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6,189자)

용신·희신·기신 — 무엇을 돕고 무엇을 조절할까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없는 걸 채우면 되는 거 아니에요?”

미연이 그렇게 물은 건 거북바위 위에서였다. 11월 마지막 주, 바위 위의 서리는 이제 해가 높이 떠도 다 녹지 않았다. 승수는 핫팩 넷을 무릎에 붙이고 있었다. 미연이 매일 두 개씩 가져오다가, 지난주부터 승수가 자기 돈으로 사 오기 시작했다. 승수는 그것을 「배운 대로 하는 것」이라고 불렀다.

“어떤 걸 채우는데요?”

“제 표에는 흙이 거의 없어요. 未 하나뿐이고. 선생님 표에는 물이 없고요. 그러니까 저는 흙을 채우고 선생님은 물을 채우면…….”

“미연 씨 표에 흙을 채우면 어떻게 될까요?”

미연은 자기 명식을 떠올렸다. 壬, 신강. 흙은 물을 누르는 쪽이었다. 강한 물을 흙이 눌러 준다. 그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미연이 대답하기 전에 승수가 하나 더 물었다.

“그리고 내 표에 물을 채우면요? 한여름 비가 약하니까 물을 더 부어 주는 거지요.”

“그건 좋은 거 아니에요? 약한 데를 도와주는 거니까.”

“그럼 왜 나는 庚을 귀하게 볼까요? 쇠는 물이 아니잖아요.”

미연은 말문이 막혔다. 승수는 그 막힘을 반기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그 질문을 풀 거예요. 없는 것과 필요한 것이 언제 다른지. 명리에서는 그 필요한 것을 용신이라고 불러요. 쓸 용, 귀신 신 자인데, 귀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쓰임새라는 뜻이에요. 이 명식이 무엇을 써야 잘 돌아가는지.”

*

승수는 손가락으로 바위 위에 다섯 줄을 그었다. 서리가 손가락 자국을 따라 녹았다.

“용신을 찾는 길은 크게 다섯 가지예요. 첫째는 억부. 누를 억, 도울 부. 강한 일간은 덜어 내고 약한 일간은 도와요. 미연 씨 같은 신강한 물이면, 그 물을 흘려보낼 나무나 물이 다뤄야 할 불, 물을 막아 줄 흙을 써요. 둘째는 조후. 계절의 춥고 더움을 맞추는 거예요. 한겨울 표에는 불이, 한여름 표에는 물이 귀하지요. 셋째는 통관. 두 기운이 싸우고 있을 때 가운데서 이어 주는 글자를 써요. 넷째는 병약. 명식에 병이 되는 글자가 있으면 그걸 치는 약을 써요. 다섯째는 전왕. 지난주에 본 종격처럼 한쪽으로 완전히 쏠린 명식은 그 쏠림을 따라가요.”

“다섯 개를 다 따져요?”

“한 명식 안에서 여러 길이 같은 답을 가리키면 그 답이 단단한 거고, 길마다 다른 답이 나오면 그때부터 어려워지지요.”

“그럼 선생님 표로 해 봐요.”

승수가 웃었다.

“이제 미연 씨가 시키네요.”

“선생님 표는 칠살격이었어요. 己가 癸를 누르고, 庚이 가운데서 그 누름을 받아 선생님을 낳아 줘요. 살인상생. 이게 통관이죠? 흙하고 물이 싸우는데 쇠가 가운데서 이어 주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선생님은 신약이에요. 약한 일간은 도와야 하니까, 억부로 보면 물이나 물을 낳는 쇠가 필요해요. 쇠는 庚이에요.”

“그리고?”

“그리고 午월이요. 한여름. 조후로 보면 더위를 식혀 줄 물이나 쇠가 필요해요. 그것도 庚이에요.”

미연은 손가락으로 바위 위 다섯 줄 가운데 세 줄을 짚었다. 억부, 조후, 통관. 세 길이 모두 승수 월간의 庚 한 글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庚이 귀한 거네요. 없는 물을 붓는 게 아니라, 있는 쇠를 살리는 거.”

“없는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될까요?”

“……여름 소나기처럼 한 번 쏟아지고 말아요? 그리고 己한테 막혀서 고이기만 하고.”

“비유로는 그래요. 내 표가 실제로 물을 만나면 어떤지는 운을 배울 때 볼 거고요. 오늘은 하나만 기억해요. 용신은 없는 걸 고르는 게 아니라, 이 명식이 돌아가려면 무엇이 일해야 하는지 고르는 거예요.”

승수가 『자평진전』을 펼쳤다. 둘째 권의 한 편, 「용신이 기후와 짝하여 얻고 잃음을 논함」이었다.

論命惟以月令用神爲主,然亦須配氣候而互參之。譬如英雄豪傑,生得其時,自然事半功倍;遭時不順,雖有奇才,成功不易。

“논명유이월령용신위주, 연역수배기후이호참지. 비여영웅호걸, 생득기시, 자연사반공배. 조시불순, 수유기재, 성공불이. 명을 논할 때는 오직 월령의 용신을 중심으로 삼지만, 반드시 기후와 맞춰 함께 살펴야 한다. 영웅호걸에 비유하면, 때를 얻어 태어나면 저절로 일은 반만 해도 공은 갑절이 되고, 때가 순하지 않은 데를 만나면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영웅호걸도 때를 잘 만나야 한다.”

