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150자)
명리학이란 무엇인가 — 답은 벌써 도착해 있었다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메일은 산에 오르기 전에 와 있었다.
미연은 버스에서 한 번, 정류장에 내려서 한 번 더 읽었다.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가 맨 앞에 있었고, 더 좋은 기회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는 말이 맨 끝에 있었다. 그 사이에 한 줄이 끼어 있었다. 회사의 업무 운영 계획이 바뀌어 이번 채용 절차를 진행하지 않게 되었다는 줄이었다.
떨어진 것과는 조금 달랐다. 미연은 그 차이를 한참 곱씹다가, 어느 쪽이든 자기한테 돌아오는 결과는 같다는 데서 생각을 멈추고 화면을 껐다.
지난주에 그 회사의 과제를 하느라 소개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 보았다. 사람의 손을 덜고 시간을 줄이는 기술이라는 문장이 영상 끝에 크게 떴다. 과제 안내문은 그 기술을 써도 좋으니 결과물을 검토하고 자기 판단을 설명하라고 했고, 미연은 시키는 대로 했다. 채용이 사라진 까닭이 그 기술 때문인지는 메일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두 문장이 자꾸 붙어 다녔다. 사람의 손을 덜어 준다는 말과 사람을 뽑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산길로 들어서자 발바닥부터 열이 올라왔다.
휴대전화에는 자기소개서 파일이 열려 있었다. 문장을 다듬어 주는 프로그램이 마지막으로 고쳐 준 첫 줄은 이랬다. ‘저는 어떤 언덕도 멈추지 않고 오르는 끈기의 사람입니다.’ 미연은 그 문장을 읽고 세 걸음 만에 멈춰 섰다.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고르는 동안, 옆으로 지나가던 등산객 할머니가 “젊은 사람이 벌써 그러면 쓰나?” 하고 웃으며 지팡이도 없이 올라갔다. 끈기의 사람은 할머니의 등산 양말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졸업하고 이렇게 오래 걸어 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책상 앞에서는 하루가 짧았는데, 여기서는 몸이 시간을 못 따라왔다.
대화방이 울렸다. 같이 취업 준비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누구는 다른 회사 과제를 받았다고 했고, 누구는 아직 답이 없다고 했다. 미연은 중단 메일을 옮겨 적다가 지웠다. 아직은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국사봉 거북바위에 닿았을 때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
중년의 그 사람은 바위 한쪽에 작은 가방을 내려놓고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손은 무릎에 가볍게 얹혀 있었고, 바람이 등산복 소매를 부풀렸다가 놓아도 몸은 그대로였다. 바위는 볕을 오래 받아 미지근했고, 갈라진 틈마다 마른 솔잎이 끼어 있었다. 미연은 소리를 안 내려고 발끝으로 옮기다가 신발 밑의 잔돌을 밀었다.
돌이 굴렀다. 감겨 있던 눈이 열렸다.
“죄송해요.”
“괜찮아요.”
미연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물을 마시려는데 손이 미세하게 떨려서 물병 뚜껑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천천히 마셨다. 다시 눈을 감을 줄 알았던 사람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괜히 남의 일을 끊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상하셨어요?”
“네.”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오늘은 생각이 많아서 앉아 있었어요.”
미연은 물병을 내려놓았다. 생각이 없어서 저렇게 앉아 있는 줄 알았다.
“가만히 있으면 더 많아지지 않아요?”
“많아질 때도 있지요. 그럴 땐 그냥 세요. 하나, 둘. 오늘은 마흔둘까지 셌는데 돌이 굴러왔어요.”
“……처음부터 다시 세셔야 해요?”
“아뇨. 마흔셋부터 하면 돼요. 돌 탓을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편해요.”
미연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물 한 모금으로 막았다. 휴대전화 화면이 다시 켜졌다. 미연은 그것을 뒤집어 놓으려다가 그만두고 오히려 내밀었다.
“요즘은 물어보면 답이 다 나와요. 이것 좀 보세요.”
화면에는 사주 풀이를 해 준다는 앱이 떠 있었다. 생일을 넣고 태어난 시간 칸에는 ‘모름’을 눌렀는데도 결과는 길고 단호했다. 당신은 큰 바다의 물입니다. 2026년 하반기에는 귀인이 나타나며 취업운이 크게 오릅니다.
그 사람은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태어난 시간을 몰라요?”
“알아요. 그냥 귀찮아서 모름 눌렀어요.”
“그런데도 이만큼 썼네요.”
“그러니까요. 친절하죠?”
미연은 화면을 거두고 그 사람을 보았다. 산 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었고, 하반기였다.
“혹시 귀인이세요?”
“나는 무릎이 아픈 사람이에요.”
이번에는 미연도 참지 못하고 웃었다. 웃고 나니 아까부터 가슴 밑에 걸려 있던 것이 조금 내려갔다. 그 틈으로 말이 먼저 나왔다.
