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94자) · 위단 · 동짓달 그믐
벽에 걸린 칼
배신자의 칼을 마을이 십 년 동안 지켰다 · 한도윤
고개를 넘는 데 이틀이 걸렸다.
십 년 전에는 하루였다. 그때는 스물여덟이었고 지금은 서른여덟이니 열 해에 하루가 는 셈인데, 셈은 그렇게 맞지 않아도 몸은 셈보다 정직해서 무릎이 먼저 알고 허리가 그다음에 알았다. 머리는 맨 나중에 인정했다.
눈은 무릎까지 왔다. 발을 뽑을 때마다 마른 눈이 부스러지면서 정강이를 긁었고, 그 사각거리는 소리를 이틀 내내 들었다. 사람이 혼자 오래 걸으면 제 발소리가 남의 발소리처럼 들린다. 뒤를 두 번 돌아봤는데 두 번 다 아무도 없었다.
고개 마루에서 한내가 보였다.
골짜기 바닥에 지붕이 스물세 채 엎드려 있었다. 십 년 전에도 스물세 채였다. 널지붕마다 눈이 한 자씩 얹혀 있었고, 나무 울타리는 눈에 반쯤 묻혀 말뚝 끝만 줄지어 나와 있었다. 굴뚝 연기는 셋이었다. 스물세 채에 연기 셋이면 나머지 스무 집은 숯을 아끼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그 셋을 세면서 내려갔다. 셀 것이 있으면 손이 덜 떨린다.
대장간은 마을 어귀에 있다.
흙벽은 그대로였고 이엉 처마 끝에 팔뚝만 한 고드름이 달려 있었다. 문이 열려 있어서 안에서 마른 열기가 흘러나왔는데, 눈 속을 이틀 걸은 얼굴에 그 열기가 닿자 뺨보다 눈두덩이 먼저 아팠다.
노인이 등을 보이고 풀무 앞에 앉아 있었다.
“어르신.”
풀무를 밟던 발이 한 번 멈췄다가 다시 내려갔다. 불이 확 살아나면서 붉은빛이 흙바닥으로 번졌다.
“왔는가?”
십 년 만에 처음 들은 말이 그거였다. 놀라지도 반기지도 나무라지도 않는 말이라서 오히려 명치에 걸렸다. 욕이라면 견뎠을 것이다.
“기다리셨소?”
“기다린 건 아니고.”
곤 노인이 풀무에서 발을 뗐다. 불이 주저앉으면서 대장간 안이 한 뼘쯤 어두워졌다.
“걸어 뒀지.”
그가 턱으로 동쪽 벽을 가리켰다.
벽에 못이 열둘 박혀 있었고, 칼이 아홉 자루 걸려 있었다. 셋째 못에 걸린 칼이 내 칼이었다. 세 걸음 떨어진 데서 알아봤다. 자루에 감은 실은 색이 바랬어도 매듭이 내 매듭이었다. 나는 매듭을 왼쪽으로 두 번 감고 오른쪽으로 한 번 꺾는다. 그렇게 감으면 뽑을 때 반 뼘이 늦다. 스승이 고치라고 했고 나는 고치지 않았다. 매듭 끝에 붉은 술이 한 줌 늘어져 있었다. 떠나던 날 내가 감은 것이다.
손을 뻗었는데 손끝이 떨렸다. 눈길을 이틀 걸어서가 아니었다.
못에서 칼을 내려 칼집에서 뽑았다. 쇳소리가 짧게 났다. 잘 마른 칼에서 나는 소리다. 습기 먹은 칼은 소리가 눅눅하게 끌린다. 그리고 칼이 가벼웠다.
무거워야 했다. 십 년 동안 벽에 걸린 칼은 녹이 슬어 두꺼워지고, 녹에는 무게가 있다. 열아홉에 스승의 창고에서 삼십 년 묵은 칼을 들어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칼이 아니라 벽돌이었다. 이 칼은 녹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얇았다. 날 끝에서 자루 쪽으로 엄지를 미끄러뜨려 보니 각이 살아 있었고, 한 번 세운 각이 아니라 여러 번 세우고 여러 번 무디어진 각이었다. 쓰지 않고 갈기만 한 칼은 결이 다르다. 날 가운데가 처음보다 보릿짚 두께만큼 줄어 있었다.
코에 대 보니 물비린내가 났다. 갓 간 쇠에서 나는 냄새다.
“누가 갈았소?”
“마을이 갈았지.”
“마을이 손이 있소?”
“없지.”
“그럼 누가?”
