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6,028자)
결승은 내일
선발전 라이벌과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 진해솔
3월 24일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세인은 알람이 울리기 십 분 전에 눈을 떴다. 이마 위로 천장이 40센티미터 떨어져 있었다. 세인은 일어나지 않고 손을 뻗어 천장을 짚었다. 야광 별 스티커 자국 다섯 개가 손바닥 밑에 있었다. 일주일 전 새벽에 다시 올라온 위 칸이었다.
엿새 전 밤의 다섯 점은 끝나지 않았다. 4대 4까지 갔다. 마지막 한 점을 앞두고 둘은 피스트 양쪽에서 오래 칼을 겨눴다. 세인도 기다렸고 다예도 기다렸다. 삼 분이 지났을 때 펜싱장 문이 열리고 손전등 불빛이 들어왔다. 박 반장이었다. 박 반장은 둘을 번갈아 비추더니 손전등을 내리고 말했다. “열 시 넘었어. 나머지는 내일 혀.” 둘은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마지막 점은 최종전에서.
그 뒤로 엿새 동안 세인은 위 칸에서 잤다. 다예는 아래 칸에서 잤다. 아침마다 같이 식당에 갔고, 저녁마다 같이 재활실 앞을 지나쳤다. 말은 했다. 반찬 이야기, 칼 이야기, 길창호가 의무위원회에 다녀와서 견책 한 번 받고 돌아온 이야기. 작년 이야기만 하지 않았다.
아래 칸에서 이불이 움직였다.
“깼어?” 다예가 물었다.
“응.”
“나도.” 다예가 잠긴 목소리로 웃었다. “두 시부터.”
*
일곱 시의 식당에서 염정자는 두 사람의 쟁반에 계란말이를 두 개씩 놓고, 집게를 내려놓은 채 팔짱을 꼈다.
“오늘은 거래 금지여.”
“이모, 저희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다예가 말했다.
“얼굴이 벌써 흥정하는 얼굴이여.” 염정자가 세인을 보았다. “문 선수는 두 개 다 먹어. 무릎에 단백질. 서 선수도 두 개 다 먹어. 발목에 단백질. 둘 다 오늘 이겨서 내일 또 와. 내일은 세 개 줄 테니께.”
식당 출입문 쪽에서 누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박 반장이었다. 손에 랩에 싼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염정자가 그쪽을 돌아보자 박 반장은 엄지를 내리고 재빨리 나갔다. 다예가 쟁반에 이마를 박을 듯이 고개를 숙였다. 세인은 미역국 그릇 뒤에서 소리 없이 웃었다. 일주일 만에 둘이 같이 웃었다.
*
최종전은 선수촌 펜싱장에서 이틀 동안 열렸다. 첫날 8강과 4강, 둘째 날 결승. 공정위원회 결정 뒤로 협회는 최종전 심판을 바깥에서 불렀다. 국제 심판 자격이 있는 일본인 심판 하나와 홍콩 심판 하나였다. 길창호는 견책을 받은 뒤로도 코칭박스에 못 들어갔다. 관중석 2층 기둥 뒤에 서서 코를 긁었다. 이번에는 한 번, 두 번 말고 신호가 하나 더 늘었다. 귀를 당기면 무릎 생각 말고 칼 생각해라. 어젯밤 412호 문 앞에서 새로 정한 신호였다. 세인은 8강 내내 길창호가 귀를 잡아당기는 걸 열한 번 보았다.
8강은 둘 다 쉽게 이겼다. 세인은 15대 8, 다예는 15대 10.
오후 한 시, 4강. 세인의 상대는 차도희였다.
피스트 가운데에서 악수할 때 차도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죄송하다는 말도, 버릇이라는 말도 없었다. 차도희의 남색 운동복 등에는 도운건설 글씨가 없었다. 협회 단복이었다.
홍콩 심판이 프랑스어로 준비와 시작 구령을 붙였다.
차도희는 처음부터 정면으로 왔다. 긴 팔이 먼저 왔고, 세인이 손목 밑으로 파고들 틈을 주지 않았다. 차도희의 칼끝이 세인의 어깨를 두 번 연달아 베었다. 0대 2. 세인은 마스크 안에서 숨을 골랐다. 차도희는 어깨가 아파도 손목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내릴 필요가 없게 싸우고 있었다.
세인은 무릎을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무릎이 먼저 생각났다. 크게 내디디면 2월 22일의 각도가 나왔다. 그래서 반 걸음씩 끊어서 들어갔다. 반 걸음으로는 차도희의 긴 팔에 닿지 않았다. 2대 5. 관중석에서 길창호가 귀를 세 번 당겼다.
8대 5에서 휴식이 왔다. 세인은 의자에 앉아 무릎 보호대 위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코칭박스는 비어 있었다. 대신 피스트 건너편 선수 대기석에서 다예가 세인을 보고 있었다. 다예는 다음 4강을 기다리며 왼 발목에 테이프를 감던 중이었다. 테이프를 감다 말고, 감던 손으로 자기 오른쪽 무릎을 두 번 두드렸다. 그리고 앞으로 한 발을 크게 내딛는 시늉을 했다.
