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6,270자)
신강과 신약 — 같은 물, 다른 계절과 힘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할머니 집 건넌방은 아궁이 방이었다. 할머니는 저녁마다 비어 있는 손자 방 아궁이에까지 군불을 땠다. 그 불이 건넌방 구들까지 넘어와서 아랫목이 숙소 장판보다 뜨거웠다. 찜질방에서 나왔더니 가마솥이었다. 미연이 그 말을 했을 때 할머니는 그래야 감기 안 든다고만 했다.
미연은 그 뜨거운 아랫목을 피해 윗목에 엎드려 밤마다 공책을 폈다. 승수가 숙제를 낸 것은 아니었다. 경찰서에 다녀온 뒤로 오 형사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고, 미연은 그 아무 연락 없음을 견디는 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명식을 붙들었다. 일간 壬과 월령 酉, 그리고 셋째 줄에서 배운 나를 돕는 것과 내가 내보내는 것과 뿌리를.
사흘 밤을 붙든 끝에 미연은 공책 한 장을 꽉 채웠다. 제목은 「나는 강한가, 1차」라고 달았다.
*
등산로 입구 카페 유리문에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11월 셋째 주 수요일까지 영업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쉼표」. 한결의 글씨였다. 종이 귀퉁이가 바람에 들려 있었다.
카페 안은 반쯤 비어 있었다. 커피 기계 옆 선반이 비었고, 벽에 걸려 있던 액자 두 개가 바닥에 기대 세워져 있었다. 한결은 계산대 뒤에서 머그잔을 신문지로 하나씩 싸고 있었다. 미연과 승수가 들어서자 고개만 까딱하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커피 두 잔을 내렸다. 커피는 여전히 조금 탔다.
“마지막 주라 원두를 아끼느라 너무 볶았어요.”
“늘 이 맛이었는데요.”
미연이 말하자 한결이 웃었다. 웃다가 신문지를 한 장 더 뜯었다.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미연은 공책을 펼쳐 승수 앞으로 밀었다. 승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그 장을 읽었다. 읽는 동안 아무 표정도 없었다. 미연은 그 아무 표정 없음이 경찰서의 아무 연락 없음과 닮아서 견디기 힘들었다.
“말해 봐요. 소리 내서.”
미연은 숨을 고르고 읽기 시작했다.
“제 일간은 壬이에요. 그리고 酉월에 태어났어요. 酉 안에는 庚하고 辛이 있고, 쇠가 물을 낳으니까 월령이 저를 낳아 주는 자리예요. 그러니까 저는 계절을 얻었어요. 득령.”
“좋아요.”
“일지는 子예요. 子 안에는 壬하고 癸가 있어요. 제 자리에 제 뿌리가 깊이 있으니까 득지. 그리고 연지 申 안에도 壬이 있고, 월간에 癸가 떠 있어요. 癸는 저랑 같은 물이니까 저를 돕는 쪽이고요. 주변에 편이 많으니까 득세.”
미연은 거기서 잠깐 멈췄다.
“계절도 얻고, 자리도 얻고, 편도 얻었어요. 그래서 1차 결론은, 저는 강하다. 신강.”
승수는 공책에서 눈을 들었다.
“반대쪽은요?”
“네?”
“나를 돕는 쪽만 셌어요. 내 힘을 빼 가는 쪽, 나를 누르는 쪽도 있잖아요.”
미연은 공책을 끌어와 다시 보고서야 맨 왼쪽 위의 甲을 제대로 보았다. 시주에는 丁과 未가 있었다.
“甲은 제가 낳아 주는 나무니까 제 힘이 그쪽으로 흘러가요. 설기. 丁은 제가 누르는 불이니까 제가 힘을 써야 하고요. 未 안의 己는 저를 누르는 흙이에요. 극제.”
“그걸 다 놓고 다시 말해 봐요.”
