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494자)

제 몸으로

주말마다 빌리는 몸 · 여오령

8월 11일 목요일 오후 세 시⁠, 성동구 병원 7층 병실⁠. 창가 침대 곁에 의자 세 개가 놓였다⁠. 검사와 반필구와 변호사의 의자였다⁠. 문간에 병곤이 서 있었다⁠. 대질 조사에 병곤의 자리는 없었는데⁠, 양례가 불렀다⁠. 병곤의 얼굴도 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양례는 침대 등받이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오른쪽 다리의 고정대는 무릎 아래만 남았다⁠. 이마의 붕대는 풀었다⁠. 주란이 엄마 어깨에 카디건을 걸쳐 주고 침대 머리맡에 자리를 잡았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 수사관 둘 사이로 은발의 남자가 들어왔다⁠. 양복 차림이었지만 넥타이가 없었다⁠. 위도범은 병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침대 위의 양례를 보고⁠, 문간의 병곤을 봤다⁠. 마지막으로 필구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꼬리뼈로 앉았다⁠. 등받이에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검사가 서류를 펼쳤다⁠. 위도범의 변호사가 먼저 말했다⁠. 의원님은 진술을 거부하신다고⁠. 위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병실 창밖을 보다가⁠,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한 듯 혀를 찼다⁠.

“⁠어허⁠, 이거 큰일이네⁠. 내가 왜 여기까지⁠…⁠…⁠”

병실이 조용해졌다⁠. 위도범이 제 입을 막듯 말을 멈췄다⁠. 너무 늦었다⁠.

양례가 눈을 감았다⁠. 반찬 간을 볼 때처럼⁠. 한참 뒤에 눈을 뜨고 말했다⁠. 쉬고 가는 목소리였다⁠.

“⁠저 입이에요⁠.⁠”

변호사가 무어라 하려 했다⁠. 검사가 손을 들어 막았다⁠. 양례는 위도범을 똑바로 봤다⁠. 침대 높이 때문에 양례가 위도범을 내려다보는 자리였다⁠. 양례는 그것을 알았고⁠, 내려다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조금 숙였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그 새벽에 나 일어나는 거 봤어요⁠?⁠”

위도범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리를 풀었다가 다시 꼬았다⁠.

“⁠전화로 그랬다면서요⁠. 사람 괜찮아 보인다고⁠. 일어나는 거 봤다고⁠.⁠” 양례의 목소리는 또박또박했다⁠. “⁠나 안 일어났어요⁠. 일어날 수가 없었어⁠. 골반이 부러졌거든⁠. 당신이 내 앞에 서서 내려다볼 때⁠, 나는 바닥에서 당신 소리만 들었어요⁠. 어허⁠, 하는 소리⁠.⁠”

위도범의 턱이 움직였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양례는 더 기다리지 않았다⁠.

“⁠됐어요⁠. 이제 갔으면 해요⁠. 우리 딸 저녁 먹어야 돼⁠.⁠”

수사관들이 위도범을 일으켰다⁠. 위도범은 문간에서 병곤과 마주쳤다⁠. 거울을 보듯 병곤의 얼굴을 한 번 훑었다⁠. 7월 10일 새벽⁠, 룸미러로 들여다보던 얼굴이었다⁠. 위도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자네⁠, 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양례가 병곤에게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손이었다⁠. 병곤은 침대 곁으로 갔다⁠. 양례가 병곤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처음 깨어났을 때처럼 오래 봤다⁠. 넓은 이마⁠, 금테 안경⁠, 둥근 볼⁠, 그리고 눈⁠.

“⁠이제 맞네⁠.⁠” 양례가 말했다⁠. “⁠얼굴하고 눈이 맞아⁠.⁠”

“⁠죄송합니다⁠. 제 얼굴이 어머님 앞에 있었습니다⁠.⁠”

“⁠얼굴이 무슨 죄야⁠. 얼굴은 그냥 달려 있는 거지⁠.⁠” 양례가 이불 위로 손을 내밀었다⁠. 병곤은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거칠었다⁠. 새벽마다 국을 끓이던 손이었다⁠. “⁠이달 말에 퇴원해⁠. 첫차 또 탈 거야⁠. 같은 정류장에서⁠. 아저씨 얼굴 보면 이제 안 놀라려고 연습 중이야⁠.⁠”

주란이 엄마 어깨의 카디건을 여며 주며 병곤을 봤다⁠. 병곤의 멱살을 잡았던 손이었다⁠. 주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사과를 받는다는 뜻인지⁠, 이제 그만 가라는 뜻인지 병곤은 몰랐다⁠. 병곤은 둘 다로 받아들이고 병실을 나왔다⁠.

