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967자)
십성의 생활 모습 — 열 개의 이름이 사는 법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정우가 구속되고 사흘 뒤, 미연은 수아의 부름을 받고 서울행 첫 기차를 탔다. 연수가 끝났고, 내일 부서 배치 면담이 있는데, 그 전에 꼭 와 달라고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와서 보면 안다고만 했다.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할머니는 미연의 등을 떠밀었다. 승수 양반이 저녁에 들른다고 했으니 걱정 말고 가라고, 가는 김에 네 엄마 얼굴도 보고 오라고. 미연은 엄마 얼굴은 안 보고 올 생각이었다. 엄마를 보면 다시 산으로 내려오기까지 반나절은 싸워야 할 것 같았다.
기차 안에서 미연은 공책을 펼쳤다. 법원 복도에서 받아 적은 열 개의 이름이 있었다. 편인, 정인, 식신, 상관, 편재, 정재, 편관, 정관, 비견, 겁재. 이름은 외웠는데, 이 이름이 사람의 하루에서 무슨 모양으로 사는지는 아직 몰랐다. 승수는 다음 시간에 그걸 할 거라고 했다. 미연은 기다리지 않고 먼저 해 보기로 했다. 이름 하나에 생활 문장 둘. 잘 쓰일 때 하나, 지나칠 때 하나.
창밖으로 논과 비닐하우스와 아파트 단지가 차례로 지나갔다. 미연은 첫 줄을 적었다.
정관. 잘 쓰이면, 정해진 약속과 규칙 안에서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낸다. 지나치면, 남의 눈과 규칙에 묶여 자기 숨을 못 쉰다.
적고 나서 미연은 펜을 멈췄다. 정관을 적었는데 수아 얼굴이 떠올랐다. 조명 밑에서 꺼지면 안 된다던 수아. 미연은 그 생각을 지웠다. 수아의 명식을 본 적도 없으면서 수아를 정관에 갖다 붙이고 있었다.
*
수아의 자취방은 신림동 언덕 꼭대기 원룸이었다. 계단을 다 오르자 숨이 찼다. 산을 열흘 넘게 오르내린 다리인데도 서울 언덕은 다른 근육을 썼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렸는데, 문을 연 사람은 수아가 아니라 수아 엄마였다.
“아이고, 미연이구나. 들어와, 들어와.”
대학 졸업식 때 한 번 본 얼굴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원룸 안은 된장찌개 냄새로 가득했다. 수아는 침대 끝에 쪼그려 앉아 미연을 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미안. 이게 와서 보면 안다는 그거였다.
“엄마가 어제 올라왔어. 내가 그만둔다고 했더니.”
“그만두긴 뭘 그만둬. 앉아, 미연아. 밥 먹었어? 안 먹었지. 얼굴이 반쪽이네. 산에 있다며? 산에서 뭐 먹고 살아?”
미연은 대답할 틈도 없이 앉혀졌다. 접이식 밥상 위에 된장찌개와 계란말이와 김치가 놓였다. 수아 엄마는 밥을 고봉으로 퍼서 미연 앞에 놓고, 수아 앞에도 놓았다. 수아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엄마, 미연이 앞에서 그 얘기 하지 마.”
“왜. 미연이도 들어야지. 친구가 잘못 가면 말려야지.”
“나 잘못 가는 거 아니야.”
“대기업 들어가서 연수 일등 한 애가 석 달도 안 돼서 그만둔다는 게 잘못 가는 게 아니면 뭐야.”
수아가 숟가락을 밥상에 내려놓는 소리가 컸다.
“일등 해서 그만두는 거야. 일등 하니까 다들 나를 영업으로 보낸대. 사람들 앞에서 빛난다고. 나 사흘 동안 숨 한 번 못 쉬었다고 했잖아.”
“숨은 원래 다들 못 쉬고 살아. 엄마는 숨 쉬고 살았는 줄 알아? 너 대학 보내느라고.”
원룸이 조용해지자 된장찌개가 가스버너 위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만 났다. 미연은 계란말이를 집으려던 젓가락을 공중에 멈춘 채로 있었다. 내려놓을 수도, 집을 수도 없었다.
수아 엄마가 미연을 보았다.
“미연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너 산에서 사주 배운다며. 수아 사주에 뭐 나와? 회사 다녀야 하는 팔자야, 그만둬야 하는 팔자야?”
수아가 엄마를 노려보았다. 미연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머니, 저 수아 생일은 알아요. 근데 수아 사주는 안 볼 거예요.”
“왜? 배운다며.”
“이야기를 먼저 다 들어 버려서요. 지금 수아 명식을 보면 저는 그만둬야 한다는 글자만 찾거나, 다녀야 한다는 글자만 찾을 거예요. 어머니 편이든 수아 편이든요. 그건 사주를 보는 게 아니라 제 편을 드는 거예요.”
