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46자) · 새벽 두 시 사십 분

마른 자리에서

서울 지하 오십 미터에 바다가 있다 · 문가온

나는 삼 년 동안 일지에 이상 없음이라고 썼다. 천구십오 일. 쉬는 날을 빼면 칠백몇십 번. 그 가운데 몇 번이 거짓말이었는지 지금은 안다. 그래서 이것을 쓴다. 이번에는 이상 있음이라고 쓰기 위해서.

이 건물에는 규칙이 두 개 있다. 관리사무소 게시판, 소화기 점검표와 배달 음식 전단 사이에 코팅된 종이로 붙어 있다. 누가 붙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글씨체가 공문서체라서 더 무섭다.

하나. 지하 맨 아래층에서 발견되는 사람은 전부 젖어 있다. 둘. 왜 젖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처음 출근한 날 나는 그 종이를 보고 웃었다. 신입 겁주는 장난인 줄 알았다. 옆에서 김 반장이 말했다. 웃어도 돼. 첫날은 다 웃어. 그다음부터는 안 웃는다는 뜻이었다. 김 반장은 그 말을 하고 소파에 누웠다. 김 반장은 말을 하고 나면 눕는다. 삼 년 동안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여기는 서울 한복판이다. 을지로 빌딩 숲 한가운데, 유리벽 오피스들 사이에 낮은 회색 건물이 하나 박혀 있다. 청계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관리동. 도심에 큰비가 오면 빗물을 땅 밑 오십사 미터 터널에 모았다가 한강으로 빼는 시설이다. 관리동 뒤편 마당에 원통형 수직구가 뚫려 있다. 지름 삼십 미터. 위에서 내려다보면 벽을 따라 철계단이 나선으로 감겨 내려가고, 층마다 청록색 형광등이 둥글게 켜져 있다. 맨 아래는 안 보인다. 고층 빌딩들이 그 구멍 가장자리에 둘러서서 같이 내려다보는 것 같다.

관리동 지하는 네 층이다. 지하 일 층 주차장, 이 층 창고, 삼 층 기계실. 사 층은 아무것도 아니다. 도면에는 예비라고만 적혀 있고 실제로는 복도 하나와 문 열두 개가 있다. 이 관리동은 원래 천구백칠십구년에 지은 양수장 건물이다. 이 년 전 대심도 터널이 뚫리면서 뒷마당에 수직구가 생기고 간판이 바뀌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는 아직 터널 공사 중이었다. 지하 사 층은 옛 양수장 시절부터 있던 지하다. 수도도 하수도도 지나가지 않는다. 비도 안 온다. 당연하다. 지하니까.

나는 이 건물의 야간 시설관리원이다. 그 전에는 구청 보건소에서 방역 일을 했다. 방역복을 입고 소독약을 뿌리고, 시료를 채취해서 봉투에 담고 저울에 달았다. 계약이 끝나고 이리로 왔다. 버릇은 남았다. 회녹색 작업복, 검은 장갑, 손전등, 그리고 검은 장비 가방. 가방 안에 시료 봉투와 면봉과 휴대용 저울이 들어 있다. 여기 온 뒤로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이월 구일 월요일 새벽 전까지는.

새벽 두 시 사십 분이었다. 순찰표대로 지하 삼 층에서 사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계단은 스무 칸이다. 열두 번째 칸쯤에서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였다.

지하 사 층에는 배관이 없다. 나는 그것을 도면에서 세 번 확인했다. 확인할 때마다 도면은 같은 말을 했다. 배관 없음. 급수 없음. 배수 없음. 도면은 거짓말을 안 한다. 거짓말은 사람이 한다.

계단 끝에서 손전등을 켰다. 켤 필요는 없었다. 형광등이 열여섯 개 가운데 열 개는 살아 있어서 복도는 환했다. 환한 복도 바닥이 젖어 있었다. 물이 얕게, 거울처럼 깔려서 형광등을 한 줄로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흐르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계단 쪽으로가 아니라, 계단 쪽에서 복도 끝으로. 끝의 벽을 향해서.

바닥은 평평하다. 나는 그것도 안다. 작년에 수평 측정을 했다. 레이저 레벨이 복도 끝까지 한 줄로 그었다. 그런데 물은 한쪽으로 흘렀다.