세인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 재활실에서 125도까지 접은 무릎, 엿새 전 밤에 끝까지 내디뎌 본 무릎이었다. 버틴다. 끝까지 가라.
후반 첫 점에서 세인은 끝까지 내디뎠다. 뒤꿈치가 바닥을 찍었고 무릎이 몸 전체를 받아 냈다. 세인의 칼이 차도희의 긴 팔 안쪽으로 들어가 옆구리를 베었다. 6대 8. 세인은 다시 내디뎠다. 7대 8, 9대 9. 세인의 런지가 길어질 때마다 차도희의 팔이 닿기 전에 세인이 먼저 닿았다.
13대 13. 마지막 두 점은 서로 한 번씩 동시였다. 첫 번째 동시타에서 홍콩 심판은 세인 쪽으로 손을 들었다. 세인은 마스크 안에서 숨을 멈췄다. 세인 자신도 누가 먼저였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차도희가 영상 판독을 요청했다. 피스트 옆 모니터에 정면 화면과 옆 화면이 함께 떴다. 공정위원회가 열린 뒤 협회가 카메라를 하나 더 달았다. 세인의 팔이 차도희의 팔보다 한 뼘 먼저 펴져 있었다. 판정 유지. 14대 13.
차도희가 마스크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칼을 들었다.
마지막 점은 세인이 기다렸다. 이 초, 삼 초. 작년의 세인이었다면 참지 못했다. 차도희가 먼저 나왔다. 세인은 막았다. 막고 되받아 차도희의 마스크를 베었다. 불 하나. 15대 13.
악수할 때 차도희가 마스크를 벗고 처음으로 웃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붙어 있었다.
“이번엔 진짜였죠?”
“진짜였어요. 두 점 다.”
“그럼 됐어요.” 차도희가 세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2층 본부석 쪽을 올려다보지 않고 피스트를 내려갔다.
삼십 분 뒤 다른 4강에서 다예가 오세미를 15대 11로 이겼다. 세인은 그 경기를 관중석 맨 끝에서 휴대폰을 들고 보았다. 일 초에 240장. 찍을 일은 없었다. 심판은 공정했다. 세인은 그래도 끝까지 찍었다. 다예의 왼발이 14대 11에서 한 번 휘청거리는 장면이 화면에 남았다.
*
장혜련은 오후 네 시, 숙소동으로 이어지는 연결 복도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1월 4일 엘리베이터 앞에서처럼, 기다린 줄은 말을 걸고 나서야 알았다.
“축하해요. 둘 다.” 장혜련이 말했다. 회색 코트를 입고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결승은 내일 오전 열 시예요. 끝나고 오후 두 시에 의무위원회 메디컬 심사. 우승자만요.”
“알고 있어요.” 세인이 말했다.
“서다예 선수, 하나만요.” 장혜련이 세인을 보지 않고 다예를 보았다. “청주시청 예산 심의, 이번 주 금요일이죠. 내일 이기면 대표 선수가 생기는 거고요. 그런데 상대가 문세인 선수예요. 막 돌아온 무릎이죠. 서다예 선수는 그 무릎이 몇 도까지 접히는지 누구보다 잘 알 거고요. 재활실에서 직접 접어 줬으니까.”
복도 창으로 들어온 오후 햇빛이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세인은 그 빛 위에 서서 장혜련의 입을 보았다. 1월의 선발위원실과 똑같은 일이 방향만 바꿔서 일어나고 있었다.
“무릎 쪽으로 몰아요. 크게 내딛게. 그럼 이겨요.” 장혜련이 말했다. “이기면 시의회에 협회 이름으로 한마디 넣어 드릴게요. 그 정도는 해 드릴 수 있어요.”
“위원님.” 다예가 말했다. 목소리가 차분했다. “1월에 문세인 선수한테 제 발목 달라고 하셨죠?”
“그랬죠.”
“문세인 선수가 안 줬어요. 그래서 저도 안 받아요.” 다예가 웃었다. 놀릴 때의 웃음이었다. “그리고 메디컬 심사요. 제가 이기면 제 발목 보실 거고, 문세인 선수가 이기면 그 무릎 보실 거잖아요. 둘 다 떨어뜨리실 수 있고요. 그럼 결승은 왜 해요?”
장혜련이 처음으로 대답을 늦게 했다. 태블릿을 쥔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결승은 선수가 하는 거고요.” 장혜련이 말했다. “심사는 의사가 하는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해요. 늘 그랬듯이요.”
장혜련이 돌아서서 본관 쪽으로 걸어갔다. 구두 소리가 연결 복도의 유리창을 따라 멀어졌다. 세인은 그 뒷모습을 끝까지 보았다. 내일 결승이 끝나도 저 사람은 저 복도 끝에 있을 것이다. 4월 국제대회에도, 그다음 시즌에도.
“너 방금 멋있었다.” 세인이 말했다.
“알아.” 다예가 세인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귀가 빨갰다. “다리 떨려. 잡아 줘.”
