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52자) · 윤석주 · 6월 27일(일)
발신자란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6월 27일 0740, 서울 합동참모본부 지하에서 윤석주 중령은 화면 셋을 보고 있었다. 왼쪽은 서해, 가운데는 동해, 오른쪽은 표적 목록이었다. 지하 3층에는 창이 없었고, 환기구가 내는 낮은 소리가 하루 종일 같은 높이로 깔려 있어서 여기 오래 있으면 이 소리가 멎을 때 오히려 귀가 먼저 놀랐다.
목록은 하루 두 번 갱신돼 각 부대로 내려갔다. 표적 앞에는 세 가지 가운데 하나가 붙었다. 사격은 시각과 표적이 정해진 명령이었고, 대기는 좌표를 넣어 두고 기다리라는 것이었으며, 참고는 알아 두기만 하라는 것이었다. 종이 위에서는 두 글자 차이였다. 대기와 사격 사이에는 명령 하나가 있었고, 명령은 몇 초면 내려갔다. 대기까지 가 있으면 다음은 몇 초짜리 일이었다.
산둥반도 좌표 둘은 석주가 넣었다. 지난주에 참고로 넣었다. 기지가 맞으면 무엇으로 쳤는지는 잔해로 알고 어디서 왔는지는 항적으로 알았는데, 평택과 군산을 친 항적을 거꾸로 풀면 이륙 지점이 이 두 비행장이었다. 친 것이 어디서 떴는지는 아는 편이 나았다. 적어 두는 것이 이 방에서 하는 일이었다. 석주는 전쟁이 나기 전 이 방에서 보낸 여섯 해 동안 적는 일만 했고, 적은 것이 쏘는 것으로 바뀌는 자리를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책상 위 종이컵의 커피는 새벽 다섯 시에 탄 것이었고 표면에 얇은 막이 앉아 있었다.
0824, 이 두 줄이 대기로 바뀌어 있었다. 바꾼 것은 석주가 아니었다. 0831에 변경 이력을 열었다. 언제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나왔고, 누가 바꿨는지는 계정으로 나왔다. 계정 이름이 시스템이었다.
목록은 정보본부와 연합사와 각 군 작전사에서 자료를 받아 자동으로 합쳤다. 같은 좌표가 여러 곳에서 오면 높은 것을 따르는 규칙이 있었다. 한쪽이 사격이라 하고 다른 쪽이 참고라 하면 사격을 따랐다. 급할 때 사람이 조율할 시간이 없고, 안 쏘는 것보다 쏘는 것이 안전하다고 봤다. 이 판단을 누가 언제 했는지도 문서에 남아 있었다. 2019년, 전쟁 전에 만든 규칙이었다.
석주는 이 좌표가 어디서 들어왔는지 찾는 데 한 시간을 썼다. 연합 자료 회선이었다. 하루 이천 건이 들어오는 회선이었고, 들어온 시각은 어제 2340이었다. 2340은 당직이 바뀌는 시각이었다. 사람이 이천 건을 다 볼 수 없어서 자동으로 넘기려고 만든 회선이었다.
0958에 이 건을 열었다. 원문은 영문이었고 표적 하나에 대기에 해당하는 상태값이 붙어 있었다. 이 아래 발신자 항목이 비어 있었다. 보낸 쪽에서 안 넣었거나 중간에 빠졌거나 둘 중 하나였다. 물어볼 데는 있었다. 다만 물으면 귀측 발신 자료의 발신자를 확인 요청한다는 문서가 오가고, 이 문서는 이쪽이 저쪽을 의심한다는 뜻이 됐다. 지금 저쪽은 같은 편이었다.
*
1032에 석주는 작전본부장실 문을 두드렸다. 본부장은 창 대신 벽에 걸린 서해 지도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전화기 세 대가 책상 위에 나란히 있었고 그중 하나는 수화기가 제자리에 없었다.
“발신자란이 비어 있습니다. 산둥반도 두 건입니다.”
“그런 건 종종 있어.”
“대기가 붙으면 부대에서 좌표를 넣습니다. 넣으면 명령 하나로 나갑니다.”
본부장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윤 중령, 자네가 참고로 넣었지. 왜 넣었나?”
“어디서 떴는지 알아 두려고 넣었습니다. 쏘려고 넣은 게 아닙니다.”