*

8월 셋째 주⁠, 뉴스는 병곤의 휴대전화 안에서 하루에 한 줄씩 바뀌었다⁠.

「⁠위도범 의원⁠,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구속 기소⁠」 지하 2층 단말기 서랍에서 블랙박스 카드가 나왔고⁠, 금색 줄 담배를 들여오는 가게 두 군데 가운데 하나가 의원실 법인 카드 결제 기록을 내놓았다⁠. 「⁠신체대여법 본회의 상정 무산 · 신체 귀속 원칙 삭제⁠」 국회에서는 새 법안이 올라왔다⁠. 몸 안에 있던 사람이 책임진다⁠. 대여인 책임보험 대신 손님 책임보험⁠. 보관 중인 빈 몸은 누구도 다시 빌려줄 수 없다⁠. 「⁠여벌⁠, 영업정지 석 달 · 지하 2층 폐쇄⁠」 「⁠금세창 대표 구속 · 범인도피 등 혐의 · 수사에 협조⁠」

마지막 기사에는 사진이 한 장 붙어 있었다⁠. 검찰청 계단을 올라가는 세창의 뒷모습이었다⁠. 허리가 꼿꼿했다⁠. 손목에 밴드가 없었다⁠.

같은 주에 찬율이 대여인들 단체 대화방 화면을 찍어 보냈다⁠. 「⁠여벌⁠」이 문을 닫고 맞은 첫 주말이었다⁠. 「⁠이번 달 월세 어떡하지⁠?⁠」 「⁠편의점 야간 자리 아는 사람⁠」 「⁠몸 빌려주는 다른 데 생기면 알려 줘⁠」 스무 명 남짓이 같은 말을 돌려 가며 하고 있었다⁠. 팔뚝에 「⁠엄마 사랑해⁠」를 새긴 대여인은 공사장에 나간다고 했다⁠. 금요일 밤에 누웠다가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던 사람들이 이제 금요일 밤에도 깨어 있었다⁠. 세창이 투자 설명회에서 던진 물음이 병곤의 휴대전화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학비는 누가 냅니까⁠? 병곤은 답을 몰랐다⁠. 답을 모르는 채로 화면을 끄지 않고 한참 들여다봤다⁠.

온새손해보험 징계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병곤이 먼저 사직서를 냈다⁠. 상무는 사직서를 받으면서 한참 병곤을 봤다⁠.

“⁠자네가 이겨서 우리 회사 새 시장이 날아갔어⁠.⁠”

“⁠손님 책임보험이라는 새 시장이 생겼습니다⁠.⁠” 병곤이 말했다⁠. “⁠운전자 보험처럼요⁠. 스무 해 동안 우리가 팔던 거⁠.⁠”

상무는 대답하지 않고 사직서에 도장을 찍었다⁠. 도장을 찍고 나서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 병곤에게 내밀었다⁠. 골프장 이용권이었다⁠. 「⁠서른 살 몸 대여 포함⁠」이라는 줄에 볼펜으로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나도 이번 주말엔 내 몸으로 쳐 보려고⁠. 백 타 넘을 거야⁠. 같이 가자⁠.⁠”

“⁠사양하겠습니다⁠. 주말에 바다 갑니다⁠.⁠”

*

퇴직금이 들어온 날⁠, 병곤은 은행 앱을 열어 두 번 송금했다⁠. 첫 번째는 찬율의 대학 등록금 계좌였다⁠. 사백십만 원⁠. 두 번째는 찬율이었다⁠. 위약금 사백만 원⁠. 「⁠여벌⁠」이 영업정지에 들어가면서 위약금 청구는 멈췄지만⁠, 병곤은 보냈다⁠. 찬율에게서 답이 왔다⁠.

