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6,061자)

궁위와 육친 — 기둥마다 자리가 있다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구치소 접견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의자가 양쪽에 하나씩 놓여 있었고, 유리 아래쪽에 구멍이 촘촘히 뚫린 둥근 판이 붙어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접견 시간 십 분을 재고 있었다. 할머니는 들어오지 못했다. 접견은 한 번에 세 명까지라는데, 할머니는 대기실 의자에서 일어서다 어지럼증이 와서 다시 주저앉았다. 할머니는 미연의 손에 쪽지 하나를 쥐여 주었다. 밥 잘 먹어라, 그게 다였다.

유리 건너편 문이 열리고 정우가 들어왔다. 미결수용 옷이 헐렁했다. 일주일 사이에 볼이 들어가 있었다. 정우는 의자에 앉아 유리 너머의 미연을 보고, 그 옆의 빈 의자를 보았다.

“할머니는요?”

“대기실에 계세요. 어지러우셔서.”

미연은 쪽지를 유리에 대고 펼쳐 보였다. 정우가 그 다섯 글자를 오래 읽었다. 그리고 웃었다. 웃는 얼굴이 금방 일그러져서 고개를 숙였다.

“내복은 받았어요. 양말도요. 발 안 시려요.”

“할머니가 그 말 들으면 좋아하실 거예요.”

시계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미연은 시계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할 말을 열 개쯤 준비해 왔는데 하나도 꺼낼 수 없었다. 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연 씨, 회관에서 그거 고마웠어요. 보드에 쓴 거. 채플린.”

“아무 소용 없었어요. 정우 씨 그 자리에서 잡혀갔잖아요.”

“그래도요. 거기 있던 사람들 중에 누구 하나는 그거 기억할 거예요.”

정우가 유리 아래 구멍 판에 얼굴을 조금 가까이 댔다. 목소리를 낮췄다.

“변호사가 그러는데요. 아홉 시 반 전화를 설명 안 하면 계속 여기 있어야 한대요.”

“알아요.”

“말할게요. 미연 씨한테만요. 경찰한테는 아직 아니고요.”

미연은 숨을 멈췄다.

“그날 저녁 쉼터에서 이장님이 그랬어요. 할머니 설득해서 도장 찍게 하라고. 안 그러면 네 아버지 위조한 거 다 터진다고. 저는 무슨 소린지 몰랐어요. 그냥 우리 집안 협박하는 줄 알고 소리 지르고 내려왔어요. 근데 집에 와서도 그 말이 계속 걸렸어요. 위조. 그래서 아홉 시 반에 전화했어요. 위조가 뭐냐고.”

“이장님이 뭐라고 했어요?”

“네 아버지한테 물어보라고 하고 끊었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정우가 유리 너머에서 미연을 똑바로 보았다.

“경찰한테 이 얘기 하면 아버지 얘기가 나와요. 우리 아버지가 뭘 위조했는지 저는 몰라요. 근데 그 말을 하면 경찰이 아버지를 볼 거예요. 그게 무서워서 말 못 했어요. 아버지는 저한테 변호사 붙여 주고, 날마다 할머니한테 전화하고…….”

정우가 말을 끊었다. 미연은 정우가 하지 않은 말을 알아들었다. 그 아버지가 일주일 동안 면회를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시계가 울렸다. 교도관이 문 쪽에서 시간이라고 말했다. 정우가 일어서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제가 정할게요.”

*

미연은 구치소를 나와 곧장 서울행 버스를 탔다. 오후 세 시 면접이었다. 버스 안에서 이력서를 다시 읽으려고 했는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정우의 목소리가 계속 귀에 남아 있었다. 위조. 네 아버지한테 물어보라고.

서울교육출판은 마포의 오래된 건물 사층에 있었다. 면접관은 셋이었다. 편집장이라는 오십 대 여자가 가운데 앉아 이력서를 넘기다 물었다.

“자기소개서에 끈기의 사람이라고 쓰셨네요.”

미연은 그 문장을 보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산에 오르기 전에 고친 마지막 판이었다. 문장을 다듬어 주는 프로그램이 써 준 첫 줄. 미연은 그 줄을 고치지 않고 낸 걸 잊고 있었다.

“그 문장은요…… 사실 제가 쓴 게 아니에요. 도구가 다듬어 준 거예요. 저 그거 쓰고 산에 갔는데 세 걸음 만에 멈췄어요.”

면접관 셋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 남자가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미연은 망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편집장은 이력서를 내려놓고 미연을 보았다.

“그럼 본인이 쓴다면 뭐라고 쓰겠어요?”

미연은 잠깐 생각했다. 공책 맨 뒷장이 떠올랐다. 근거 보임, 근거 안 보임, 모르는 것.

“저는 근거를 찾는 사람이에요. 찾을 때까지는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요. 요즘 그걸 배우고 있어요.”

