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6,138자)

시주를 모를 때 — 세 기둥으로 읽는 사람들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승수가 거북바위에 오지 않은 지 사흘째였다.

첫날 미연은 바위 위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둘째 날은 할머니에게 거북바위 그 양반 사는 데가 어디냐고 물었다가, 그 양반은 원래 사는 데를 안 알려 준다는 대답을 들었다. 셋째 날 아침에는 아예 바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읍내로 나가는 첫 버스를 탔다. 윤지호가 맡긴 확인 일거리가 하루에 세 건씩 쌓이고 있었고, 미연은 그 일거리를 핑계 삼아 바위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마지막으로 본 승수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선생님은 왜 산에 있어요, 하고 물었을 때 승수의 얼굴에서 처음 보는 것이 지나갔다. 화였는데, 미연을 향한 화가 아니었다. 그다음 날부터 바위가 비어 있었다.

읍내 오일장은 그날따라 북적였다. 장터 한복판에 지역 방송국 승합차가 서 있었고, 승합차 앞에 접이식 의자 두 개와 조명이 놓여 있었다. 의자 하나에 앉은 사람을 미연은 멀리서도 알아보았다. 개량한복 위에 패딩 조끼를 입고, 손가락에 큼직한 옥반지를 낀 남자. 도해철학관 원장 도해였다.

미연은 확인 일거리 수첩을 가방에 넣고 사람들 틈으로 다가갔다. 진행자가 마이크를 내밀고 있었다.

“원장님, 요즘 계룡산 사건 때문에 사주에 관심이 많아졌는데요. 정말 사주로 그런 일을 알 수 있습니까?”

“다 알 수는 없지요. 그런데 그 청년은 시주만 알았어도 확실했을 겁니다. 일주에 살이 둘 겹쳤는데, 시주에 하나만 더 걸렸으면 그건 뭐, 말할 것도 없지요.”

“시주를 모르시는데도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건가요?”

“시주를 모르니까 이 정도로만 말하는 겁니다. 알았으면 더 말했을 거고.”

구경꾼 몇이 웃었다. 진행자도 웃었다. 미연은 웃지 않았다. 모르는 칸을 근거로 더 크게 말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촬영이 끝나고 조명이 꺼질 때 미연이 의자 앞으로 나섰다.

“원장님.”

도해가 고개를 들었다. 잠깐 기억을 더듬다가 웃었다. 지난번 철학관에서 마주 앉았던 아가씨를 알아본 얼굴이었다.

“아, 壬子. 도화 있는 아가씨.”

“방금 정우 씨 시주를 모르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요.”

“모르는 칸에 살이 하나 더 걸렸으면, 하고 말씀하셨어요. 그럼 안 걸렸으면요? 그 칸에 좋은 글자가 들어 있으면요?”

도해의 웃음이 얇아졌다. 진행자가 마이크를 든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아직 녹화 중이라는 빨간 불이 카메라에 켜져 있었다.

“아가씨, 세 기둥만 봐도 그 사람 팔자 칠 할은 나와요.”

“칠 할이요? 그건 어디서 나온 숫자예요?”

“사십 년 본 사람 눈에서 나온 숫자지요.”

“그럼 근거 안 보임이네요.”

“뭐?”

미연은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승수와 둘이서만 쓰던 말이었다. 도해는 처음 듣는 말에 얼굴을 찌푸렸고, 진행자는 어리둥절했고, 구경꾼 하나가 킥 웃었다. 미연은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세 기둥으로 읽을 수 있는 건 있어요. 일간이랑 월령, 확인된 여섯 글자의 관계까지요. 시주가 있어야 정할 수 있는 건 안 정하는 거고요. 모르는 칸을 무서운 글자로 채우는 건 읽는 게 아니라 지어내는 거예요.”

도해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옥반지 낀 손으로 패딩 조끼 단추를 하나 채우며 미연을 내려다보았다.

“아가씨 선생은 요즘 어디 있어요? 거북바위에 안 보이던데.”

미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도해는 그 침묵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승합차 쪽으로 걸어갔다.

*

「충청새벽」 편집실은 장터 뒤편 이층 건물 맨 끝 방이었다. 책상 넷에 사람은 둘, 커피 자국이 동그랗게 남은 원고 더미가 창틀까지 쌓여 있었다. 윤지호는 미연이 들어오자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의자를 발로 밀어 주었다.

“장터에서 원장이랑 붙었다며? 방송국 피디가 벌써 전화 왔어. 그 장면 써도 되느냐고.”

“쓰지 말라고 해 주세요.”

“왜? 재밌던데.”

“제가 근거 안 보임이라고 했어요. 방송에서.”

윤지호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이 다 끝날 때까지 미연은 의자에 앉아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그럼 이렇게 하자. 그거 글로 써. 우리 「확인」 꼭지에. 원장이 방송에서 한 말을 확인하는 거야. 시주를 모르는데 시주로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지.”

“제가요?”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이름은 안 넣어. 확인 꼭지는 원래 기자 이름 안 붙여.”

