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990자)

십성 — 나를 돕는 것과 내가 내보내는 것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법원은 읍내에서 버스로 사십 분 떨어진 시내에 있었다. 영장 심사는 오후 두 시였다. 할머니는 아침 여섯 시부터 일어나 한복을 꺼냈다가, 도로 넣고, 장에 갈 때 입는 꽃무늬 조끼를 입었다. 미연이 왜 한복을 넣었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짧게 대답했다.

“잔치 가는 거 아니잖아.”

승수가 낡은 승용차로 둘을 태웠다. 차가 시내로 들어서는 동안 할머니는 한 번도 창밖을 보지 않았다. 무릎 위에 올린 손가방을 두 손으로 붙잡고 앞만 보았다. 손가방 안에는 정우의 겨울 내복과 양말이 들어 있었다. 들어가면 필요할 거라고, 할머니는 새벽에 그걸 개면서 말했다. 안 들어가면 좋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미연은 뒷자리에서 그 손가방을 보다가, 엄마가 장조림 통을 방바닥에 늘어놓던 손을 떠올렸다. 짐 싸라고 소리치면서 반찬부터 꺼내던 손이었다. 걱정하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말과 손이 따로 노는지, 미연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말은 앞날을 막으려 하고, 손은 오늘 밤을 챙기려 했다.

법원 이층 복도는 길고 하얬다. 바닥에 형광등 불빛이 미끄러지듯 비쳤다. 영장 심사를 하는 법정 앞에 긴 의자가 줄지어 있었다. 영수가 먼저 와 있었다. 오늘도 남색 코트였다. 옆에 서류 가방을 든 마흔 줄의 변호사가 서 있었다. 영수는 어머니를 보고 일어섰다.

“엄마, 왜 왔어. 내가 다 한다니까.”

“내 손자 일이야.”

할머니는 영수 옆이 아니라 복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미연은 할머니 옆에 앉았고, 승수는 조금 떨어진 창가에 섰다. 영수는 서 있다가 도로 앉았다.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모자가 마주 앉았다.

변호사가 할머니 쪽으로 와서 명함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받지 않았다. 변호사는 명함을 미연에게 건넸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정우 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증거가 정황뿐이라 다툴 여지가 충분합니다. 다만 정우 씨가 아홉 시 반 통화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려고 해서요. 그 부분만 정우 씨가 설명해 주면 훨씬 수월할 텐데.”

“왜 말을 안 한대요?”

“그건 저한테도 안 하네요.”

변호사가 영수 쪽을 보았다. 영수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누르지 않은 채였다.

*

심사는 두 시간을 넘겼다. 법정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의자에 꼿꼿이 앉아 있다가 한 시간쯤 지나자 등을 벽에 기댔고, 두 시간째에는 눈을 감았다. 자는 게 아니었다. 손가방을 쥔 손이 풀리지 않았다.

미연은 공책을 펼쳤다. 펼쳐 놓고만 있었다. 승수가 창가에서 다가와 미연 옆에 앉았다.

“기다리는 동안 해 볼래요?”

“지금요?”

“지금 아니면 계속 저 문만 볼 거예요.”

미연은 법정 문을 보았다. 승수 말이 맞았다. 미연은 펜을 쥐었다.

“오늘은 십성이에요. 순서표 셋째 줄, 관계와 힘의 첫 단추예요.”

승수가 『자평진전』 묶음을 꺼냈다. 첫 수업 때 읽었던 「열 천간과 열두 지지를 논함」 편의 맨 앞 대목이었다.

天地之間,一氣而已。惟有動靜,遂分陰陽;有老少,遂分四象。

승수가 낮게 읽었다. 법원 복도에서 한문을 읽는 소리가 이상하게 어울렸다. 천지지간, 일기이이. 유유동정, 수분음양. 유노소, 수분사상.

“하늘과 땅 사이에는 기운 하나가 있을 뿐이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있어서 음양으로 나뉘고, 무르익음과 막 시작함이 있어서 넷으로 나뉜다. 이 넷 안에 오행이 갖추어진다고 이어져요.”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 넷에서 다섯.”

“그 다섯이 서로 낳고 누르는 걸 배웠지요. 이제 그걸 일간 하나를 기준으로 다시 봐요. 나를 가운데 두고 보면 관계가 다섯 갈래로 나와요.”

승수가 공책에 일간을 동그라미로 그리고, 그 둘레에 다섯 개의 화살표를 그렸다.

나를 낳는 것 — 인성 내가 낳는 것 — 식상 내가 누르는 것 — 재성 나를 누르는 것 — 관성 나와 같은 것 — 비겁

“미연 씨는 壬이지요. 물을 낳는 건 금이니까 금이 인성, 물이 낳는 건 목이니까 목이 식상. 물이 누르는 건 불이니까 불이 재성, 물을 누르는 건 흙이니까 흙이 관성. 물과 같은 물은 비겁.”

