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61자) · 강태우 · 명지수 · 6월 29일(화)

뒷면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6월 29일 0455⁠, 배가 들어왔다⁠. 부두에서 트럭으로 옮겨 온 컨테이너 셋이 격납고 앞에 내려졌다⁠. 태우는 그중 무장 계통이라고 적힌 것을 열었다⁠. 걸이 부품과 배선 커넥터와 안전핀 묶음이 비닐에 싸여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폭탄은 없었다⁠.

“⁠반장님⁠, 폭탄이 없습니다⁠. 부품만 왔습니다⁠.⁠”

“⁠알아⁠. 배가 그것만 싣고 왔대⁠.⁠”

폭탄은 무겁고 위험해서 따로 왔다⁠. 탄약선은 다른 배와 같이 다니지 않았다⁠. 맞으면 옆에 있는 것까지 같이 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루나 이틀 늦게 왔고⁠, 늦게 오는 동안 여기는 있는 것으로 버텼다⁠. 있는 것이 여덟 발이었다⁠.

0602에 오늘 출격은 넷으로 정해졌다⁠. 부품이 온 덕에 찢겼던 기체를 이틀 만에 고쳐서 살아 있는 기체는 다섯이었다⁠. 여덟 발을 넷씩 달면 두 대가 한 번 나가고 끝났고⁠, 둘씩 달면 네 대가 나갔다⁠. 둘씩 달면 한 번에 부수는 양이 절반이 되고⁠, 절반이면 같은 표적에 두 번 가야 했다⁠. 두 번 가면 두 번 다 대공포 위를 지났다⁠. 넷씩 달고 한 번 가는 편이 안전하고 둘씩 달고 두 번 가는 편이 오래 버텼다⁠. 오늘은 둘씩이었다⁠.

0640에 박준영 소령이 왔다⁠.

“⁠오늘 몇 발이야⁠?⁠”

“⁠둘씩입니다⁠. 여덟 발로 네 대가 나갑니다⁠.⁠”

박준영은 기체를 한 바퀴 돌다가 날개 아래에서 멈춰 걸이 둘을 손으로 흔들었다⁠. 안 흔들렸다⁠.

“⁠강 병장⁠, 이거 언제부터 했지⁠?⁠”

“⁠스무 달째입니다⁠.⁠”

“⁠그럼 두 달 남았네⁠.⁠”

“⁠예⁠.⁠”

무장을 단 기체에 오를 때 조종사들은 아래를 보지 않았다⁠. 폭탄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면 발이 느려진다고 했다⁠. 박준영도 사다리에 몸을 붙이고 위만 보며 올라갔다⁠. 세 번째 칸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오래였다⁠. 3초쯤이었다⁠. 태우는 사다리를 잡고 있었다⁠. 박준영이 내려다봤다⁠.

“⁠강 병장⁠, 이 사다리 안 흔들려⁠.⁠”

“⁠압니다⁠.⁠”

“⁠알아⁠. 근데 잡고 있어 줘⁠.⁠”

0712에 넷이 떴다⁠. 1⁠,400미터였다⁠. 네 번째 기체가 활주로 끝에서 바퀴를 한 번 튕겼다가 떴다⁠. 어제도 그랬다⁠. 태우는 빈 대차를 밀어 넣고 안전핀 여덟 개를 통에 넣었다⁠. 여덟 발을 달았으니 여덟 개였다⁠. 세어 보니 여덟이었다⁠.

*

0840에 셋이 왔다⁠. 연료가 적은 기체부터 내리는 순서대로 셋이 다 내렸다⁠. 네 번째가 오지 않았다⁠.

관제에서 호출부호 하나를 계속 불렀다⁠. 처음에는 30초에 한 번이었고 다음에는 1분에 한 번이었다⁠. 간격이 벌어지는 것이 나쁜 신호였다⁠. 사람이 포기하는 속도가 그렇게 나왔다⁠. 대답이 없었다⁠. 태우는 격납고 문간에 서서 활주로 끝을 봤다⁠. 바다에서 올라온 해무가 활주로 남쪽 절반을 덮고 있어서⁠, 이 안에서 무엇이 나와도 마지막 순간까지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스피커가 부르는 호출부호가 해무 속으로 한 번씩 빨려 들어갔다⁠. 0912에 부르는 것을 멈췄다⁠. 몇 분 불러서 안 되면 멈추는 것이 규정이었고⁠, 멈추면 다음 절차가 시작됐다⁠.

0940에 오상혁 중사가 왔다⁠.

“⁠강 병장⁠, 일해⁠.⁠”

1012에 태우는 남은 폭탄 넷을 셌다⁠. 넷이었다⁠. 다시 셌다⁠. 또 넷이었다⁠. 세 번째로 셌다⁠. 세는 것은 무장정비가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는 일이었다⁠. 안 세면 사고가 났다⁠. 다만 같은 것을 세 번 세는 일은 없었다⁠. 두 번이면 끝났다⁠. 태우는 자기가 세 번째로 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네 번째로 세려고 상자 모서리에 손을 올렸을 때⁠, 오상혁이 옆에서 손을 뻗어 상자 뚜껑을 덮었다⁠. 녹슨 경첩이 끼익 하고 울었다⁠.

