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995자)

고지 진술축미 — 창고 네 글자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경찰이 걷어 갔던 농기구가 돌아온 건 그 주 토요일이었다. 괭이와 쇠스랑과 삽이 비닐에 싸인 채 순찰차 트렁크에서 내려졌다. 낫은 없었다. 확인이 덜 끝났다고 했다.

할머니는 돌아온 것들을 헛간에 도로 넣다가 손을 멈췄다.

“이참에 다 꺼내자. 정리 좀 하게.”

헛간은 할머니 집 뒤꼍에 붙은 흙벽 창고였다. 문을 열자 묵은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마른 짚과 녹슨 쇠와 쥐 오줌과 오래된 비료 포대가 섞인 냄새였다. 안쪽 선반에는 페인트가 굳은 깡통, 끈 떨어진 바구니, 이름 모를 씨앗을 담은 유리병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줄지어 있었다. 미연은 마스크를 두 겹으로 쓰고 정우와 함께 물건을 하나씩 마당으로 날랐다. 할머니는 평상에 앉아 버릴 것과 둘 것을 손가락으로 갈랐다. 거의 다 둘 것이었다.

“할머니, 이 깡통 페인트 다 굳었어요.”

“둬. 영감이 대문 칠하던 거야.”

“이 바구니는 바닥이 없어요.”

“둬. 그건 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거야.”

정우가 미연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버릴 것은 아직 하나도 없었다. 둘은 물건을 꺼내서 할머니 앞에 보이고 다시 집어넣는 일을 한 시간째 하고 있었다. 정리가 아니라 구경이었다.

맨 안쪽 선반 아래에서 미연은 농약 상자 하나를 끌어냈다. 뚜껑을 열자 농약병이 아니라 공책들이 들어 있었다. 표지가 누렇게 바랜 대학 노트가 열 권 남짓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맨 위 공책 표지에 볼펜으로 적혀 있었다. 2014년.

미연이 상자를 들고 나오자 할머니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게 거기 있었네.”

“뭐예요?”

“영감 일기장. 농사일기. 날씨랑 뭐 심었는지 적던 거.”

할머니는 맨 위 공책을 받아 들고 첫 장을 펼쳤다. 글씨가 크고 반듯했다. 3월 2일, 맑음, 감자 씨눈 뜸. 3월 5일, 비, 쉼. 할머니는 몇 장을 넘기다가 손바닥으로 종이를 쓸었다. 정우가 할머니 옆에 앉아 공책을 같이 들여다보았다.

“할아버지 글씨 처음 봐요.”

“네가 어릴 때 많이 봤어. 기억을 못 하는 거지.”

할머니가 공책을 몇 장 더 넘겼다. 여름 장들이었다. 날씨와 작물 이름 사이사이에 짧은 문장이 끼어 있었다. 7월 28일, 소나기, 정우 옴. 7월 30일, 맑음, 정우가 고추 따다 벌에 쏘임, 울지 않음. 8월 2일, 흐림, 정우 감, 섭섭함.

정우가 그 장에서 손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저 벌에 쏘인 거 기억나요. 엄청 울었는데.”

“영감은 울지 않았다고 적었네.”

“할아버지가 거짓말했네요.”

“거짓말이 아니라 그렇게 보고 싶었던 거지.”

할머니가 공책을 덮었다. 미연은 그 말을 마음속에 받아 적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을 적는 일. 그건 일기에서는 사랑이었고, 사주에서는 뛰는 거였다.

*

오후에 승수가 왔다. 할머니가 전화로 불렀다고 했다. 내일 영감 산소에 갈 건데, 그 양반도 같이 가서 인사나 하라고. 승수는 무릎을 짚고 평상에 앉으며 마당에 늘어놓은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창고 정리하셨네요.”

“정리는 무슨. 구경했지.”

정우가 웃었다. 미연도 웃었다. 승수는 그 물건들 사이에서 영감의 일기장 상자를 보고 한참 시선을 두었다.

“마침 잘됐네요. 오늘 배울 게 창고예요.”

“창고요?”

승수가 미연의 공책에서 세 무리를 적어 둔 장을 펼쳤다. 생지와 왕지를 지나 셋째 줄이었다.

“辰戌丑未. 계절이 끝나는 네 글자예요. 辰은 봄 끝, 未는 여름 끝, 戌은 가을 끝, 丑은 겨울 끝. 지난번에 무토와 기토를 배울 때 토가 네 계절의 이음매에 하나씩 끼어 있다고 했지요. 그게 이 네 글자예요. 넷 다 흙이에요.”

“흙이 계절을 이어 준다고 하셨어요.”

“이으면서 거두어 담아요. 한 계절이 끝날 때 그 계절의 기운을 창고에 넣어 두는 거지요. 그래서 고지라고 불러요. 곳집 고 자. 창고라는 뜻이에요.”

정우가 헛간 쪽을 돌아보았다.

“진짜 창고네.”

