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63자) · 두 달 뒤
초록
붉은 방의 초대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이천이십칠 년 이월 십육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오 층 형사 대법정. 공만석 첫 공판.
법정은 형광등 빛이었다. 늘봄상조 사무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림자가 옅은 빛. 판사석 뒤 벽이 나무색이었고 그 나무색만 조금 따뜻했다. 방청석은 열두 줄. 나는 맨 뒷줄에 앉았다. 버릇대로 셌다. 정수리, 어깨. 앞에서 뒤로.
백열둘.
자리가 모자라서 법정 경위가 뒤쪽 벽을 따라 서 있게 했다. 서 있는 사람까지 셌다. 백열둘. 선배의 첫 기사가 나간 뒤 제보가 예순네 건 들어왔다. 붉은 봉투를 받은 사람, 받고 태운 사람, 받고 그 방에 간 사람, 그리고 그 방에 간 사람의 가족. 오늘 그 예순네 건 뒤에 있던 사람들이 가족을 데리고 왔다. 누구는 남편을, 누구는 딸을. 선배는 그 사람들한테 오라고 하지 않았다. 공판 날짜만 기사에 적었다.
채 경위는 검사석 뒤 벽 쪽에 서 있었다. 회색 스웨터에 재킷. 손에 종이컵. 법정 안에서는 못 마시니까 들고만 있었다. 믹스커피였을 것이다. 선배는 기자석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열었는데 한 줄도 치지 않았다. 공판 내내 방청석을 보고 있었다. 기사로 쓸 것은 판사석에 있는데 선배는 반대쪽을 봤다.
맨 앞줄에 소은 씨가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젊은 남자가 하나. 서른 조금 넘었다. 옆에 배가 부른 여자. 서준호. 서도경의 아들. 소은 씨가 두 자리를 비워 두었다가, 두 사람이 법정 문을 들어서자 손을 들었다. 준호 씨는 소은 씨를 몰랐다. 소은 씨가 먼저 인사했다. 준호 씨 아내가 소은 씨 옆에 앉았다. 둘이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몰랐다. 소은 씨가 가방에서 두유 두 개를 꺼내 하나를 그 사람한테 주는 것만 봤다.
공만석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수의 대신 사복. 회색 스웨터. 머리가 더 하얘졌다. 두 달 사이에. 그 사람은 방청석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봤다. 판사석을. 서류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검사가 공소장을 읽었다. 살인 열 건. 살인교사 열 건. 곽은 따로 기소됐다. 곽은 구치소에서 진술을 바꾸지 않았다. 해장국집 결제 기록과 휴대폰 위치 기록이 그 진술보다 먼저 말했다. 이 년 전 십이월 구일 새벽 네 시 이 분. 성북구. 민해원 씨 가게에서 오백 미터. 검사가 그 대목을 읽을 때 소은 씨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앞을 봤다. 공만석의 뒤통수를.
그리고 감금, 현주건조물방화, 사기, 대부업법 위반. 백서른한 명의 명의로 받은 대출과 보험. 검사의 목소리는 채 경위가 모니터를 읽던 목소리와 같았다. 감정이 없었다. 하루에 이런 문장을 수십 개 읽는 사람의 목소리. 그래서 그 목록이 더 길게 들렸다.
재판장이 공만석에게 공소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변호인이 대신 대답하려고 일어섰다. 공만석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말했다. 사무실에서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서류는 다 제가 받은 겁니다. 서명은 다 그분들이 한 거고요.”
그 말뿐이었다. 왜, 라는 말은 끝까지 없었다. 채 경위가 두 달 동안 물었고 검사가 물었다. 그 사람은 한 번도 이유를 대지 않았다. 서류만 댔다. 나는 이유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이유를 들으면 그 사람이 한 번 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서도경이 증인석에 섰다. 불구속 상태였다. 짙은 색 코트. 머리를 묶었다. 증인 선서를 하는 목소리가 법정 끝까지 고르게 퍼졌다. 그 방에서 우리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변호인이 물었다. 구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으면서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서도경은 대답하기 전에 방청석을 봤다. 맨 앞줄. 아들을. 준호 씨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무서웠습니다. 제 아들 때문에. 그리고 제가 한 일 때문에.”
