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62자) · 위단 · 섣달 초하루

백스물한 번째

배신자의 칼을 마을이 십 년 동안 지켰다 · 한도윤

마을에 여관은 없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으니 있을 까닭도 없다. 나는 대장간 뒤 헛간에서 잤다. 짚 위에 마른 가마니를 두 장 깔았는데도 등이 시려서 새벽에 두 번 깼고, 세 번째로 깬 것은 추워서가 아니었다.

숫돌 소리였다.

쇠가 돌에 닿는 소리는 두 가지다. 처음 각을 잡을 때는 거칠고 짧게 끊기고, 마무리로 넘어가면 길고 얇아진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얇았다. 세 번 길게 밀리고, 한 번 물을 찍는 소리가 나고, 다시 세 번이었다.

헛간 문을 밀고 나가니 대장간 안에 등잔이 하나 켜져 있었다. 유월이 화덕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무릎에 무명 천을 깔고 그 위에 칼을 뉘었고, 앞에 숫돌이 셋 놓여 있었다. 굵은 것, 중간 것, 고운 것 순이었다. 고운 것은 가운데가 배처럼 우묵하게 파여 있었는데, 그렇게 파이려면 한 사람 손으로 몇 해는 밀어야 한다. 화덕 위에 물 단지가 얹혀 김을 올리고 있었다. 숫돌 물은 이 추위에 그냥 두면 숨 몇 번 새에 언다.

칼은 내 것이었다.

“오늘이 초하루요?”

“네. 백스물한 번째예요.”

유월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문턱에 쪼그려 앉아 그 손을 봤다. 날을 눕히는 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열다섯쯤 눕히는 사람이 있고 스물 가까이 세우는 사람이 있다. 세우면 빨리 날카로워지고 빨리 무디어지며, 눕히면 오래 걸리고 오래 간다. 유월의 각은 열다섯이었다. 내가 쓰던 각이다.

“누구한테 배웠소?”

“아저씨요.”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떠나기 전 이틀, 나는 이 아이 손에 숫돌을 쥐여 주고 각을 잡아 줬다. 그러고 사흘째 새벽에 떠났다. 열두 살 손에 이틀 가르친 것이 열 해를 버텼다.

그 이틀이 어땠는지 나는 잘 기억한다. 아이 손은 숫돌 하나를 다 덮지 못했다. 칼을 밀면 손목이 아니라 팔 전체가 따라갔고, 어깨까지 들썩였다. 나는 뒤에 쪼그려 앉아 아이 손등 위에 내 손을 얹고 같이 밀었다. 세 번 밀고 한 번 물을 찍었다. 아이는 이틀 동안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왜 배워야 하는지도, 내가 왜 가르치는지도 묻지 않고 손목만 봤다. 둘째 날 저녁에 아이가 혼자 한 자루를 끝까지 밀었을 때, 나는 잘했다는 말 대신 물이 식었다는 말을 했다. 그게 그 아이한테 한 마지막 말이었다.

“이틀로는 안 됐어요. 나머지는 할아버지가 입으로 가르쳤어요. 손은 못 쓰시니까.”

유월이 물을 한 번 찍었다. 물방울이 숫돌 위에서 동그랗게 굴렀다.

“백스무 번 갈면서요. 한 번도 안 물어봤어요.”

“무엇을?”

“왜 두고 갔는지요.”

나는 대답을 골랐다. 열 해 동안 준비해 둔 대답이 몇 개 있었다. 급했다고, 뒤를 쫓는 자가 있었다고, 내가 있으면 철문이 한내로 올 거라고. 전부 반쯤은 사실이었다. 반쯤 사실인 말은 할수록 사람을 얇게 만든다.

“무서웠소.”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온 것이 나도 뜻밖이었다. 유월의 손이 처음으로 멈췄다.

“뭐가요?”

“그날 밤 마당에 우리 편은 둘이었소. 어르신하고 나. 어르신 손이 모루 위에서 그렇게 되는 걸 봤고, 나는 사람을 하나 죽였소. 거두는 칼을 벤 자는 철문이 벤다는 걸 알았소. 내가 여기 있으면 저들이 또 올 테고, 이번에는 넷이 아니라 열이 올 거라고 생각했소.”

“그건 무서운 게 아니라 셈이잖아요.”

“셈은 핑계였고, 무서웠소.”

유월이 칼을 숫돌에서 들어 올렸다. 날을 등잔 쪽으로 기울여 한참 보고는 도로 뉘었다.

“셋이었어요.”

“무엇이?”