“이 책에서 기후는 계절이에요. 추위와 더위, 마름과 젖음. 월령만 보지 말고 그 계절의 온도까지 보라는 말이지요. 사람 사는 형편이나 세상 형편으로 옮겨 읽고 싶어지는 문장이긴 한데, 그건 우리가 비유로 하는 거고요.”

미연은 그 비유를 하고 싶었다. 채용이 사라진 해에 졸업한 스물두 살. 하지만 승수가 먼저 선을 그었으니, 미연은 비유 대신 자기 표로 돌아갔다.

“저는요? 저 신강이에요. 억부로 보면 물을 빼 줘야 해요. 甲으로 흘려보내거나 丁을 다루면서 힘을 쓰거나 未 안의 己가 막아 주거나.”

“조후로는?”

“酉월이요. 가을 한가운데. 쇠가 차가워지는 때고, 물도 차가워지는 때예요. 따뜻하게 해 줄 불이 필요해요. 丁.”

미연은 거기서 손을 멈췄다.

“丁이 억부에서도 나오고 조후에서도 나와요. 제 시간에 있는 등불. 선생님 庚처럼.”

“두 길이 같은 글자를 가리키네요.”

“저는 丁이 용신이에요?”

“1차로는 그렇게 볼 만해요. 甲도 같이 보고요. 더 따질 건 많아요. 그래도 방향은 알겠지요. 미연 씨 표는 막아서 가두는 쪽보다, 흘려보내고 쓰는 쪽이 일을 해요.”

“그럼 제목에 있던 희신하고 기신은요?”

“용신이 일하는 글자라면, 희신은 그 일꾼을 돕는 글자예요. 기쁠 희 자. 미연 씨 용신이 丁이면, 丁을 낳아 주는 나무가 희신이 되지요. 甲이요.”

“제 甲이 등불한테 장작을 대 주는 거네요.”

“기신은 그 일꾼을 방해하는 글자예요. 꺼릴 기 자. 丁은 불이니까, 불을 끄는 물이 기신이 돼요.”

미연은 자기 표를 다시 보았다. 월간에 癸가 떠 있었다. 지난주에 미연이 자기를 돕는 같은 편이라고 적었던 글자였다.

“제 癸가요? 저를 도와준다면서요.”

“나를 돕는 글자가 내 일꾼을 방해할 수도 있어요. 같은 글자가 어느 자리에서는 편이고 어느 자리에서는 걸림돌이에요. 그래서 좋은 글자, 나쁜 글자가 따로 없다고 처음부터 말한 거예요. 기신을 낳아 거드는 글자를 구신, 이도 저도 아닌 글자를 한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름은 뒤로 미뤄요.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누가 누구를 돕고 막는지 보는 게 먼저예요.”

미연은 癸 옆에 작은 글씨로 적었다. 내 편, 그런데 내 등불엔 찬물. 그러다 그 줄을 보며 피식 웃었다. 엄마 같았다.

흘려보내고 쓰는 쪽. 미연은 그 말을 공책에 적다가, 엄마가 카페에서 입속으로 굴리던 문장이 떠올랐다. 두루 흘러 막히지 않는다.

“용신을 잘못 잡으면 어떻게 돼요?”

승수의 손가락이 바위 위의 다섯 줄 가운데 첫째 줄, 억부 위에서 멎었다. 한참 그대로 있었다. 서리가 그 손가락 끝에서 천천히 녹아 물방울이 되었다.

“넘치는 쪽을 더 넘치게 만들어요.”

승수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낮았고, 조금 느렸다.

“나는 그런 적이 있어요. 넘치는 사람을 더 넘치게 해서, 사람을 다치게 한 적이요.”

미연은 승수를 보았다. 승수는 미연을 보지 않았다. 바위 아래 능선 쪽을 보고 있었다. 미연은 그게 언제였는지, 누구였는지 묻고 싶었다. 입이 반쯤 열렸다. 그런데 승수의 옆얼굴이 처음 만난 날 바위 위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던 얼굴과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생각이 많아서 앉아 있었어요. 그날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승수가 핫팩을 떼며 일어섰다. 무릎이 또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

그 주 금요일, 미연은 서울에 있었다.

서울교육출판에서 2차 면접 연락이 온 것은 그 주 화요일이었다. 끈기의 사람 이야기를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웃으며 내려왔던 그 회사였다. 이번에는 편집장 혼자였다. 마포의 오래된 건물 사층, 창문 없는 작은 회의실에서 편집장은 미연의 이력서를 넘기다가 물었다. 졸업하고 넉 달 동안 뭐 했어요? 미연은 대답하기 전에 숨을 한 번 골랐다. 산에서 명리를 배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근거를 확인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편집장은 지난번처럼 이력서에 무언가를 적었다. 이번에도 무엇을 적었는지 미연은 볼 수 없었다. 결과는 다음 달에 알려 준다고 했다.

