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6,514자)
조후 — 여름의 물, 가을의 물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첫눈은 12월 둘째 날 새벽에 왔다.
미연이 건넌방 창호지 문을 열었을 때 마당의 장독 뚜껑마다 손가락 한 마디 높이로 눈이 앉아 있었다. 산은 아래쪽 반만 하얬다. 능선 위쪽은 구름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벌써 나가고 없었다. 마루 위에 쪽지 하나가 밥그릇에 눌려 있었다. 구치소 다녀온다, 아궁이 불 봐라. 수요일이었다. 정우 면회가 있는 날이었고, 할머니는 늘 첫 버스를 탔다. 섬돌 위에 할머니 고무장화가 없었다.
미연은 아궁이에 장작 두 개를 더 넣고 헛간에서 아이젠을 찾아냈다. 영감이 쓰던 것인지 고무가 삭아 갈라진 오래된 아이젠이었다. 할머니가 보면 그걸 왜 꺼냈냐고 하겠지만, 계단은 얼어 있을 것이었고 승수는 그 계단 위에 앉아 있을 것이었다.
거북바위에 오르는 데 평소의 두 배가 걸렸다. 아이젠 발톱이 얼어붙은 계단을 긁을 때마다 소리가 났고,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얼굴 앞에 걸렸다가 흩어졌다. 바위 위에 승수가 있었다. 우산을 펴서 머리 위에 받친 채 앉아 있었는데, 우산 위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무릎은요?”
“핫팩 여섯 개.”
“그건 근거가 보이네요.”
승수가 웃으며 우산을 기울여 미연 쪽 자리의 눈을 털어 냈다. 미연은 그 자리에 앉았다. 바위의 냉기가 바지를 뚫고 올라왔다.
“오늘은 날씨가 수업을 할 거예요.”
“비 오던 날에도 그러셨어요.”
“그날은 비가 했고 오늘은 눈이 하지요.”
*
승수가 우산 손잡이를 어깨에 걸치고 『적천수』를 펼쳤다. 종이 끝이 눈송이에 젖지 않게 소매로 가렸다. 「한난론」, 추위와 따뜻함을 논한 편이었다.
天道有寒暖,發育萬物,人道得之,不可過也。地道有燥濕,生成品彙,人道得之,不可偏也。
“천도유한난, 발육만물, 인도득지, 불가과야. 지도유조습, 생성품휘, 인도득지, 불가편야. 하늘의 도에는 추위와 따뜻함이 있어 만물을 기르니, 사람도 그것을 받되 지나쳐서는 안 된다. 땅의 도에는 마름과 젖음이 있어 온갖 것을 나고 이루게 하니, 사람도 그것을 받되 치우쳐서는 안 된다.”
“추위와 따뜻함, 마름과 젖음.”
“줄여서 한난조습이라고 해요. 명식이 얼마나 춥고 더운지, 얼마나 마르고 젖었는지를 보는 거예요. 그걸 고르게 맞추는 걸 조후라고 하고요. 고를 조 자, 기후 후 자. 기후를 고른다는 뜻이에요. 용신 다섯 길 가운데 둘째 길이었지요.”
미연은 눈 덮인 능선을 보았다. 숲의 나무들이 전부 가지에 눈을 이고 서 있었다. 갑목도 을목도 오늘은 구별이 안 되었다.
“지난주에 강약 할 때는 힘을 셌잖아요. 누가 몇 개고 누가 뿌리가 있고. 조후는 그거랑 달라요?”
“세는 건 같은데 묻는 게 달라요. 강약은 일간 편이 얼마나 많으냐고 묻고, 조후는 이 표가 몇 도냐고 물어요. 힘이 센 물이라도 얼어 있으면 흐르지 못하지요. 힘이 약한 불이라도 한겨울엔 귀하고요.”