“돕는 쪽이 더 무거워요. 월령이 돕고 일지가 돕고, 甲은 뿌리가 가볍고 멀리 있고. 그래서…… 그래도 신강.”
“지금 그 말이 아까 그 말보다 훨씬 좋아요.”
“결론은 똑같은데요?”
“결론은 같은데 근거가 달라요. 아까는 내 편만 세서 강하다고 했고, 지금은 양쪽을 다 달아 보고 강하다고 했어요. 처음 말은 우연히 맞은 거고, 지금 말은 맞을 만해서 맞은 거예요.”
미연은 그 말을 공책 귀퉁이에 받아 적었다. 우연히 맞은 것과 맞을 만해서 맞은 것.
“그럼 신강이면 좋은 거예요?”
“그 질문이 오늘 수업이에요.”
승수가 가방에서 『적천수』를 꺼냈다. 첫 장, 「통천론」이었다. 하늘과 사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말하는 맨 앞의 글이라고 승수가 말했다.
欲識三元萬物宗,先觀帝載與神功。坤元合德機緘通,五氣偏全定吉凶。戴天履地人為貴,順則吉兮悖則凶。
“욕식삼원만물종, 선관제재여신공. 곤원합덕기함통, 오기편전정길흉. 대천리지인위귀, 순즉길혜패즉흉.”
승수는 천천히 풀었다. 하늘과 땅과 사람, 그리고 만물의 근본을 알고 싶으면 먼저 하늘이 운행하는 모습과 그 오묘한 작용을 살펴라. 땅이 그 덕에 합하면 변화의 기틀이 통한다. 다섯 기운이 치우쳤는지 온전한지로 길흉을 정한다.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선 사람이 귀하니, 따르면 길하고 거스르면 흉하다.
“다섯 기운이 치우쳤는지 온전한지.”
미연이 그 구절을 되뇌었다.
“강하다는 건 치우쳤다는 거예요?”
“한쪽으로 쏠렸다는 거지요. 신강은 내 쪽 기운이 많은 거고, 신약은 내 쪽 기운이 적은 거예요. 둘 다 치우친 거예요. 그러니 신강이라서 훌륭한 것도 아니고, 신약이라서 모자란 사람인 것도 아니에요. 이 책도 강한 게 좋다고 하지 않아요. 치우쳤는지를 보라고 하지요.”
“그럼 저는 치우친 거네요. 물 쪽으로.”
“미연 씨 표만 보면요. 그래서 다음에 물어야 할 건, 넘치는 물을 어디로 흘려보낼까예요. 그건 용신을 배울 때 할 거고요.”
미연은 엄마가 카페에서 따라 읽던 구절을 떠올렸다. 두루 흘러 막히지 않는다. 넘치는 물이 고이면 썩고, 흘러가면 강이 된다. 그 말은 승수가 한 게 아니라 미연이 혼자 생각한 것이어서, 공책에 적지는 않았다.
승수가 새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이번에는 이름이 가려져 있지 않았다.
壬 壬 癸 ? 寅 子 酉 ?
“유관순이에요. 마을회관 앞에서 미연 씨가 화이트보드에 적었지요. 시는 몰라요. 이 사람 강약을 말해 봐요.”
“일간 癸, 월지 子. 한겨울이에요. 子 안에 癸가 있으니까 계절도 얻고 뿌리도 얻었어요. 壬이 둘이나 떠 있어요. 같은 물이 둘. 일지 酉는 쇠니까 저를 낳아 주는 쪽. 寅만 나무라서 힘을 빼 가는데, 하나뿐이에요.”
“그래서?”
“아주 강해요. 신강. 저보다 더.”
“그럼 이쪽은요?”
승수가 자기 명식을 옆에 놓았다. 己酉, 庚午, 癸未, 乙卯.
“같은 癸예요. 근데 午월. 한여름이에요. 그리고 아까 지장간 볼 때 선생님 표에는 물 뿌리가 하나도 없었어요. 庚이랑 酉가 낳아 주긴 하는데, 午랑 未가 불이랑 흙이고, 己가 위에서 누르고, 乙卯가 힘을 빼 가요.”
