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6,020자)
명리학의 기원과 고전 — 그 설명은 어느 책에서 왔을까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읍내 작은 도서관은 면사무소 뒤편 단층 건물이었다. 열람실에는 책상이 여덟 개 있었고, 그중 여섯 개를 고등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난로 위 주전자에서 보리차 끓는 소리만 열람실을 채웠다.
승수는 목발을 책장에 기대 놓고 창가 책상에 앉았다. 붕대 감은 다리를 옆 의자에 올려놓자 승수의 입에서 아주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미연은 못 들은 척하고 가방에서 공책을 꺼냈다.
“왜 하필 도서관이에요? 정자도 있잖아요.”
“정자는 바람이 불어요. 그리고 오늘은 책 이야기를 해야 해서요.”
“무슨 책이요?”
“우리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이 어디서 왔는지요.”
미연은 공책 앞쪽을 넘겼다. 『자평진전』, 『적천수』, 『연해자평』. 두 달 넘게 이 세 권의 구절을 하나씩 받아 적었다. 그런데 이 책들이 언제 누가 썼는지는 승수가 한 번도 길게 말한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처음에 『적천수』를 유기라는 사람이 썼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뒤에 전해진다는 말을 꼭 붙이셨어요.”
“그래서 오늘 그걸 이야기하려고요.”
승수가 공책에 다섯 칸을 그렸다. 한 칸마다 층이라고 적었다.
“사주명리는 어느 날 한 사람이 만든 게 아니에요. 층이 쌓였어요. 맨 아래가 음양과 오행이라는 생각이에요. 세상을 둘로, 다섯으로 나눠 보는 생각. 이게 언제부터 어떻게 하나로 붙었는지는 학자들도 아직 다 정리하지 못했어요. 그다음 층이 간지예요. 열 개 천간과 열두 지지로 날짜를 세는 법. 이건 아주 오래됐어요. 그런데 날짜를 세는 법과 그 날짜로 사람을 읽는 법은 다른 층이에요.”
“임진왜란이 날짜였던 것처럼요.”
“맞아요. 임진년이라는 이름은 그냥 그 해의 이름이었어요. 그걸로 이순신의 운을 읽는 건 그 위에 얹은 다른 층이고요.”
미연은 첫째와 둘째 칸에 음양오행, 간지라고 적었다.
“셋째 층에 당나라 때 이허중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당나라의 이름난 문장가 한유가 그 사람 무덤에 묻는 글을 썼는데, 거기에 이 사람이 태어난 해·달·날로 사람의 앞날을 헤아렸다고 적혀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쓴 걸로 전해지는 『이허중명서』는 훨씬 뒤에 만들어진 책일 수 있다는 연구가 있고, 이 사람이 태어난 시까지 썼는지도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에요.”
“그럼 그때는 세 기둥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때는 태어난 해, 연주를 중심에 놓고 읽었다고들 해요.”
“지금은 일간을 중심에 놓잖아요.”
“넷째 층이 그거예요. 서자평. 송나라 무렵 사람으로 전해지는데, 날의 천간을 나로 놓고 읽는 법을 연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이 공부를 자평명리라고도 불러요. 비 오던 날 정자에서 읽은 구절, 먼저 일간을 취하고 다음에 월령을 본다는 말이 바로 그 흐름이에요.”
“그 구절이 『연해자평』에 있었죠.”
“『연해자평』은 서자평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한 사람이 한 번에 쓴 책이 아니에요. 여러 손을 거치며 덧붙고 묶인 책이에요. 서자평과 이름이 비슷한 서대승이라는 사람도 엮였다고 하는데, 두 사람을 헷갈리면 안 되고요.”
미연은 넷째 칸에 서자평, 연해자평이라고 적고 그 옆에 작게 여러 손이라고 썼다.
“다섯째 층은요?”
“주석이에요. 『자평진전』은 청나라 때 심효첨이라는 사람이 쓴 본문에, 한참 뒤 서락오라는 사람이 평과 주를 붙였어요. 우리가 읽은 구절은 심효첨의 본문에서만 골랐어요. 서락오의 말을 심효첨의 말처럼 읽으면 안 되니까. 『적천수』도 유기가 썼다고 전해지지만 그건 전하는 말이에요. 뒤에 임철초라는 사람이 단 주석 덕분에 널리 읽혔고요.”
“그럼 우리가 읽은 한문 한 줄 한 줄이 다 누구 거인지 따로 따져야 해요?”
“그래야 해요. 본문, 주석, 그리고 그걸 지금 우리가 풀어 말한 것. 셋이 섞이면 누구 말인지 몰라요.”
미연은 펜을 멈췄다. 확인 기사를 쓸 때 윤지호가 늘 하던 말과 똑같았다. 누가 한 말이야, 원문 있어?