“어느 창고에 뭐가 들었는지도 가르쳐요. 辰은 물을 담는 창고, 戌은 불을 담는 창고, 丑은 쇠를 담는 창고, 未는 나무를 담는 창고라고들 해요. 그래서 이 넷 안에는 여러 기운이 섞여 있어요. 흙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지난 계절의 남은 것까지 들어 있지요. 그 섞임을 잡기라고 불러요.”

미연은 마당에 늘어선 물건들을 보았다. 페인트 깡통, 바닥 없는 바구니, 씨앗 유리병, 농사일기. 다 다른 해, 다른 계절의 것들이었다. 한 창고 안에 섞여 있었다.

“그리고 창고는 무덤이라고도 불러요.”

정우가 고개를 들었다. 승수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묘고라고 해요. 무덤 묘 자. 기운이 들어가 잠드는 자리라는 뜻이에요. 이름이 무섭지요. 그래서 이 이름을 사람이 죽는다는 말로 바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틀린 거예요. 겨울이 丑에 들어가 잠들었다가 봄에 다시 나오지요. 무덤이 아니라 저장이에요.”

미연은 상자 안의 일기장들을 보았다. 2014년에서 멈춘 달력이 건넌방 벽에 걸려 있었다. 영감은 그해 겨울에 들어가 잠들었고, 이 공책들은 열두 해 동안 창고에 있었다.

“젖은 흙하고 마른 흙도 있었죠. 무토 배울 때.”

“辰과 丑은 젖은 흙이에요. 봄비와 겨울 물을 머금었으니까. 戌과 未는 마른 흙이에요. 가을과 여름의 볕에 말랐으니까. 같은 창고라도 습기가 달라요.”

승수가 인물 표를 펼쳤다. 미연은 이번에도 승수보다 먼저 찾았다. 찾는 속도가 빨라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辰. 세종 일지 辰. 니체 일지 辰, 연지도 辰. 이순신 월지 辰. 채플린 월지 辰. 그리고 잡스, 프리다 칼로, 이중섭. 셋 다 일주가 丙辰이에요.”

“丙辰 셋은 따로 기억해 둬요. 나중에 쓸 거예요.”

“戌. 니체 월지 戌. 존 레논 월지 戌. 채플린 일지 戌, 시지도 戌. 그리고…….”

미연이 멈췄다. 정우가 옆에 있었다.

“정우 씨도 戌이에요. 월지랑 일지 둘 다.”

“채플린이랑 같아요?”

“일주가 똑같아요. 壬戌.”

정우가 피식 웃었다.

“그 영화 몇 개 봤어요. 콧수염 붙이고 뒤뚱뒤뚱 걷는 거.”

“그 사람도 피 볼 살이 두 개 겹쳤다고 해야 하나.”

미연이 말하자 정우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무슨 일인지 내다보았다.

“丑. 모차르트 월지랑 일지가 丑. 엘비스 월지 丑. 그리고 우리 엄마 월지 丑.”

“未.”

“링컨 일지 未. 정약용 월지랑 일지가 未. 선생님 일지 未. 저 시지 未.”

“나랑 미연 씨가 둘 다 未를 가졌네요. 나는 날에, 미연 씨는 시에.”

“여름 끝 마른 흙. 나무 창고.”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지장간 배울 때 열어 봐요. 오늘은 창고가 있다는 것까지만.”

*

다음 날 아침 일찍 넷은 선산으로 갔다. 정우가 할머니를 경운기 짐칸에 태우려다 혼났다. 결국 승수의 낡은 승용차를 타고 갔다. 할머니가 조수석에 앉았고 미연과 정우는 뒷자리에 끼어 앉았다. 차가 비포장 길에 들어서자 승수의 무릎 대신 차가 비명을 질렀다.

할머니는 조수석에서 안전띠를 두 번이나 풀었다가 정우에게 혼이 나고 도로 맸다. 그리고 운전하는 승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자네 몇 살이야?”

“쉰일곱입니다.”

“애기네.”

뒷자리에서 정우가 기침인 척하며 웃었다. 미연은 창밖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거북바위 위에서 고전을 읽던 사람이 애기가 되는 데 일 초가 걸렸다.

“애기가 무릎은 왜 그래. 계단 내려올 때 보니까 영 시원찮던데.”

“오래 앉아 있어서요.”

“그것도 사주에 나와?”

“안 나와요. 계단에서 나와요.”

할머니가 처음으로 승수 앞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웃다가 창밖 논을 보며 조용해졌다. 그 논 너머에 영감과 같이 갈던 밭이 있었다.

“영감도 무릎이 그랬어. 마지막 몇 해는 밭에 나가면 고랑 하나 매고 한참 앉아 쉬었어. 그래도 나가더라고. 앉아서 쉬려고 나가는 사람처럼.”

차 안이 조용해졌다. 비포장 길의 돌이 바퀴에 튀어 차 밑바닥을 두드렸다.