미연이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은 약해요. 신약.”
“그렇게 읽어요.”
“같은 癸인데, 유관순은 아주 강하고 선생님은 약해요.”
“겨울에 태어난 물과 여름에 태어난 비예요. 아까 미연 씨가 말한 대로 같은 물, 다른 계절이지요.”
미연은 두 표를 나란히 놓고 오래 보았다. 열일곱 살에 감옥에서 만세를 부르다 죽은 사람의 표가 강했고, 거북바위에서 무릎이 아픈 사람의 표가 약했다. 그 강하고 약함이 그 사람들의 무엇을 말해 주는지 미연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무엇을 말해 주지 않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강하다고 용감한 게 아니네요. 약하다고 겁쟁이도 아니고.”
“이 공부에서 강약은 사람 됨됨이가 아니라, 다섯 기운이 어느 쪽에 얼마나 몰렸는지예요. 그걸 헷갈리면 신약한 사람한테 넌 약하니까 안 된다고 말하게 돼요. 그것도 낙인이에요.”
계산대 쪽에서 한결이 머그잔 하나를 떨어뜨렸다. 잔은 깨지지 않고 신문지 위에서 한 바퀴 구르다 멈췄다. 한결이 그것을 주워 들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저는 그럼 약한 거겠네요. 망했으니까.”
미연과 승수가 동시에 돌아보았다. 한결은 민망한 듯 잔을 신문지로 감쌌다.
“생일 적어 오라고 하셨잖아요, 선생님. 아직 못 적었어요. 적으면 진짜 망한 팔자라고 나올까 봐.”
“망한 팔자라는 건 이 공부에 없어요. 가게가 망한 거지요.”
“그게 그거 아니에요?”
“가게는 한결 씨가 아니에요.”
“원장님이 받아 준 길일, 지난주 수요일 아니었어요?”
미연이 물었다. 기계를 뽁뽁이로 싸던 밤에 한결이 직접 말한 날짜였다.
“그날 아침에 CCTV 업체에서 전화가 왔어요. 장비 회수가 셋째 주 수요일에나 된대요. 그 전에 문 닫아 봐야 카메라도 못 떼고 녹화기도 못 빼요. 길일이 업체 일정한테 졌어요.” 한결은 그 말을 하고 스스로 웃었다. “오만 원 주고 받은 날인데.”
“그래서 셋째 주 수요일로요?”
“이번엔 업체 날짜예요. 그건 근거 있죠?”
승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결은 그 끄덕임을 보고 조금 웃었는데, 그 웃음이 금방 꺼졌다.
한결은 다시 잔을 상자에 넣었다. 상자 옆면에 매직으로 「주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음 주 수요일이면 저 상자들이 전부 트럭에 실려 갈 것이었다.
*
그날 밤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서 미연은 발소리를 들었다.
가로등이 하나 꺼진 구간이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미연의 걸음에 맞춰 빨라졌다가 느려졌다. 미연이 걸음을 멈추자 발소리도 멈췄다. 미연은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주고 돌아섰다.
검은 패딩 지퍼를 턱밑까지 올리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서 있는 사람은 김영수였다. 밭둑에서 어머니한테 우는 소리를 하던 얼굴, 선산에서 아버지 봉분에 술을 붓던 얼굴과 같은 얼굴이었는데, 가로등 그늘 속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학생, 잠깐 얘기 좀 하지.”
“여기서 하세요.”
“우리 어머니한테 봉투 어디 갔냐고 물었다며.”
미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등 뒤로 할머니 집 대문까지 스무 걸음쯤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전화로 나한테 묻더라. 영수야, 그 봉투 네가 가져갔냐고. 아들 감옥 가 있는데 그 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본다고. 학생 때문에. 학생이 우리 집 건넌방에 들어앉아서.”