*
열람실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들어왔다. 고등학생 몇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들어온 사람은 개량한복 위에 패딩 조끼를 입고 있었다. 옥반지 낀 손으로 털모자를 벗었다.
도해였다.
도해는 열람실 안을 둘러보다가 창가 책상에서 눈을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웃으며 걸어와 미연 맞은편 빈 의자에 앉았다.
“근거 안 보임이 여기 있었구먼.”
미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해는 승수에게 눈을 돌렸다. 붕대 감은 다리, 책장에 기댄 목발.
“거북바위 양반이 다쳤다더니 진짜네. 오늘 여기서 내 명리 교실이 있어요. 매주 목요일. 군청 문화 강좌.”
“알고 있습니다.”
승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도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무언가가 오갔는데, 미연은 그게 무엇인지 읽지 못했다.
도해가 미연의 공책을 넘겨다보았다. 다섯 칸, 이허중, 서자평, 여러 손.
“이 선생이 그렇게 가르쳐요? 다 전해지는 말이다, 다 여러 손이다?”
“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고전을 우습게 알지. 아가씨, 내 스승의 스승이 누군지 알아요? 『적천수』를 쓴 유백온의 학통을 그대로 이은 분이에요. 명나라 개국공신 유기, 호가 백온. 그분 책을 읽으면서 전해지는 말이라니, 그건 조상 묘에 침 뱉는 거요.”
옆 책상 고등학생이 이어폰 한쪽을 뺐다. 미연은 공책을 덮지 않았다. 대신 가방에서 승수가 제본해 준 종이 뭉치를 꺼냈다. 『적천수』를 옮겨 적은 장 맨 앞에, 승수가 연필로 써 둔 출처 메모가 있었다.
“원장님, 이거 보세요. 우리가 읽은 『적천수』 원문이 실린 자리에도 저자는 유기라고 전한다고 적혀 있어요. 확정이라고 안 적혀 있어요. 그리고 원장님 스승의 스승이 그 학통을 이었다는 건 어디 적혀 있어요?”
“그건 우리 문중에서 내려오는…….”
“문중에서 내려오는 말이요.”
미연은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도해의 얼굴이 붉어졌다. 열람실이 조용해졌다. 주전자에서 보리차 끓는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아가씨.” 도해가 목소리를 낮췄다. “원문 한 줄 들고 사십 년 공부를 이기려고 하면 안 돼요.”
“이기려는 거 아니에요. 원장님이 한 말이 원문에 있는지, 원장님 문중에 있는지, 원장님 머릿속에 있는지 나눠 보려는 거예요. 정우 씨 일도 그래요. 정우 씨 사주에 피 볼 살이 있다는 거, 그건 어느 책 몇째 장에 있어요?”
도해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승수를 보았다. 한참을 보았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서며, 미연이 아니라 승수에게 말했다.
“서울에서 철학관 하다가 하루아침에 접은 이 선생 아니오? 그때 일은 나도 들었소. 그런 양반이 남의 원문 타령을 가르치시네.”
승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도해를 그냥 보고 있었다. 도해는 털모자를 다시 쓰고 강좌가 열리는 옆방으로 걸어갔다. 문이 닫혔다.
미연은 승수를 보았다. 서울. 철학관. 하루아침에. 사흘 동안 비어 있던 바위가 떠올랐다. 반은 무릎 때문이고 반은 아니라던 말도.
“선생님.”
“그 칸은 아직 모르는 칸이에요.”
승수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와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네.”
미연은 그 칸을 비워 두기로 했다. 정자에서 그렇게 약속했었다.
옆 책상에서 이어폰을 빼고 있던 고등학생이 의자를 조금 끌어 미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교복 위에 롱패딩을 입은 여학생이었다. 패딩 소매에 볼펜 자국이 줄줄이 나 있었다.
“언니, 저 근거 안 보임 언니 맞죠? 장터 영상 봤어요.”
“……그 영상 벌써 돌아요?”
“우리 반 단톡방에 있어요. 원장님 얼굴 확대한 거.” 여학생이 목소리를 더 낮췄다. “근데요, 저 지난주에 저 강좌 들었거든요. 엄마가 억지로 보내서요. 원장님이 저보고 천을귀인 있다고, 귀인이 도와줘서 대학 잘 간대요. 그거 진짜 좋은 거예요?”
미연은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승수를 보았다. 승수는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네가 해 보라는 뜻이었다.
“나도 아직 그건 못 배웠어. 그런데 하나는 물어볼 수 있어. 원장님한테, 그게 어느 책 어느 대목에 있는지. 그리고 그 책에서 천을귀인이 있으면 대학 잘 간다고 했는지, 아니면 원장님이 그렇게 말한 건지.”
“그걸 왜 물어봐요?”
