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79자) · 명지수 · 강태우 · 6월 27일(일)
참고에서 대기로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6월 27일 0210, 진천에 명령이 내려왔다. 두 발이었고 표적은 북쪽 해안이었다. 지수는 좌표를 한 번은 화면으로, 한 번은 종이로 읽었다. 두 개가 같았다.
0218에 발사대 넷이 나갔다. 원래 다섯인데 1호차는 발사관 덮개 부품이 아흐레째 안 와서 갱도에 남았다. 넷으로 다섯 몫을 하려면 시간을 어디선가 줄여야 했고, 줄일 수 있는 데는 수평을 보는 시간밖에 없었다. 수평이 안 맞으면 관성 장치가 자기 자세를 잘못 잡고, 잘못 잡으면 200킬로미터 밖에서 몇백 미터가 틀어졌다. 몇백 미터가 틀어지면 표적 옆이 맞았다. 표적 옆에 무엇이 있는지는 좌표를 준 쪽만 알았다. 지수는 이 시간을 줄이지 않았다.
0231에 첫 진지로 들어갔다. 진지라고 해도 나무 밑에 다져 놓은 흙바닥이었다. 발사대가 서면 먼저 유압 잭 넷을 내려 차체를 들었고, 흙이 무르면 잭이 박히니 이 아래 철판 넷을 사람이 손으로 깔았다. 다음이 수평이었다. 기포가 가운데 올 때까지 잭을 하나씩 다시 만졌다. 다음이 좌표였고, 마지막이 발사관을 세우는 70초였다. 70초 동안 발사대는 아무것도 못 했고, 선 관은 나무보다 높아서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이 부대에서 제일 긴 시간이 그 70초였다. 세우기 전에 모두가 한 번 위를 올려다봤다. 무인기 소리가 나면 세우지 않았다.
0248, 도현이 종이를 들고 지수 옆에 섰다. 지수가 화면을 읽으면 도현이 종이에서 같은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북위 읽습니다.”
“같습니다.”
“동경.”
“같습니다.”
0301에 관이 섰다. 세워지는 동안 나무 사이로 별이 몇 개 보였다. 0304에 쐈다. 빛이 먼저 났다. 나무 밑이 대낮처럼 밝아져 잎사귀 하나하나의 잎맥까지 보였고, 다음에 온 소리가 몸을 한 번 밀어 가슴을 눌렀다. 발사관 아래 흙이 날아가 자리가 파였다. 위에서 보면 이 파인 자리가 자국이었고, 그래서 이 진지는 다시 못 썼다. 올라간 것은 3초쯤 보이다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0305에 두 번째 발사대가 쐈다. 같은 일이 한 번 더 났다.
“철수, 90초.”
빛이 났으면 저쪽이 봤다. 발사관을 눕히는 데 60초였고, 눕히면서 잭을 올렸다. 철판 넷은 걷지 않고 두고 갔다. 판 하나가 이백만 원이었고 사람 하나는 그보다 비쌌다. 두고 가면 다음에 판이 모자랐다. 모자라면 흙에 잭을 그냥 박고, 박으면 수평이 안 맞았다. 이렇게 하나씩 모자라졌다. 아흐레 전에 덮개 부품 하나가 안 온 것도 아마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0322에 무인기가 따라붙었다. 높이 있었고 같은 자리를 계속 돌았다. 빠르게 가면 흙먼지가 나서 속력을 유지했다. 무인기는 치지 않고 봤다. 보고 좌표를 넘겼다. 쏘려면 위를 봐야 하고, 쏘면 우리 자리가 드러나서 넘길 필요도 없어졌다. 그래서 소리를 들으며 갔다.
0341에 두 번째 진지에 들어가 위장망을 폈다. 위장망은 그물에 천 조각을 붙여 모양을 흐트러뜨리는 것이지 가리는 것이 아니었다. 방금 쏜 발사관은 뜨거웠고 열은 그물로 막을 수 없었다. 무인기는 아직 위에 있었다.
0355에 포가 왔다. 첫 번째 진지 자리였다. 열여섯 발쯤이 떨어졌고, 흙과 부러진 참나무 가지가 능선 위로 솟았다가 비처럼 내려왔다. 2킬로미터 떨어진 두 번째 진지에서도 발밑이 떨렸다. 위장망 끝에 매달린 천 조각들이 한꺼번에 흔들렸고, 누군가 들고 있던 물병이 손에서 빠져 흙바닥에 굴렀다. 지수는 손목시계를 봤다. 초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사격지휘차 안이 조용했다.