면접이 끝나고 엄마 집으로 갔다. 두 달 만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된장찌개 냄새가 났고, 엄마는 부엌에서 돌아보지도 않고 손 씻고 앉으라고 했다. 식탁에는 반찬통 다섯 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산으로 싸 들고 왔던 그 통들이었다. 엄마는 그걸 다 씻어서 다시 채워 놓았다.

밥을 반쯤 먹었을 때 미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윤지호였다. 카페에서 수첩에 무언가를 적던 그 기자. 지역 신문 「충청새벽」에서 일한다고 명함을 주고 간 사람이었다.

“미연 씨, 일 하나 할래? 우리 신문 기사에 들어가는 숫자랑 날짜, 이름, 인용 확인하는 거. 원문 찾아서 맞는지만 보면 돼. 건당 이만 원. 하루에 몇 건 줄지는 나도 몰라.”

“확인이요?”

“카페에서 기자한테 대들던 거 보고 생각났어. 근거 없는 말 옮기지 말라며. 그거 하는 일이야.”

미연은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국자를 든 채 멈춰 있었다. 통화는 휴대전화 밖으로 다 새어 나갔다.

“할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엄마가 국자를 냄비에 넣었다. 소리가 컸다.

“그게 뭔데?”

“신문 기사 확인하는 거. 숫자랑 날짜 맞는지.”

“그거 해서 밥 먹고 살아? 건당 이만 원이면 하루에 몇 건 해야 월세가 나와?”

“아르바이트야. 오늘 면접도 보고 왔어.”

“면접은 면접이고. 너 언제 와? 그 동네 사람 죽은 지 한 달 반이야. 범인 잡혔다며. 그 할머니 손자. 근데 왜 아직 거기 있어?”

“그 사람 범인 아니야.”

미연의 숟가락이 식탁에 부딪쳤다. 엄마가 미연을 보았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미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카페 녹화기, 22시 41분, 서울 번호판. 사라진 봉투. 도장 가게. 골목 그늘의 패딩. 그 어느 것도 엄마에게 말할 수 없었다. 형사가 경고했다. 말하면 이번엔 그 집 아버지가 낙인찍힌다고.

“그냥 알아.”

“그냥 아는 게 어딨어. 너 맨날 근거 근거 하더니.”

엄마의 말이 정확했다. 근거가 너무 분명한 말이었다. 미연은 그 정확함이 아파서 고개를 숙였다.

“엄마.”

“왜.”

“나 산에서 내 사주 읽었어. 나는 막아서 가두는 쪽보다 흘려보내고 쓰는 쪽이 일을 한대. 나한테 필요한 건 담는 데가 아니라 흘려보낼 데래.”

“그게 확인 기자야?”

“모르겠어. 근데 노량진은 아니야.”

엄마는 한참 말이 없었다. 된장찌개가 식어 가며 표면에 얇은 막이 앉았다. 엄마가 숟가락으로 그 막을 깨뜨렸다.

“엄마 사주는 뭐래? 엄마도 큰 물이라며. 엄마는 뭐가 필요한데?”

미연은 놀라서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미연을 보지 않고 찌개만 저었다.

“아직 몰라. 엄마는 시를 모르잖아. 그리고 아직 다 못 배웠어.”

“다 배우면 말해 줘.”

엄마는 그 말을 하고 일어나 냄비를 다시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불을 켜는 소리가 났다. 미연은 엄마의 등을 보며 공책 뒷장의 「나중 목록」을 떠올렸다. 丁壬, 乙庚, 고흐.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어야 했다. 엄마가 필요한 것.

*

같은 금요일 오후 세 시, 경찰서 진술녹화실.

책상 하나, 의자 둘, 벽에 달린 카메라 하나. 오성태 경위는 그중 한 의자에 앉아 맞은편의 빈 의자를 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파란 서류철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안에 카페 녹화기에서 뽑은 화면 넉 장과 도장 가게 장부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김영수에게 참고인 출석을 요청한 시각은 오후 두 시였다. 세 시가 지났다. 세 시 반이 지났다.

오 형사는 휴대전화로 김영수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지 않았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두 번째에도 같았다.

동료 형사가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안 와요?”

“안 오네.”

“아들은 구치소에 있고, 아버지는 전화 끄고. 그 집 참.”

오 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빈 의자를 보다가 파란 서류철을 덮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한 달 넘게 거기 있던 도해의 종이였다. 피를 볼 팔자, 빨간 글씨. 오 형사는 그 종이를 펼쳐 서류철 맨 뒤에 끼웠다. 증거가 아니라 기록으로.

“체포영장 쪽으로 가 볼까요?”

동료가 물었다. 오 형사는 빈 의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 그 사람, 오늘 안 온 거지 도망간 건 아직 아니야.”

그 말이 근거인지 바람인지, 오 형사도 알지 못했다.

2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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