노인은 대답 대신 화덕에 숯을 두 덩이 넣었다. 집게가 숯에 닿는 소리가 났다.
“몇 번이나 갈았소?”
“백스무 번.”
나는 칼을 든 채로 서 있었다. 열 해에 열두 달이면 백스물이다.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노인이 턱으로 화덕 옆 기둥을 가리켰다. 손때가 새까맣게 앉은 참나무 기둥에 칼끝으로 그은 금이 사람 허리 높이부터 발목까지 촘촘히 내려가 있었다. 위쪽 금은 서툴러서 삐뚤고 깊었다. 아래로 갈수록 곧고 얕아졌다. 힘을 빼는 법을 금 긋는 손이 먼저 배운 것이다. 맨 아래 금은 아직 나무 가루가 하얗게 붙어 있었다. 지난달 것이다.
“세어 보겠나?”
“안 세도 알겠소.”
“그럼 됐네. 나도 안 세네. 세는 건 그 아이가 하지.”
“그 칼 말이오.”
문간에서 낯선 목소리가 났다.
사내 셋이 눈을 털며 들어오고 있었다. 앞에 선 자는 마흔 줄이었고 얼굴이 웃고 있었다. 오른 손등에 가로로 긴 흉이 있었다. 그 뒤로 오른쪽 소매가 빈 사내가 하나, 그리고 볼이 튼 열아홉쯤 된 아이가 하나 섰다. 아이는 대장간 안의 열기에 녹는 사람처럼 화덕 쪽으로 붙었다.
“아재, 여기는 따습네요. 그 할매 집은 이불이 얼었는데.”
아이가 언 손을 화덕에 내밀었다가 도치가 한 번 돌아보자 도로 거뒀다. 손은 거뒀는데 몸은 반쯤 불 쪽에 남겨 두었다. 도치가 아이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강쇠야, 남의 집 불은 쬐는 게 아니다. 값을 물리거든.”
손등에 흉이 있는 자를 나는 알았다. 열 해 전 그날 밤 이 마당에서 봤고, 그 뒤로 두 번, 북쪽 장터 뒷방에서 봤다.
“도치.”
“기억해 주니 고맙소.”
도치가 벽 앞으로 걸어왔다. 걸으면서 칼 하나하나에 코를 대듯 고개를 숙였다. 개가 울타리를 따라 냄새를 맡는 모양이었다. 여섯째 앞에서 조금 오래 멈췄다가 내 앞에 섰다.
“가져가시오. 당신 칼이잖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대장간 안에서 모르는 사람은 볼이 튼 아이 하나뿐이었다. 벽의 칼이 성한 동안 나는 벽 있는 자다. 철문은 벽 있는 자를 베지 않는다. 벽에서 칼을 내려 제 허리에 차는 순간 나는 걸 데 없는 칼, 무적이 된다.
나는 그러려고 왔다. 제 칼을 제 손으로 내리고, 열 해 묵은 제 값을 제가 치르려고. 한내가 나 때문에 철문의 표적이 되는 일을 끝내려고.
“고개가 어제 막혔다더군. 우리는 사흘 전에 넘었소.” 도치가 웃었다. “겨울 내내 같이 갇혔으니 서두를 것 없소. 차시오. 기다리리다.”
빈 소매 사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매가 낯익었다. 나는 그 얼굴에서 열여섯 살 소년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그 팔을 가져간 것이 나였다.
곤 노인이 그제야 돌아앉았다.
“가져가려면 가져가게. 다만 한 가지는 알고 가게.”
노인이 왼손을 폈다. 셋째와 넷째 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말려 펴지지 않았다. 십 년 전 그날 밤 모루 위에서 굳은 손이다. 도치가 그 손을 보고 웃음을 조금 줄였다.
“이 마을에서는 주인 없는 칼을 녹슬게 두지 않네.”
“어찌하여?”
“녹슬면 주인이 죽었다는 뜻이니까.”
노인은 도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칼집에 칼을 도로 넣었다. 넣는 데 두 번 걸렸다. 한 번은 손이 칼집 입을 못 찾았다.
칼을 셋째 못에 다시 걸었다. 도치가 어깨를 으쓱했다.
“초하루가 내일이오. 이 벽은 누가 갈지 궁금하군.” 그가 여섯째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건 벌써 쓴 냄새가 나던데.”
셋이 나가자 볼이 튼 아이가 마지막으로 화덕을 아쉽게 돌아보았다. 노인이 그 등에 대고 말했다.
“불 쬐러는 와도 되네. 숯값은 받고.”