「⁠위약금은 회사가 안 받는대요⁠. 돌려드릴게요⁠.⁠」

「⁠수영 강습비로 쓰세요⁠.⁠」

「⁠벌써 이십오 미터 가요⁠. 얼굴 물에 넣고요⁠. 강사님이 몸이 물을 안다고 했어요⁠. 몸만 알고 저는 몰랐던 거 이제 제가 배우고 있어요⁠.⁠」

송금한 날 밤⁠, 서휴는 냉장고 앞에서 매직 뚜껑을 열었다⁠. 「⁠구천이백십⁠」에 줄을 긋고 밑에 새로 썼다⁠. 「⁠삼천⁠」 퇴직금으로 다 덮지 못한 마이너스 통장이었다⁠. 이번에는 숫자 옆에 작은 글씨를 덧붙였다⁠. 「⁠길병곤 몫⁠. 본인 몸으로 갚을 것⁠」

“⁠나 내일부터 학원 리셉션 봐⁠.⁠” 서휴가 말했다⁠. “⁠아침 일곱 시⁠. 회원 출석 체크하고 매트 닦는 거⁠. 월급은 적어⁠.⁠”

“⁠나 리셉션 해⁠?⁠”

“⁠당신 얼굴 보러 오는 회원 있을 거야⁠. 숏폼 아저씨라고⁠.⁠” 서휴가 매직 뚜껑을 닫았다⁠. “⁠얼굴은 이제 당신 거잖아⁠. 써먹어⁠.⁠”

*

8월 26일 금요일 밤⁠, 목동 아파트 식탁⁠. 병곤은 왼쪽 손목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흰 접속 밴드가 감겨 있었다⁠. 일 년 넘게 한 번도 푼 적 없는 밴드였다⁠. 회원 자격이 정지된 뒤로는 아무 데도 이어지지 않았지만⁠, 병곤은 풀지 않았다⁠. 새 법이 통과되면 다른 회사가 생길 것이고⁠, 밴드를 다시 이을 수 있었다⁠. 주말마다 스물다섯 살 허리로 파도를 탈 수 있었다⁠. 이번에는 몸 주인에게 칠 할을 주는 회사로⁠.

서휴가 부엌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솜이 휴대전화를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찍지 마⁠.⁠”

“⁠찍을 거야⁠. 이건 숏폼감이야⁠. 제목은 영포티 졸업식⁠.⁠”

병곤은 가위를 들었다⁠. 밴드와 손목 사이로 가윗날을 밀어 넣었다⁠. 살갗에 차가운 쇠가 닿았다⁠. 일 년 동안 금요일 밤마다 차가운 단자에 밴드를 꽂던 손목이었다⁠. 병곤은 잠깐 멈췄다⁠. 서휴가 병곤의 허리에 손바닥을 댔다⁠. 누르지 않았다⁠.

가위가 닫혔다⁠. 밴드가 식탁 위로 떨어졌다⁠. 아무 불도 켜지지 않았다⁠. 손목에 하얀 띠가 남아 있었다⁠. 밴드가 가리고 있던 자리만 햇볕을 못 봐서 하얬다⁠. 찬율의 손목에 남아 있던 것과 같은 띠였다⁠.

“⁠끝⁠?⁠” 이솜이 물었다⁠.

“⁠끝⁠.⁠”

“⁠생각보다 안 웃기네⁠.⁠” 이솜이 휴대전화를 내렸다⁠. 그러고는 끊어진 밴드를 집어 제 손목에 대 보았다가⁠, 도로 식탁에 내려놓았다⁠. “⁠내일 양양 몇 시에 출발해⁠?⁠”

*

8월 27일 토요일 오전 일곱 시⁠, 양양 바닷가 서핑 숍⁠. 장발을 묶은 사장이 가게 앞에서 웻슈트 하나를 들고 병곤을 위아래로 봤다⁠.

