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벽에 걸린 칼
십 년 만에 칼을 찾으러 · 한도윤
고개를 넘는 데 이틀이 걸렸다.
십 년 전에는 하루였다. 그때는 스물여덟이었고 지금은 서른여덟이다. 열 해에 하루씩 늘어난 셈이라고 생각하니 셈이 맞지 않았지만, 몸은 셈보다 정직했다. 무릎이 먼저 알고, 그다음에 허리가 알고, 마지막으로 머리가 인정한다.
눈은 무릎까지 왔다. 발을 뽑을 때마다 마른 눈이 부스러지면서 정강이를 긁었다. 나는 그 소리를 이틀 동안 들었다. 사람이 혼자 걸으면 자기 발소리가 남의 발소리처럼 들린다. 뒤를 두 번 돌아봤고 두 번 다 아무도 없었다.
고개 마루에서 마을이 보였다.
지붕이 스물세 채. 십 년 전에도 스물세 채였다. 한내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 마을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큼 태어나고, 나가면 그만큼 돌아오지 않는다.
굴뚝 연기가 셋 올라오고 있었다. 스물세 채 중에 셋. 나는 그 숫자를 세면서 내려갔다.
***
대장간은 마을 어귀에 있다.
문은 열려 있었다. 겨울에 대장간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불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안에서 마른 열기가 나왔다. 눈 속을 이틀 걸은 얼굴에 그 열기가 닿자, 뺨이 아니라 눈두덩이 먼저 아팠다.
노인이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어르신.”
노인은 돌아보지 않았다. 풀무를 밟는 발이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한 번의 멈춤이 전부였다.
“왔는가?”
***
나는 문턱에 섰다.
십 년 만에 처음 들은 말이 그거였다. 놀라지도, 반기지도, 나무라지도 않는 말. 그 말이 오히려 명치에 걸렸다. 욕이라면 견뎠을 것이다. 욕은 상대가 나를 아직 사람으로 세고 있다는 뜻이니까.
“기다리셨소?”
“기다린 건 아니고.”
노인이 풀무에서 발을 뗐다. 불이 사그라들면서 대장간 안이 한 뼘쯤 어두워졌다.
“걸어 뒀지.”
***
그가 턱으로 벽을 가리켰다.
거기 칼이 하나 걸려 있었다.
***
내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세 걸음 만에 알아봤다. 십 년 동안 수십 자루의 칼을 봤고, 그중에 손이 저절로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루에 감은 실이 낡아 색이 바랬는데, 매듭이 내 매듭이었다. 나는 매듭을 왼쪽으로 두 번 감고 오른쪽으로 한 번 꺾는다. 남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른손잡이가 그렇게 감으면 뽑을 때 반 뼘이 늦다. 스승은 그것을 고치라고 했고 나는 고치지 않았다.
손을 뻗었다. 뻗는 동안 손끝이 떨렸다. 이틀 눈을 걸어서가 아니었다.
내렸다.
***
가벼웠다.
***
칼집에서 뽑았다.
쇳소리가 짧게 났다. 잘 마른 칼에서 나는 소리다. 습기 먹은 칼은 소리가 눅눅하게 끌린다.
날이 얇았다.
***
무거워야 했다.
십 년 동안 벽에 걸린 칼은 녹이 슬어 두꺼워진다. 녹은 무게가 있다. 나는 그것을 안다. 열아홉에 스승의 창고에서 삼십 년 묵은 칼을 들어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칼이 아니라 벽돌이었다.
이 칼은 녹이 없었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갈려 있었다.
날 끝에서 손잡이 쪽으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각이 살아 있었다. 그것도 한 번 세운 각이 아니라, 여러 번 세우고 여러 번 무디어진 각이었다. 갈고 쓰고 갈고 쓴 칼과, 갈기만 한 칼은 결이 다르다.
이건 갈기만 한 칼이었다.
수십 번, 어쩌면 백 번.
***
“누가 갈았소?”
노인은 화덕을 봤다.
“마을이 갈았지.”
“마을이 손이 있소?”
“없지.”
“그럼 누가?”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덕에 숯을 두 덩이 더 넣었다. 집게가 숯에 닿는 소리가 났고, 불이 다시 커졌다.
***
나는 칼을 벽에 도로 걸었다.
걸면서 손이 한 번 더 떨렸다. 이번에는 왜 떨리는지 알았다.
“가져가지 않으려나?”
“내 것이오.”
“그렇지.”
“그런데 왜 걸어 두라 하시오?”
“내가 언제 그랬나?”
***
노인이 그제야 돌아앉았다.
일흔이 넘었다. 십 년 전에도 늙어 보였는데, 지금 보니 그때는 젊었다. 눈꺼풀이 내려앉아 눈이 반쯤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반쯤이 나를 아주 오래 봤다.
“가져가려면 가져가게. 다만.”
노인이 손을 폈다.
왼손 손가락이 굽어 있었다. 셋째와 넷째가 손바닥 쪽으로 말려 펴지지 않았다. 십 년 전에는 굽지 않았었다.
“한 가지는 알고 가게.”
“말씀하시오.”
“이 마을에서는 주인 없는 칼을 녹슬게 두지 않네.”
“어찌하여?”
“녹슬면 주인이 죽었다는 뜻이니까.”
***
나는 그 말을 오래 들고 있었다.
십 년 동안 이 마을은 내가 살아 있다고 믿기로 한 것이다. 매달 한 번씩, 손에 물을 묻히고 숫돌을 앞에 놓고, 죽지 않았다고 우기는 방식으로.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나는 그것을 삼켰다. 삼키는 데 두 번 걸렸다.
“몇 번이나 갈았소?”
“백스무 번.”
“매달이오?”
“매달.”
“어르신이 하셨소?”
“아니.”
“그럼.”
노인은 다시 화덕을 봤다. 굽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나는 손이 이래서 못 하네.”
***
우물가에 여자가 하나 있었다.
스물 몇쯤. 두레박을 올리다가 나를 봤다. 두레박이 반쯤 올라온 채로 멈췄고, 밧줄이 손안에서 조금 미끄러져 도로 내려갔다. 물에 닿는 소리가 났다.
“어디서 오셨어요?”
“고개 너머에서.”
“고개는 어제 닫혔는데요.”
***
나는 걸음을 멈췄다.
“닫혔소?”
“어제 눈이 왔어요.”
여자가 고개 쪽을 봤다. 마루가 하얬다.
“두 달은 못 넘어가요?”
***
이틀이 걸린 이유가 그거였다. 나는 눈을 뚫고 온 것이다.
들어올 때는 뚫을 수 있고 나갈 때는 못 뚫는 것이 이 고개다. 눈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사람을 죽인다.
즉 나는 두 달 동안 여기 있어야 한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무겁지 않았다. 십 년 동안 어디서든 사흘 이상 머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두 달은 형벌이 아니라 허가처럼 들렸다.
***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여자가 두레박을 놓았다. 밧줄이 도르래에서 풀리면서 두레박이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첨벙, 하는 소리가 우물 안에서 두 번 울렸다.
여자는 그것을 주우려 하지 않았다.
“유월이요.”
***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십 년 전에 열두 살이던 아이의 이름이었다. 마당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 울지 않고 자기 무릎을 노려보던 아이.
“나를 아시오?”
유월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옷에 닦았다. 닦는 동작이 빨랐다. 물이 묻어서 닦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감추려고 닦는 사람의 속도였다.
***
나는 그 손을 봤다.
손바닥 안쪽, 엄지 아래가 굳어 있었다. 하얗게 두꺼워진 자리.
숫돌을 오래 잡은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