미연은 빈 원고 창을 오래 보았다. 처음 승수를 만난 날, 근거를 적으라던 말이 생각났다. 미연은 쓰기 시작했다.

사주는 태어난 해·달·날·시의 네 기둥이다. 시를 모르면 여섯 글자가 남는다. 여섯 글자로 알 수 있는 것은 날의 천간, 곧 일간이 무엇인지, 그 일간이 어느 달에 태어났는지, 그리고 확인된 글자들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다. 알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시주가 들어오면 바뀔 수 있는 판단, 곧 전체의 강약과 중심 구조와 무엇을 조절해야 하는지는 시주 없이는 조건을 달아서만 말할 수 있다.

쓰다가 막히자 미연은 공책을 펼쳤다. 거기에는 승수에게 받은 유명인 표가 끼워져 있었다. 시를 모르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세종. 丁丑, 乙巳, 壬辰. 시는 모른다.

“이거 봐요.” 미연이 공책을 윤지호 쪽으로 돌렸다. “세종대왕이에요. 실록에 태어난 날은 있는데 시는 안 남았대요. 그래도 일간은 壬이고, 巳월, 초여름이에요. 큰 물이 초여름에 태어난 거죠. 여기까지는 누가 봐도 같아요.”

“그다음은?”

“그다음부터는 조건이에요. 시주에 물이 더 있으면 어떻게 보고, 불이 더 있으면 어떻게 본다. 그렇게 갈래를 나눠 놓는 거예요. 한쪽으로 정해 버리면 그건 세종대왕 시주를 제가 지어낸 거예요.”

윤지호가 턱을 괴었다.

“그럼 시를 모르는 사람은 절반만 읽히는 거네.”

“절반이라도 정확하게 읽는 게 전부를 지어내는 것보다 나아요. 선생님이 그랬어요.”

말해 놓고 미연은 입을 다물었다. 선생님이 그랬어요. 사흘째 바위에 안 오는 선생님이었다.

미연은 다음 줄을 짚었다. 김구. 丙子, 丙申, 己巳. 무를 뽑던 날 밭둑에서 식혜를 마시며 본 표였다. 유관순. 壬寅, 壬子, 癸酉. 정주영. 乙卯, 丁亥, 庚申. 그리고 승수가 따로 적어 준 마을 사람들의 표. 할머니 戊子, 甲寅, 丙戌. 정우 辛巳, 戊戌, 壬戌. 돌아가신 이장 甲辰, 壬申, 壬寅. 셋 다 시를 몰랐다.

“여기 시 아는 사람이 없네요. 할머니도, 정우 씨도, 이장님도.”

“시골은 원래 그래. 우리 할머니는 생일도 음력으로 두 개야. 호적에 올린 날이랑 진짜 태어난 날.”

“그럼 그 경우는 날짜부터 확인해야죠. 일주가 바뀌니까.”

윤지호가 미연을 오래 보았다.

“너 이거 몇 달 배웠어?”

“두 달 조금 넘었어요.”

“그 원장은 사십 년이래.”

“사십 년 동안 모르는 칸을 채워 온 거죠.”

윤지호가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짧게.

*

원고를 넘기자 윤지호의 얼굴이 바뀌었다. 기사 제목을 붙이는 칸에서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사십 년 역술인, 모르는 시주로 살인을 점치다」

“이거 아니에요.”

미연이 화면을 가리켰다. 윤지호가 의자를 돌렸다.

“왜? 사실이잖아.”

“점친 게 아니라 말한 거예요. 그리고 살인을 점친 게 아니라 정우 씨를 찍은 거고요. 이 제목이면 사람들이 원장님을 욕하려고 읽어요. 정우 씨 일은 또 사라지고요.”

“욕하려고 읽어도 읽기는 읽잖아.”

“그게 원장님이 한 거랑 뭐가 달라요? 사람들 겁주려고 크게 말하는 거.”

편집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옆 책상의 다른 기자가 이어폰 한쪽을 뺐다. 윤지호는 미연을 노려보다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고 천장을 보았다.

“너 진짜 피곤한 애다.”

“알아요.”

“그럼 네가 붙여.”

미연은 제목 칸 앞에서 한참 손을 멈췄다. 겁을 주지 않으면서 읽히는 제목은 어려웠다. 결국 적은 것은 짧았다.

「모르는 칸은 모른다고 적는다 — 시주 없는 사주 풀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나」

윤지호가 소리 내어 읽고는 혀를 찼다.

“안 읽히겠다.”

“읽는 사람은 읽어요.”

“그 사람들은 원래 원장 말 안 믿는 사람들이야.”

“그럼 원장님 말 믿는 사람 한 명만 읽어도 돼요.”

윤지호는 대답하지 않고 제목을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원고 맨 아래에 작은 상자를 하나 더 붙이자고 했다. 시 경계에 걸린 사람들 이야기였다. 미연이 공책에서 찾아낸 두 사람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새벽 네 시 삼십오 분. 寅시는 새벽 세 시부터 다섯 시 전까지다. 이십오 분만 늦게 태어났으면 卯시였다. 甲 일간의 寅시는 丙寅, 卯시는 丁卯가 된다.