“다섯 개네요. 근데 십성이라면서요.”

“여기에 음양을 더해요.”

승수가 다음 구절을 펼쳤다. 첫 수업 때 읽은 생극 편의 뒷부분이었다.

然以五行而統論之,則水木相生,金木相尅。以五行之陰陽分配之,則生尅之中,又有異同。此所以水同生木,而印有偏正;金同尅木,而局有官煞也。

“연이오행이통론지, 즉수목상생, 금목상극. 이오행지음양분배지, 즉생극지중, 우유이동. 차소이수동생목, 이인유편정. 금동극목, 이국유관살야.”

승수가 천천히 풀었다.

“오행으로만 뭉뚱그려 말하면 물은 나무를 낳고 쇠는 나무를 누른다. 그런데 오행에 음양을 나누어 붙이면 낳고 누르는 가운데에도 같고 다름이 생긴다. 그래서 같은 물이 나무를 낳아도 인성에 편과 정이 있고, 같은 쇠가 나무를 눌러도 관과 살이 갈린다.”

“음양이 같으면 편, 다르면 정?”

“그렇게 외우면 돼요. 나를 낳는 것 중에 나와 음양이 같으면 편인, 다르면 정인. 내가 낳는 것 중에 같으면 식신, 다르면 상관. 내가 누르는 것 중에 같으면 편재, 다르면 정재. 나를 누르는 것 중에 같으면 편관, 다르면 정관. 나와 같은 오행 중에 같으면 비견, 다르면 겁재. 다섯에 둘씩, 열이에요.”

미연은 승수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법정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받아 적는 동안은 그 문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선생님 걸로 해 볼게요.”

“해 봐요.”

“선생님은 癸, 음의 물. 월간 庚은 양의 금이에요. 금이 물을 낳으니까 인성. 癸는 음, 庚은 양. 음양이 다르니까 정인.”

“계속.”

“연간 己는 음의 토. 토가 물을 누르니까 관성. 癸도 음, 己도 음. 같으니까…… 편관.”

“시간 乙.”

“음의 목. 물이 나무를 낳으니까 식상. 둘 다 음이니까 식신.”

승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연은 자기 명식으로 넘어갔다. 연간 甲은 양의 목, 壬도 양이니 식신. 월간 癸는 음의 물, 같은 물인데 음양이 다르니 겁재. 시간 丁은 음의 화, 물이 불을 누르니 재성, 음양이 다르니 정재.

“선생님의 庚은 선생님한테 정인인데, 저한테 庚이 있으면 편인이에요. 같은 글자가 사람마다 이름이 달라요.”

“그게 이 첫 단추의 전부예요. 십성은 글자의 이름이 아니라 관계의 이름이에요. 누구를 가운데 두느냐에 따라 같은 글자가 다른 이름으로 불려요.”

*

미연은 고개를 들어 복도 맞은편을 보았다. 할머니가 눈을 뜨고 있었다. 영수는 휴대전화를 무릎에 엎어 놓고 바닥을 보고 있었다.

미연은 공책 귀퉁이에 할머니와 영수와 정우의 일간을 적었다. 할머니 丙, 영수 庚, 정우 壬. 할머니 것은 할머니가 생일을 불러 줘서 미연이 뽑아 둔 것이었다. 영수 것은 도해가 철학관에서 庚子라고 떠벌린 덕분에 일간만 알았다. 정우 것은 마을 사람 절반이 알았다.

할머니 丙을 가운데 두면, 영수의 庚은 불이 쇠를 누르니 재성. 둘 다 양이니 편재. 정우의 壬은 물이 불을 누르니 관성. 둘 다 양이니 편관.

미연은 그 두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아들은 할머니가 누르는 쪽이었고, 손자는 할머니를 누르는 쪽이었다. 이름만 보면 그랬다.

“선생님, 이거 해도 돼요? 가족끼리.”

승수가 공책 귀퉁이를 보았다.

“일간끼리 관계 이름을 붙이는 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그 사람들 사이가 어떻다는 뜻은 아니에요. 할머니한테 손자가 편관이라고 해서 손자가 할머니를 괴롭힌다는 게 아니고, 아들이 편재라고 해서 할머니가 아들을 부린다는 것도 아니에요. 그 이름으로 가족을 읽는 법은 따로 있는데, 그건 기둥의 자리를 배울 때 할 거예요. 오늘은 이름 붙이기까지만.”

“그럼 엄마랑 저는요? 둘 다 壬이에요.”

“같은 오행, 같은 음양. 비견이지요.”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래서 싸우기도 하고요.”

미연은 웃음이 나왔다. 법원 복도에서 웃어도 되나 싶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숙제로 하나 해 봐요. 이순신 명식에 십성을 다 달아 봐요. 천간 넷, 지지 넷. 지지는 그 안에서 제일 센 기운 하나로 보면 돼요. 子는 癸, 午는 丁, 巳는 丙, 辰은 戊. 자세한 건 지장간에서 다시 하고요.”