선산은 마을에서 차로 이십 분 거리의 야트막한 산자락이었다. 같은 성을 쓰는 집안 산소가 여럿 모여 있었다. 영감의 산소는 맨 아래쪽에 있었다. 봉분이 낮았고 잔디가 듬성듬성했다. 상석 위에 누가 먼저 놓고 간 소주병과 종이컵이 있었다.

산소 앞에 남자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짙은 남색 코트. 영수였다.

할머니가 걸음을 멈췄다. 정우도 멈췄다. 영수가 일어서며 돌아보았다. 손에 소주병을 들고 있었다. 얼굴이 벌겠다. 아침부터 마신 것 같았다.

“엄마.”

“여긴 어쩐 일이냐.”

“아버지 보러 왔지. 아들이 아버지 보러 오면 안 돼?”

영수는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봉분 앞에 부었다. 술이 잔디에 스며들었다. 영수는 빈 컵을 상석에 내려놓고 어머니를 보았다.

“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팔라고 하셨을 거야. 아버지는 나 서울 보낼 때도 소 팔았잖아. 땅 끼고 살면 뭐 해. 자식이 잘돼야지.”

“네 아버지 그런 사람 아니다.”

“엄마가 아버지를 다 알아?”

할머니가 대답 대신 손가방을 열었다. 어제 상자에서 꺼낸 2014년 공책이었다. 할머니가 공책을 영수에게 내밀었다. 영수는 받지 않았다.

“봐라.”

“뭔데.”

“네 아버지 일기다. 봐.”

영수가 공책을 받았다. 할머니가 접어 둔 장이 저절로 펼쳐졌다. 미연은 할머니가 어젯밤 늦게까지 건넌방 옆 안방 불을 켜 놓고 있던 걸 알았다. 이 장을 찾느라 그랬을 것이다.

영수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미연이 서 있는 자리에서는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영수의 얼굴이 무너지는 건 보였다. 영수는 같은 줄을 몇 번이고 다시 읽는 것 같았다. 정우가 아버지 옆으로 다가가 공책을 들여다보았다. 정우가 소리 내어 읽었다.

“10월 9일, 맑음. 무 솎음. 밭은 정우 몫이다. 영수는 서울서 제 앞가림하라. 순례한테 말해 둠.”

산자락에 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봉분 위 마른 풀이 일제히 한쪽으로 누웠다.

“이걸 왜 이제 보여 줘.”

영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네가 이제 팔자고 했으니까.”

“엄마, 나 지금 사정이…….”

영수가 말을 끊었다. 정우가 옆에 있었다. 영수는 아들을 보았다가 공책으로 눈을 돌렸다가 다시 산소를 보았다. 그 얼굴에서 미연은 경찰서 계단참에서 본 표정을 다시 보았다. 아들을 보지 않고 창문 쪽을 보던 얼굴.

“사정이 뭔데요, 아버지.”

정우가 물었다. 영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책을 덮어 할머니 손에 돌려주었다. 그리고 코트 깃을 여몄다.

“정우 변호사비는 내가 다 낸다. 엄마는 걱정하지 마. 제일 좋은 사람으로 붙였어.”

“그 얘길 왜 여기서 해.”

“할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

영수는 봉분에 대고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산자락을 내려갔다. 아래 공터에 세워 둔 검은 승용차에 올랐다. 시동이 걸리고 차가 비포장 길을 덜컹거리며 멀어질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상석에 손을 짚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울었다. 소리 내지 않고, 어깨만 들썩이면서. 정우가 할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등을 쓸었다. 할머니는 손자의 손을 뿌리치지도 잡지도 않았다.

미연은 그 울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손자의 변호사비를 다 내겠다고 했다. 고마운 말이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울었다. 밭을 팔자고 할 때도, 영감이 팔았을 거라고 할 때도 울지 않던 사람이었다.

승수가 미연 옆에 와서 섰다. 승수도 할머니의 등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 할머니 왜 우세요?”

“모르겠어요.”

“짐작도요?”

“짐작은 있어요. 그런데 짐작은 근거가 아니라서 말하지 않을게요.”

미연은 그 대답이 얄밉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랬다. 승수도 모르는 게 있었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미연은 공책을 꺼내 모르는 것 칸에 둘째 줄을 적었다. 할머니는 왜 변호사비 이야기에 우셨나. 그 아래 첫째 줄, 평상 위의 서류 봉투가 보였다. 두 줄이 위아래로 붙어 있었다.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질문인데, 이상하게 나란히 놓고 보니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 미연은 그 생각을 적지 않았다. 적는 순간 근거처럼 보일 것 같았다.

산소를 내려오는 길에 정우가 할머니를 업었다. 할머니는 내려 달라고 두 번 말하고, 세 번째에는 손자의 목에 팔을 둘렀다. 영감의 일기장은 미연이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열두 해를 창고에서 잔 종이는 바스락 소리를 냈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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