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7,025자)

일간과 월령, 풀이 순서 — 무엇부터 읽는가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사흘째에는 비가 왔다.

승수가 문자로 보낸 장소는 거북바위가 아니라 등산로 입구의 작은 정자였다. 지붕 끝에서 빗물이 줄을 지어 떨어졌고, 마루에는 누가 두고 간 방석 두 개가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미연은 우산을 접어 기둥에 기대 놓고, 오늘은 계단을 안 올라도 된다는 사실에 하늘에 고마워했다. 다리는 아직 어제의 대화를 이어 가는 중이었다.

정자에 먼저 와 있던 승수 옆에는 종이 봉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봉지 입구로 김이 새어 나왔고, 군밤 냄새가 빗냄새를 밀어냈다.

미연은 정자 계단 앞에서 우산을 든 채 잠깐 서 있었다. 어제 발소리를 크게 내며 내려간 사람이 자기였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결국 제일 쉬운 말을 골랐다.

“그거 어제 그 사람이 가져온 밤이에요?”

“할머니 손자가요. 정우라고 해요. 혼자 다 못 먹어서 구워 왔어요.”

미연은 정자에 올라 승수 맞은편에 앉았다. 봉지에서 밤 하나를 꺼내 껍질을 까다가 손끝을 데었다. 후후 불면서 말했다.

“어제는 제가 좀…….”

“월요일까지 사흘 남았지요?”

“……네.”

“그럼 사흘 동안 배울 수 있는 만큼 배워요. 정하는 건 미연 씨가 하고.”

승수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사과를 받지도 않았고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미연은 까 놓은 밤을 입에 넣었다. 달고 뜨거웠다. 그걸로 된 것 같았다.

“오늘은 비가 수업을 하네요.”

“제 다리가 비한테 절했어요.”

미연은 공책을 펼쳤다. 맨 뒷장에는 근거 보임과 근거 안 보임의 두 칸이 있었고, 둘째 칸에는 하반기 귀인과 마흔둘까지 셌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앞장에는 동그라미 친 壬과 癸가 있었다. 그 사이 빈 장에 미연은 어젯밤 숙소에서 찾아본 것들을 잔뜩 적어 왔다. 갑목은 리더형, 병화는 연예인형, 신금은 예민한 완벽주의자. 검색창이 친절하게 알려 준 문장들이었다.

승수가 그 장을 넘겨다보았다.

“숙제를 많이 했네요.”

“엄마는 무토 같고요, 아빠는 경금, 동생은 확실히 병화예요. 집에서 혼자 콘서트 해요.”

“어머니 생일은 알아요?”

“……모르죠. 느낌이에요.”

“그럼 그 장은 근거 안 보임 칸으로 옮겨야겠네요.”

미연은 입을 비죽 내밀고 그 장 위에 커다랗게 엑스를 그었다. 승수는 젖지 않은 마루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공책을 펼쳤다.

“오늘은 지도를 먼저 그릴게요. 앞으로 우리가 어떤 명식을 읽든 이 순서로 읽을 거예요.”

승수는 한 줄에 하나씩, 일곱 줄을 적었다.

1 일간 누구를 중심에 놓고 읽는가 2 월령 그 중심이 어느 계절에 놓였는가 3 관계와 힘 무엇이 돕고, 무엇으로 힘이 빠지고, 무엇이 누르는가 4 격국과 용신 이 명식의 중심 구조는 무엇이고, 무엇을 조절해야 하는가 5 세부 합과 충, 운성과 신살 같은 것들이 처음 해석을 어떻게 고치는가 6 운 이 여덟 글자가 어떤 시간을 만나는가 7 말로 옮기기 읽은 것을 사람의 말로 어떻게 전하는가

“이게 풀이 순서표예요. 첫 줄은 어제 이미 했어요. 일간을 찾아 동그라미 쳤지요.”

“일곱 줄이면 금방 하겠네요.”

“한 줄에 몇 주씩 걸려요.”

“……일곱 줄인데요?”

“일곱 층이라고 하면 덜 억울할 거예요.”

미연은 일곱 줄 옆에 작게 층이라고 적었다. 빗소리가 정자 지붕을 고르게 두드렸다.

“그럼 일간부터요. 열 개라고 했잖아요. 다 달라요?”

“그 열 개를 오늘 한 번 훑고, 다음부터 둘씩 짝지어 하나하나 만나러 갈 거예요. 오늘은 얼굴만 보는 날이에요.”