이소룡. 아침 일곱 시 십이 분. 辰시가 막 시작된 때다. 십이 분만 일렀으면 卯시였다. 甲 일간의 辰시는 戊辰, 卯시는 丁卯.

“둘 다 경계에서 한쪽으로 넘어가면 丁卯가 되네.” 윤지호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웃기다.”

“그래서 이 둘은 시주를 빼고 읽어요. 어느 쪽이든 안 흔들리는 부분, 겨울에 태어난 갑목이라는 것, 옆에 불이 있다는 것부터요. 그리고 흔들리는 칸은 흔들린다고 적고요.”

“시계가 이십오 분 틀렸으면 엘비스 인생이 달라지냐?”

“인생은 안 달라지죠. 읽는 사람 말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칸은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거고요.”

윤지호는 그 말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상자 제목에 그대로 넣었다. 「시계가 이십오 분 틀렸으면」.

*

해 질 무렵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미연은 등산로 입구 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한결의 카페 불빛이 보였다. 정자도 보였다. 정자 마루에 누가 앉아 있었다.

미연은 걸음을 멈췄다.

승수였다. 오른쪽 무릎에 흰 붕대를 둘둘 감은 채,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있었다. 옆에는 목발 하나가 기대어 있었다. 미연이 정자 계단 앞에 서자 승수가 고개를 들었다.

“장터에서 근거 안 보임이라고 했다면서요.”

“……그게 벌써 여기까지 왔어요?”

“한결 씨가 방송국 피디한테 들었대요. 카페에 와서 커피 마시면서 얘기하더래요.”

미연은 계단을 하나 올라섰다. 붕대가 감긴 무릎을 보았다.

“그게 어떻게 된 거예요?”

“사흘 전에 내려가다 미끄러졌어요. 바위 아래 젖은 낙엽에서.”

“그래서 안 오신 거예요?”

승수가 잠깐 말이 없었다. 정자 지붕 끝에서 마지막 햇빛이 물러나고 있었다.

“반은 그래서고, 반은 아니에요.”

“나머지 반은요?”

“그건 아직 시주를 모르는 칸이에요.”

미연은 웃으려다 웃지 못했다. 승수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눈은 농담이 아니었다. 미연은 승수 옆에 앉았다. 붕대에서 파스 냄새가 났다.

“그럼 그 칸은 비워 둘게요. 모른다고 적어 놓고.”

“고마워요.”

“대신 아는 칸부터 말해 주세요. 무릎은 괜찮아요?”

“인대가 좀 늘어났대요. 한 달은 바위에 못 올라가요.”

“그럼 수업은요?”

승수가 정자 마루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여기서 하지요. 계단 없는 데서.”

미연은 가방에서 오늘 쓴 원고를 꺼내 승수에게 건넸다. 승수는 그것을 끝까지 읽었다. 제목을 두 번 읽었고, 「시계가 이십오 분 틀렸으면」에서 한 번 웃었다. 그리고 원고를 돌려주며 말했다.

“모르는 칸은 모른다고 적는다. 그거 내가 한 말 아니에요.”

“선생님이 한 말이에요. 처음 아인슈타인 볼 때.”

“나는 아는 것부터 읽으라고 했지요. 모르는 칸을 모른다고 적는 건 미연 씨가 만든 말이에요.”

미연은 원고 제목을 내려다보았다. 자기가 만든 말인 줄 몰랐다. 카페 쪽에서 한결이 손을 흔들며 컵 두 개를 들고 건너오고 있었다. 오늘도 손님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커피는 아마 조금 탔을 것이다.

한결은 정자 계단에 컵 두 개를 내려놓고는 승수의 붕대를 보고 눈썹을 올렸다.

“선생님 다리가 왜 그래요? 바위에서 살이라도 맞으셨어요?”

“낙엽 맞았어요.”

“아까 피디님이 그러는데요, 장터에서 누가 원장님한테 근거 안 보임이라고 했대요. 그 말이 지금 읍내에 쫙 퍼졌대요. 시장 생선 가게 사장님이 원장님 지나가니까 근거 안 보임 지나간다, 그랬대요.”

미연은 컵을 들다가 커피를 쏟을 뻔했다. 승수는 고개를 돌려 정자 기둥을 보았는데, 어깨가 소리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거 저예요.”

“알아요. 피디님이 산에서 사주 배우는 아가씨라던데, 이 동네에 그런 아가씨가 미연 씨 말고 또 있어요?”

한결은 한 손을 허리에 짚고 미연을 내려다보더니, 반쯤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그 원장한테 오만 원 주고 받은 폐업 날, 그거 버렸어요. 날은 내가 정하려고요.”

컵에서 김이 올라왔다. 커피는 예상대로 조금 탔다. 미연은 그 탄 맛이 오늘은 싫지 않았다.

2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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