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05자)

기다려

요양원 치료견이 된 퇴역 군견 · 길담이

차에서 내리기 전에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창틈으로 벚꽃이 밀려 들어왔고⁠, 벚꽃 밑에 소독약이 깔려 있었고⁠, 소독약 밑에는 아침부터 끓인 된장국이 있었다⁠. 맨 아래에는 사람 마흔 명이 한 건물에서 자고 일어나는 냄새가 있었다⁠. 기저귀와 파스⁠, 틀니 세정제와 오래 빨아 입은 면 내복⁠. 나는 코를 창틈에 대고 숨을 짧게 여러 번 끊어 들이마셨다⁠. 부대에서 배운 대로였다⁠. 길게 한 번 맡으면 냄새가 섞이고⁠, 짧게 끊어 맡아야 층이 갈린다⁠.

“⁠군번⁠, 다 왔어⁠. 오늘부터 여기가 우리 일터야⁠.⁠”

담당자가 내 조끼 끈을 한 번 더 조였다⁠. 사람들은 형광 노란 조끼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흐린 겨자 빛으로 보인다⁠. 등에 글자가 있다고 했다⁠. 처음 입혀 주던 날 담당자가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치료견 — 만지기 전에 물어봐 주세요⁠.⁠」 나는 글자를 읽지 못한다⁠. 조끼를 입으면 일하는 시간이라는 것만 안다⁠. 아홉 해 동안 나는 다른 조끼를 입고 일했다⁠.

사람 말 가운데 내가 뜻으로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앉아⁠, 엎드려⁠, 기다려⁠, 찾아⁠, 이리 와⁠, 가자⁠, 좋아⁠. 밥과 간식과 산책⁠. 그리고 내 이름⁠. 나머지는 소리째로 귀에 담아 두었다가⁠, 같은 소리가 같은 냄새와 함께 여러 번 오면 비로소 뜻을 맞춘다⁠. 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사람도 개도 내 속말을 듣지 못한다⁠. 귀와 꼬리와 코와 혀로 말할 뿐이다⁠.

*

현관 앞에 원장이 서 있었다⁠. 원장이라는 소리를 담당자는 차 안에서 세 번 했다⁠. 원장님 앞에서는 얌전히⁠, 원장님은 숫자를 좋아하셔⁠, 원장님이 오늘 우리를 볼 거야⁠. 세 번 다 담당자의 손바닥에 땀이 뱄다⁠.

원장에게서는 핸드크림과 볼펜 잉크와 식은 커피 냄새가 났다⁠. 겉옷 오른쪽 주머니에서는 말린 소고기 냄새가 났다⁠. 코가 먼저 내 엉덩이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담당자가 줄을 짧게 잡아서 나는 앉지 못했다⁠.

“⁠이 친구가 군번이에요⁠?⁠”

“⁠네⁠, 원장님⁠. 폭발물 탐지견으로 아홉 해 일하고 작년 가을에 퇴역했어요⁠. 입양 공고에 석 달 올라가 있었는데 아무도 안 데려가서 보호소에서 겨울 났고요⁠. 치료견 평가는 한 번에 통과했어요⁠.⁠”

“⁠열 살이라고 했죠⁠.⁠”

“⁠셰퍼드 열 살이면 아직 쌩쌩해요⁠.⁠”

“⁠쌩쌩한지는 석 달 보면 알겠죠⁠.⁠”

원장이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운영위원회가 7월 첫 금요일이에요⁠. 예산안에 프로그램 폐지가 들어가 있어요⁠. 지난겨울에 늙은 리트리버 보내고 정리하려던 걸⁠, 선생님이 벌써 데려오셨으니까 석 달은 드리는 거예요⁠.⁠”

“⁠결과 보여 드릴게요⁠.⁠”

“⁠결과가 없으면요⁠?⁠”

담당자가 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목줄이 내 목덜미를 조금 당겼다⁠.

