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95자)
회갑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새벽 다섯 시 십 분, 침대에서 내려와 첫발을 디디자 오른발 뒤꿈치가 바닥을 찔렀다. 열다섯 해 동안 아침마다 겪은 일이라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다. 발바닥 힘줄이 굳어서 첫걸음마다 압정을 밟는 병이라고, 몇 해 전 약국 약사가 이름을 알려 주었다. 병원에 갈 짬이 없어서 나는 병의 이름만 알고 살았다. 까치발로 부엌까지 가는 동안 장판은 밤새 식어 있었고, 싱크대 앞 발판만 내 발 모양대로 꺼져 있었다.
고백하자면 예순 번째 생일 아침에 나는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다. 냄비 하나에 어머니가 드실 흰죽을 앉히고, 프라이팬에는 아들이 먹을 달걀 두 개를 깼다. 어머니 방에서 종이 울렸다. 호텔 프런트에나 있을 은색 탁상 종을 아들 태루가 인터넷으로 사다 놓은 뒤로, 어머니는 사람을 부를 때 이름 대신 종을 쳤다.
“띵.”
한 번이면 물, 두 번이면 기저귀, 세 번이면 텔레비전 리모컨이었다. 규칙을 정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띵, 띵.”
어머니 마봉실은 아흔이었다. 열다섯 해 전 뇌경색으로 왼편 팔다리가 굳었고, 네 해 전 화장실 문턱에서 넘어진 뒤로는 침대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다. 몸은 그렇게 됐어도 입은 하나도 굳지 않았다. 방문을 열자 어머니가 돋보기를 이마에 얹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늦었다. 오늘 니 생일이라고 늦장 부리는 겨?”
“엄마, 돋보기 이마에 있어.”
“알어. 일부러 올려놨어. 내가 찾는 척을 해야 니가 방에 한 번 더 들어오잖여.”
충청도 서천에서 스무 해, 서울에서 일흔 해를 살았는데도 어머니의 말끝은 아직 금강 하구에 있었다. 나는 침대 난간을 내리고 어머니의 무릎을 세웠다. 오른쪽 어깨를 받치고 몸을 내 편으로 굴려 눕힌 다음, 젖은 기저귀를 말아 빼고 물티슈를 두 장 뽑는다. 순서는 열다섯 해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고, 바뀐 것은 내 허리뿐이었다. 어머니를 굴릴 때마다 허리 아래에서 무언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나만 들었다.
“생일 축하한다.”
어머니가 벽을 보고 누운 채 말했다. 얼굴을 보고 하기에는 낯간지러운 말을 어머니는 늘 벽에 대고 했다.
“고마워.”
“미역국은?”
“안 끓였어.”
“잘했다. 지 생일에 지가 끓이는 미역국은 맹물이여.”
부엌으로 돌아오자 식탁 위 휴대전화가 연달아 떨었다. 가족 대화방 「조씨네 효도방」이었다. 방을 만든 사람은 남동생 두배였고, 방 이름을 지은 사람도 두배였다. 효도는 주로 내가 했다.
두배가 케이크가 터지는 이모티콘을 연달아 셋 보냈다. 이어서 글이 올라왔다. 「누나 회갑 축하축하! 저녁 여섯 시 반 발산역 한정식 예약 완료. 엄마 휠체어는 누나가 챙기고 계산은 누나 카드로 ㅋㅋ 예약은 내가 했잖아」
올케 수옥이 꽃다발 이모티콘을 하나 보냈다. 아들 태루는 읽지 않았다. 새벽 세 시까지 공기업 인적성 문제집을 풀다 잤으니 열 시 전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ㅋㅋ」 두 글자를 오래 보았다. 열다섯 해 전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 두배는 병원 복도에서 처음으로 이 말을 했다. 「누나가 집에 있잖아.」 몇 달 뒤 어머니가 화곡동 빌라를 내 이름으로 넘기던 날, 법무사 사무실 앞에서 두배는 같은 말을 조금 바꿔 했다. 「이제 누나 집이잖아.」 오늘 아침의 ㅋㅋ도 같은 말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흘렀다. 어머니가 리모컨을 달라고 종을 세 번 쳤기 때문이다. 화면 아래 자막이 지나갔다. 「결혼 서른 해 넘은 부부의 이혼, 처음으로 결혼 네 해 안의 이혼보다 많아」
“늦게 갈라서는 것들 많네.”
어머니가 혀를 찼다.
“나는 느이 아버지가 먼저 가 버려서 이혼도 못 했다.”
“하고 싶었어?”
“한 백 번.”
어머니가 웃었고, 나는 죽을 떠서 어머니 입에 넣었다. 왼편 입꼬리로 죽이 흘렀다. 숟가락 끝으로 걷어 올리면서 나는 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 사십 분이었다.
