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715자)
백 위
소문 순위로 줄 세우는 강호 · 한빛결
해가 장강 너머로 기울자 장강제일객잔 앞마당의 나무 방에 사다리가 놓였다. 방은 사람 키 세 길만 한 널판에 회칠을 한 것이었다. 점원이 사다리에 올라 어제 쓴 이름들을 회칠로 덮고, 붓으로 새 이름을 위에서부터 써 내려갔다. 먹 냄새가 대청 문으로 흘러나온 국수 김과 섞였다. 저녁상을 받던 손님들이 젓가락을 든 채 대청 문간으로 몰려나왔고, 누가 먼저 읽기 시작하자 다들 따라 읽었다. 객잔 지붕 위에는 이야기꾼 몇이 붓과 쪽지를 들고 걸터앉아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전서구 발목에 매달 쪽지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강호 인기 순위 · 칠월 그믐」
맨 위 「일 위 은선문 백리현」 앞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열 위쯤 내려가자 젓가락이 다시 움직였고, 더 아래로는 아무도 읽지 않았다. 방 기둥에는 누렇게 바랜 공문이 한 장 붙어 있었다. 「무림맹 알림 — 올가을 강남 호위 일감은 강호 인기 순위 오십 위 안 문파에 먼저 돌린다」 공문 귀퉁이에는 누가 기름 묻은 손가락으로 ‘오십’ 자를 문질러 놓았다.
단목령은 사부의 서찰을 든 채 방을 끝까지 읽고 나서 대청 계산대로 들어갔다. 스무 해 전부터 이 객잔은 다달이 그믐에 청송문으로 쌀 한 말을 올려 보냈다. 청송문의 사조가 젊은 시절 객잔 짐배를 수적에게서 지켜 준 인연이었다. 계산대 너머 주방장은 서찰을 펴 보지도 않고 목령에게 도로 밀었다.
“방주 어른 말씀이 백 위 밖 문파에는 쌀 안 나간대.”
“청송문은 백 위요. 밖이 아니오.”
“그러니까 이번 그믐까지는 안이지.” 주방장이 턱으로 문밖의 방을 가리켰다. “보름 뒤면 밖이고.”
방의 맨 끝, 먹이 덜 마른 자리에 「백 위 청송문」이 적혀 있었다. 글씨가 널판 끝으로 몰려서 ‘문’ 자의 마지막 획이 널 밖으로 비어져 나갔다. 목령은 긴 검은 머리를 높이 묶은 푸른 끈을 한 번 더 조이고, 해진 남색 도복 소매를 팔꿈치 위로 걷어붙였다. 팔뚝에 감은 천도 풀린 데 없이 다시 감았다. 산에서 장작을 팰 때 하는 버릇이었다. 허리에 찬 철검이 계산대 모서리에 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
대청 입구, 손님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눈에 드는 탁자에 이야기꾼이 앉았다. 추천 탁자였다. 이야기꾼이 찻잔을 들자 대청이 조용해졌고, 손님들도 저마다 찻잔을 들었다. 이 고을에서 이야기는 차 한 모금 마실 동안만 했다. 사람들은 한 모금 이야기라고 불렀다. 밤새 이야기하던 옛 이야기꾼들은 이제 나루터에서 짐을 졌다.
“은선공자가 한밤 산길에서 도적 서른을 만났습니다.”
손님들이 찻물을 입에 머금었다.
“공자가 부채를 펴자 소매에서 복사꽃 잎 서른 장이 한 줄로 날았습니다. 꽃잎이 도적들 콧등에 하나씩 내려앉았고, 도적들은 꽃향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공자는 부채를 접으며 말했지요. ‘꽃이 졌으니 그대들도 지시오.’”
이야기꾼이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와 손님들이 차를 삼키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다음은 엽전이었다. 대청 벽 밑에 문파마다 놓인 대바구니 가운데 「은선문」 바구니로 엽전이 비처럼 떨어졌다. 맨 앞줄 사내 몇이 먼저 한 줌씩 던졌고, 뒤에서 따라 던졌다. 이 층 난간에서는 공자의 부채를 본뜬 먹 그림 부채를 든 아가씨들이 소리를 질렀다.
목령의 입에서 말이 먼저 나갔다.
“콧등에 꽃잎이 앉는다고 도적이 무릎을 꿇소? 재채기나 하겠지.”
옆 탁자에서 국수를 먹던 짐꾼이 사레가 들렸다. 대청의 머리들이 목령에게로 돌았다. 목령은 내친김에 한마디를 더 얹었다. 배가 고팠다. 점심은 산에서 캔 칡뿌리 반 토막이었다.
“부채로 하는 건 춤이오. 무공이 아니고.”
이 층 난간이 술렁였다. 난간 끝에서 손님들 부채에 낙관을 찍어 주던 사내가 붉은 인주를 닦고 일어났다. 흰 비단옷 깃과 소매에 금실로 놓은 무늬가 등불을 받아 반짝였고, 허리까지 오는 은백색 긴 머리를 위에서 조금만 묶어 내려서 머리카락이 걸음마다 흔들렸다. 손에는 먹으로 그림을 그린 접부채가 들려 있었다. 순위 일 위 은선공자 백리현이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춤도 무공이네.” 리현이 대청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보여 드릴까?”