“본인이 한 일이 뭡니까?”
“이름을 불렀습니다. 백서른한 번. 그 방에서요. 앉으세요, 라고.”
변호인이 다음 질문을 하려다 멈췄다. 서도경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이름을 한 번 댔습니다. 구 년 전에. 아들 친구 어머니. 그분이 세 번째로 돌아가신 분입니다. 저는 그분 이름을 이 법정에서 말하겠습니다.”
서도경이 그 이름을 말했다. 방청석 셋째 줄에서 누군가 소리 없이 울었다. 그분의 남편이었다. 선배가 그 사람을 이 법정에 데려왔는지 그 사람이 스스로 왔는지 나는 몰랐다.
서도경의 얼굴은 신문에 나지 않았다. 선배가 그렇게 했다. 나와의 약속이 아니라 선배 판단이었다. 대신 법정 스케치 화가가 그 사람 뒷모습을 그렸다. 묶은 머리와 코트 어깨. 나는 그 그림이 좋았다. 얼굴이 없는데 그 사람이었다.
공판이 끝나고 법정 밖 복도에서 정 씨를 만났다. 증인으로 왔다가 다음 기일로 밀렸다고 했다. 정 씨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삼십 년 만에 입는 양복이라 소매가 짧았다. 정 씨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여 주었다. 열쇠. 이가 깊고 날카로운.
“채 경위가 돌려줬어. 복사본 떴다고. 원본은 이제 내 거래.”
“이제 뭐 여실 겁니까?”
“그 문 떼기로 했어. 건물 주인이 불렀어. 현상소 자리 세 놓는다고, 문을 바꿔 달래. 안에서 열리는 걸로. 손잡이 달아서.”
정 씨가 열쇠를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단 문을 내가 떼는구먼. 구 년 걸렸어.”
법원 앞 계단에서 소은 씨가 휴대폰을 보여 주었다. 물류센터 팀장한테서 온 문자. 다음 주부터 다시 나오라고. 두 달 전에 이틀 연속 빠져서 잘렸던 자리였다. 팀장이 기사를 봤다고 했다. 붉은 봉투가 센터를 지나간 적이 있다고. 그걸 알아본 사람이 소은 씨였다는 걸 누가 말해 줬다고. 소은 씨는 그 문자에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한 번 더 쓰고 보냈다. 네, 라고만.
그날 저녁 일곱 시. 을지로 이 가 인쇄 골목 끝. 지하 일 층. 스물두 칸.
복도의 붉은 전구는 형광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철문은 그대로였다. 대신 안쪽에 손잡이가 새로 달려 있었다. 은색. 정 씨가 오후에 달았다고 했다. 손잡이 옆에 작은 쪽지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정 씨 글씨. 안에서도 열림.
계단 위 골목에서 정 씨가 가게 불을 켜 두고 있었다. 형광등. 새로 갈아 끼운 것이었다. 금요일에 곽이 서 있던 유리문 앞에 이제 아무도 없었다.
방 안은 비어 있었다. 탁자도 의자도 서류함도 경찰이 다 가져갔다. 남은 것은 벽을 따라 이어진 싱크대와 수도꼭지 여섯 개, 그리고 천장의 안전등 넷. 싱크대 하나에 불탄 자국이 검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싱크대 옆에 현상 탱크를 놓았다. 수도꼭지를 틀자 녹물이 먼저 나왔다가 맑아졌다. 물 온도를 쟀다. 이십 도. 현상하기 좋은 온도였다. 스테인리스 탱크 하나, 약품 병 셋, 온도계, 타이머. 신문사 암실은 아직 공사 중이었다. 건물 주인한테 하룻밤만 빌렸다. 정 씨가 대신 부탁해 주었다. 옛날 현상소 싱크대라 물이 잘 빠진다고. 서도경이 한 말이었다.
소은 씨가 문간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 않고.
“여기 다시 오는 거, 이상해요.”
“안 들어오셔도 됩니다.”
“아니요. 들어갈래요. 이번엔 초대 안 받았으니까.”
소은 씨가 들어왔다. 문을 닫았다. 안쪽 손잡이를 잡고. 한 번 돌려 보고, 문이 열리는 걸 확인하고, 다시 닫았다. 두 번.