승수는 순서표 옆에 열 줄을 더 적었다. 미연은 그것이 어젯밤 검색한 것과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걸 알아보고 조금 경계했다.

甲 갑목 곧게 위로 뻗는 나무 乙 을목 휘어 감으며 길을 찾는 풀과 덩굴 丙 병화 두루 비추는 해 丁 정화 한 곳을 밝히는 등불 戊 무토 높은 산, 두터운 둑 己 기토 씨앗을 받는 논밭의 흙 庚 경금 바위와 무쇠 辛 신금 다듬은 보석, 바늘 끝 壬 임수 큰 강과 바다 癸 계수 비와 이슬, 스미는 물

“이거 제가 찾은 거랑 비슷한데요?”

“자연의 모습까지는 비슷해요. 그다음이 달라요. 미연 씨가 찾은 건 이 그림에서 바로 성격으로 뛰었지요. 병화는 연예인형, 이렇게. 나는 그림 다음에 질문을 해요. 이 해는 어느 계절의 해인가.”

“해가 해지, 계절이 왜 중요해요?”

“한겨울 해하고 한여름 해가 같아요?”

미연은 대답 대신 정자 밖을 보았다. 오늘 같은 날은 해가 아예 없었다.

“겨울 해는 반갑고 여름 해는 피하죠.”

“같은 丙인데 반가운 해도 되고 피하고 싶은 해도 돼요. 그래서 일간을 찾은 다음엔 바로 둘째 줄로 가요.”

승수의 손끝이 미연의 명식에서 월주의 아랫글자로 옮겨 갔다. 미연의 종이에서는 酉, 승수의 종이에서는 午였다.

“태어난 달의 지지를 월지라고 하고, 그 달이 일간에게 주는 계절의 조건을 월령이라고 불러요. 미연 씨는 酉월, 가을의 한가운데에 태어난 임수예요. 나는 午월, 여름의 한가운데에 태어난 계수고요.”

“같은 물이어도 여름 물하고 가을 물은 다르다?”

“그렇게 물으면 돼요. 아직은 비유지만, 각 계절에서 오행의 힘을 어떻게 재는지는 뒤에서 구체적으로 배울 거예요.”

미연은 壬 옆에 酉를, 癸 옆에 午를 적었다. 어제 승수가 가운데 글자를 먼저 짚고 바로 왼쪽으로 손을 옮긴 까닭이 이제야 보였다.

“그러면 저는 가을 물이라서 어떤 사람인데요?”

승수가 종이의 나머지 여섯 글자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벌써 셋째 줄부터 일곱째 줄까지 다 건너뛰었어요.”

“아, 진짜.”

미연이 머리를 감싸 쥐자 승수가 웃었다. 어제도 빠른 답을 원한다고 털어놓았는데, 오늘도 이름 두 개를 배우자마자 자기 설명부터 듣고 싶어졌다.

“이 순서가 책에도 있어요? 선생님이 정한 거 아니고요?”

미연은 공책 뒷장을 슬쩍 펼쳐 놓았다. 근거 안 보임 칸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수는 제본한 종이 뭉치에서 다른 책을 꺼냈다. 송나라 때 서자평의 명리를 정리한 책으로 알려진 『연해자평』이었다. 그 안의 「요상부」라는 글을 펼쳤다.

命理深微,子平可推;先要取其日干,次則詳其月令。年時共表其吉凶,妖祥不忒於歲月,通參於成敗,禍福無遺。

승수가 먼저 소리 내어 읽었다. 명리심미, 자평가추. 선요취기일간, 차즉상기월령. 년시공표기길흉, 요상불특어세월, 통참어성패, 화복무유.

“명리는 깊고 미묘한데, 자평의 방법으로 헤아려 볼 수 있다. 먼저 일간을 취하고, 다음으로 월령을 자세히 살핀다. 그다음 연과 시가 함께 길흉을 드러낸다고 하고, 성패를 두루 참고하면 화와 복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말해요.”

미연은 한자 사이에서 日干과 月令을 찾아냈다. 어제와 오늘 배운 이름이 거기에도 박혀 있었다.

“일간 다음에 월령. 오늘 한 거네요.”

“그렇지요. 뒤에서 연과 시를 함께 본다고 이어지니까, 일간과 월령만 보고 끝내라는 말도 아니고요.”