“제 거 해 볼게요.” 미연이 장갑을 벗고 공책을 펼쳤다. 손가락이 금방 빨개졌다. “酉월이요. 가을 한가운데. 쇠는 차고, 물도 차가워지는 때예요. 일지 子는 한겨울 물이고, 申도 가을 쇠예요. 차가운 쪽으로 몰렸어요. 따뜻한 건 시주의 丁하고 未 안의 丁뿐이에요.”
“그래서?”
“그래서 丁이 귀해요. 지난주에 억부로도 丁, 조후로도 丁이 나왔어요. 오늘 다시 보니까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요. 제 표는 추워요.”
“내 거는요?”
“午월. 한여름 대낮이에요. 午 안에 丙 丁, 未 안에 丁, 둘 다 불이에요. 卯도 나무라 불을 거들고요. 선생님 표는 더워요. 바짝 말랐어요. 그래서 물이나 쇠가 귀하고, 庚이 귀해요.”
“같은 물인데 미연 씨는 추워서 불을 찾고, 나는 더워서 쇠를 찾지요. 처음 바위 위에서 둘 다 물이면 비슷하냐고 물었지요. 오늘 그 대답이 이거예요.”
미연은 그 대답을 공책 첫 장, 순서표 둘째 줄 옆에 옮겨 적었다. 같은 물이어도 여름 물과 가을 물은 찾는 게 다르다.
승수가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프리다 칼로였다. 丁未, 丙午, 丙辰, 壬辰.
“지난번에 양인격이라고 했던 사람이에요. 午월의 丙. 한여름 대낮에 해가 하나 더 떠 있는 표예요.”
“엄청 더워요. 丙이 둘이고 午에 丁에. 근데 시간에 壬이 있어요. 큰 물. 그리고 辰이 둘이에요. 辰은 젖은 흙이랬어요.”
“더운 표에 물과 젖은 흙이 시원하게 깔려 있지요. 조후로 보면 그 壬이 아주 귀한 일을 해요.”
“더위를 식혀 주는 거요.”
“강휘상영도 기억나요? 해 보러 갔던 날.”
“강물에 해가 비치는 거. 丙하고 壬.”
“이 표에서는 그게 조후까지 맞춰 주는 짝이 돼요.”
승수는 그다음 이야기를 했다. 옛사람들이 가을과 겨울의 쇠가 물을 만난 표를 두고 쓰던 말이 있다고 했다. 금백수청, 쇠는 희고 물은 맑다. 맑고 귀하다는 칭찬이었다. 그런데 같은 표에 불이 하나도 없으면 다른 말을 쓰기도 했다. 금한수냉, 쇠는 차고 물은 얼었다.
“같은 표를 보고 칭찬도 하고 걱정도 해요. 차이는 불 하나예요. 계절을 안 보고 글자 이름만 보면 칭찬만 남지요.”
미연은 그 네 글자를 받아 적다가 펜을 멈췄다. 금백수청. 어디서 들었는지 금방 떠올랐다. 철학관 책상 앞에서 도해가 영수 아저씨를 두고 한 말이었다. 庚子, 금백수청, 귀한 사주. 미연은 그 말 옆에 적힌 금한수냉을 오래 보았다. 차이는 불 하나. 그 아저씨 표에 불이 있는지 없는지 미연은 몰랐다. 알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올라왔다. 미연은 그 마음을 공책에 적지 않았다. 그 표는 읽지 않기로 했었다.
*
승수가 우산 위의 눈을 털고 일어섰을 때가 열한 시였다. 둘은 얼어붙은 계단을 한 칸씩 내려왔다. 등산로 입구 버스 정류장에 이르렀을 때 미연은 정류장 기둥에 붙은 종이를 보았다. 아침에 군청에서 붙이고 간 듯한 종이였다. 폭설로 첫차부터 오전 운행 중단.
미연은 그 종이 앞에서 멈춰 섰다.
“할머니 첫차 타신다고 했는데.”
