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6,120자)
지지 육합 — 합이 있다고 모두 합해지는가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카페 「쉼표」의 유리문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매직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였다.
12월 말까지만 영업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 종이 위에 다른 종이 한 장이 덧붙어 있었다. 이번에는 볼펜이었고 글씨가 작았다.
위의 말 취소. 1월부터 바뀝니다. 뭐로 바뀌는지는 아직 고민 중.
미연은 그 두 장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을 밀고 들어갔다. 한결이 계산대 뒤에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노트북 옆에는 공책이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 적힌 것이 미연의 공책과 닮아 있었다. 칸 두 개. 접는다, 안 접는다. 둘 다 빽빽했다.
“문에 붙은 거 봤어요.”
“둘 다 진심이에요. 붙인 날이 다를 뿐.”
한결은 커피를 내리면서 사정을 털어놓았다. 폐업을 미루고 CCTV 저장 장치를 경찰에 넘긴 뒤로 마을 사람들이 카페를 보는 눈이 두 갈래로 갈렸다. 한쪽은 그 집 아들 일에 도움 줬다고 일부러 커피를 사 가고, 한쪽은 남의 집 일에 끼어들었다고 발을 끊었다. 매상은 그대로였다. 더하기 빼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건물주예요. 다음 달 재계약인데 월세를 삼십 올린대요. 리조트 들어오면 여기가 입구 노른자리라고.”
“리조트 아직 안 들어오잖아요. 땅 문제 때문에.”
“그러니까요. 안 들어올 리조트로 월세를 올려요.”
한결이 컵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도 조금 탄 냄새가 났다. 미연은 이제 그 냄새가 이 카페의 일부라는 걸 알았다.
“오늘 오후에 건물주가 와요. 미연 씨, 혹시 그 시간에 있어 줄 수 있어요? 계약서 같은 거 잘 보잖아요. 확인 기자.”
“저 아르바이트예요.”
“아르바이트도 기자죠.”
*
승수는 정자 대신 카페 구석 자리에서 수업을 하기로 했다. 붕대 감은 무릎이 정자 마루의 찬 기운을 못 견딘다고 했다. 한결은 그 자리에 방석을 두 개 깔아 주었다. 정자에 있던 그 눅눅한 방석이었다. 언제 가져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오늘은 지지끼리 짝을 짓는 법이에요.”
승수가 공책에 열두 지지를 둥글게 적었다. 子와 丑이 꼭대기에 나란히 오도록 원을 조금 돌려 적고, 子와 丑, 寅과 亥, 卯와 戌, 辰과 酉, 巳와 申, 午와 未를 차례로 선으로 이었다. 선 여섯 개가 사다리 가로대처럼 나란히 원을 가로질렀다.
“육합이에요. 여섯 쌍.”
“가로줄이네요. 사다리처럼.”
“그래서 『자평진전』은 이렇게 말해요.”
合者,六合也,子與丑合之類是也。此皆以地支宮分而言……並對爲合,比鄰之意也。
“합자, 육합야, 자여축합지류시야. 차개이지지궁분이언, 병대위합, 비린지의야. 합은 육합을 말하니 子와 丑이 합하는 것 같은 것이다. 이것은 모두 지지의 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니, 나란히 마주한 것을 합이라 하고, 이웃이라는 뜻이다.”
“이웃.”
“충은 원을 가로질러 정면으로 마주 보는 거고, 합은 나란히 붙은 거예요. 그래서 이웃이라고 했어요. 담 하나를 두고 사는 집.”
미연은 원 위의 가로줄 여섯 개를 보았다. 담 하나를 두고 사는 집들. 그 말을 들으니 이 마을이 떠올랐다. 할머니 집과 이장 집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다.
“이웃이면 사이가 좋아요?”
“그걸 묻고 싶을 줄 알았어요. 내 표를 봐요.”
승수의 월지는 午, 일지는 未였다. 나란히 붙어 있었다.
“午未합이에요. 월지와 일지가 붙어서 합을 해요.”
계산대 뒤에서 한결이 고개를 쭉 뺐다.
“일지가 배우자 자리라면서요. 그럼 선생님은 부부 사이가 엄청 좋으시겠네.”
미연이 웃음을 터뜨렸다가 황급히 입을 막았다. 승수는 한결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건 모르는 칸이에요.”
“결혼은 하셨어요?”
“그것도 모르는 칸이고요.”
“아니 선생님, 그건 선생님이 아는 칸이잖아요.”
“나는 알지요. 한결 씨가 모르는 칸이에요.”
한결이 항복하듯 두 손을 들고 커피 기계 쪽으로 돌아섰다. 미연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두 달 반 동안 미연도 그 칸을 한 번도 열어 보지 못했다.
“그래도 한결 씨가 방금 한 게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풀이예요. 午未합이 있으니 화목하다. 일지에 합이 있으니 배우자와 사이가 좋다.”
“그거 틀렸어요?”