“그 회사 채용이 오늘 없어졌어요. 다들 더 배우라고 해요. 도구를 잘 쓰면 된다고요. 저는 배우고 있는데요.”
마지막 말이 생각보다 크게 나왔다. 멀리 겹쳐 선 능선들은 가까운 나무들보다 조용해 보였다.
“계속 배우고 준비하면 언젠가는 제가 할 일이 생길까요?”
“어떤 일을 원하는지는 아직 못 들었어요.”
“저도 몰라서 묻는 거예요.”
“그렇겠네요.”
그 사람이 난처하게 웃었다. 미연은 실망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처음 본 사람이 알맞은 일을 바로 짚어 주었다면 그 말도 의심했을 것 같았다.
“무슨 일 하세요?”
“명리 공부를 해요. 가르치기도 하고요.”
“명리요?”
“사주라고 하면 더 잘 알아들을 거예요.”
미연의 눈이 앱과 그 사람 사이를 한 번 오갔다.
“그럼 제 생일 알려 드리면 언제 취직할지 아세요?”
“그 날짜부터 듣고 싶어요?”
“솔직히요? 네.”
그 사람은 나무라지 않았다.
“그 마음으로 오는 사람도 많아요. 다만 나는 그 약속을 먼저 하지 않아요.”
“왜요? 저 앱은 해 주는데요.”
“저 앱은 미연 씨 시간을 모르는데도 해 줬지요.”
미연은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지는 기분이 들 때 미연은 질문을 하나 더 하는 쪽이었다.
“그럼 선생님 공부는 뭐에 쓰는 건데요? 날짜도 안 알려 주고 귀인도 아니면요. 결국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 거 아니에요?”
말을 뱉고 나서야 예의가 없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상대의 얼굴은 오히려 조금 밝아졌다.
“좋은 질문이에요. 거기서 시작하면 돼요.”
그 사람은 바위 위에 손가락으로 네 칸을 그렸다. 먼지가 앉아 있던 자리에 얕은 줄이 남았다.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를 여덟 글자로 적어요. 그 글자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읽는 공부가 명리예요. 어떤 기운이 가운데에 있는지, 그게 어느 계절에 놓였는지, 무엇이 돕고 무엇이 막는지를 보지요.”
“그게 점이랑 뭐가 달라요?”
“점은 대개 답을 줘요. 명리도 오래 그렇게 쓰여 왔고요. 그런데 내가 하는 쪽은 답보다 읽는 순서를 가르쳐요. 이 글자가 있으니 이렇게 읽었다, 하는 근거를 먼저 적고, 그다음에 말을 해요.”
“근거를 적어도 결국 해석은 선생님 마음 아니에요?”
“그래서 순서가 중요해요. 미연 씨가 방금 채용 이야기를 했잖아요. 내가 그걸 듣고 나서 생일을 받으면, 여덟 글자 가운데 그 이야기에 맞는 글자만 골라서 설명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러면 아주 잘 맞는 것처럼 들리지요.”
“……저 앱도 그런 거예요?”
“그건 내가 모르지요. 확인할 수 있는 건 하나예요. 근거가 보이느냐.”
미연은 바위의 네 칸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먼지를 조금 쓸어 가서 금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럼 이걸 배우면 뭐가 남아요?”
“내 경우엔 이거였어요. 나한테 모자란 게 뭔지, 넘치는 게 뭔지 보는 눈. 모자란 건 채우고 넘치는 건 덜어 내야 하는데, 사람은 대개 반대로 해요. 넘치는 걸 더 하고 모자란 건 모른 척하지요.”
미연은 자기소개서 첫 줄을 떠올렸다. 끈기의 사람은 아까 세 걸음 만에 멈췄다.
“저한테도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
말해 놓고 나니 너무 빨랐다 싶었다. 이름도 몰랐다. 잠깐 허탈해서 아무거나 붙잡으려는 걸 수도 있었다. 상대도 그걸 아는 얼굴이었다.
“조건이 하나 있어요. 내가 하는 말 가운데 근거가 안 보이는 말이 있으면 미연 씨가 바로 짚어요. 셋 짚으면 그만둬도 돼요.”
“선생님을요?”
“수업을요. 나는 계속 여기 앉아 있을 거니까.”
“셋은 너무 적은데요. 저 아까부터 벌써 하나 찾았어요.”
“뭔데요?”
“마흔둘까지 셌다는 거요. 근거 없잖아요.”
그 사람이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가 바위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그건 인정할게요. 하나.”
“얼마나 머물 건데요?” 하고 그 사람이 이어 물었다.
“아직 안 정했어요. 서울에 가야 할 일은 있고요.”
“오갈 수 있겠어요?”
“한 번은요.”
“그럼 한 번부터 해 봅시다. 나는 승수라고 해요.”
“미연이에요.”