미연은 이순신의 여덟 글자를 적고 하나씩 달았다. 일간 庚. 연간 乙은 쇠가 나무를 누르니 재성, 양과 음이니 정재. 월간 庚은 같은 쇠 같은 양이니 비견. 시간 丙은 불이 쇠를 누르니 관성, 둘 다 양이니 편관. 연지 巳는 丙으로 보니 편관. 월지 辰은 戊로 보니 흙이 쇠를 낳는 인성, 둘 다 양이니 편인. 일지 午는 丁으로 보니 정관. 시지 子는 癸로 보니 쇠가 낳는 물, 양과 음이니 상관.

“편관이 둘, 정관이 하나. 관성이 셋이에요. 나를 누르는 게 많아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미연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임금에게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고 백의종군했다는 이야기가 혀끝까지 올라왔다. 승수가 미연의 얼굴을 보았다.

“뛰려고 했지요.”

“네. 근데 안 뛰었어요.”

“거기까지가 오늘 할 수 있는 정확한 말이에요. 관성이 셋 있다. 그게 이 사람한테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힘을 재고 구조를 봐야 알아요.”

*

복도 끝에서 할머니가 일어섰다. 화장실에 가려는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복도를 가로질러 영수 앞에 섰다. 영수가 고개를 들었다.

“영수야.”

“응, 엄마.”

“너 그날 정말 서울 갔냐.”

복도가 조용해졌다. 변호사가 서류 가방을 고쳐 들었다. 영수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가 돌아왔다. 미연은 그 짧은 순간을 보았다. 경찰서 계단참에서, 선산 산소 앞에서 본 얼굴이었다.

“엄마까지 왜 그래.”

“묻잖아.”

“갔어! 갔다니까! 정우가 저 안에 있는데 엄마는 지금 나를 의심해?”

영수의 목소리가 복도 끝까지 울렸다. 지나가던 법원 직원이 돌아보았다. 영수는 일어서서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키가 한 뼘은 더 컸다.

“내가 정우 아빠야. 내가 변호사 붙이고, 내가 다 하고 있어. 엄마는 밭 팔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그날 내가 도장 받으러 왔으니까.”

“밭 얘기 아니다.”

“그럼 뭔데!”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들을 오래 올려다보다가 돌아서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걸음이 느렸다. 미연은 일어나 할머니의 팔을 잡았다. 할머니의 팔이 떨리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 소리 질러서.”

영수가 등 뒤에서 말했다. 할머니는 돌아보지 않았다.

미연은 할머니를 의자에 앉히고 공책을 펼쳤다. 모르는 것 칸의 첫 줄과 둘째 줄이 보였다. 평상 위의 서류 봉투. 할머니는 왜 변호사비 이야기에 우셨나. 셋째 줄, 정우는 아홉 시 반에 왜 전화했나. 미연은 넷째 줄을 적었다.

할머니는 왜 아들에게 서울에 갔느냐고 물으셨나.

넷 다 물음표였다. 넷 다 근거가 아니었다. 그런데 넷이 한 줄로 서니, 미연은 그 줄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

법정 문이 열린 건 다섯 시가 넘어서였다. 정우가 교도관 둘 사이에 서서 나왔다. 회색 후드 티셔츠 대신 미결수용 옷을 입고 있었다. 정우는 복도의 할머니를 보고 걸음을 멈추려 했지만 교도관이 팔을 잡아 이끌었다. 정우는 할머니에게 고개만 한 번 숙였다. 아버지 쪽은 보지 않았다.

변호사가 판사실 쪽에서 돌아와 영수에게 낮게 말했다. 미연이 앉은 자리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영수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변호사가 할머니 쪽으로 와서 허리를 숙였다.

“어머님, 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요. 아홉 시 반 통화 설명을 끝까지 안 해서…….”

할머니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손가방을 열어 겨울 내복과 양말을 꺼내 변호사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거 넣어 줘요. 우리 손자 발이 차.”

법원을 나서는 계단에서 할머니가 주저앉았다. 넘어진 게 아니었다. 다리에 힘을 빼고 그 자리에 앉았다. 해가 지고 있었고, 계단 돌이 차가웠다. 미연이 옆에 앉았고, 승수가 한 칸 아래에 앉았다. 영수는 계단 위에 서 있다가, 끝내 내려오지 않고 반대쪽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할머니는 한참 그렇게 앉아 있다가 손바닥으로 계단 돌을 짚었다.

“여기 돌은 왜 이렇게 차.”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미연은 겉옷을 벗어 할머니 무릎에 덮었다. 할머니는 그 겉옷 위에 손을 얹고, 손자에게 보낸 양말 생각을 하는 것처럼 오래 계단 아래 도로를 보았다.

1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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