“오늘 새벽에도 그 비행장에서 뜬 게 평택 활주로를 팠어. 누가 올렸든 그 좌표는 맞는 좌표야. 맞는 좌표에 대기가 붙은 게 무슨 문제인가?”
“누가 올렸는지 모르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빼면 되잖아.”
석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빼면 됐다. 참고로 되돌리면 됐다. 그런데 이번 주에 이 좌표가 대기였다는 사실은 남았다. 부대에서 이미 봤을 것이고, 봤으면 넣었을 것이고, 넣은 좌표는 화면에서 지워도 누군가의 종이에 남았다.
“빼겠습니다. 다만 지금 빼 버리면, 나중에 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을 때 아무도 대답을 못 합니다.”
본부장이 걸려 있지 않은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았다. 딸각 소리가 방 안에서 크게 울렸다.
“윤 중령, 자네 지금 뭘 걱정하는 건가?”
“누가 넣었는지 모르는 것을 걱정합니다.”
“나는 누가 쏘지 말자고 하는지는 알아. 그쪽이 더 걱정이야. 되돌려 놓고 가서 일해.”
본부장은 이 말을 하고 나서 한 마디를 더 붙였다. 3주 동안 우리는 맞기만 했고, 맞기만 하는 편이 이기는 전쟁은 없다고. 석주는 경례를 하고 나왔다. 복도의 환기구 소리가 문 안쪽보다 컸다.
1155에 석주는 두 줄을 참고로 되돌렸다. 사유란은 한 줄이었다. 발신자 미상 자료에 의한 상태 변경, 원 상태로 환원. 이력은 지워지지 않으니 이 줄은 남았다.
1230에 석주는 화면에 있는 것을 종이 한 장에 옮겨 적었다. 좌표 둘, 변경 시각, 회선 이름, 발신자란 비어 있음. 적고 나서 접었다. 책상 서랍은 잠기지 않았고 개인 사물함은 지하 밖에 있었다. 지하에서 나갈 때는 가방을 검사해서 종이를 가지고 나갈 수 없었다. 수첩은 개인 물품이라 안 봤다. 규정이 아니라 관행이었다. 석주는 접은 종이를 수첩 뒤표지 안쪽에 끼웠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끼웠다는 것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1310, 같은 시각 진천에서 지수는 화면을 열었다. 산둥반도 좌표 둘이 참고로 돌아와 있었다. 지수는 도현이 준 종이를 꺼내 이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이 시각에 대기였다가 참고로 돌아옴. 날짜와 시각을 붙였다. 도현의 둥근 글씨 아래에 지수의 모난 글씨가 한 줄 붙자 종이가 두 줄이 됐다.
*
이튿날 0308, 진천에 무인기가 다시 왔다. 이번에는 넷이었다. 하나는 보고 넷은 훑었다.
“대위님, 소리가 넷입니다. 둘은 아주 낮습니다.”
지수는 사격지휘차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새벽 공기는 축축했고, 벌 떼 같은 소리가 두 겹으로 겹쳐서 하나는 높은 데서 느리게 돌고 하나는 낮게 깔려 빠르게 가까워졌다. 소리만으로는 어느 쪽에서 오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산이 소리를 한 번 튕겨 돌려보냈다.
낮게 오는 것은 자폭이었다. 대대의 대공 화기는 둘이었다. 기관포는 낮게 오는 것에 쓰고 휴대용 미사일은 높이 뜬 것에 쓰는데, 미사일 한 발 값이 무인기 백 대 값이었다. 쏘면 이겼지만 이겨도 남는 게 없었다. 저쪽은 싸구려를 많이 보내고 우리는 비싼 것으로 막았다. 다 막아도 우리 재고가 먼저 줄었고 저쪽은 하나만 들어오면 됐다. 그래서 기관포를 썼다. 탄은 쌌지만 맞히기가 어려웠다. 빠른 것을 잡게 만든 조준기는 작고 느리고 낮은 것을 잘 못 잡았다.
0331에 기관포가 쐈다. 예광탄이 섞여 붉은 선이 위로 올라갔다가 흩어졌다. 하나가 맞아 떨어지면서 참나무 가지에 걸렸다. 0334에 두 번째가 반대편 능선을 넘어 들어왔다. 포탑이 그쪽으로 도는 데 6초가 걸렸고 무인기가 200미터를 오는 데 8초쯤 걸렸다. 2초가 남는 계산이었지만 이 계산은 언제 알아차렸느냐에 달려 있었다. 알아차린 것이 늦었다.