*
쪽지는 달력 뒷장에 썼다. 볼펜이 두 번 끊겨서 세 번째 볼펜으로 마저 썼다.
「점심 죽은 가스레인지 위 작은 냄비. 데워서 식혀 드려. 기저귀는 장롱 둘째 칸, 물티슈는 침대 밑. 오후 두 시에 요양보호사 선생님 오신다. 태루야, 할머니 부탁한다. 엄마 좀 다녀올게.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마지막 줄을 쓰고 나서 한참 볼펜 뚜껑을 닫지 못했다. 가출이라는 말은 열일곱 살짜리한테나 붙는 말인 줄 알았다. 예순에 붙여 보니 낱말이 몸에 비해 작았다.
안방 옷장 맨 안쪽에서 연한 베이지 트렌치코트를 꺼냈다. 열 해 전 백화점 마감 세일에서 산 옷인데 가격표가 아직 붙어 있었다. 입고 갈 데가 없었다. 동창회도, 계모임도, 친구 딸 결혼식도 나는 늘 어머니의 오후 두 시 기저귀 때문에 못 갔다. 가격표를 이로 끊었다. 옷 끈을 묶자 코트가 생각보다 가벼웠다.
작은 갈색 여행 가방에는 속옷 세 벌과 양말, 혈압약, 칫솔, 통장 하나를 넣었다. 통장은 내 이름으로 된 것이었다. 급식실에서 열두 해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 반쯤 남아 있었고, 열다섯 해 동안 거의 손대지 않았다. 손댈 시간도 없었다.
나가기 전에 짧은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흰머리가 반은 섞인 커트였다. 어머니 머리를 감기다 내 머리가 길면 걸리적거려서, 동네 미용실에서 늘 가장 짧게 잘랐다. 거울 속 여자가 코트 깃을 세운 모습을 보니 어디 먼 데 가는 사람 같았다. 아직 현관문도 안 열었는데 그랬다.
어머니 방 문을 조금 열었다. 어머니는 사극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화면 속 왕비가 궁을 떠나라는 어명을 받고 있었다.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
“그냥.”
어머니가 돋보기 너머로 내 코트를 보았다. 아래위로 한 번, 다시 위로 한 번이었다. 무슨 말이든 할 줄 알았다. 어머니는 리모컨으로 소리를 두 칸 올렸을 뿐이었다.
“신발 편한 거 신어라. 니 발 아프잖여.”
나는 문고리를 쥔 채 무너질 뻔했다. 열다섯 해 동안 내 발 아픈 걸 아는 사람이 있었다. 알면서 아무 말을 안 한 사람이었다.
*
빌라 계단은 마흔두 칸이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삼 층에 살면서 나는 계단 수를 발로 외웠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갈 때면 구급대원 둘이 들것을 들고 이 계단을 내려갔고, 나는 뒤에서 어머니 신발을 들고 따라 내려갔다. 오늘은 내 신발을 신고 내 발로 내려갔다. 서른 칸쯤에서 뒤꿈치가 풀렸다. 아침의 압정은 걸을수록 무뎌진다.
빌라 입구 전봇대에 새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화곡동 일대 재개발 추진 주민 설명회 — 동의서 받습니다」 동네 단톡방에서는 몇 달째 집값 이야기만 오갔다. 우리 빌라가 재개발 구역 안에 들어가면 값이 두 배가 된다고 했다. 두배는 재개발 소식에 누구보다 먼저 「ㅋㅋ 이름값 하네」라고 썼다.
지하철 화면에서는 돌봄 로봇 광고가 나왔다. 「어르신 곁을 지키는 두 번째 손 — 사전 예약」 은색 팔을 단 로봇이 노인을 침대에서 일으키고 있었다. 저 로봇이 오면 나는 첫 번째 손이 되는지, 아예 손이 필요 없어지는지 궁금했다.
서울역 매표 화면 앞에서 나는 목적지를 고르지 못하고 오 분을 서 있었다. 부산은 너무 멀었고 대전은 너무 가까웠다. 강릉에는 가 본 적이 없었다. 결혼하던 해 신혼여행으로 가기로 했다가 시아버지가 아프셔서 못 갔다. 손가락이 「강릉」을 눌렀다. 여덟 시 일 분, 창가 자리였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루였다. 받지 않았다. 다음에는 두배였다. 받지 않았다. 문자가 왔다.