“틀렸다기보다 너무 빨라요. 합이 있다는 것과 합이 작용한다는 것은 달라요. 午未합은 합해서 화가 된다는 말도 있고 토가 된다는 말도 있어요. 책마다 달라요. 그리고 합이 된다고 해도, 그게 내 일간 癸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는 또 따져야 해요. 나는 한여름 午월에 태어난 癸예요. 그런데 午未가 합해서 불이나 흙의 기운이 더 세진다면?”
미연은 생각했다. 한여름의 이슬비. 거기에 불이 더 붙으면.
“더 말라요.”
“그래서 사람들이 좋다고 부르는 합이 이 표에서는 오히려 짐일 수도 있어요. 이웃이 담 넘어 매일 잔치를 하면, 그 집이 좋은 이웃인지 시끄러운 이웃인지는 내가 지금 잠을 자야 하는지에 달렸지요.”
계산대 뒤에서 한결이 중얼거렸다.
“우리 옆 펜션이 딱 그래요.”
*
미연은 자기 표를 펼쳤다. 申, 酉, 子, 未. 원 위의 가로줄과 하나씩 맞춰 보았다.
“저는 육합이 하나도 없어요.”
“없지요.”
“그럼 저는 이웃이 없는 거예요?”
“지금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봐요. 육합이 이웃이라는 건 책이 든 비유예요. 미연 씨 표에 육합이 없다는 건, 미연 씨 여덟 글자 안에 그 여섯 쌍이 짝지어 앉아 있지 않다는 것까지예요. 미연 씨한테 이웃이 없다는 데까지 가면 비유를 사실로 바꾼 거예요.”
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억울했다. 공책에 적었다. 육합 없음. 이웃은 있음. 한결 씨, 할머니, 수아.
“다른 사람 표에서 찾아볼래요?”
미연은 유명인 표를 펼쳤다. 이제 손가락이 빨랐다. 정약용의 표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정약용이요. 壬午, 丁未, 丁未. 연지 午, 월지 未. 선생님이랑 똑같은 午未합이에요.”
“그렇네요.”
“정약용은 십팔 년 유배를 갔잖아요. 午未합이 있어도.”
“그 사람이 유배를 간 건 천주교와 얽힌 정치 싸움 때문이었어요. 午未합이 막아 주지도, 보내지도 않았어요.”
미연은 손가락을 더 내렸다. 히틀러. 己丑, 戊辰, 丙寅, 丁酉. 월지 辰, 시지 酉.
“히틀러도 辰酉합이 있어요. 멀리 떨어져 있긴 한데.”
그리고 바로 위 줄. 간디. 己巳, 癸酉, 丙寅, 壬辰. 월지 酉, 시지 辰.
미연은 두 줄을 번갈아 보았다. 숨이 잠깐 멎었다.
“간디도 辰酉합이에요. 같은 丙寅일인데, 둘 다 辰酉합이 있어요. 자리만 바뀌어서.”
승수가 처음으로 놀란 얼굴을 했다.
“그건 나도 몰랐어요.”
“선생님이 모르는 칸이네요.”
“하나 배웠네요.”
미연은 공책에 두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적고 그 사이에 辰酉라고 썼다. 같은 일주, 같은 합. 한 사람은 비폭력으로 식민 통치에 맞섰고, 한 사람은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그 사이에 육합이 있다고 사람들이 화목해지지 않았다.
*
오후 네 시, 건물주가 왔다. 예순 넘은 남자였는데, 리조트 시행사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고 있었다. 미연은 그 로고를 보고 등이 굳었다. 시행사의 일을 거드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건물주는 계산대 앞 의자에 앉아 계약서를 내밀었다. 월세 칸의 숫자가 새로 적혀 있었다.
“한 사장, 이 정도면 시세야. 내년에 리조트 들어오면 이 자리 사겠다는 사람 줄 서.”
“리조트 땅 문제로 멈춘 거 아시잖아요.”
“멈춘 건 잠깐이고. 그 집 아들이 다 정리하겠지. 할머니 혼자 버티면 얼마나 버텨.”
미연은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한결이 미연을 보았다. 미연은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확인 기사를 쓸 때처럼, 한 줄씩. 그리고 맨 아래 특약 칸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사장님, 여기 특약에요. 인근 개발 사업이 확정될 경우 월세를 조정한다고 되어 있어요. 확정될 경우요. 지금은 확정이 아니잖아요.”
건물주가 미연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다.
“아가씨는 누구야?”
“확인하는 사람이요.”
“뭘 확인해?”
“사장님이 하신 말이 이 종이에 있는지요. 리조트가 들어온다는 건 사장님 말이고, 이 종이에는 확정되면이라고 적혀 있어요. 확정 안 됐으니까 월세 올리실 근거가 이 종이에는 없어요.”
카페가 조용해졌다. 구석 자리의 승수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건물주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
“그 특약, 내가 넣은 거야. 한 사장 좋으라고.”