나는 물을 거슬러 걸었다. 신발 밑창으로 물의 온도가 올라왔다. 차갑지 않았다. 미지근했다. 이월 새벽 지하의 물이 미지근했다. 그게 처음 이상했던 것이다. 물은 일곱 번째 문 앞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문틈 아래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일곱 번째 문은 잠겨 있어야 했다. 열두 개 다 잠겨 있어야 했다. 열쇠는 관리사무소 어디에도 없다. 삼 년 동안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손잡이를 돌렸다. 열렸다.

방은 가로 삼 미터 세로 사 미터쯤이었다. 콘크리트 벽, 형광등 하나. 바닥에 접이식 매트리스가 여섯 개 깔려 있었다. 매트리스 옆에 운동화, 비닐봉지, 컵라면 용기, 휴대폰 충전기가 멀티탭에 줄줄이 꽂혀 있었다. 예비라던 방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매트리스 여섯 개 가운데 다섯 개는 비어 있었다.

여섯 번째 매트리스에 남자가 누워 있었다. 스물 대여섯. 검은 셔츠. 셔츠가 몸에 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온몸이 젖어 있었다. 그런데 매트리스는 말라 있었다. 남자가 누운 자리 바깥쪽 매트리스 천은 보송했다. 천장도 말라 있었다. 벽도. 얼룩 하나, 물방울 하나 없었다. 벽에 걸린 습도계가 삼십일 퍼센트를 가리켰다. 사무실 공기보다 건조했다.

나는 남자의 목에 손가락을 댔다. 장갑을 벗고. 맨손에 닿은 살갗은 물보다 차가웠다. 맥이 없었다.

그다음에 한 일을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신고부터 하지 않았다. 가방을 열었다. 버릇이었다. 삼 년 동안 안 쓴 버릇이 손을 먼저 움직였다. 남자의 오른손이 펴져 있었다. 손바닥이 하얬다. 손금을 따라 가루 같은 것이 앉아 있었다. 형광등 아래서 반짝였다. 면봉으로 긁었다. 시료 봉투에 담았다. 저울에 올렸다. 0.4그램. 새끼손가락 끝에 조금 묻혀 혀에 댔다. 짰다. 혀뿌리까지 저리게 짰다. 눈물이나 땀이 마른 소금이 아니었다. 그 농도로는 이만큼 안 남는다. 바닷물이었다. 적어도 바닷물만큼 짠 물이었다.

여기는 서울 한복판이다. 바다에서 제일 먼 곳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지하 맨 아래층이다.

두 시 오십이 분에 나는 관리사무소로 올라가 김 반장을 깨웠다. 김 반장은 소파에 누워 있었다. 담요를 턱까지 덮고.

“반장님, 사 층 칠 번 방에 사람이 죽어 있습니다.”

김 반장은 눈을 떴다. 나를 봤다. 놀라지 않았다.

“젖어 있지.”

“네.”

“올라와.”

“신고해야 합니다.”

“올라왔잖아.”

김 반장은 몸을 반쯤 일으켰다. 담요가 가슴께로 흘러내렸다.

“지원 씨, 게시판 봤지. 삼 년 동안 봤지. 둘째 줄 읽어 봐.”

“반장님.”

“읽어 봐.”

나는 게시판을 보지 않았다. 안 봐도 외웠다. 왜 젖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저건 규칙이 아니라 공문서체로 쓴 낙서예요.”

“낙서가 삼십 년 붙어 있으면 규칙이야.”

“사람이 죽었어요. 저 방에 매트리스가 여섯 개예요. 사람이 살아요. 지하 사 층에.”

김 반장이 담요를 걷고 일어나 앉았다. 처음 보는 동작이었다. 누운 다음에 다시 일어나는 김 반장.

“아침에 업체에서 와. 그 사람들 일이야. 우리 일은 순찰이고. 지원 씨 순찰 돌았고, 사 층 복도에 물 있었고, 그건 옛날 양수장 바닥 탓이고. 그리고.”

김 반장은 거기서 멈췄다. 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말을 했다.

“오늘 순찰 일지에는 이상 없음이라고 써.”

나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김 반장 눈을 봤다. 그 눈은 무서워하고 있었다. 나를 겁주는 눈이 아니었다. 자기가 겁먹은 눈이었다.

“못 써요.”

“써.”

“반장님이 쓰세요.”

“내 이름으로 쓰면 내가 본 게 돼. 지원 씨가 봤잖아.”