“⁠보호소로 돌려보내야죠⁠. 제 원룸엔 못 데려가요⁠.⁠”

보호소라는 소리를 나는 안다⁠. 뜻이 아니라 냄새로 안다⁠. 겨울 내내 맡던 냄새다⁠. 젖은 콘크리트와 락스⁠, 밤마다 다른 개가 우는 소리에 섞여 오는 오줌⁠, 늙은 개들의 잇몸⁠. 보호소라는 소리가 날 때마다 담당자의 목덜미에서도 원장의 목덜미에서도 같은 냄새가 조금씩 났다⁠. 사람이 미안할 때 나는 냄새다⁠.

원장은 유리문 안 게시판으로 걸어가 종이 한 장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이번 주 식단표예요⁠. 반찬 세 가지⁠. 작년 이맘때는 네 가지였어요⁠. 정원 마흔에 지금 마흔 명 꽉 차 계신데도 적자예요⁠. 이 친구 사료비⁠, 진료비⁠, 배상 보험료 빼면 반찬 한 가지가 돌아와요⁠. 마흔 명 상에요⁠.⁠”

나는 반찬이 무엇인지 몰랐다⁠. 원장이 손가락을 접을 때마다 손톱 밑에서 잉크 냄새가 올라왔다는 것만 기억한다⁠. 원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하는 사람의 겨드랑이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먼저 온다⁠. 원장의 겨드랑이는 조용했다⁠.

“⁠첫 분은 207호로 하세요⁠. 표성만 어르신⁠. 들어오신 지 두 달인데 밥을 반도 안 드시고⁠, 손을 안 펴세요⁠. 우리 선생님들이 뺨을 몇 대 맞았는지 몰라요⁠.⁠”

“⁠첫날부터 제일 어려운 분이요⁠?⁠”

“⁠제일 어려운 분한테 결과가 나야 결과죠⁠. 석 달밖에 없잖아요⁠.⁠”

*

2층 복도 입구에서 요양보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키가 작고 목소리가 컸고⁠, 앞치마 주머니에서 소시지 냄새가 났다⁠. 이번에는 담당자의 손이 늦었다⁠. 내 엉덩이가 복도 바닥에 철썩 닿았다⁠. 가슴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앞치마 주머니에 정확히 겨눈 채로⁠.

“⁠아이고⁠, 얘가 왜 나한티 앉는댜⁠? 나 폭탄이여⁠?⁠”

“⁠아⁠, 죄송해요⁠. 부대에서 화약 냄새 앞에 앉도록 배운 애라서요⁠. 여기는 화약이 없으니까 코가 다른 데서 앉아요⁠.⁠”

“⁠그럼 내 소시지가 화약이여⁠?⁠”

요양보호사가 주머니에서 비닐에 싼 소시지를 꺼냈다⁠. 휴게실 소파에서 노인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휠체어에 해병대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손뼉을 쳤다⁠.

“⁠잡혔다⁠, 잡혔어⁠! 이 집 첩자가 소시지를 품고 다녔구먼⁠!⁠”

“⁠이름이 뭐여⁠, 이 개⁠?⁠”

“⁠군번이요⁠.⁠”

“⁠군번이 이름이면 너는 평생 점호받겄다⁠.⁠”

휴게실이 한 번에 터졌다⁠. 웃음소리에는 냄새가 있다⁠. 숨이 한꺼번에 밀려 나오면서 사람 입안의 냄새가 공기 중으로 쏟아진다⁠. 틀니 세정제와 보리차와 오래 못 웃은 입의 마른 냄새였다⁠. 요양보호사가 재채기를 연달아 세 번 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개털 타는디⁠, 이 냥반 이쁘네⁠. 에취⁠.⁠”

205호 문이 반쯤 열리고 할머니 하나가 화투패를 쥔 채 소리쳤다⁠.

“⁠개 들어오믄 나 나간다⁠! 나 어릴 적에 개한티 물렸어⁠!⁠”

문이 쾅 닫혔다⁠. 문틈으로 기름에 지진 밀가루와 조청 냄새가 새어 나왔다⁠. 방 안 어딘가에 약과가 있었다⁠. 나는 앉지 않으려고 이를 물었다⁠.