편집장이 펜으로 이력서에 무언가를 적었다. 무엇을 적었는지 미연은 볼 수 없었다.

면접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남자 면접관이 서류철을 들고 따라 나왔다. 웃음을 참던 그 사람이었다.

“저도 그 프로그램 써요. 제 자기소개서는 열정의 사람이라고 써 주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대로 냈죠. 붙었으니까 여기 있고요.”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세 걸음은 너무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미연은 웃으며 올라탔고, 문이 닫힐 때까지 그 사람도 웃고 있었다.

*

산으로 돌아오니 해가 졌다. 할머니 집 마루에 승수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저녁을 반 공기 드셨다고 승수가 말했다. 미연은 마루 끝에 걸터앉아 운동화도 벗지 않고 공책을 펼쳤다.

“면접은요?”

“모르겠어요. 끈기의 사람 얘기 했어요.”

“그게 뭐예요?”

“나중에요.”

승수가 웃었다. 미연은 웃지 않았다. 승수는 미연의 얼굴을 보고 공책 쪽으로 손을 뻗었다.

“오늘 수업은 짧게 해요. 기둥의 자리예요.”

승수가 미연의 공책에 네 칸을 그렸다. 첫 수업 날 그렸던 그 네 칸이었다. 해, 달, 날, 시.

“같은 글자라도 어느 기둥에 있느냐에 따라 가리키는 게 달라요. 연주는 조상과 어린 시절, 그리고 나에게서 가장 먼 바깥 세상. 월주는 부모와 형제, 청년 시절, 내가 자란 환경과 사회. 일주는 나 자신이고, 그중 아래 글자 일지는 배우자 자리라고 해요. 내 바로 밑에 붙어 있는 사람. 시주는 자식과 말년, 그리고 내 일이 맺는 열매. 이걸 궁위라고 해요. 집 궁 자, 자리 위 자.”

“집의 자리.”

“그리고 십성을 가족에 대 보는 법이 있어요. 육친이라고 해요. 나를 낳아 주는 인성은 어머니, 나와 같은 비겁은 형제. 남자에게는 내가 누르는 정재가 아내, 편재가 아버지, 나를 누르는 관성이 자식. 여자에게는 나를 누르는 관성이 남편, 내가 낳는 식상이 자식.”

미연은 받아 적다가 손을 멈췄다.

“남자 여자가 왜 달라요? 그리고 아내가 내가 누르는 거예요?”

“그 물음이 맞아요. 이 법은 옛날 가족을 기준으로 만든 거예요. 남편이 아내를 거느리고, 아들이 대를 잇던 집. 그래서 지금 사람한테 그대로 대면 안 맞는 데가 많아요. 이혼한 집, 혼자 사는 사람, 아이 없는 부부, 할머니가 키운 손자. 이 법은 참고는 되지만, 이걸로 누구네 가족이 어떻다고 말하면 안 돼요. 오늘 이건 꼭 기억해요.”

승수가 미연의 공책 귀퉁이를 가리켰다. 정우의 세 기둥이 적혀 있었다. 辛巳, 戊戌, 壬戌.

“정우 씨 거로 해 볼래요? 대신 하나 약속해요. 나오는 대로만 말하기.”

미연은 펜을 쥐었다.

“일간 壬. 연간 辛은 음의 금. 금이 물을 낳으니까 인성, 음양이 다르니까 정인. 정인은 어머니. 연주에 있어요. 제일 먼 자리.”

미연이 멈췄다. 정우가 엄마랑 연락 안 한다던 말이 떠올랐다. 승수가 미연을 보고 있었다.

“계속해요.”

“연지 巳는 丙으로 보면 물이 불을 누르니까 재성, 둘 다 양이라 편재. 남자한테 편재는…… 아버지. 이것도 연주에 있어요.”

미연은 펜을 내려놓았다.

“선생님, 저 지금 뛰고 싶어요. 엄마도 아버지도 제일 먼 자리에 있다고. 정우 씨 엄마는 연락 안 하고, 아버지는 면회 안 오고.”

“그걸 알고 있으니까 뛰고 싶은 거예요. 미연 씨가 정우 씨 이야기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이 표를 봤다면, 연주에 정인이 있다는 걸 보고 어머니가 멀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어머니 덕을 어릴 때 받았다고 했을까요?”

“……어릴 때 받았다고 했을 수도 있어요. 연주는 어린 시절이니까.”

“같은 칸에서 두 말이 다 나와요. 그래서 자리 하나, 십성 하나로 가족을 말하면 안 돼요. 정우 씨 아버지가 면회를 안 오는 이유는 이 표에 없어요.”

미연은 공책을 덮었다. 그리고 덮은 공책 위에 손을 얹고 한참 있었다.