손님들이 길을 텄다. 목령은 철검을 뽑았다. 날 가운데에 이가 하나 빠진 검이었다. 누가 낄낄 웃었다.
“검이 배가 고팠나 봐. 한 입 먹었네.”
목령은 웃음소리가 난 데를 보지 않고 리현의 부채만 보았다. 부채살은 쇠였다. 먹 그림을 그린 비단 밑으로 살 열여섯 개가 비쳤다.
목령이 먼저 나갔다. 오른발을 반 보 내딛으며 칼끝으로 부채 손잡이 바로 위, 살이 모이는 자리를 찔렀다. 꾸밈없는 청송문 찌르기였다. 부채가 손에서 떨어져야 했다. 리현은 부채를 놓지 않았다. 손목을 틀어 부채를 확 펴자 칼끝이 쇠살 위로 미끄러졌고, 리현의 소매에서 복사꽃 잎이 한 줄로 날아올랐다. 꽃잎은 목령의 콧등 앞을 지나 대청 들보까지 올라갔다가 천천히 흩어졌다.
대청이 터졌다. 엽전이 다시 쏟아졌다. 이 층 아가씨들이 꽃잎을 받으려고 난간 너머로 손을 뻗었다.
목령은 칼을 거두지 않았다. 칼끝에 남은 감촉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부채를 편 손목이 칼을 받으며 뒤로 꺾였다. 리현의 왼발은 한 걸음, 오른발은 두 걸음 물러나 있었다. 구경꾼들은 꽃잎을 보았고, 물러난 두 걸음은 아무도 보지 않았다.
“손목이 밀렸소.” 목령이 말했다.
리현이 부채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부채 뒤에서 아주 작게 말했다.
“쉿.”
목령은 칼끝을 내리고 대청이 다 들리게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보름 뒤에 제대로 붙읍시다. 꽃잎 없이.”
*
계단 위에서 찻물 따르는 소리가 났다. 대청의 웃음이 한 번에 가라앉았다.
삼 층에서 사내 하나가 찻주전자를 들고 내려왔다. 키가 작고 어깨가 둥글었으며, 목에 흰 수건을 둘렀다. 이 객잔 주인이면서 일곱 고을 객잔 주인들의 우두머리였다. 방을 붙이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라 다들 방주라고 불렀다. 방주는 대청 한가운데까지 와서 제 찻잔에 차를 따르고 한 모금 머금었다. 입 안에서 오래 굴리다가 삼켰다.
“떫네.” 방주가 목령을 보았다. “그래도 우리면 쓸 만하겠어.”
“무슨 말이오?”
“비무 말이야. 하자고. 대신 공짜로는 안 돼.” 방주가 찻잔으로 문밖 마당을 가리켰다. “보름 뒤 한가위 장날, 저 마당에 비무대를 놓는다. 진 문파는 방에서 이름을 내리고 산문을 닫아. 이긴 사람이 진 문파 산문 빗장을 제 손으로 지르고.”
대청이 술렁였다. 누가 산문을 닫는대, 하고 옆 사람에게 옮기는 소리가 났다. 방주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하나 더. 백 위가 일 위한테 비무를 청하는 건 강호 법도에 없어. 열 위 밖에서는 일 위 얼굴도 못 보는 거야. 보름 안에 열 위 안으로 들어와. 못 들어오면 비무는 없던 일이고, 청송문은 허풍 친 문파로 방에서 내린다.”
목령은 계산대 위의 서찰을 보았다. 사부가 떨리는 손으로 쓴 글씨였다. 산 위 쌀독에는 쌀이 한 됫박도 남지 않았고, 목령은 쌀독 이야기를 사부에게 하지 않았다.
“하겠소.”
방주가 리현을 보았다. 리현은 부채를 접었다 폈다 했다. 대청의 눈이 전부 리현에게 가 있었다. 일 위가 백 위의 비무를 물리면 내일 아침 이야기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리현도 알고 대청도 알았다.
“한가위 달 아래서 꽃잎이 더 예쁘지.” 리현이 말했다. “받겠네.”
엽전이 또 쏟아졌다. 이번에는 바구니가 둘이었다. 「은선문」 바구니에 한 무더기, 「청송문」 바구니에 세 닢. 맨 앞줄 사내들은 이번에도 남보다 먼저 던졌다. 목령은 제 바구니의 엽전을 내려다보았다. 엽전 하나는 뒷면이 위로 누워 있었다.
*
솔숲 고갯길은 밤이면 송진 냄새가 짙었다. 목령은 주방장이 방주 몰래 쥐여 준 보리쌀 한 됫박을 품에 안고 올라갔다. 사당 처마 밑에 대야가 셋 놓여 있었고, 지난밤 빗물이 아직 고여 있었다. 사부는 대야 사이에 바둑판을 놓고 혼자 바둑을 두는 중이었다. 무릎이 나빠 산을 못 내려간 지 세 해째였다.