휴게실 텔레비전에서는 먼 나라의 무너진 건물 사이로 개 한 마리가 코를 땅에 박고 걷고 있었다⁠. 노인들은 채널을 돌렸다⁠.

*

복도 끝으로 갈수록 냄새가 하나로 좁아졌다⁠. 소독약이 옅어지고 식은 미음과 땀이 짙어졌다⁠. 207호 문 앞 세 걸음에서 내 다리가 멈췄다⁠. 담당자가 줄을 당겼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마다 냄새의 밑바닥이 있다⁠. 씻어도 안 빠지고 늙어도 안 바뀌는 냄새⁠. 문 너머의 밑바닥은 구두약과 소가죽 장갑에 밴 땀이었고⁠, 끊은 지 오래된 담배가 손톱 사이에 아주 조금 남아 있었고⁠, 맨 끝에 육포가 있었다⁠. 나는 강아지 때부터 이 밑바닥을 맡았다⁠. 처음 앉는 법과 처음 기다리는 법을⁠, 화약 냄새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손이었다⁠. 부대 병사들은 이 사람을 조교님이라고 불렀다⁠. 나도 조교라는 소리로 기억한다⁠.

조교는 내가 세 살 되던 해 겨울에 부대를 떠났다⁠. 정년이라는 소리였다⁠. 이후로도 명절이면 철망 밖에 서서 육포를 던져 주었고⁠, 나는 철망에 코를 박고 조교의 장갑 냄새를 맡았다⁠.

지난가을⁠, 내가 퇴역하던 날이었다⁠. 견사 앞에 낙엽이 젖어 있었다⁠. 조교가 왔다⁠. 조교 뒤에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여자에게서는 소뼈를 오래 고운 국물 냄새가 났다⁠. 조교는 철창 사이로 손을 넣어 내 코끝에 손바닥을 댔다⁠. 손바닥이 떨렸다⁠. 문고리가 한 번 열리는 소리가 났고⁠, 곧 다시 닫히는 소리가 났다⁠. 조교가 말했다⁠.

“⁠기다려⁠.⁠”

나는 기다렸다⁠. 조교는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이 왔고⁠, 보호소의 철창이 왔다⁠.

“⁠군번⁠, 왜 그래⁠? 들어가자⁠. 응⁠?⁠”

담당자가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문 안에서 쇠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요양보호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르신⁠, 한 숟갈만요⁠. 미음이 식어유⁠.⁠”

“⁠집합⁠! 전원 집합⁠! 견사 청소 누가 안 했어⁠!⁠”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쉬어도 같은 목소리였다⁠. 문틈으로 침대가 보였다⁠. 조교는 마른 몸을 반쯤 일으켜 앉아 있었고⁠, 두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주먹 끝이 하얬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자리에서 짓무른 살 냄새가 났다⁠. 조교가 고개를 돌려 문틈을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은 나를 지나서 벽으로 갔다⁠.

*

복도 계단에서 국물 냄새가 올라왔다⁠. 소뼈를 오래 고운 냄새⁠, 마늘⁠, 주방 세제⁠. 철창 앞 여자의 냄새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마흔 남짓한 여자가 반찬 통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담당자가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소리를 높였다⁠.

“⁠군번⁠, 이리 와⁠. 이리 와⁠, 군번⁠.⁠”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비닐봉지가 무릎에 부딪혀 바스락거렸다⁠. 여자의 목덜미에서 찬 땀이 한꺼번에 솟았다⁠. 겁날 때의 땀이었다⁠.

“⁠방금 개 이름이 뭐라고 했어요⁠?⁠”

“⁠군번이요⁠. 퇴역 군견이라서 부대에서부터 군번이었대요⁠. 귀엽죠⁠? 아⁠, 혹시 207호 보호자님이세요⁠?⁠”

“⁠우리 아버지 방에 개 들이는 거⁠, 누가 허락했어요⁠?⁠”

“⁠원장님이 첫 분으로 정해 주셔서⁠…⁠.⁠”

“⁠보호자한테 먼저 물어보셨어야죠⁠.⁠”

여자는 나를 보지 않았다⁠. 나를 보지 않으려고 눈을 담당자의 명찰에 붙박아 두었다⁠. 사람이 무언가를 안 보려고 할 때 눈 밑 살이 떨린다⁠. 여자의 눈 밑이 떨렸다⁠.