수아 엄마가 눈을 깜빡였다.
“그럼 그걸 왜 배워?”
엄마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승수에게 미연이 처음 대들 때 했던 말과도 똑같았다. 미연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저도 처음에 그거 물어봤어요. 아직 답 못 들었어요.”
*
밥을 다 먹고 수아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미연과 수아는 원룸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빨래 건조대 두 개와 말라 죽은 화분 하나가 있었다. 신림동 언덕의 지붕들이 아래로 겹겹이 펼쳐졌다.
“너 진짜 내 사주 안 봐?”
“안 봐. 지금은.”
“그럼 언제 봐.”
“네가 이야기 없이 생일만 적어서 주면. 그리고 내가 좀 더 배우면.”
수아가 난간에 기대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 열 개짜리 이름 말해 줘. 기차에서 공부했다며. 문자로 그랬잖아.”
미연은 공책을 꺼냈다. 기차에서 적은 열 줄이었다. 미연은 그중 하나를 골라 읽었다.
“식신. 잘 쓰이면, 좋아하는 걸 꾸준히 만들어 내고 그걸로 남을 먹인다. 지나치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해야 할 것을 미룬다.”
“먹인다는 게 뭐야?”
“내가 낳는 거래. 나무가 열매를 맺듯이. 그 열매로 남도 먹고 나도 먹고. 그래서 옛날 책은 식신을 밥그릇이라고도 했대.”
“상관은?”
“상관. 잘 쓰이면, 틀을 깨는 말과 표현으로 새 길을 연다. 지나치면, 윗사람과 규칙을 들이받아 스스로 다친다.”
수아가 난간을 손바닥으로 치며 웃었다.
“그거 너잖아. 너 교수님한테 대들어서 학점 깎인 거.”
“그거 근거 안 보임이야. 나 상관 없어. 내 표엔 식신이랑 겁재랑 정재가 있어.”
“뭐야, 너 이미 네 거 다 봤어?”
“천간만. 지지는 아직.”
미연은 나머지 여덟 줄을 차례로 읽었다. 정인은 배우고 받아들이는 힘, 지나치면 남의 말에 기대 움직이지 못함. 편인은 남과 다른 눈으로 보는 힘, 지나치면 혼자 겉돎. 정재는 가진 것을 성실히 관리함, 지나치면 손에 쥔 것만 봄. 편재는 사람과 돈의 큰 흐름을 움직임, 지나치면 벌여 놓고 수습을 못 함. 편관은 압박 속에서 결단함, 지나치면 자신이나 남을 몰아세움. 비견은 혼자 서는 힘, 지나치면 남의 말을 안 들음. 겁재는 경쟁하며 나누는 힘, 지나치면 남의 몫까지 탐함.
다 읽고 나서 미연은 공책을 덮었다.
“근데 수아야. 이거 다 내가 기차에서 만든 문장이야. 선생님한테 검사 안 받았어.”
“근거 안 보임?”
“반쯤 보임. 내가 배운 관계에서 만든 거니까. 근데 이걸 사람한테 붙이면 안 된대. 너 들으면서 이거 나다, 저거 나다 했지?”
수아가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그게 대답이었다.
“나도 기차에서 그랬어. 정관 적으면서 네 얼굴 떠올렸어. 네 명식 본 적도 없는데.”
“나 정관이야?”
“모른다니까.”
수아가 난간에서 몸을 뗐다. 해가 지붕들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옥상 문 쪽에서 수아 엄마가 고개를 내밀었다.
“수아야, 내일 면담 몇 시야? 엄마가 같이 가 줄까?”
“엄마!”
“농담이야, 농담.”
문이 닫히고 수아가 미연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웃다가 진지해졌다.
“나 내일 면담에서 영업 말고 다른 데 보내 달라고 말해 볼게. 안 되면 그때 그만둘게. 그거 도망 아니지?”
“어디로 가는지 알고 가는 거면.”
“그거 네가 만든 말이잖아. 근거 없는.”
“응. 근데 좋은 말이래. 근거 없어도 좋은 말은 있대. 명식에서 나왔다고만 안 하면.”
*
내려오는 기차에서 미연은 공책의 열 줄을 다시 읽었다. 수아 엄마의 된장찌개 냄새가 아직 옷에 배어 있었다. 열 줄 중에 수아 엄마는 어느 쪽일까 생각하다가 미연은 피식 웃었다. 또 뛰고 있었다. 수아 엄마는 그냥 수아 엄마였다. 딸이 그만두겠다는 말에 밤 버스를 타고 올라와 된장찌개부터 끓이는 사람. 미연은 그 문장을 열 줄 아래에 따로 적었다. 십성 이름은 붙이지 않았다. 이름 없이 적은 문장이 열 줄보다 그 사람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았다.