승수가 종이를 보았다. 그리고 마을 쪽이 아니라 계곡 쪽, 할머니 밭이 있는 쪽을 보았다. 버스를 못 탄 할머니가 돌아와 집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둘 다 알았다. 정우가 구치소에 간 뒤로 할머니는 마음이 갈 데가 없으면 밭에 나갔다. 아무것도 심지 않은 고랑을 괭이로 갈았다. 눈 오는 날에도 나갈 사람이었다.
“밭.”
승수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무릎이 소리를 냈지만 걸음은 느려지지 않았다.
밭은 하얬다. 고랑과 이랑이 눈에 덮여 구분되지 않았고, 밭 한가운데 괭이 하나가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그 괭이 옆에 무언가 검은 것이 눈에 반쯤 덮여 있었다.
미연은 그게 할머니의 털모자라는 걸 알아보는 데 숨 한 번이 걸렸다.
“할머니!”
미연은 밭둑을 뛰어내렸다. 아이젠이 눈 덮인 흙을 파고들었다. 할머니는 괭이 옆에 모로 누워 있었다. 고무장화 한 짝이 벗겨져 있었고, 맨발이 눈 위에 나와 있었다. 미연이 어깨를 흔들자 할머니의 눈꺼풀이 조금 떨렸다. 입술이 파랬다. 미연의 손이 할머니 뺨에 닿았는데, 눈보다 차가웠다.
승수가 뒤따라와 무릎을 꿇었다. 핫팩이 무릎에서 떨어져 눈 위로 굴렀다. 승수는 패딩을 벗어 할머니를 덮었고, 미연은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눌렀다. 주소를 대는데 번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밭 이름이 없었다. 미연은 거북바위 아래, 마을회관에서 계곡 쪽으로 올라가는 첫 번째 밭이라고 소리쳤다.
구급차가 오기까지 십팔 분이 걸렸다. 미연은 할머니의 맨발을 자기 패딩 안에 넣고 두 손으로 감쌌다. 승수는 할머니 귀에 대고 계속 말을 걸었다. 정우 이야기였다. 정우가 대학 다닐 때 카페에서 알바하던 이야기, 밤 포대를 메고 산을 오르던 이야기. 할머니의 입술이 한 번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
시내 종합병원 응급실 복도의 시계는 오후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의사는 저체온과 가벼운 뇌경색이라고 했다. 큰 고비는 넘겼지만 나이가 있으니 며칠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승수는 구급차를 따라 낡은 승용차를 몰고 왔다가, 의사의 말을 다 듣고 나서야 복도 의자에 주저앉았다. 젖은 바짓단에서 녹은 눈이 바닥으로 떨어져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미연이 그 옆에 앉았다.
“할머니는 寅월에 태어난 丙이었죠. 선생님이 적어 주신 표에서 봤어요.”
“이른 봄의 해예요. 해는 해인데, 아직 추운 데 뜬 해.”
“오늘 그 해가 눈밭에 누워 있었어요.”
승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미연의 젖은 장갑을 벗겨 라디에이터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영수가 오기 전에 자리를 비켜 주겠다며, 병원 일 층 편의점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 집 일에 자기가 있으면 영수 씨가 할 말도 못 한다고 했다. 승수는 할머니가 깨어나는 걸 보지 않고 내려갔다.
미연은 복도 의자에 앉아 할머니의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구급차에서 할머니 몸빼 주머니에서 꺼낸 것이었다. 폴더폰이었다. 단축번호 1번에 영수라고 적혀 있었다.
미연은 그 번호를 오래 보았다. 며칠째 아무도 연락이 닿지 않은 번호였다. 경찰도, 할머니도. 누르면 받을까. 받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남의 집 일에 끼지 마. 골목 그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미연은 1번을 길게 눌렀다.
신호가 세 번 갔다. 그리고 연결되었다. 숨소리가 먼저 들렸다.
“엄마?”
미연은 목이 막혔다. 할머니 번호로 오는 전화는 받는 사람이었다.