“48분입니다. 쏘고 나서 저쪽 포가 오는 데 48분입니다. 지난번엔 52분이었습니다.”
“줄었네.”
“예. 줄었습니다.”
*
0530에 목록이 새로 내려왔다. 아래쪽에 산둥반도 좌표 둘이 있었다. 지난주에 참고가 붙어 있던 이 두 줄이었다. 오늘은 앞에 대기라고 적혀 있었다. 참고는 알아 두라는 뜻이었고, 대기는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준비하라는 것은 명령이 오면 쏜다는 것이었다.
지수는 이 두 줄을 오래 봤다. 서해안 미군기지를 친 것은 중국 항공기였다. 그건 미군을 친 것이지 우리를 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리해 놓고 여기까지 왔다.
0602에 지수는 대대장에게 갔다. 대대장은 지휘 천막 안에서 식은 전투식량 봉지를 반쯤 먹다 두고 있었다.
“대대장님, 목록에 대기가 붙었습니다. 누가 바꿨습니까? 어제까지 참고였습니다.”
대대장은 봉지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짐작하는 게 맞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 건 나도 몰라. 위에서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면 확인 요청을 올리겠습니다.”
“대기는 명령이 아니야. 명령이 아닌 걸 확인해 달라고 하면, 우리가 명령으로 읽었다는 말이 돼. 좌표 넣어 두고 관은 세우지 마. 그게 대기야.”
“모르는 사람이 올린 좌표를 넣어 두라는 말씀입니까?”
대대장이 지수를 한참 봤다. 천막 밖에서 발전기가 한 번 헛돌았다가 다시 제 소리를 냈다.
“명 대위, 내가 아는 사람이 올린 좌표는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해?”
지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천막을 나서자 동쪽 능선 위로 하늘이 회색에서 흰색으로 바뀌고 있었고, 밤새 쏜 두 발의 흰 줄은 흔적도 없었다. 발밑 흙에는 크레인 바퀴 자국과 사람 발자국이 뒤엉켜 있었다. 0625에 지수는 일지를 폈다. 0304 발사 2발, 0355 첫 진지 피격, 0530 목록 갱신. 이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산둥반도 좌표 2건, 참고에서 대기로 변경, 변경 요청자란 없음.
0710에 도현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교대하라는 말을 두 번 들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까 그 좌표 말입니다. 제가 종이에 다시 적어 놨습니다. 화면 것은 바뀔 수 있으니까요.”
도현의 글씨였다. 좌표 둘과 날짜와 시각이 적혀 있었고, 이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이 시각에 참고였음, 확인자 임도현.
*
같은 날 0412, 군산에 경보가 울렸다. 태우는 침상에서 일어나 군화를 신었다. 끈은 매지 않았고 뛰면서 맸다. 방공호까지 40미터를 뛰는 동안 두 가지를 셌다. 앞에서 뛰는 사람 여덟, 머리 위에서 난 소리 여섯.
0421에 첫 번째가 활주로 북쪽에 떨어졌다. 방공호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져 목덜미로 들어갔다. 방공호 안은 사람 서른의 숨과 젖은 흙벽 냄새로 텁텁했고, 착탄이 올 때마다 천장 합판 틈으로 모래가 가늘게 흘러내려 앞사람 헬멧 위에서 튀었다. 옆에서 도영이 이거 언제까지 하느냐고 물었고 태우는 모른다고 했다. 0433에 멎었고, 두 번째 파를 기다려 20분을 더 있었다.
0455에 밖으로 나왔다. 북쪽 끝에 구멍이 셋이었다. 1,900미터가 1,400미터가 됐다. 구멍은 자갈과 판으로 메우는데 자갈은 있고 판이 모자랐다. 메운 자리는 원래보다 약해서 무거운 기체가 여러 번 지나가면 다시 꺼졌다. 그래서 메운 자리에는 표시를 해 두고 조종사가 이 자리를 피해서 내렸다. 1,400미터는 뜨기에는 되고 내리기에는 빠듯했다. 빠듯하다는 것은 한 번 실수하면 끝난다는 것이었다.
0512에 정비반이 격납고로 들어갔다. 기체 여섯 가운데 하나가 날개 아래를 파편에 찢겼다. 뜯긴 판 안쪽으로 유압관 하나가 눌려 있었다. 지금은 새지 않지만 압력이 걸리면 샐 것이었고, 압력은 뜨고 나서 걸렸다. 부품이 오면 이틀이라고 태우가 말하자 오상혁은 오면, 하고 한 마디만 되받았다.