산으로 돌아온 건 밤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 등산로 입구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카페 불이 켜져 있었다. 쉼표라는 이름의 그 가게였다. 이 시간에 불이 켜져 있는 걸 처음 보았다. 미연은 유리문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한결이 텅 빈 가게 바닥에 쪼그려 앉아 커피 기계를 포장하고 있었다. 뽁뽁이를 둘둘 말고 있었다. 테이블 여섯 개 중 넷은 이미 다리가 접혀 벽에 기대 있었다. 문 앞의 입간판에는 밤라테 대신 다른 글씨가 붙어 있었다. 다음 주 수요일 영업 종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미연이 유리문을 두드렸다. 한결이 고개를 들고 손짓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이거 다 팔아요?”
“중고로요. 기계 하나 팔면 월세 두 달 치는 나와요.”
“수요일이 그 날이에요? 철학관에서 받은.”
“네. 길일이래요.”
“그날 이후로 손님 좀 있었잖아요. 기자들이랑 경찰들.”
“이 년 만에 처음으로 줄 섰죠. 사람 죽은 일 덕분에.” 한결이 뽁뽁이를 한 바퀴 더 감았다. “그 줄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런 일로 장사가 되는 가게면 접는 게 맞다고. 근데 줄이 빠지고 나니까 또 아깝더라고요. 이게 사람 마음이에요.”
한결은 뽁뽁이 끝을 테이프로 붙이고 일어섰다. 카운터 뒤에 작은 모니터가 하나 있었다. 화면이 넷으로 나뉘어 가게 안팎이 비치고 있었다. 입구, 계산대, 테이블, 그리고 바깥 주차장 쪽.
“그 모니터도 팔아요?”
“CCTV요? 그건 업체 거라 계약 끝나면 떼 가요. 저장된 건 지우고요.”
미연은 그 화면을 잠깐 보았다. 주차장 쪽 화면에 가로등 불빛 아래 텅 빈 아스팔트가 비치고 있었다. 정류장과 등산로 입구와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이 한 화면에 다 들어왔다. 미연은 그게 왜 마음에 걸리는지 몰랐다. 모르는 것 칸에 적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이 아까 다녀가셨어요. 할머니 댁 들렀다가.” 한결이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포장 안 된 기계로 마지막으로 내린 거라고 했다. 오늘도 조금 탔다. “할머니는 주무신대요. 저녁 드시는 거 보고 왔대요.”
“고맙습니다.”
미연은 탄 커피를 마셨다. 쓴맛이 혀 뒤로 넘어갔다. 한결이 의자 하나를 펴서 미연 앞에 앉았다.
“미연 씨,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저 생일 적어 오라고 하셨잖아요, 그때. 이야기 없이.”
“네.”
“근데 이제 이야기 다 아시잖아요. 그럼 저는 영영 못 보는 거예요?”
미연은 컵을 내려놓았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선생님한테 물어볼게요.”
“미연 씨는요? 미연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미연은 공책을 펼쳤다. 기차에서 적은 열 줄 아래에 수아 엄마의 질문이 적혀 있었다. 그럼 그걸 왜 배워.
“한결 씨 이야기를 다 알아도요, 명식을 먼저 읽고 나서 이야기랑 맞춰 보면 될 것 같아요. 맞는 것도 틀린 것도 다 적으면서요. 틀린 걸 지우지 않으면 맞는 것만 고른 게 아니니까.”
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었다.
“그거 근거 있어요?”
“반쯤요.”
미연의 휴대전화가 모르는 번호로 울렸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대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미연은 망설이다가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희 서울교육출판 편집부인데요. 미연 씨 휴대전화 맞으시죠? 지난달 지원하신 편집 보조 자리 서류가 통과되셔서, 다음 주 화요일 면접 가능하신지 여쭤보려고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미연은 한결을 보았다. 한결이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미연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 끄덕이는 건지 스스로도 몰랐다.
“네. 가능해요. 갈게요.”
전화를 끊자 한결이 물었다.
“좋은 소식이에요?”
“면접이요. 서울에서. 화요일.”
“우와. 축하해요.”
“아직 붙은 거 아니에요.”
“그래도요.”
한결이 컵을 들어 미연의 컵에 갖다 댔다. 탄 커피 두 잔이 부딪쳤고, 미연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웃는 동안 머릿속에서 날짜가 겹쳤다. 다음 주 화요일은 정우의 첫 면회가 잡힌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은 이 가게가 문을 닫는 날이었다.
미연은 카페를 나와 마을 쪽으로 걸었다.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뒤에서 카페 불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한결이 유리문을 잠그고 있었다. 카운터 뒤의 작은 모니터만 아직 켜져 있어서, 꺼진 가게 안에 네모난 빛 하나가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