“선생님. 정우 씨 아버지가 면회를 안 오는 이유, 저 알 것 같아요.”

*

미연은 오늘 접견실에서 들은 말을 다 했다. 정우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한 걸 알면서 했다. 승수한테는 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다. 이장이 쉼터에서 한 말, 위조, 아홉 시 반 전화, 네 아버지한테 물어보라는 말. 그리고 미연이 공책에 모아 둔 모르는 것 네 줄. 평상 위의 서류 봉투, 변호사비 이야기에 우신 할머니, 아홉 시 반 전화, 서울에 갔느냐고 물으신 할머니.

승수는 끝까지 들었다. 중간에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그래서요?”

“오 형사님한테 말해야 해요. 정우 씨는 아버지 지키려고 입 다물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어쩌면…….”

미연은 그 뒤를 말하지 못했다.

“그건 미연 씨가 정할 일이 아니에요. 정우 씨가 정할 일이에요.”

“또 그 말이에요?”

미연의 목소리가 마루를 울렸다. 안방에서 할머니가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미연은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 목소리가 오히려 더 떨렸다.

“선생님은 맨날 정하지 말래요. 학원도, 한결 씨 가게도, 다 그 사람이 정하래요. 근데 지금은 사람이 갇혀 있어요. 정우 씨가 저기서 아버지 때문에 갇혀 있는 걸 수도 있다고요.”

“수도 있다고요.”

승수가 미연의 마지막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미연은 입을 다물었다.

“미연 씨가 가진 건 정우 씨가 들은 한마디, 그리고 물음표 넷이에요. 증거가 아니에요. 그걸 들고 형사한테 가면 어떻게 될까요. 형사는 정우 씨 아버지를 볼 거예요. 그건 맞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틀리면요? 정우 씨는 지키려던 아버지를 미연 씨 때문에 잃고, 미연 씨를 평생 원망할 거예요. 그리고 하나 더.”

승수가 미연의 공책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근거가 아닌 말로 남의 아버지를 범인 자리에 세우는 거, 그건 도해 원장이 정우 씨한테 한 일하고 같은 모양이에요. 글자 대신 물음표를 썼을 뿐이지요.”

미연은 그 말에 뺨을 맞은 것 같았다. 반박하고 싶었다. 회관 보드에 쓴 이름들, 같은 일주의 성인과 독재자, 글자가 아니라 사람. 그걸 말한 게 자기였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하려던 일이 무엇인지 승수가 정확하게 짚었다.

“그럼 저는 뭘 해요? 그냥 기다려요?”

“정우 씨한테 가요. 정우 씨가 정하게 해요. 미연 씨가 할 수 있는 건 정우 씨가 무엇을 정하든 옆에 있는 거예요. 그리고 물음표가 근거가 될 때까지 찾는 거고요. 증거는 형사가 찾지만, 형사가 못 본 데를 미연 씨가 볼 수도 있어요.”

승수가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마루 끝에서 운동화를 신다가 돌아보았다.

“아까 정우 씨 표 볼 때, 미연 씨 뛰고 싶다고 먼저 말했지요.”

“네.”

“그게 오늘 제일 잘한 거예요. 뛰고 싶을 때 뛰고 싶다고 말하는 거.”

승수가 대문을 나섰다. 미연은 마루에 혼자 남아 덮인 공책을 내려다보았다. 공책 위에 승수의 손바닥 온기가 아직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

이틀 뒤 미연은 다시 접견실에 앉았다. 이번에는 할머니도 왔다. 할머니는 유리 앞 의자에 앉자마자 손바닥을 유리에 댔다. 건너편에서 정우가 같은 자리에 손바닥을 댔다. 유리 한 장 두께만큼 떨어진 손바닥 두 개가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할머니가 손을 떼고 물었다. 밥은 먹느냐, 잠은 자느냐, 추우냐. 정우는 다 괜찮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 대답을 믿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접견 시간이 삼 분 남았을 때 정우가 미연을 보았다.

“어제 아버지 안 오셨어요. 변호사만 왔어요. 변호사가 그러는데, 아버지가 요즘 전화도 잘 안 받으신대요.”

할머니의 어깨가 굳었다. 정우는 할머니를 보지 않고 미연을 보았다.

“미연 씨, 그 얘기요. 말해도 돼요.”

“정우 씨.”

“아버지가 안 오는 이유가 그거라면, 저 알아야겠어요. 아니라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하고요. 여기 앉아서 모르는 채로는 못 있겠어요.”

시계가 울렸다. 교도관이 문을 열었다. 정우가 일어서면서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는 유리에 다시 손바닥을 댔다. 정우는 이번에는 손을 대지 않고 문 너머로 사라졌다.

할머니가 유리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로 미연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야.”

미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손바닥 자국이 유리 위에 하얗게 남아 있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1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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