“저는 봉투가 어디 갔는지 여쭤본 것뿐이에요.”
“남의 집 일이야.”
영수가 한 걸음 다가왔다. 패딩에서 담배 냄새와 차 안의 방향제 냄새가 섞여 났다.
“학생은 이 동네 사람도 아니고, 우리 식구도 아니잖아. 산에서 글자 몇 개 배운 걸로 남의 집 아들을 살리고 남의 집 아버지를 죽이고 그러는 거 아니야. 끼지 마.”
미연의 무릎이 떨렸다. 떨리는 걸 영수가 볼까 봐 두 발에 힘을 주었다. 엄마한테 대들 때는 무릎이 안 떨렸다. 형사 앞에서도 안 떨렸다. 이번에는 떨렸다. 미연은 그 떨림을 근거 삼아 지금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걸 알고 나니 오히려 입이 열렸다.
“아저씨, 봉투 어디 있어요?”
영수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 잠깐, 숨 한 번 쉴 사이였다. 그 사이가 미연에게는 공책 한 장보다 길었다.
그때 할머니 집 대문이 벌컥 열렸다.
“거기 누구야!”
내복 위에 솜조끼를 걸친 할머니가 마당 쓰는 싸리비를 거꾸로 들고 서 있었다. 할머니는 골목 그늘 쪽을 향해 싸리비를 휘두르듯 들어 올렸다.
“이 밤에 남의 집 애 앞에서 뭐 하는 거야! 경찰 불러?”
그리고 싸리비가 허공에서 멈췄다. 할머니가 그늘 속 얼굴을 알아보았다.
“영수야?”
영수가 어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미연을 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는 싸리비를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한 채 서 있다가, 대문을 더 크게 열었다.
“들어와.”
영수는 들어갔고, 미연이 뒤따라 들어갔을 때 영수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신발도 벗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 옆에 앉지 않고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미연은 건넌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문틈으로 마루가 보였다.
영수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루 끝에 앉아 마당의 빈 빨랫줄을 보았다. 할머니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방 괘종시계가 반 시간을 쳤다. 영수가 일어섰다. 어머니 앞에서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대문을 나갔다. 잠시 뒤 큰길 쪽에서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났다.
미연은 건넌방 윗목에 웅크리고 앉아 휴대전화를 열었다. 오 형사에게 문자를 썼다. 오늘 밤 김영수 씨가 할머니 댁 앞으로 찾아왔어요. 봉투 이야기를 했어요. 보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건넌방 문이 열렸다. 할머니가 문지방에 서 있었다. 손에는 아직 싸리비가 들려 있었다. 아까 마당에서 쩌렁쩌렁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미연아.”
“네.”
“영수가 마루에 한참 앉았다 갔다. 아무 말도 안 하고.”
“…….”
“너 뭐 아는 거 있으면 말해라. 영수가 뭐 했냐?”
미연은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근거는 공책에 있었다. 날짜와 시각과 장소. 사라진 봉투와 초록색 로고, 그리고 정우가 들은 말. 오늘 밤 숨 한 번 사이에 굳었던 얼굴. 형사님한테 먼저 말씀드리고 그다음에 다 말씀드리겠다고, 미연은 며칠 전 바로 이 문지방에서 약속했었다. 형사에게는 말했다. 그런데 그 형사가 다른 데 말하지 말라고 했다. 이번엔 그 집 아버지가 낙인찍힌다고. 할머니에게 건네는 순간, 그것은 근거가 아니라 낙인이 될 것이었다. 그 아버지의 어머니에게.
“할머니, 저 아직 몰라요.”
“그래.”
할머니는 그 말만 하고 문지방을 떠나지 않았다. 안방에서 괘종시계가 열한 번 울었다. 열한 번이 다 울 때까지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소리가 끝나자 할머니가 싸리비를 문 옆에 세워 두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싸리비는 밤새 거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