“늦었다.” 사부가 흑돌을 놓았다. “쌀은?”
“보리요.”
“보리도 쌀이다. 껍질이 좀 두꺼울 뿐이지.” 사부가 백돌을 집었다. “객잔에서 무슨 일 있었냐? 고갯길 다람쥐들이 시끄럽더라.”
목령은 보리쌀을 부뚜막에 내려놓고 아궁이에 솔가지를 밀어 넣었다. 불이 붙는 동안 대청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시주가 끊긴 이야기는 빼고, 비무 이야기만 했다. 진 문파가 산문을 닫는다는 대목에서 사부의 백돌이 바둑판 위에서 한참 멈췄다.
“일 위를 찔렀다고?”
“부채를 찔렀소.”
“부채를 찔렀는데 부채가 안 떨어졌다?” 사부가 백돌을 놓았다. 제 흑돌 넉 점이 한꺼번에 죽었다. 사부는 혀를 찼다. “거참, 내가 나한테 졌네.”
“사부.”
“밥이나 해라. 보리는 오래 불려야 한다. 급하게 끓이면 겉만 익고 속은 생쌀이야.” 사부는 죽은 돌을 하나씩 들어내 통에 담았다. “사람도 그렇고.”
목령은 솥뚜껑을 덮었다. 지붕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대야에 똑 하고 들어갔다.
*
은선문 고아원 부엌은 둑 바로 아래라서 밤이면 강물 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왔다. 원주가 큰솥 앞에서 국자를 들고 밥그릇을 세었다. 선반에 엎어 둔 그릇이 백 개였고, 원주는 날마다 끝까지 세었다. 아이가 하나라도 안 들어오면 끝수가 안 맞았다.
백리현은 부엌 문턱에 앉아 찬물 대야에 오른손을 담그고 있었다. 손목이 아직 떨렸다. 청송문 막내의 칼은 꾸밈이 없었다. 꾸밈이 없어서 오는 길이 다 보였고, 다 보이는데도 막을 자리가 없었다. 부채를 펴는 것이 반 박자만 늦었어도 부채는 대청 바닥을 굴렀을 터였다.
리현은 왼손으로 부채를 펴서 등잔에 비춰 보았다. 쇠살 사이에 머리카락보다 가는 명주실이 감겨 있었다. 손목을 틀면 실이 당겨지고, 실 끝에 묶인 소매 속 주머니가 열리며 꽃잎이 한 줄로 나갔다. 다섯 해 동안 이 실을 감고 풀었다. 꽃잎은 해마다 더 높이 날았고, 칼을 받아 내는 손목은 다섯 해 전 그대로였다.
“보름 뒤에 지면?” 원주가 국을 휘저으며 물었다. 돌아보지 않았다.
“시주 상인들이 다른 바구니로 갑니다.”
“그럼 쌀은?”
“안 집니다.” 리현이 대야에서 손을 뺐다. “지면 안 되니까요.”
원주가 국자를 솥 가장자리에 탁 쳤다. 큰솥의 국이 오늘따라 맑았다. 원주는 물을 한 바가지 더 붓고, 소금을 반 숟갈 넣고, 맛을 보았다. 맛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당에서 아이들이 부채춤을 연습하는 소리가 났다. 나무 부채 수십 개가 한꺼번에 펴지는 소리는 처마에 듣는 빗소리 같았다. 한 아이가 “꽃이 졌으니 그대들도 지시오!” 하고 외치자 다른 아이들이 따라 외쳤다. 오늘 객잔에서 들은 이야기가 벌써 마당까지 와 있었다. 리현은 웃다가 손목을 감쌌다.
*
이튿날 해 질 녘, 목령은 장작 한 짐을 지고 다시 장강제일객잔에 내려왔다. 장작을 팔아 쌀을 살 참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대청 문간의 손님들이 목령을 보고 국수 그릇을 내려놓았다. 누군가 왔다, 하고 속삭였고, 이 층 난간의 아가씨들이 먹 그림 부채를 탁 펴며 목령을 노려보았다. 지붕 위의 이야기꾼들이 일제히 붓을 들었다.
나무 방에는 먹이 덜 마른 새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백 위 청송문」은 없었다. 목령은 방을 위에서부터 다시 읽어 내려가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아흔 위 청송문 단목령」 하룻밤 새 열 계단이 올라 있었다.
방 기둥에 쪽지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오늘 아침 전서구가 일곱 고을에서 물어 온 소식이라고 점원이 말했다.
「청송문 막내, 은선공자에게 청혼 — 대청 한가운데서 소매를 걷고 ‘보름 뒤에 제대로 붙자’ 고백, 공자는 ‘한가위 달 아래서’ 답하겠다 함」
장작 짐이 목령의 등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쏟아졌다. 대청 문간에서 국수를 먹던 짐꾼이 또 사레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