그 논리가 너무 정확해서 나는 웃을 뻔했다. 공문서체 같은 논리였다. 김 반장은 다시 누웠다. 담요를 끌어 올렸다. 눕는 것으로 대화를 끝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일지를 폈다. 볼펜을 들었다. 삼 년 동안 칠백몇십 번 쓴 네 글자가 손끝에 걸려 있었다. 이상 없음. 손은 떨리지 않았다. 그게 나를 더 무섭게 했다. 삼 년이면 손이 떨리지 않게 되기에 충분하다.

나는 쓰지 않았다. 빈칸으로 두고 일지를 덮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갔다.

칠 번 방 맞은편 팔 번 문도 열려 있었다. 안은 샤워실이었다. 스테인리스 선반, 스테인리스 개수대, 벽에 붙은 샤워 꼭지 둘. 배관이 없다던 층에 샤워 꼭지가 있었다. 꼭지는 말라 있었다. 선반 위에 흰 수건이 두 장 개어져 있었다. 누가 반듯하게, 모서리를 맞춰 갠 수건. 나는 그 가운데 한 장을 들고 칠 번 방으로 갔다. 남자의 얼굴에 덮지는 않았다. 덮으면 끝난 것 같아서. 젖은 머리카락만 닦았다. 이마에서 귀 뒤까지. 수건이 금방 무거워졌다. 수건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이번에는 복도 끝까지 갔다. 물이 흘러가던 쪽. 복도 끝 오른쪽에 점검실이 있다. 옛 양수장 시절 배수 펌프를 점검하던 방. 문짝이 무거운 철문이다. 그 문은 원래 열려 있다.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나는 삼 년 동안 그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그날 들어갔다. 가로 사 미터 세로 육 미터. 텅 비어 있었다. 바닥은 젖어 있었다. 복도에서 흘러온 물이 여기로 모여 북쪽 벽 아래 틈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이음매에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틈이 있었다. 물은 거기로 스며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는 없다. 지하 사 층이 맨 아래층이다. 도면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손전등을 북쪽 벽에 비췄다.

벽 전체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처음에는 오래된 벽의 흠집인 줄 알았다. 가까이 갔다. 흠집이 아니었다. 글자였다. 못이나 열쇠나 동전 모서리로 긁어 새긴 글자. 바닥에서 무릎 높이부터 머리 위까지, 벽 한 면을 빽빽하게 덮고 있었다. 한글도 있었고, 한글이 아닌 것도 있었다. 이름들이었다. 획이 겹치고 덧대져서 하나하나는 잘 안 읽혔다. 그런데 이름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벽에 이름을 새길 때 손목에 힘을 똑같이 준다.

맨 아래 줄은 비어 있었다.

이름이 한 줄씩 가지런히 내려오다가, 맨 아래에서 딱 한 줄만큼 비어 있었다. 긁힌 자국 하나 없이. 누군가 거기 새기려고 비워 둔 것처럼. 그 빈 줄 바로 아래 바닥에 물이 고여 형광등 불빛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 빈 줄에 손바닥을 댔다. 벽은 차가웠다. 물은 미지근했는데 벽은 차가웠다.

새벽 다섯 시. 교대하러 온 최 씨가 보온병 커피를 내 책상에 한 잔 따라 주었다. 믹스 두 봉을 한 컵에 타는 사람이다. 달아서 이가 시렸다. 최 씨가 펼쳐진 일지를 봤다. 빈칸을 봤다.

“안 썼네.”

“네.”

“칠 번이었지.”

나는 최 씨를 봤다. 최 씨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작년 겨울엔 구 번이었어. 그 전엔 삼 번.”

“아세요?”

“여기 앉아 있으면 아는 게 많아져. 모르는 척하는 게 늘 뿐이지.”

최 씨는 컵을 내려놓고 게시판을 봤다. 규칙 두 개.

“지원 씨, 그거 누가 붙였는지 알아?”

“몰라요.”

“내가.”

최 씨가 말했다. 웃지 않고.

“구십육 년에. 그때 반장이 시켜서. 그 반장 이름은 기억도 안 나. 근데 글씨는 내가 쳤어. 공문서체로.”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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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가온작가2026.10.09· 1화

    작가 문가온입니다. 지하 맨 아래층에서 발견되는 사람은 전부 젖어 있고, 왜 젖었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1화를 읽고 여러분이라면 그 규칙을 지키셨을까요?

  • 일곱줄2026.04.28· 1화

    설정이 과하지 않게 깔려서 편하게 따라갔습니다.

    • 문가온작가2026.04.29

      말씀하신 부분은 다음 회차에서 조금 더 풀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