아이가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꾸벅하고 나갔다.
셋이 사라진 뒤에도 노인은 한참 문간을 봤다.
“노파 집에 묵네. 억보 어미 말일세. 제 아들이 데려온 손님이라 못 내쫓았지.” 노인이 집게로 숯을 뒤집었다. “삼출이는 벌써 두 번 다녀갔네. 저 사람들 밥을 누가 대느냐고.”
“누가 댑니까?”
“삼출이가 대지. 쌀을 꿔 주고 이자를 받는다더군.”
노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조금 섞였다. 삼출은 십 년 전에도 그랬다. 불난 집에 물을 퍼 주고 물동이 값을 받을 사람이다.
*
대장간을 나와 마을로 들어갔다.
길은 누가 쓸어 놓아서 무릎 아래로 눈이 낮았다. 첫 집 울타리 너머에서 여자 하나가 장독 뚜껑의 눈을 털다가 나를 봤다. 얼굴은 알았다. 앞집 돌금댁이다. 십 년 전에 내 옷을 두 번 기워 준 사람이다. 돌금댁은 뚜껑을 손에 든 채로 나를 오래 보다가, 뚜껑을 도로 덮고 부엌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문틈이 손가락 두 개 너비로 좁아지다가 닫혔다.
개울 쪽에서 오던 늙은이 하나와는 좁은 길에서 마주쳤다. 말복 영감이다. 영감은 눈을 내리깐 채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지나가서 세 걸음쯤 가더니 제 발밑에 대고 같은 말을 두 번 했다.
“살았구먼. 살았어.”
나한테 한 말인지 눈한테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는 떠난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떠난 사람이 돌아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누가 먼저 입을 열면 그 입이 남은 사람들 몫까지 물어야 하니까.
마을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추고 지붕들을 둘러봤다. 스물세 채에 사람 사는 집이 열아홉쯤이고, 그중 셋에서만 연기가 오른다. 대장간, 노파 집, 그리고 삼출의 집이다. 손님을 들인 집과 손님에게 쌀을 꿔 준 집과 칼을 가는 집. 그 셋만 불을 때고 있었다.
*
우물가에 여자가 하나 있었다.
두레박 줄을 당기다가 나를 봤다. 줄이 손안에서 미끄러지면서 두레박이 반쯤 올라온 채로 멈췄고, 줄을 타고 물방울이 떨어져 우물 돌에 얼었다. 얼굴은 스물 몇쯤인데 턱을 드는 모양이 낯익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고개 너머에서.”
“고개는 어제 닫혔는데요.”
“뚫고 왔소.”
“그럼 두 달은 못 넘어가요. 들어올 때는 뚫려도 나갈 때는 안 뚫려요. 눈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사람을 죽이거든요.”
두 달이다. 십 년 동안 어디서도 사흘 넘게 머문 적 없는 사람한테 두 달은 형벌로 들려야 맞는데, 이상하게 허가처럼 들렸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여자가 줄을 놓았다. 두레박이 우물 속으로 떨어져 첨벙 하는 소리가 돌벽을 두 번 울렸다. 여자는 그것을 건지려 하지 않았다.
“유월이요.”
나는 그 이름을 알았다. 십 년 전에 열두 살이던 아이다. 마당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 울지 않고 제 무릎을 노려보던 아이였고, 그날 밤 대장간 문 뒤에 있던 아이였다.
“나를 아시오?”
유월은 대답하지 않고 손을 치마에 닦았다. 물이 묻어서 닦는 속도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감추려는 사람의 속도였다. 나는 그 손을 봤다. 오른손 엄지 아래가 하얗게 굳어 있었다. 숫돌을 오래 잡은 손이었다.
“내일이 초하루예요.”
유월이 빈 물동이를 들고 돌아서다가 한 번 멈췄다.
“아저씨 칼, 가져가실 거면 오늘 밤에 가져가세요. 내일 새벽에 또 갈기 전에요.”
“어째서?”
“한 번 갈 때마다 얇아지니까요.”
그 말이 무슨 셈인지 한참 서 있고 나서야 알았다. 두고 가면 내일 새벽에 또 얇아지고, 가져가면 오늘 밤부터 나는 걸 데 없는 칼이다. 유월은 어느 쪽을 고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유월이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대장간 쪽으로 걸어갔다. 대장간 굴뚝 연기가 조금 굵어졌다. 누가 숯을 더 넣은 모양이었다. 나는 우물가에 서서 그대로 셋인 연기를 한 번 더 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