“⁠넷이야⁠. 내가 셌어⁠.⁠”

1105에 오후 출격이 취소됐다⁠. 기체는 넷 남았고 조종사는 일곱이 됐다⁠. 취소한 이유는 조종사가 아니라 폭탄이었다⁠. 남은 넷은 내일 아침 몫이었다⁠. 오늘 쓰면 내일이 없었다⁠. 탄약선이 오면 채워지고 안 오면 안 채워졌는데⁠, 안 오는 편에 걸어 두는 것이 이 부대가 배운 것이었다⁠.

1140에 도영이 왔다⁠.

“⁠형님⁠, 소령님이 어제 저한테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시험 붙으면 자기가 술 산다고 하셨습니다⁠. 근데 제가 아직 시험을 안 봤습니다⁠.⁠”

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210에 태우는 격납고 뒤로 갔다⁠. 벽이 바닷바람을 막아 주는 자리였다⁠. 거기 쪼그려 앉아 공구함을 열었다⁠. 헬멧 옆에 이름 아홉을 적은 종이가 있었고 그중 하나가 지워져 있었다⁠. 태우는 두 번째 이름을 지웠다⁠. 박준영이라는 세 글자 위로 볼펜이 두 번 지나갔다⁠. 빈자리가 둘이 됐다⁠. 태우는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뒷면에 지운 두 이름을 다시 적었다⁠. 앞면에서 지우고 뒷면에 적었다⁠. 적고 나서 종이를 접어 헬멧 옆에 넣었다⁠.

1305에 관제탑에서 사람이 하나 내려왔다⁠. 박준영 소령의 개인 물품을 정리하러 온 사람이었다⁠. 규정에 있는 일이었고⁠, 정리하는 사람은 일부러 같은 대대가 아닌 데서 불렀다⁠. 같은 대대 사람이 하면 손이 안 움직인다고 했다⁠. 이 사람은 크지 않은 종이 상자 하나를 들고 조종사 대기실로 들어갔다가 40분 뒤에 나왔다⁠. 상자 위에 흰 봉투 하나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받는 사람 칸에 대전의 주소와 여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태우는 격납고 문간에서 이 봉투를 봤다⁠. 첫날 밤 미군 집계가 나왔을 때 태평양 건너 어딘가에서도 저런 봉투 아홉 장이 현관 앞에 닿았을 것이다⁠. 이제 이 나라에도 이 봉투를 받는 문 앞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상자를 든 사람은 봉투가 떨어지지 않게 한 손으로 누르며 관제탑 쪽으로 걸어갔다⁠.

1330에 태우는 내일 쓸 기체 넷을 봤다⁠. 안전핀을 통에서 꺼내 하나씩 꽂아 두고⁠, 걸쇠를 흔들어 보고⁠, 배선 접점에 초록 가루가 앉았는지 봤다⁠. 바닷바람 때문에 잘 앉았다⁠. 네 번째 기체 앞에서 멈췄다⁠. 사다리가 제자리에 걸려 있었다⁠. 누가 잡아 주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알루미늄 사다리였고⁠, 세 번째 칸 가운데가 군화 밑창에 닳아 조금 반들거렸다⁠.

*

6월 30일 0210⁠, 진천에 명령이 내려왔다⁠. 여섯 발이었다⁠. 지금까지 제일 많았다⁠. 표적은 여섯 곳이고 전부 북쪽 해안이었다⁠.

발사대는 셋이었다⁠. 셋으로 여섯 발을 쏘려면 한 번 쏘고⁠, 옮기고⁠, 채우고⁠, 다시 쏴야 했다⁠. 관에 탄을 넣는 것은 사람이 못 하고 크레인이 했다⁠. 크레인 차량은 하나였다⁠. 원래 둘이었는데 하나는 지난달에 서해안 기지로 갔다⁠. 거기가 더 급하다고 했다⁠. 크레인 하나로 셋을 채우려면 순서가 전부였다⁠. 순서를 잘못 짜면 마지막 차가 30분을 서 있었고⁠, 서 있는 발사대는 표적이었다⁠.

0231에 지수는 순서를 짰다⁠. 셋이 한자리에서 쏘면 빠르지만 이 자리가 한 번에 드러났다⁠. 세 자리로 흩어서 쏘면 덜 드러나지만 크레인이 세 자리를 다 돌아야 했다⁠. 붙이면 40분이고 흩으면 2시간이 넘었다⁠. 2시간이면 무인기가 한 번은 지나갔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오늘 밤이 끝나야 알았다⁠. 0240에 지수는 흩기로 했다⁠.

0304에 첫 번째 세 발이 세 자리에서 거의 동시에 나갔다⁠. 빛이 세 군데서 나서 구름 밑을 훑었다⁠. 위성이 지금 지나가는지는 몰랐고 모르는 채로 쐈다⁠. 0306에 철수했다⁠.