“근데 화와 복을 하나도 안 빠뜨린대요. 이 책은 다 맞힌다는데요?”

“이 책은 그렇게 말해요. 그런 주장이 있다는 것도 그대로 읽어야지요. 우리는 각 판단이 어느 글자와 어느 관계에서 나왔는지를 살피고, 그 판단을 삶에서 어떻게 쓸지를 생각할 거예요. 오래된 책이 자신만만하다고 우리까지 자신만만할 필요는 없어요.”

미연은 근거 안 보임 칸을 다시 덮었다. 이번에는 적을 게 없었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졌을 때, 승수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위쪽 이름 칸이 포스트잇으로 덮여 있었고, 그 아래에 여덟 글자가 적혀 있었다.

己 丁 丙 甲 卯 卯 申 午

“시험이에요. 누구 건지는 안 알려 줄 거예요. 순서표 첫째 줄과 둘째 줄만 해 봐요.”

미연은 종이를 받아 들고 두 손으로 붙잡았다. 처음 혼자 읽는 명식이었다. 셋째 칸 윗글자를 찾았다.

“일간은 丙. 병화. 해요.”

“둘째 줄은?”

“월지는…… 둘째 칸 아래니까 卯. 卯는 어제 선생님 표에도 있었는데, 음의 목이랬죠. 그럼 봄이에요?”

“한봄이에요. 이른 봄도 늦봄도 아니고 한가운데.”

“봄 햇살이네요.”

미연은 종이를 들여다보며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봄 햇살이면 따뜻하고, 꽃 피우고. 꽃집 사장님?”

승수가 포스트잇을 떼었다. 이름 칸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태어나 상대성 이론을 세운 물리학자였다.

“……상대성 이론 그 아인슈타인이요?”

“네.”

“제가 아인슈타인한테 꽃집을 차려 드렸어요?”

미연이 공책에 얼굴을 묻었다. 승수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웃음이 다 지나간 뒤 승수가 물었다.

“꽃집이라고 한 근거는 뭐였어요?”

“봄이랑 햇빛이요.”

“근거는 있었네요. 다만 일간 하나와 월령 하나, 두 글자로는 거기까지밖에 못 가요. 봄 햇살이라는 데까지는 정확했어요. 그다음 꽃집은 나머지 여섯 글자를 안 보고 뛴 거고요.”

미연은 고개를 들었다. 앱이 했던 일과 방금 자기가 한 일이 생김새가 같았다.

“앱도 이렇게 뛴 거네요. 큰 바다의 물에서 하반기 귀인으로.”

“사람도 기계도 그 자리에서 뛰고 싶어 해요. 그래서 순서표가 있는 거예요.”

승수는 아인슈타인의 명식을 미연의 공책 사이에 끼웠다.

“이 표는 버리지 말아요. 나중에 다시 꺼낼 거예요. 이 사람과 일주, 시주, 월지까지 똑같은 사람이 하나 더 있거든요. 그림 그리는 사람이에요.”

“똑같은데 한 사람은 물리학자고 한 사람은 화가예요?”

“그 이야기는 순서표를 셋째 줄까지 배운 뒤에 해요. 지금 하면 또 꽃집을 차릴 테니까.”

미연은 반박하려다 그만두었다. 근거가 너무 분명한 말이었다.

빗소리 사이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다가왔다. 정자 건너편, 등산로 입구의 작은 카페에서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우산도 없이 뛰어오고 있었다. 서른 중반쯤, 머리가 비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다. 남자는 정자 처마 밑으로 들어서며 쟁반에 받친 종이컵 두 개를 내밀었다.

“비 오는 날은 손님이 없어서요. 식으면 버려야 하니까 드세요.”

“한결 씨, 고마워요.”

승수가 컵을 받았다. 미연도 고개를 숙이며 받았다. 커피는 진하고 조금 탔다. 한결이라는 남자는 돌아가지 않고 정자 기둥에 기대 섰다. 카페 유리창 너머로 빈 테이블 여섯 개가 보였다. 문 앞에는 「가을 신메뉴 밤라테」라고 적힌 입간판이 비를 맞고 있었다.

“선생님, 저 날 하나만 받아 주세요.”

“무슨 날이요?”

“가게 접는 날이요. 길한 날로.”