“그날 밤 우리 편이요. 저도 있었어요. 문 뒤에서 물을 데우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여섯째를 밤새 가시는데 물이 자꾸 얼어서, 제가 부엌에서 단지째 데워서 문틈으로 밀어 넣었어요. 아저씨는 저를 못 보셨어요. 문 뒤에 있었으니까.”

나는 일어섰다. 너무 급하게 일어나서 무릎이 저렸다. 그날 밤 모루 옆에 늘 김이 나는 물 단지가 놓여 있었던 것을 이제야 기억했다. 누가 가져다 놓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열두 살이었소.”

“열두 살이면 물은 데워요.”

*

해가 고개 마루를 넘어올 즈음 문간에 발소리가 났다.

도치였다. 뒤에 강쇠가 붙어 있었다. 억보는 없었다. 도치는 인사도 없이 들어와 벽 앞으로 가더니 여섯째에 코를 댔다. 이번에는 오래 댔다.

“쓰군.”

그가 돌아서서 모루 위에 은자 하나를 올려놓았다. 은자가 쇠에 닿아 맑은 소리를 냈다.

“아가씨, 셈을 하나 합시다. 이번 달에 여섯째 하나만 건너뛰시오. 한 냥이오. 다음 달에 또 건너뛰면 두 냥. 아홉 자루를 혼자 가려면 나흘 반이 걸리는데, 여덟이면 나흘이오. 반나절 쉬고 한 냥이면 이 골짜기에서 제일 비싼 반나절이지.”

유월은 대답 대신 내 칼을 천에 싸서 옆으로 밀어 놓고, 벽에서 여섯째를 내려 굵은 숫돌 앞에 뉘었다. 도치가 웃었다.

“셈을 못 하는 아가씨군.”

그러고 발끝으로 물그릇을 찼다.

그릇이 엎어지면서 데운 물이 흙바닥에 쏟아졌다. 물은 김을 한 번 뿜고 나서 가장자리부터 하얗게 굳었다. 유월이 숫돌 위에 뉜 칼을 손으로 누른 채 가만히 있었다. 물이 없으면 거친 돌에 쇠가 긁힌다. 긁히면 날이 튄다.

나는 도치의 손목을 잡았다.

손등의 가로 흉이 내 엄지 밑에서 울퉁불퉁했다. 도치는 손목을 빼려 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보면서 천천히 웃었다.

“벽 앞에 선 사람은 벽이 안 지켜 주오. 알지요?”

“알지.”

“그럼 놓으시오. 당신이 먼저 칼을 뽑으면 나는 법도대로 받으면 되오. 당신 칼은 저 벽에 걸려 있고.”

내 칼은 유월 옆에 무명에 싸여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였다. 그리고 닿는 순간 벽에서 내려온 칼이 된다.

“모루 위에서는 싸우지 마시오.”

곤 노인이 헛간 쪽 문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이불을 어깨에 두른 채였다.

“모루가 놀라. 저놈이 놀라면 한 달은 쇠가 안 붙네.”

강쇠가 그 말을 곧이듣고 모루를 내려다봤다. 도치가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손목을 놓았다. 도치는 손목을 두어 번 돌리더니 은자를 모루 위에 그대로 둔 채 돌아섰다.

“놓고 가겠소. 생각이 바뀌면 쓰시오. 녹은 기다려 주지 않소.”

그가 문턱에서 한 번 더 돌아섰다.

“쓴 냄새가 나고 사흘이면 날에 붉은 점이 눈에 보이오. 그다음은 해 뜰 때 이 마을 사람 셋만 벽 앞에 세우면 되지. 존위 어른, 앞집 아주머니, 개울 건너 영감. 셋 다 눈이 좋더군. 셋이 봤다고 하면 나는 여섯째를 거두고, 칠성이라는 사내는 오늘부터 고개 넷 어디서든 무적이오. 법도대로.”

도치가 법도라고 말할 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법도를 제일 잘 아는 자가 법도를 제일 싫어한다.

강쇠는 따라 나가지 않고 문간에서 머뭇거렸다. 볼이 트다 못해 갈라져 있었다.

“누님, 혹시 떡 남은 거 있소? 할매 집에 쌀이 없어서.”

유월이 쳐다보지도 않고 선반을 가리켰다. 강쇠는 식은 떡 두 쪽을 품에 넣고 꾸벅 절을 하고 뛰어나갔다. 곤 노인이 혀를 찼다.

“저놈은 삯을 떡으로 받는군.”

*

유월이 새로 물을 데우는 동안 삼출이 왔다.

한내 존위다. 예순이 됐을 텐데 십 년 전보다 눈이 더 밝아 보였다. 들어오자마자 모루 위의 은자부터 봤다.