“⁠이게 가게에서 제일 큰 거여⁠. 들어갈랑가 모르겠네⁠.⁠”

웻슈트는 들어갔다⁠. 지퍼가 배에서 멈췄다⁠. 사장과 찬율이 양쪽에서 잡아당겼다⁠. 지퍼가 올라갔다⁠. 병곤의 숨이 내려갔다⁠. 모래밭 의자에 앉은 서휴가 한마디 했다⁠. “⁠골반 세워⁠. 배 집어넣는 거 아니고 골반을 세우는 거야⁠.⁠” 이솜은 휴대전화를 가로로 들고 있었다⁠.

찬율은 수영복 위에 검은 웻슈트를 입고 있었다⁠. 일 년 동안 병곤이 입던 것이었다⁠. 오늘은 보드를 들지 않았다⁠. 얕은 물에 누워 뜨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사장이 찬율의 등을 손바닥으로 받쳐 주었다⁠.

모래밭 끝에 탁주란이 서 있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첫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손에 보온 도시락 가방을 들고 있었다⁠.

“⁠엄마가 보내래⁠. 미역국⁠. 미역 안 아끼고 끓인 거⁠.⁠” 주란이 가방을 서휴에게 건넸다⁠. “⁠엄마 어제 퇴원했어⁠. 다음 주부터 첫차 다시 탄대⁠. 지팡이 짚고⁠. 조리실 아줌마들이 기다린대⁠. 내가 말려도 안 들어⁠.⁠”

“⁠어머님 골반은 제가 봐 드릴게요⁠.⁠” 서휴가 말했다⁠. “⁠공짜로요⁠. 그 대신 미역국 끓이는 법 알려 달라고 해 주세요⁠.⁠”

병곤은 보드를 들고 물에 들어갔다⁠. 보드가 무거웠다⁠. 스물다섯 살 팔로 들 때와 달랐다⁠. 무릎까지 물이 차자 허리가 시큰거렸다⁠. 허리까지 차자 숨이 찼다⁠. 병곤은 보드에 엎드렸다⁠. 배가 보드에 눌렸다⁠. 팔을 저었다⁠. 팔이 금방 무거워졌다⁠. 파도가 오는 것을 어깨로 느꼈다⁠. 일 년 동안 매주 느끼던 물의 부풂이었는데⁠, 마흔여섯 살 어깨로 느끼니 더 크고 더 느렸다⁠.

“⁠지금이여⁠!⁠” 사장이 외쳤다⁠. “⁠병곤아⁠, 그 몸으로는 처음이네⁠!⁠”

병곤은 두 손으로 보드를 짚었다⁠. 발을 끌어당겼다⁠.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무릎이 먼저 보드에 닿았고⁠, 엉덩이가 따라 올라왔고⁠, 그다음에야 발이 보드를 밟았다⁠. 병곤은 반쯤 일어났다⁠. 허리가 펴지지 않은 채로 파도가 보드를 밀었다⁠. 일 초⁠, 이 초⁠. 모래밭에서 이솜이 소리를 질렀다⁠. 서휴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얕은 물에 누워 있던 찬율이 고개를 들었다⁠.

삼 초째에 병곤은 옆으로 떨어졌다⁠.

물이 코로 들어왔다⁠. 짰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가⁠, 닿았다⁠. 병곤은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기침을 했다⁠. 안경은 가게에 두고 왔다⁠. 흐린 눈앞에 보드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발목의 줄이 당겨졌다⁠. 허리가 아팠다⁠. 무릎도 아팠다⁠. 월요일 아침에도 아플 것이었고⁠, 이번에는 이유를 남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됐다⁠.

모래밭에서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서휴가 입을 가리고 웃었고⁠, 이솜은 휴대전화를 든 채 웃었고⁠, 주란은 도시락 가방을 안고 고개를 돌려 웃었다⁠. 얕은 물에서 찬율이 일어나 앉아 왼쪽 입꼬리부터 웃었다⁠.

병곤은 줄을 당겨 보드를 끌어왔다⁠. 두 손으로 보드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손목의 하얀 띠 위로 바닷물이 흘러내렸다⁠. 병곤은 보드 위로 배를 끌어올리고⁠, 다시 엎드려⁠, 다음 파도가 오는 바다를 향해 팔을 저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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