0602부터 다섯 대에 무장을 달았다. 안전핀이 꽂혀 있는지부터 봤다. 안 꽂혀 있으면 손대지 않고 사람을 불렀다. 250킬로그램짜리는 사람이 못 들어서 유압 대차로 올렸고, 걸쇠 셋이 모두 소리를 내며 물려야 했다. 배선을 꽂고 시험을 한 번 돌린 뒤 마지막에 안전핀을 뽑았다. 뽑은 핀은 주머니에 넣지 않고 손에 들었다. 주머니에 넣으면 뽑았는지 안 뽑았는지 헷갈렸다. 뽑은 뒤에는 기체 아래에서 걸어 나왔다. 뛰지 않았다.
0648에 박준영 소령이 왔다. 사흘 연속 첫 편성이었다.
“몇 발이야?”
“넷입니다.”
“여섯 아니었나. 네 발로 뭘 하라고.”
“모르겠습니다.”
“알아. 너한테 물은 거 아니야.”
박준영은 기체를 한 바퀴 돌며 걸쇠를 손으로 흔들어 봤다. 안 흔들렸다. 사다리를 오르다가 세 번째 칸에서 또 멈췄다. 태우는 밑에서 사다리를 잡고 있었다.
0712에 넷이 떴다. 활주로가 짧아져서 뜨는 데 더 걸렸다. 무장을 단 네 번째 기체가 활주로 끝에서 바퀴를 한 번 튕겼다가 겨우 떴다. 태우와 오상혁이 나란히 이것을 봤고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0840에 셋이 왔다. 넷이 떠서 셋이 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돌아온 셋 가운데 하나는 폭탄을 떨어뜨리지 못하고 달고 왔다. 무장을 단 채 짧은 활주로에 내리는 것은 위험했다. 태우가 제일 먼저 이 기체 아래로 들어가 안전핀을 다시 꽂았다. 손이 떨려서 두 번 만에 들어갔다. 폭탄 몸통은 서해 위 찬 공기를 한 시간 넘게 맞고 와서 손바닥이 쩍 달라붙을 만큼 차가웠고, 날개 밑으로 연료와 탄 냄새가 섞인 바람이 흘렀다. 핀이 들어가는 딸깍 소리를 듣고서야 태우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0902에 태우는 셌다. 편성표의 아홉에서 하나가 빠져 여덟이었다.
0930에 오상혁이 옆에 와서 섰다.
“오늘 서해에 배 들어온다더라. 보급선. 미군 것도 오고 우리 것도 오고.”
“지난달까지 안 들어왔는데 왜 갑자기 들어옵니까?”
“저쪽이 다른 데를 보고 있대.”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오상혁도 몰랐다. 태우는 격납고 문틈으로 서쪽을 봤다. 바다 쪽 하늘은 낮게 흐려 있었고, 이 아래 수평선 근처에 점 같은 배 그림자가 두엇 떠 있었다. 이날 대만 해협 어딘가에서 저쪽 선단 하나가 또 끊겼다는 것은 여기 있는 누구도 몰랐다.
1140에 도영이 종이를 들고 왔다. 정비 자격 시험 신청서였다. 추천인은 부사관 이상이 쓰는 칸이라 반장님이 쓰셔야 한다고 태우가 말하자, 도영은 안다고 했다.
“그런데 형님 이름 먼저 넣고 싶었습니다.”
태우는 이 종이를 받아 오상혁에게 갖다 줬다. 1340에 오상혁이 추천인 칸에 이름을 쓰고 나서 태우를 봤다.
“강 병장, 너는 언제 나가지?”
“두 달 남았습니다. 8월 27일입니다.”
“그래. 8월 27일.”
오상혁이 날짜를 한 번 따라 말하고 펜 뚜껑을 닫았다.
“그날까지 비행기 한 대라도 더 띄워 놓고 가. 그게 네 전역 선물이야.”
1520에 태우는 공구함을 열었다. 헬멧 옆에 이름 아홉을 적은 종이가 있었다. 오늘 아침 네 번째 기체를 몰고 나간 사람의 이름에 줄을 두 번 그었다. 지운 자리가 비었다. 태우는 이 자리에 아무것도 적지 않고, 볼펜을 공구함 뚜껑 안쪽 고무줄에 도로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