“그거 한 냥이오?”

“도치가 놓고 갔소.”

삼출은 은자를 집으려다 손을 멈추고 벽의 여섯째를 봤다. 제 맏아들 칠성의 칼이다. 칠성은 열네 해 전에 고개를 넘었다.

“여섯째 건너뛰라고 했소?”

“그렇소.”

삼출이 은자와 칼을 번갈아 보았다. 셈이 머릿속에서 오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우리 칠성이 것은 가시게. 은자는 내가 맡아 두지. 남의 돈이 대장간에 굴러다니면 부정 타오.”

곤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맡으면 그게 자네 돈이지.”

“맡는다는 게 원래 그런 뜻이오.”

유월이 은자를 집어 삼출에게 내밀었다. 삼출이 받아 들고 입이 벌어졌다가, 유월의 말에 도로 다물었다.

“도치 아저씨 밥값에 보태세요. 그 집 쌀, 어른이 대시잖아요.”

삼출은 은자를 쥔 손을 어정쩡하게 들고 서 있다가 헛기침을 하고 나갔다. 나가면서 문간에서 한 번 돌아봤다.

“여섯째는 꼭 가시게. 두 번 가도 되네.”

나는 물 단지를 들고 우물로 갔다. 칼은 못 갈아도 물은 길 수 있다.

우물로 가는 길에 노파 집 울타리를 지났다. 마당에서 빈 소매 사내가 장작을 패고 있었다. 억보다. 왼손 하나로 도끼를 들어 올렸다가 제 무게로 떨어뜨리는데, 도끼날이 나무 한가운데를 번번이 비껴 모서리를 쳤다. 모서리가 튀어 눈 위에 흩어졌고, 억보는 그것을 주워 모아 다시 세웠다. 오른쪽 어깨가 도끼를 따라 들썩였다. 없는 팔이 아직 도끼를 잡으려는 모양이었다.

억보가 도끼를 멈추고 울타리 너머 나를 봤다. 나도 걸음을 멈췄다. 우리 사이에 눈 덮인 마당이 열 걸음쯤 있었다.

“물 긷소?”

“그렇소.”

“열 해 만에 와서 물을 긷는군.”

억보는 그 말만 하고 도끼를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나무가 반으로 갈라졌다. 억보가 갈라진 나무를 내려다보다가 제 발밑에 침을 뱉었다. 나는 물 단지를 고쳐 들고 지나갔다. 등 뒤에서 도끼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우물 돌에 얼음이 두껍게 앉아 있어서, 두레박을 내리기 전에 돌로 얼음을 깨야 했다. 깨진 얼음 밑에서 검은 물이 올라와 김을 냈다. 물이 땅보다 따뜻한 계절이다.

해가 한 뼘 올라왔을 때 유월이 내 칼을 마저 갈고 물에 헹궈 코에 댔다. 물비린내가 난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고 칼끝으로 기둥에 새 금을 하나 그었다. 나무 가루가 떨어져 바닥의 언 물 위에 얹혔다.

유월이 칼을 칼집에 넣어 두 손으로 내밀었다. 손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다음 초하루까지 여기 계세요.”

“무슨 뜻이오?”

“고개는 두 달 닫혀요. 다음 초하루는 서른 날 뒤예요. 그때까지는 아저씨 칼 제가 갈 테니, 아저씨는 여기 계시라고요. 가져가서 도치 아저씨한테 무적이 되지 마시고요.”

나는 칼을 받아서 셋째 못에 도로 걸었다. 받는 동안 알았다. 십 년 동안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붙잡히는 일이 이렇게 무거운지 몰랐다.

나는 헛간으로 돌아가지 않고 문턱에 앉아 유월이 여섯째를 가는 것을 봤다. 굵은 숫돌에서 나는 소리는 거칠고 짧았다. 유월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가 찬 바람에 금방 식었다. 세 번 밀고 한 번 물을 찍는 박자는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열 해 동안 몸에 밴 박자라는 걸 나는 세 번쯤 듣고 알았다. 내가 가르친 박자가 아니었다. 내가 가르친 것보다 느리고 무거웠다.

벽의 여섯째에서는 아직 쓴 냄새가 났다. 유월이 그 칼을 굵은 숫돌 앞에 다시 뉘었다. 나흘 반짜리 초하루가 이제 막 시작이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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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차2026.06.05· 2화

    대사 하나하나가 인물을 만들어 주네요.

    • 한도윤작가2026.06.06

      인물마다 말버릇을 먼저 정해 두고 썼어요. 알아봐 주셔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