“⁠데리고 나가 주세요⁠. 지금요⁠.⁠”

“⁠보호자님⁠, 오늘 첫날이라 한 번만 들어가 보면⁠…⁠.⁠”

“⁠표미옥이에요⁠. 보호자님 말고 이름 있어요⁠.⁠”

원장이 계단을 올라왔다⁠. 미옥이 돌아서서 원장 앞으로 갔다⁠. 원장은 손에 결재판을 들고 있었고⁠, 미옥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원장님⁠, 운영위원회 때 저 반대할게요⁠. 치료견이든 뭐든 끝내자고요⁠. 그 돈 있으면 반찬이나 하나 더 올려 주세요⁠.⁠”

“⁠보호자 대표님 의견은 위원회 자료에 넣어 둘게요⁠. 석 달은 해 보기로 했으니까 석 달은 갑니다⁠.⁠”

“⁠우리 아버지 방은 빼 주세요⁠.⁠”

“⁠207호 결과가 제일 필요해요⁠. 제일 안 드시는 분이니까요⁠.⁠”

미옥이 입을 다물었다⁠. 원장도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비닐봉지 속 깍두기 국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미옥은 반찬 통을 원장에게 맡기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발소리가 세 번째 칸에서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

여섯 시가 되면 담당자는 집에 간다⁠. 나는 마당 뒤편 견사에서 잔다⁠. 지난겨울 죽은 늙은 리트리버의 털 냄새가 아직 바닥 틈에 남은 견사다⁠.

담당자는 견사 문턱에 쭈그려 앉아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에서 부대 사무실의 복사기 소리가 났다⁠. 담당자는 대답을 짧게 했다⁠. 네⁠, 네⁠, 아직요⁠. 옆 철창 말리노이즈요⁠? 아직 아무도 안 데려갔어요⁠? 열한 살이면 힘들겠네요⁠. 전화를 끊고 나서 담당자는 한참 동안 내 귀 뒤를 긁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너는 운 좋은 거야⁠, 군번⁠. 알지⁠? 석 달 동안 우리 진짜 잘해야 돼⁠.⁠”

나는 운이 무엇인지 모른다⁠. 말리노이즈라는 소리는 안다⁠. 아홉 해 동안 내 옆 철창에서 자던 암컷이다⁠. 나보다 한 살 많았고⁠, 밥을 늘 반만 먹고 반은 나를 보며 남겼다⁠. 담당자가 퇴근하기 전에 나를 데리고 207호 앞에 한 번 더 갔다⁠.

조교는 자고 있었다⁠. 주먹은 잠들어서도 풀리지 않았다⁠. 담당자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방 안 공기가 복도로 흘러나왔다⁠. 구두약⁠, 장갑⁠, 육포⁠. 나는 앞발 하나를 문턱 위로 들었다⁠.

조교의 입술이 움직였다⁠.

“⁠…기다려⁠.⁠”

앞발이 문턱 위에서 멈췄다⁠. 나는 발을 내려놓았다⁠. 문턱 바깥에⁠. 그리고 엎드렸다⁠. 턱을 앞발 위에 얹고⁠, 귀를 방 안으로 세우고⁠. 담당자가 줄을 당겼지만 내 몸은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명령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지난가을에도⁠, 보호소의 겨울에도⁠, 오늘 저녁에도⁠.

1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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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책상2026.10.31· 1화

    냄새를 짧게 끊어 맡아야 층이 갈린다는 말이 오래 남아요. 군견이 정말 그렇게 배우나요?

    • 길담이작가2026.10.31

      짧게 여러 번 맡는 건 개들이 원래 하는 방식이에요. 군번은 부대에서 그걸 일로 배운 개입니다.

기다려 · 요양원 치료견이 된 퇴역 군견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