“그러니까 지키시면 되잖아요. 사장님이 넣으신 거니까.”
건물주는 계약서를 낚아채듯 거둬 갔다. 문을 나서며 한결에게 한마디 던졌다.
“한 사장, 사람 가려 사귀어. 저 산 양반이랑 이 아가씨, 동네에서 말 많아.”
문이 닫혔다. 종이 두 장 붙은 유리문이 덜컹거렸다. 한결은 한참 문을 보다가 계산대에 이마를 댔다.
“미연 씨.”
“죄송해요. 제가 너무…….”
“아니, 고마워요. 근데 저 이제 이 동네에서 진짜 살기 어렵겠네요.”
한결이 이마를 떼고 웃었다. 웃는데 눈이 빨갰다.
“이웃이 담 넘어서 매일 시끄럽네요.”
*
해가 지기 직전, 카페 앞에 경찰차가 아닌 낡은 회색 승용차가 섰다. 오 형사가 내렸다. 커피를 시키지 않고 구석 자리로 와서 승수 맞은편에 앉았다. 한결은 이번에도 묻지 않고 컵을 내려놓았다.
“시행사요.” 오 형사가 목소리를 낮췄다. “팔월 말에 이장 사무실에서 팩스로 위임장 한 장을 받았대요. 박순례 씨가 토지 매매에 관한 일체를 아들 김영수 씨에게 맡긴다는 위임장이요. 거기 찍힌 도장이, 읍내 가게에서 새긴 그 막도장이에요. 인영 대조 끝났어요.”
미연은 손에 쥔 컵이 뜨거운 줄도 몰랐다. 할머니는 그 위임장을 본 적도 없었다. 그날 밭둑에서 영수가 도장 받아 가야 한다고 말할 때, 사실은 이미 찍혀 있었다.
“그럼 그날 영수 아저씨가 도장 받으러 온 건…….”
“진짜 도장이 필요했던 거겠지요. 막도장으로는 등기가 안 되니까. 시행사는 위임장으로 계약금 일부를 먼저 보냈대요.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지금 보는 중이고요.”
승수가 오 형사를 보았다.
“형사님 상관은 이걸 어떻게 봅니까?”
오 형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찌푸렸다. 탄 맛 때문인지 질문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구속된 피의자 놔두고 아버지를 왜 파냐고 하지요. 사문서위조는 사문서위조고, 살인은 살인이라고. 둘이 따로 노는 사건이라고.”
“따로 노는 거예요?”
미연이 물었다. 오 형사가 미연을 오래 보았다.
“학생 공책에 뭐라고 적혀 있어요? 오늘 배운 거.”
미연은 공책을 펼쳤다. 육합, 이웃, 담 하나. 합이 있다는 것과 작용한다는 것은 다르다.
“붙어 있다고 다 합해지는 건 아니래요. 그런데 붙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위조랑 그날 밤이랑, 날짜가 붙어 있어요.”
오 형사는 대답 대신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일어서며 말했다.
“내일 그 신문사 기자 양반이랑 같이 시간 좀 내요. 셋이 맞춰 볼 게 있어요.”
*
저녁에 미연의 휴대전화로 엄마가 전화를 했다. 미연이 한결의 가게 이야기를 짧게 하자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반찬? 카페에서 반찬을 판다고? 그 사장님 반찬 할 줄은 알아?”
“몰라. 고민 중이래.”
“바꿔 봐.”
“엄마, 그 사람 지금 바빠.”
“바꿔 보라니까.”
미연은 계산대로 가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한결은 영문도 모르고 받았다. 처음 일 분은 네, 네, 네만 했다. 그다음 일 분은 공책을 끌어당겨 받아 적었다. 그다음 오 분은 미연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님 그건 간장을 먼저 넣어요 나중에 넣어요, 하고 묻고 있었다.
전화를 돌려받았을 때 엄마가 말했다.
“그 사장님 착하네. 멸치볶음 레시피 줬어. 장사 잘되면 엄마 이름 하나 붙여 달라고 했어.”
“엄마 이름을 왜 붙여.”
“합이잖아. 너네 선생님이 그러던데, 짝지어 붙는 거.”
미연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고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엄마가 언제 승수의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카페에서 그날 한 시간 남짓 마주 앉았던 것이 전부였다.
“엄마, 합은 화목이 아니래.”
“그래도 반찬은 맛있어야지.”
통화가 끊겼다. 한결은 엄마의 레시피를 받아 적은 공책을 들여다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반찬 카페. 이름은 뭐로 하지. 쉼표 반찬. 미연은 문에 붙은 종이 두 장 위에 세 번째 종이가 붙을 날을 생각했다.
구석 자리의 승수가 목발을 짚고 일어서며 말했다.
“합이 있다고 다 합해지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합해지는 데에는 늘 조건이 있지요. 오늘 조건 하나는 미연 씨 어머니였네요.”
“그건 근거 보임이에요?”
“멸치볶음이 맛있으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