승수가 일어나려다 굳은 무릎에서 잠깐 멈췄고, 바위 모서리를 짚은 채 다리를 천천히 폈다. 오래 앉아 있던 사람도 바로 걸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미연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내려가는 길에 승수는 다음 날 함께 볼 표가 필요하다며 출생 정보를 물었다. 미연은 2004년 9월 30일, 서울에서 오후 한 시 반에 태어났다고 알려 주었다. 이번에는 ‘모름’을 누르지 않았다. 승수도 자기 것을 말했다. 1969년 7월 7일 새벽 다섯 시, 서울이었다.
“새벽 다섯 시면 엄청 부지런하게 태어나셨네요.”
“어머니가 부지런하셨지요.”
미연은 웃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딜 뻔했다. 승수가 팔을 내밀지는 않았다. 미연이 스스로 난간을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걸었다.
“내일 뭐 가져와야 해요? 만세력 같은 거요?”
“공책 하나요. 얇은 걸로.”
“두꺼운 게 낫지 않아요? 배울 게 많다면서요.”
“두꺼운 공책은 사 놓고 앞장만 써요. 얇은 건 끝까지 쓰고요.”
미연은 책상 서랍에 앞장만 쓴 공책이 몇 권 있는지 세어 보려다 그만두었다. 근거가 너무 분명한 말이었다. 솔잎 냄새가 섞인 바람이 계곡 쪽에서 올라와 땀이 식은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고, 미연은 그제야 오늘 처음으로 다리가 아니라 머리가 피곤하다는 걸 알았다.
등산로가 끝나고 마을로 들어서는 어귀에 마을회관이 있었다. 회관 담벼락에 현수막 두 장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하나는 리조트 유치로 마을에 활력을, 다른 하나는 조상 땅 팔아 리조트가 웬 말이냐. 두 장 다 바람에 한쪽 끈이 풀려 펄럭였다.
회관 앞마당에서 누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살 낀 놈이 돌아오더니 마을이 이 모양이야!”
환갑은 넘어 보이는 남자가 젊은 남자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있었다. 남자의 조끼에는 이장이라고 적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 젊은 남자는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였고, 찔릴 때마다 한 걸음씩 물러나면서도 눈은 내리깔지 않았다.
“땅 주인은 우리 할머니예요. 이장님이 왜 도장을 받으러 다니세요?”
“너희 아버지가 부탁했어. 서울 아들이!”
“아버지는 할머니가 아니잖아요.”
마당 끝에서 고무장화를 신은 할머니가 뛰어왔다. 미연은 그 걸음을 알아보았다. 아침에 지팡이도 없이 자기를 앞질러 올라간 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손자의 팔을 붙잡고 이장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끌고 갔다. 손자는 끌려가면서도 한 번 돌아보았다.
이장이 둘의 등에 대고 한마디를 더 던졌다.
“도해 원장이 그러더라. 저놈 사주에 피 볼 살이 둘이나 겹쳤다고!”
마당에 있던 사람 몇이 웃었고, 몇은 웃지 않았다. 승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미연은 승수의 옆얼굴을 보았는데, 거기엔 아까 바위 위에서 마흔둘을 세던 사람의 표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주에 피 볼 살이 있다는 게 진짜 있는 말이에요?”
“그런 이름을 붙이는 사람은 있어요.” 승수는 마을 쪽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근거를 붙이는 사람은 드물고요.”
산 아래에서 미연은 채용 메일을 한 번 더 열었다. 내용은 그대로였다. 대화방에 짧게 적었다. 이번 채용은 중단됐어, 나는 며칠 산에 있을게. 보내고 나서 휴대전화를 가방 깊숙이 넣었다.
앱에 남은 풀이는 지우지 않았다. 내일 승수에게 보여 주고, 저 문장들 가운데 근거가 보이는 게 몇 개인지 세어 볼 생각이었다.
밤 열한 시가 넘어 엄마의 문자가 왔다. 숙소 장판이 지나치게 뜨거워서 이불을 반쯤 걷어 낸 채였다.
노량진 학원 등록했어. 공무원반. 다음 주 월요일부터야. 이번엔 엄마 말 들어.
그 아래 결제 영수증 사진이 한 장 붙어 있었다. 석 달 치였다. 미연은 숫자를 보지 않으려고 사진을 넘겼는데, 넘기는 엄지가 숫자 위에서 한 번 멈췄다.
답장을 썼다. 엄마 나 아직 정한 거 없어. 지웠다. 고마워 근데. 지웠다. 나 산에서 사주 배워. 쓰자마자 지웠다. 그건 보내는 순간 엄마가 첫차를 탈 문장이었다.
결국 보낸 건 한 줄이었다. 응, 생각해 볼게.
보내고 나서야 그 말이 오늘 승수에게 들은 대답과 생김새가 같다는 걸 알았다. 날짜를 약속하지 않는 말이었다. 엄마한테서는 바로 답이 왔다. 생각은 학원 다니면서 해.
미연은 휴대전화를 엎어 놓고 천장을 보았다. 월요일까지 닷새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