「누나 어디야. 태루가 쪽지 사진 보냈어. 위치 보니까 서울역이네. 나 공덕 현장이야. 거기 있어」
태루가 지난봄 내 휴대전화에 깔아 준 위치 공유 앱이 떠올랐다. 「가족 지킴이」라는 이름이었다. 엄마가 혹시 길에서 쓰러지면 찾으려고 깐다고 했다. 내가 쓰러질 일을 걱정해 준 사람이 아들이라 고마웠는데, 오늘은 내가 어디 있는지를 동생이 알았다.
*
두배는 여덟 시 정각에 플랫폼으로 뛰어 내려왔다. 타일 가루가 하얗게 묻은 작업복 차림에 무릎 보호대를 찬 채였다. 쉰일곱 살 남자가 무릎 보호대를 차고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오는 모습은 사람들 눈길을 끌었다.
“누나!”
두배가 숨을 몰아쉬며 내 앞에 멈췄다. 나는 가방을 고쳐 들었다.
“장난해? 지금 이게 뭐야.”
“기차 타려고.”
“엄마는?”
“쪽지에 다 써 놨어.”
“쪽지로 기저귀가 갈려?”
“태루 손으로 갈려.”
“태루는 취업 준비생이야. 시험이 다음 달인데.”
“나는 열다섯 해 동안 준비도 못 했어.”
두배가 입을 다물었다. 짧았다. 곧 다른 문장을 들고 왔다. 두배는 늘 다음 문장을 준비해 두는 사람이었다.
“누나, 냉정하게 얘기하자. 엄마가 누나한테 집 줬잖아. 화곡동 빌라. 그때 엄마가 뭐라 그랬어. 나를 맡아 달라. 누나가 그 집에 살잖아. 그럼 엄마는 누나 몫이야. 나는 엄마한테 받은 거 없어.”
“두배야.”
“내 말 틀려?”
틀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을 넘기며 정말 그렇게 말했다. 「나를 맡아 다오.」 나는 열다섯 해 동안 어머니의 말을 맡았다. 어머니를 맡았고, 아들의 밥을 맡았고, 두배가 명절마다 들고 오는 과일 상자의 답례까지 맡았다. 내 허리와 내 발뒤꿈치는 아무도 맡지 않았다.
열차가 들어왔다. 바람이 코트 자락을 들췄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탔다. 내가 한 걸음 떼자 두배가 가방끈을 붙잡았다.
“못 가.”
“놔.”
“회갑 날에 엄마를 두고 가출하는 사람이 어딨어?”
두배가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서 기차를 타던 할머니 한 분이 멈춰서 우리를 보았다. 등산 모자에 배낭을 멘 분이었다.
“아저씨, 누나가 회갑이래잖아요.”
“예?”
“회갑이면 나라에서도 놔줘요. 놔 줘요, 끈.”
두배가 할머니를 보느라 고개를 돌린 사이 나는 가방끈을 손목에 한 번 감아 당겼다. 끈이 두배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두배는 아차 하고 다시 손을 뻗었지만 무릎 보호대가 굽혀지지 않아 한 박자 늦었다.
나는 기차에 올랐다. 문이 닫혔다. 유리 너머에서 두배가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크게 말했다. 집, 이라고 읽혔다. 기차가 움직이자 두배는 몇 걸음 따라 걷다가 멈췄다. 무릎 보호대 위로 타일 가루가 떨어졌다.
*
창가 자리에 앉아 신발을 벗었다. 기차 바닥은 보일러를 땐 방처럼 따뜻했고, 발바닥이 처음으로 아무것도 밟지 않고 쉬었다. 차창 밖으로 한강이 지나갔다.
휴대전화가 다시 떨었다. 친척 대화방 「서천 조씨 큰집」이었다. 사촌만 서른 명이 들어 있는 방에 두배가 글을 올렸다.
「우리 누나가 회갑 날 아침 엄마를 두고 집을 나갔습니다. 강릉 가는 기차를 탔어요. 혹시 강릉 사시는 분 연락 주세요. 엄마는 지금 혼자 계십니다」
밑에 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열 해 전 사촌 결혼식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화장을 하고 있었고 웃고 있었다. 저렇게 웃은 날이 있었다는 걸 두배가 나보다 먼저 기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가 아니었다. 태루가 있었다. 두배는 태루를 빼고 썼다. 큰고모가 「세상에」라고 썼고, 대전 사촌 형부가 「누님 무슨 일 있으신가」라고 썼고, 누군가 합장하는 손 이모티콘을 보냈다.
나는 위치 공유 앱을 열었다. 「가족 지킴이 — 위치를 계속 공유할까요?」 아래에 초록색 단추와 회색 단추가 있었다. 회색 단추를 누르고, 휴대전화를 코트 주머니에 넣고, 맨발을 앞좌석 아래로 쭉 뻗었다. 발끝이 차가운 쇠 받침대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