세인은 다예의 팔꿈치를 잡았다. 진짜로 떨리고 있었다.
*
밤 열 시 반, 412호. 불을 끈 지 삼십 분이 지났다. 라디에이터는 3월 하순이라 밤에만 약하게 돌았고, 딱 소리가 1월보다 드물게 났다. 세인은 위 칸에서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내일 결승 첫 점을 몇 번째로 다시 그려 보는지 세지 않았다.
아래 칸에서 이불 걷는 소리가 났다. 맨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 그리고 사다리 첫 칸이 삐걱거리는 소리.
세인은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다예의 머리가 위 칸 난간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짧은 머리 한쪽이 베개에 눌려 뻗쳐 있었다.
“뭐 해?”
“올라가.” 다예가 둘째 칸, 셋째 칸을 밟았다. 왼발이 사다리를 디딜 때 조심스러웠다. “아래 칸 4대 4잖아. 아직 내 것도 네 것도 아니야. 그럼 위 칸도 반은 내 거지.”
“그런 계산이 어딨어?”
“지금 생겼어. 선수촌 국룰.”
다예가 위 칸으로 넘어왔다. 매트리스가 두 사람 무게에 깊이 내려앉았고, 침대 전체가 길게 삐걱거렸다. 세인은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위 칸은 둘이 눕기에 좁았다. 어깨와 어깨가 닿았다. 천장까지 40센티미터, 둘이 나란히 누우니 그 40센티미터가 더 낮게 느껴졌다.
“머리 조심해.” 세인이 말했다.
“알아. 1월부터 들었어.”
둘은 한동안 천장을 보았다. 다예의 숨이 세인의 목 근처에서 따뜻하게 오갔다. 다예의 머리카락에서 샴푸 냄새와 테이프 접착제 냄새가 났다. 세인은 그 냄새를 석 달 동안 아래 칸에서 올라오는 공기로만 맡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맡는 건 처음이었다.
“내일.” 다예가 말했다. “내 발목 노려.”
“싫어.”
“노려. 안 노리면 화낼 거야.”
“그 말 차도희가 한 말이야.”
“좋은 말은 빌려 써도 돼.” 다예가 세인 쪽으로 돌아누웠다. 얼굴이 손가락 하나 거리에 있었다. 어둠 속이라 눈만 보였다. “나도 네 무릎 노릴 거야. 크게 내딛게 몰 거야. 그 사람이 시켜서가 아니라, 그게 너 이기는 방법이니까. 너도 그렇게 해. 그래야 내일 그 1점이 진짜가 되잖아.”
세인은 대답 대신 손을 뻗었다. 이불 밑으로 다예의 왼다리를 따라 내려가 발목을 찾았다. 테이프를 뜯어낸 맨살의 발목이었다. 오른쪽보다 조금 부어 있었고, 조금 뜨거웠다. 세인은 손바닥으로 그 발목을 감쌌다. 다예의 숨이 한 번 멈췄다가 길게 나왔다.
“노릴게.” 세인이 말했다. “대신 오늘은 아니야.”
다예가 웃었다. 웃음소리가 세인의 입술 바로 앞에서 났다. 그리고 그 웃음이 멈춘 자리에 다예의 입술이 닿았다.
처음엔 짧았다. 칼끝이 마스크를 스치는 것만큼 짧았다. 다예가 물러나서 세인을 보았다. 묻는 눈이었다. 세인은 발목을 감쌌던 손을 올려 다예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두 번째는 길었다. 천장이 너무 낮아서 둘 다 고개를 들 수 없었고, 그래서 더 가까워졌다. 다예의 손이 세인의 오른 무릎 위에 얹혔다. 재활실에서 수없이 접고 편 그 무릎을, 이번에는 아무것도 재지 않고 손바닥으로 덮었다. 세인은 다예의 등 뒤로 이불을 끌어올렸다. 둘의 숨이 위 칸의 좁은 공기를 금방 데웠다. 라디에이터가 오랜만에 딱, 하고 울렸고 둘 다 그 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다가 서로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한참 뒤, 다예가 세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말했다.
“내일 지는 사람이 아래 칸.”
“이기는 사람은?”
“메디컬 심사.” 다예가 세인의 손가락을 하나씩 셌다. 세인이 하던 버릇이었다. “그리고 4월. 그 사람이 거기도 있겠지.”
“있겠지.”
“그럼 둘 다 가야겠네.” 다예가 말했다. “하나는 칼 들고, 하나는 관중석에서 휴대폰 들고.”
세인은 대답하지 않고 다예의 발목을 다시 감쌌다. 내일 아침이면 저 발목에는 여덟 바퀴의 테이프가 감기고, 자기 무릎에는 고등학생 글씨가 적힌 보호대가 감긴다. 그리고 둘은 그것을 서로 겨냥한다.
천장의 별 자국 다섯 개가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았다. 세인은 손을 뻗어 그중 하나를 짚었다. 다예가 따라서 손을 뻗었다. 두 손바닥이 차가운 천장에 나란히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