“좋은 말이라도 근거를 모르면, 대학 떨어졌을 때 귀인이 안 도와줬다고 생각하게 되잖아. 그럼 그건 네 탓도 귀인 탓도 아닌데.”
여학생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영어 단어장 귀퉁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어느 책, 어느 대목. 미연은 그 글씨를 보며 자기 공책 첫 장을 떠올렸다. 두 달 전 미연도 저렇게 적었다.
“언니, 근데 귀인 안 도와주면 저 공부 더 해야 돼요?”
“귀인이 도와줘도 공부는 해야 돼.”
여학생이 한숨을 쉬며 이어폰을 다시 꽂았다. 승수가 책상 아래에서 미연의 운동화를 발끝으로 톡 건드렸다. 칭찬인지 놀림인지 알 수 없었다.
*
승수가 남은 구절을 펼쳤다. 『연해자평』에 실린 「오행생극부」의 끝부분이었다.
五行貴在中和。以理求之,慎勿茍言,掬盡寒潭須見底。
“오행귀재중화. 이리구지, 신물구언, 국진한담수견저. 오행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알맞은 데에 귀함이 있다. 이치로써 구하고, 함부로 말하는 것을 삼가라. 차가운 못의 물을 손으로 다 떠내어 바닥을 보듯 끝까지 살펴야 한다.”
“차가운 못의 물을 다 떠낸다.”
미연이 따라 읽었다. 겨울 계곡 웅덩이가 떠올랐다. 손을 넣으면 뼈까지 시린 물.
“그거 엄청 차갑겠네요.”
“그래서 아무도 끝까지 안 떠내요. 몇 번 떠 보다가 바닥이 이렇겠지, 하고 말하지요.”
“원장님처럼요.”
“나도 그랬어요.”
미연은 고개를 들었다. 승수는 책을 보고 있었다.
“이 구절이 오래됐다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오래됐다는 사실이 어디까지 뒷받침해 줄까요? 이 책을 쓴 사람들이 이 원칙을 지켰다는 것까지는 아니에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문장이 수백 년 동안 있었는데도,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함부로 말했어요. 오래된 문장은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려 줄 뿐이에요. 지켰다는 증거는 아니에요.”
“그럼 원장님 스승의 스승이 유백온 학통이라는 것도, 맞든 틀리든 정우 씨 사주를 읽는 근거는 안 되네요.”
“학통이 무엇을 보장해 주겠어요. 그 사람이 쓴 문장과, 그 문장으로 오늘 무엇을 말했는지만 남지요.”
옆방에서 도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좌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오늘은 귀인 이야기입니다, 사주에 천을귀인이 있는 사람은 말이죠. 수강생들의 웃음소리가 벽을 넘어왔다.
미연은 공책에 다섯 층을 다시 그렸다. 그리고 맨 위에 여섯째 칸을 하나 더 그렸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
“이건 왜요?”
“이것도 층이잖아요. 나중에 누가 제 공책을 보면, 이게 승수 선생님 말인지 제 말인지 원문인지 헷갈릴 거예요. 그러니까 칸을 나눠 놔야죠.”
승수가 한참 그 칸을 들여다보았다.
“그 칸 이름은 그렇게 두지 말고, 미연 씨 이름을 써요.”
미연은 지우개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섯째 칸 이름 옆에 작게 괄호를 쳤다. 미연. 쓰고 보니 얼굴이 뜨거웠다.
*
도서관을 나설 때는 해가 이미 기울어 있었다. 미연은 목발 짚은 승수를 따라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승수가 계단 하나마다 목발을 먼저 내리고 다리를 뒤따라 내렸다. 미연은 팔을 내밀지 않았다. 처음 산에서 내려올 때 승수가 그랬던 것처럼, 승수가 난간을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마지막 계단에서 승수가 숨을 내쉬었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배운 거예요.”
그때 미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오 형사였다. 문자 한 줄이었다.
도장 가게 주문자 확인됨. 내일 시간 됩니까.
미연은 화면을 승수에게 보여 주었다. 승수는 그 문자를 한참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운 못이네요.”
“바닥까지 떠내야죠.”
미연은 답장을 썼다. 됩니다. 몇 시요. 보내고 나서 손가락 끝이 찬 것을 알았다. 장갑을 안 끼고 나왔다.
승수가 패딩 주머니에서 장갑 한 켤레를 꺼내 내밀었다. 회색 털장갑이었는데, 오른쪽 엄지에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빌려줄게요. 엄지는 알아서 하고요.”
“구멍 난 거 근거 보임이네요.”
“그건 근거 보임 칸에 넣어요. 그 칸도 좀 채워야지요.”
미연은 장갑을 끼고 엄지를 구멍 밖으로 내밀어 보았다. 바람이 엄지 끝만 골라 시리게 했다. 그래도 나머지 아홉 손가락은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