0341에 크레인이 첫 번째 차에 붙었다⁠. 탄 하나가 사람 키보다 길었다⁠. 크레인이 이것을 들어 관 뒤로 밀어 넣는데⁠, 차가 조금만 기울어 있어도 각도가 안 맞아 걸렸다⁠. 쏘고 나면 차가 조금 내려앉아서 채우기 전에 수평을 다시 봤다⁠. 첫 번째는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차까지는 숲길로 12분이었고⁠, 두 번째에서 걸렸다⁠. 빼는 데 8분⁠, 다시 넣는 데 11분이 들었다⁠. 0455에 세 번째 차로 갔다⁠. 크레인 운전병은 스물한 살 상병이었다⁠. 조종석 창문을 반쯤 내린 채 한 손으로 레버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무전기를 귀에 대고 있었는데⁠, 헬멧 턱끈 밑으로 땀이 흘러 목덜미의 위장크림이 줄무늬로 씻겨 나가 있었다⁠. 운전병은 2시간 동안 한 번도 크레인에서 내리지 않았다⁠.

0512에 무인기 소리가 났다⁠. 크레인은 탄을 들고 있는 중이었다⁠. 탄을 들고 있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내려놓는 데 4분⁠, 팔을 접는 데 3분⁠, 합해서 7분이었다⁠. 지수는 위를 봤다⁠. 나무 사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소리만 높이 있었다⁠. 높이 있는 것은 봤고⁠, 보는 것은 좌표를 넘겼다⁠. 넘어가면 포가 왔다⁠. 지난주에 48분이던 이 시간이 그저께 44분이 됐다⁠.

0516에 지수는 7분을 셈했다⁠. 내려놓고 접고 나가면 7분 뒤에 빈손으로 나가고⁠, 세 번째 차는 못 쏜다⁠. 계속하면 4분 뒤에 넣고 크레인이 빠지는 데 3분이다⁠. 같은 7분이었다⁠. 같은 7분인데 하나는 여섯 발이고 하나는 다섯 발이었다⁠.

“⁠계속⁠.⁠”

0522에 탄이 들어갔고 크레인이 팔을 접기 시작했다⁠. 0525에 포가 왔다⁠. 크레인 자리가 아니라 200미터 옆이었다⁠. 0526에 두 번째가 100미터에 떨어졌다⁠. 크레인 운전병이 팔을 다 접지 않고 차를 뺐다⁠. 접다 만 팔이 참나무에 걸렸고 걸린 채로 뺐다⁠. 나무가 넘어가며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총소리처럼 연달아 났다⁠. 0528에 세 번째가 크레인 뒤 20미터에 떨어졌다⁠. 차가 앞으로 밀리고 운전실 유리가 안으로 쏟아졌다⁠. 무거운 것은 안 뒤집혔고 높은 것은 흔들렸다⁠. 접다 만 팔이 옆으로 크게 흔들렸다가 돌아오며 나무를 한 번 더 쳤다⁠.

0531에 멎었다⁠. 0540에 크레인 운전병이 걸어서 내렸다⁠. 얼굴에 유리에 베인 피가 가늘게 흘렀다⁠. 괜찮다고 해서 지수는 앉으라고 했다⁠. 운전병은 두 번 괜찮다고 하고 나서야 앉았다⁠. 0602에 세 번째 발사대가 쐈다⁠. 여섯 발이 다 나갔다⁠.

*

0710에 대대장이 상황실로 왔다⁠.

“⁠명 대위⁠, 0518에 계속하라고 했지⁠. 왜⁠?⁠”

지수는 계산을 그대로 말했다⁠. 7분과 7분⁠, 여섯과 다섯⁠. 대대장이 끝까지 들었다⁠.

“⁠맞는 계산이다⁠. 그런데 명 대위⁠, 7분 뒤에 포가 왔으면 크레인 운전병이 죽었어⁠.⁠”

“⁠압니다⁠.⁠”

“⁠알면서 했나⁠. 다음에도 그렇게 하겠나⁠?⁠”

지수는 한참 대답하지 못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때 가 봐야 알겠습니다⁠.⁠”

대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는 대답이다⁠. 여기서 다음에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제일 위험해⁠.⁠”

0812에 지수는 일지에 한 줄을 더 적었다⁠. 0518 크레인 작업 계속 결정⁠, 결정자 명지수⁠. 크레인 운전병의 이름은 적지 않았다⁠. 이름을 적으면 이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록이 되고⁠, 기록이 되면 나중에 누가 왜 거기 있었느냐고 물었다⁠. 0855에 지수는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을 찢어 거기에 운전병의 이름을 적었다⁠. 접어서 전투복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일지에는 넣지 않았다⁠. 책상 위의 일지는 결정자 명지수라는 줄이 적힌 쪽을 펼친 채⁠, 이 위에 올려 둔 볼펜 무게로 한쪽 귀퉁이가 눌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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