나는 안전등을 켰다. 방이 붉어졌다. 소은 씨 얼굴이 검어지고 손이 검어졌다. 나는 필름 한 롤을 꺼냈다. 이브에 산 필름. 네 장만 찍힌. 붉은 빛 아래서 필름을 탱크 릴에 감았다. 손이 기억하는 일. 뚜껑을 닫았다. 현상액을 부었다. 타이머를 눌렀다. 탱크를 뒤집었다. 삼십 초마다 한 번씩. 소은 씨가 그 박자를 따라 손가락을 접었다. 하나, 둘.
정지액. 식초 냄새. 정착액. 물. 십오 분. 필름을 꺼내 불빛에 비췄다. 붉은 빛 아래서 음화는 검은 것이 희고 흰 것이 검었다. 네 장이 있었다.
첫 장. 복도. 흰 빛 속의 곽. 칼을 든 팔.
둘째 장. 곽이 얼굴을 가린 팔. 벽에 선 채 경위.
셋째 장. 흔들렸다. 바닥. 그리고 목도리를 묶는 손. 테이프 감긴 손가락. 내 팔 위에서. 두 번째 매듭을 묶는 중이었다. 찍은 기억이 없다. 셔터가 눌린 채였다. 칼에 베일 때 손가락이 셔터 위에 있었다.
넷째 장. 붉은 방. 싱크대 앞의 공만석. 그림자가 있는 얼굴.
나는 인화기를 세웠다. 인화지를 꺼냈다. 셋째 장을 먼저 뽑았다. 붉은 빛 아래서 인화지를 현상액에 담갔다. 흰 종이에 서서히 상이 떠올랐다. 손. 목도리. 매듭. 소은 씨가 내 옆에 서서 그 종이를 봤다. 붉은 빛 아래서 흑백 사진은 흑백으로 보인다. 붉은 방은 흑백을 속이지 않는다.
정착까지 마친 인화지를 물에서 꺼냈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거 엄마 목도리예요.”
소은 씨가 말했다. 붉은 빛 아래서는 목도리 색이 안 보였다. 흑백 사진에서도 안 보였다.
“무슨 색입니까?”
“초록이요. 앞치마랑 같은 색.”
벽 스위치 옆에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오래된 누런 테이프. 현상소 시절 누군가 붙여 둔 것. 매직으로 쓴 글씨가 반쯤 지워져 있었다. 절대 켜지 마시오. 암실의 백색등 스위치에는 어디나 그런 테이프가 붙어 있다. 인화지가 상하니까. 필름이 타니까. 구 년 동안 이 방에서 아무도 이 스위치를 켜지 않았다. 붉은 빛 아래서는 붉은 것이 안 보인다. 그래서 이 방은 붉은 방이었다.
인화지는 다 정착됐다. 필름도 다 말랐다. 이제 이 방에 상할 것은 없었다.
나는 테이프를 떼었다.
소은 씨가 나를 봤다. 나는 스위치를 소은 씨 쪽으로 비켜 주었다. 소은 씨가 손을 뻗었다. 테이프 감긴 손가락이 스위치 위에서 잠깐 멈췄다. 그러고는 눌렀다.
천장의 백색등이 켜졌다. 형광등 두 줄. 깜빡, 깜빡, 그리고 하얗게.
방의 색이 돌아왔다. 벽은 연한 하늘색이었다. 구 년 동안 붉게만 보이던 벽. 싱크대는 녹슨 초록. 바닥은 회색 타일. 불탄 자국은 검은색이 아니라 짙은 갈색이었다. 소은 씨 패딩은 남색이었다. 내 팔에 남은 흉터는 분홍색이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 싱크대 위에 놓인 흑백 사진 한 장. 목도리를 묶는 손.
붉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소은 씨가 방을 한 바퀴 돌아봤다. 벽을, 싱크대를, 천장을. 엄마가 네 시간 동안 앉아 있던 자리를. 그 자리는 이제 하늘색 벽 앞의 빈 바닥이었다.
“여기 이런 색이었네요.”
“네.”
소은 씨가 젖은 사진을 집었다. 흑백 속의 목도리를 한참 봤다. 그러고는 말했다.
“초록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백 사진 속에서 그 목도리는 초록이었다. 이제 우리 둘 다 그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