미연은 컵을 든 손을 멈췄다. 한결은 농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 년째 적자예요. 회사 그만두고 퇴직금 넣어서 차린 건데, 지난달에 마지막 적금까지 깼어요. 어차피 접을 거면 날이라도 좋은 날 접고 싶어요. 그래야 다음엔 잘될 것 같아서.”

“그 날은 못 받아 줘요.”

“왜요? 읍내 철학관 원장님은 오만 원 내면 받아 주던데요.”

“그럼 거기서 받아요.”

“거기서 받았어요. 다음 주 수요일이래요.” 한결이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근데 선생님한테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어요. 맞는 날인지.”

“한결 씨는 접고 싶어요?”

“접고 싶은 게 아니라 접어야 하는 거예요.”

“그건 내가 물은 거랑 다른 대답이에요.”

한결의 얼굴이 굳었다. 비가 처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선생님은 이 산에서 아무것도 안 걸고 사시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는 월세가 걸려 있어요. 날 하나 받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날 하나를 받으면 한결 씨는 그날까지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날이 정해 줬으니까. 그게 무서워서 못 받아 줘요.”

“그럼 사주라도 봐 주세요. 제 팔자가 장사할 팔자인지만이라도.”

“오늘은 안 돼요. 한결 씨 이야기를 먼저 다 들어 버렸으니까. 지금 한결 씨 명식을 보면 나는 적자랑 맞는 글자만 찾아낼 거예요. 다음에 생일만 종이에 적어서 가져와요. 아무 이야기 없이.”

한결은 한참 승수를 내려다보다가, 빈 쟁반을 들고 빗속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뛰지 않았다. 카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정자까지 들렸다.

미연은 식어 가는 커피를 내려다보았다. 날을 받아 달라는 사람과 학원에 가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걸, 어제의 자기를 건너편에서 보고서야 알았다.

“어제 저도 저랬죠.”

“미연 씨는 화내고 내려갔고, 한결 씨는 커피를 두고 갔어요. 조금 달라요.”

“커피 두고 간 쪽이 더 어른이네요.”

승수가 웃었다. 그 웃음이 한결이 사라진 카페 쪽으로 오래 머물렀다.

정자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가 다시 잦아들었다. 미연은 젖은 방석 끝을 손가락으로 눌러 물이 배어 나오는 걸 보다가,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던 걸 물었다.

“친구 하나는 생일만 알고 태어난 시간을 몰라요. 그럼 아예 못 배워요?”

“아는 해와 달과 날로 시작하면 돼요. 일간과 월령은 날과 달에서 나오니까 순서표 첫째와 둘째 줄은 그대로 할 수 있어요. 모르는 시주를 아무 글자로나 채워 넣지만 않으면 돼요. 나중에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판단만 따로 표시하면 되고요.”

“어려운 계산도 다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만세력이라는 달력 프로그램에 양력인지 음력인지,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넣으면 네 기둥이 나와요. 처음에는 그 네 칸이 맞게 나왔는지만 확인하면 돼요. 우리도 확인한 표를 놓고 읽는 법부터 배우는 중이고요.”

미연은 순서표 맨 아래에 작게 적었다. 아는 것부터 읽기, 모르는 칸은 모른다고 적기.

승수가 두 명식의 자리를 바꿔 놓았다.

“이번엔 미연 씨가 짚어 봐요. 내 명식에서 무엇부터 볼까요?”

미연은 망설이지 않고 癸를 가리켰다.

“일간. 계수요.”

“곧바로 그다음은?”

“월령. 午월. 여름 한가운데예요. 여름이라는 조건을 같이 봐야 해요.”

“그다음에 궁금한 건?”

미연은 어제 그렸던 화살표를 보았다. 승수의 표에서 庚이 癸를 낳아 준다는 금생수의 화살표였다.

“한여름 비가 금방 마르잖아요. 그럼 庚이 도와준다고 해도, 그 도움을 실제로 받을 힘이 선생님한테 있는지는 어떻게 봐요?”

승수는 그 질문을 순서표 셋째 줄 옆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건 셋째 줄의 질문이에요. 거기 가기 전에, 열 개의 글자부터 하나씩 제대로 만나야 해요. 오늘은 얼굴만 봤으니까.”

“다음은 누구예요?”

“나무요. 甲과 乙.”

미연은 공책을 덮다가 다시 열어, 뒷장의 근거 안 보임 칸 아래에 한 줄을 보탰다. 아인슈타인의 꽃집. 내 거. 하나.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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