“아저씨, 미연이에요. 할머니가 밭에서 쓰러지셨어요. 지금 시내 종합병원 응급실이에요.”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지금 갈게.”
영수가 도착한 것은 다섯 시 반이었다. 서울에서 차를 몰아 쉬지 않고 왔다는 얼굴이었다. 수염이 자라 있었고, 패딩 안에 셔츠 단추가 하나씩 어긋나 잠겨 있었다. 영수는 미연을 보지 않고 곧장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커튼 너머로 영수가 할머니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두 번 부르고 더는 부르지 않았다.
미연이 복도 의자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복도 끝 자판기 앞에 오성태 경위가 서 있었다. 언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형사는 자판기 커피 두 잔을 뽑아 하나를 미연에게 내밀었다.
“마을에 119 들어가면 우리도 알아요. 박순례 씨 댁이라길래.”
“아저씨 지금 안에 있어요.”
“알아요.”
오 형사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었다. 그러다 영수가 커튼을 젖히고 나오자 종이컵을 미연의 의자 옆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영수는 복도에 선 형사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형사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둘 사이에 복도 형광등 두 개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김영수 씨.”
“어머니가 저 안에 계십니다.”
“압니다. 그래서 여기서 기다렸어요. 지난주 금요일에 출석 요청드렸는데 안 오셨지요. 전화도 꺼져 있고.”
“어머니가 깨어나시면 가겠습니다.”
“지금 같이 가 주시면 좋겠는데요.”
영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 저기 누워 계신다고요! 아들은 구치소에 있고, 어머니는 눈밭에 쓰러지셨고, 형사님은 지금 나한테 가자고 하시는 거예요?”
복도의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간호사 하나가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멈췄다. 오 형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아드님이 구치소에 있는 게 저도 마음에 걸려서 그래요. 김영수 씨가 와 주셔야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영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형사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자리에서 미연보다 먼저 알아들은 사람은 영수였다. 영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사이가 길었다. 골목 그늘에서 굳었던 얼굴보다 길었다.
“어머니 깨어나시면.” 영수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깨어나시면 가겠습니다. 그건 약속하겠습니다.”
오 형사는 영수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병원 앞에 우리 차 있습니다. 김영수 씨 차 키는 제가 맡아 두겠습니다.”
영수는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형사에게 건넸다. 손이 떨렸다. 형사는 그 키를 받아 들고 복도 끝 의자에 가서 앉았다. 떠나지 않았다.
*
할머니가 눈을 뜬 것은 밤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
미연은 커튼 틈으로 그 순간을 보았다. 영수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할머니 손을 쥐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꺼풀이 몇 번 떨리다 열렸다. 눈동자가 천장을 헤매다가 아들의 얼굴에서 멈췄다.
“영수야.”
“엄마, 나 여기 있어.”
할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산소마스크 너머로 숨이 하얗게 서렸다가 사라졌다. 할머니의 손가락이 아들의 손등 위에서 아주 조금 움직였다.
“영수야.”
“응, 엄마.”
“너 거기 있었지.”
영수의 손이 할머니 손에서 미끄러졌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묻는 말도 아니었다. 밭둑에서 품삯이야 하던 목소리와 같은 높이였다. 할머니는 그 말을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잠든 건지 눈만 감은 건지 미연은 알 수 없었다.
영수는 의자에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의 모니터에서 할머니의 맥박 숫자가 천천히 깜박였다. 복도 끝 의자에서 오 형사가 일어서는 소리가 났다. 일어서기만 하고 다가오지는 않았다.
미연은 커튼에서 손을 뗐다. 주머니 속에서 핫팩 두 개가 손에 잡혔다. 아침에 할머니께 드리려고 챙긴 것이었다. 둘 다 아직 따뜻했다. 미연은 그 핫팩을 커튼 틈으로 밀어 넣어 침대 발치, 이불 밑 할머니의 맨발 옆에 놓았다. 아침에 눈 위로 삐져나와 있던 그 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