0335에 3호차와 5호차 사이에서 터졌다. 큰 것이 멀리서 터지는 소리가 아니라 작은 것이 가까이서 터지는 짧은 소리였다. 불이 났다. 발사대 차량은 앞에 운전석, 뒤에 관이 실리고 이 사이에 제어 장비가 들어갔는데, 터진 자리가 딱 이 사이였다. 관 안에는 탄이 없었다. 어제 두 발을 쏘고 아직 안 채웠다. 채워져 있었으면 다른 이야기가 됐다.
소화기 넷이 붙었다. 사람들이 뛰어가서 불을 향해 분말을 뿜었고, 매캐한 흰 가루와 타는 피복 냄새가 섞여 목구멍을 긁었다. 불은 2분 만에 잡혔고 잡히고 나서 연기가 올라갔다. 연기는 위에서 잘 보였다.
“전 차량 이동!”
3호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발사 제어 배선이 탔다. 5호차는 움직였지만 발사관을 세우는 유압 팔이 파편에 휘어 있었다. 5호차는 이제 차였지 발사대가 아니었다. 다섯이 넷이 된 것이 지난주였고, 넷이 셋이 된 것이 오늘이었다. 3호차를 살린다는 전제에서였다.
0530에 두 번째 진지로 포가 왔다. 처음 둘이 300미터 밖에 떨어지고 나머지가 좁혀 왔다. 세 번째가 120미터, 네 번째가 60미터였다. 좁혀 온다는 것은 누가 보면서 고치고 있다는 것이었고, 60미터면 다음은 맞았다. 네 번째가 터졌을 때 흙덩이가 등 위로 쏟아져 방탄복 위를 둔하게 두드렸고, 화약 냄새와 뒤집힌 부엽토 냄새가 한꺼번에 코로 들어왔다. 옆에 엎드린 통신병이 무전기 송화기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지수는 흙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있었다. 흙이 입에 들어왔는데 뱉지 않았다. 다섯 번째는 오지 않았다. 여섯 번째도 오지 않았다. 여덟 발 중 넷이 왔고 넷이 오지 않았다. 멈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0640에 인원 점검을 했다. 열여덟 명 전원. 지수는 이 말을 듣고 자기 눈으로 한 번 더 셌다.
0712에 도현이 왔다.
“3호차 배선 말입니다. 다발 통째로 안 갈고 탄 데만 잘라 이어도 됩니까? 5호차 다발에서 떼어 쓰면 됩니다.”
“규정은 통째로다.”
“압니다. 그런데 통째로 가는 건 없습니다.”
탄 자리는 40센티미터쯤이었고 앞뒤는 멀쩡했다. 이은 자리는 발사 진동에서 빠질 수 있었고, 빠지면 발사하는 순간에 빠졌다. 지수는 이것을 알았다.
“이어라. 대신 이은 자리에 표시해 놔라. 어디를 이었는지.”
도현이 5호차 다발에서 40센티미터를 잘라 내 3호차에 이었다. 세 시간이 걸렸다. 도현은 3호차 뒤칸 바닥에 모로 누워 헤드랜턴 불빛 하나로 가닥을 하나씩 맞췄고, 피복을 벗긴 구리선 끝이 손끝에 박혀 몇 번이나 손을 털었다. 이은 자리에 흰 테이프를 감고 유성펜으로 날짜를 적었다.
0958에 지수는 일지를 썼다. 0335 무인기 자폭 1건, 3호차 배선 소손, 5호차 기립 장치 파손. 0530 두 번째 진지 피격. 포 8발 중 4발 미착탄, 사유 미상. 적고 나서 이 마지막 줄을 봤다. 안 온 넷이 고장이면 좋은 일이었고, 다른 데로 갔으면 다른 데 있는 누군가에게 간 것이었다.
1040에 도현이 이 종이를 들고 왔다. 세 번째 줄이 적혀 있었다. 이 시각 목록 확인, 산둥반도 두 건 참고, 확인자 임도현. 시각은 오늘 0900이었다.
“매일 볼 거냐?”
“예. 바뀌면 언제 바뀌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지수는 종이를 돌려주었다. 도현이 대위님이 갖고 계시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니. 나는 여기 있고 너는 발사대에 있다. 여기가 먼저 맞는다.”
도현이 종이를 네 번 접어 방탄복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단추가 한 번에 안 잠겨서, 도현은 이것을 두 번 눌러 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