리문을 보고 있었다. 방금 영수가 들어간 그 문이었다. 미연은 그 여자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울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손에 장갑 한 짝을 쥐고 있었는데, 남자 장갑이었다.

미연이 계단을 내려가다 그 옆을 지나칠 때, 정숙자가 고개를 돌려 미연을 보았다. 아주 잠깐이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 미연도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무엇이 죄송한지 미연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정숙자는 남자 장갑을 쥔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계단을 올라갔다. 오 형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이 닫혔다.

미연은 계단 중간에 서서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승수가 목발을 짚고 옆으로 내려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연이 먼저 말했다.

“저 저분 이름 오늘 처음 들었어요. 정숙자.”

“나도요.”

“두 달 동안 이장님 사주는 몇 번이나 적었는데요. 壬寅, 테드 번디랑 같은 일주라는 것까지 알았어요. 회관 앞에서 그 말만은 안 하기로 선생님이랑 약속했고요. 그런데 그분한테 아내가 있고, 아내 이름이 뭔지는 한 번도 안 적었어요.”

승수는 대답 대신 경찰서 유리문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 칸도 비어 있었네요.”

“근거 있는 말만 했는데요.”

“근거는 있었지요. 그런데 근거만으로는 모자랄 때가 있어요. 누구 이야기를 하는지, 누구 이야기를 빼놓는지도 봐야 해요.”

미연은 공책을 꺼내 마을 사람들의 표가 적힌 장을 펼쳤다. 이장이라고만 적힌 줄이 있었다. 그 옆에 무언가를 적으려고 펜을 댔다가,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공책을 덮었다.

*

정우는 저녁 일곱 시에 경찰서를 나왔다. 오 형사가 차로 마을까지 태워 주었다. 미연과 승수는 같은 차 뒷자리에 앉았다. 정우는 조수석에서 창밖만 보았다. 차 안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 차가 섰을 때, 할머니 집 대문 앞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할머니가 대문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퇴원한 뒤로 마루를 벗어난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담요를 무릎에 덮고 있었다.

정우가 차에서 내렸다. 할머니 앞에 섰다. 할머니가 일어서려다 다리에 힘이 빠져 다시 주저앉았다. 정우가 무릎을 꿇었다. 할머니가 손자의 짧게 깎은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밥 먹자.”

할머니가 한 말은 그것뿐이었다.

“할머니, 아빠가…….”

“안다. 밥 먹자.”

할머니는 정우의 팔을 짚고 일어섰다. 그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다 돌아서서 차 쪽을 보았다. 오 형사, 승수, 미연.

“다들 들어와. 밥 해 놨어.”

“할머니, 저희는…….”

“품삯이야. 오늘은 밥으로 줘.”

마루에 상이 차려져 있었다. 무국, 무생채, 무조림. 미연이 반 토막 낸 무까지 다 들어간 것 같았다. 아무도 그걸 따지지 않았다. 오 형사는 처음에 사양하다가 할머니에게 혼나고 숟가락을 들었다. 정우는 밥을 세 그릇 먹었다. 구치소 밥이 맛없었다고, 이번에는 진짜로 말했다.

미연은 무국을 떠먹다가 마루 기둥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이 집 건넌방에는 열두 해 전에서 멈춘 달력이 있다고 했다. 이 마루의 달력은 오늘 날짜였다. 한 칸 비어 있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이 오늘 아침 계단에서 한 번 멈췄다가 들어갔다.

할머니가 미연의 그릇에 무조림을 하나 더 얹었다.

“먹어. 네가 반 토막 낸 거다.”

미연은 그 무를 먹었다. 달고, 조금 짰다.

3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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