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아홉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활주로가 1,900미터가 되고 나서 사흘 동안은 나아졌다.
타이어가 하루 한 개로 줄었고, 급제동 횟수가 줄면서 브레이크 소모도 줄었다. 김도영의 종이가 맞았다.
나흘째부터 다른 것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오늘 몇 대 나갑니까?”
“…둘.”
“기체는 넷 살아 있는데요.”
“기체는 넷이야.”
오상혁이 거기서 말을 끊었다. 태우는 그다음을 물어야 하는지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조종사가 없습니까?”
“없어.”
정비병은 기체를 센다. 기체가 몇 대 뜨느냐가 자기 일의 결과다.
조종사를 세어 본 적은 없었다. 조종사는 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체는 부수면 다시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린다. 그래서 다들 기체 숫자를 센다.
조종사는 만드는 데 더 걸린다. 학교에 들어가서 날개를 달기까지 몇 해가 들고, 그 뒤로 실제 전투에 쓸 만해지기까지 또 몇 해가 든다.
그런데 그 숫자는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는다. 말하면 저쪽이 알기 때문이다.
0730에 태우는 대대 게시판 앞에 섰다.
출격 편성표가 붙어 있었다. 이름과 호출부호와 시각이 적혀 있다.
태우는 그 표를 처음으로 자세히 봤다.
이름이 아홉이었다. 111대대 정원은 그보다 많았다.
같은 이름이 하루에 두 번 나오는 자리가 셋 있었다.
한 이름은 세 번 나왔다.
태우는 그 표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다시 셌다. 잘못 봤기를 바랐다.
세 번 맞았다.
전투기 조종사가 하루에 몇 번 뜰 수 있는지는 정해져 있다. 정해 놓은 이유는 사람이 지치면 실수하기 때문이고, 그 실수는 대개 착륙에서 난다.
지친 사람은 뜨는 것보다 내리는 것을 못한다.
“…형님.”
김도영이었다.
“이거 같은 사람 아닙니까?”
“…맞아.”
“하루에 세 번 뜹니까?”
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0810에 첫 편성이 나갔다.
태우는 무장을 걸면서 조종사를 봤다. 사다리를 올라가는 뒷모습이었다.
지금까지 태우는 조종사 얼굴을 잘 안 봤다. 볼 일이 없었다. 정비병은 기체 밑에 있고 조종사는 위에 있다.
이름표가 헬멧 뒤가 아니라 비행복 가슴에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박준영.
태우는 그 이름을 속으로 한 번 읽었다.
1140에 돌아왔다. 무장은 다 쓰고 왔다.
“연료 급유하고 무장 재장착. 40분 안에.”
“…40분이요?”
“1220에 다시 나가.”
같은 사람이 같은 기체로 다시 나간다는 뜻이었다.
재출격 준비는 순서가 있다. 급유와 무장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연료 주변에서 폭발물을 다루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동시에 한다.
급유차가 붙고, 그 반대쪽 날개에서 태우가 폭탄을 건다. 거리는 10미터도 안 된다.
연료 증기는 눈에 안 보이고 아래로 깔린다. 정전기 하나면 된다.
그래서 접지선을 두 배로 건다. 규정에 없는 대비다. 규정에 있는 대비는 「같이 하지 마라」인데 그걸 못 지키고 있으니까 다른 걸 더 한다.
“강 병장. 급유차 옆에서 신관 다는 거 규정 위반인 거 알지.”
“…압니다.”
“알고 해.”
“…예.”
태우는 알고 했다. 5화에서 이중 점검을 건너뛰었을 때와 같은 종류의 일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오상혁이 옆에 있었고, 옆에 있는 것이 허락이라는 것도 알았다.
1216에 준비가 끝났다.
박준영이 사다리 앞에 서 있었다. 헬멧을 들고 있었고 아직 안 썼다.
태우가 그 옆을 지나가는데 박준영이 물었다.
“무장 뭐 달았어?”
“…공대공 넷입니다. 바깥 파일런(무장을 매다는 날개 밑 장착대)까지 다 찼습니다.”
“그래.”
“…….”
“고맙다.”
태우는 그 말에 대답을 못 했다.
정비병한테 고맙다고 하는 조종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루에 두 번째 뜨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220에 떴다.
1455에 돌아왔다.
두 번째 출격에서 돌아온 기체는 왼쪽 날개 아래 파일런 하나가 비어 있었다. 한 발만 썼다는 뜻이다.
한 발만 쓰고 왔다는 것은 두 가지다. 한 발로 끝났거나, 더 쏠 상황이 아니었거나.
태우는 묻지 않았다. 정비병은 결과를 안 묻는다.
다만 기체 배 쪽에 검은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태우가 손으로 만져 봤다. 그을음이었다.
가까이서 뭔가 터졌다는 뜻이다.
세 번째 편성은 1620이었다.
태우는 편성표를 다시 봤다. 1620 자리에 박준영이 있었다.
“…중사님.”
“왜?”
“1620에 다른 사람 넣으면 안 됩니까?”
오상혁이 손을 멈췄다.
“강 병장.”
“…예.”
“그거 우리가 정하는 거 아니야.”
“…압니다.”
“그리고 물어본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고.”
“…예.”
“그런데 물어본 건 잘했어.”
1602에 태우는 무장을 다 걸었다.
박준영이 왔다. 이번에는 걸어오는 속도가 아침보다 느렸다.
사다리를 올라가는데 세 번째 칸에서 한 번 멈췄다.
멈춘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1초쯤이었다.
태우는 그 1초를 봤다.
그리고 사다리 아래쪽을 두 손으로 잡았다.
사다리는 고정돼 있다. 잡을 필요가 없다. 흔들리지도 않는다.
박준영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태우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잡고만 있었다.
박준영도 아무 말 안 하고 나머지 칸을 올라갔다.
1620에 떴다.
1841에 돌아왔다.
세 대가 나갔고 세 대가 왔다.
태우는 그날 밤 무장 카트를 정리하면서 편성표를 다시 생각했다.
이름이 아홉이었다.
아홉이라는 숫자를 태우는 그날 처음 외웠다. 지금까지 외운 숫자는 기체 수와 부품 수뿐이었다.
정비병은 뺄셈을 한다. 그런데 이번 뺄셈은 사람이었다.
0450에 태우가 격납고에 갔을 때 박준영이 먼저 와 있었다.
기체 옆에 서서 날개 밑을 보고 있었다. 아직 무장을 안 건 상태였다.
“…충성.”
“어. 일찍 왔네.”
“…예.”
박준영은 어제 그을음이 난 자리를 보고 있었다. 태우가 밤에 닦아 놨는데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거 안 지워지지.”
“…열에 탄 겁니다. 도장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렇구나.”
“…다시 칠하려면 정비창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은 못 가지.”
“…예.”
박준영이 손으로 그 자국을 한 번 훑었다.
“어제 이거 어디서 난 거예요.”
태우가 물었다. 묻고 나서 물으면 안 되는 것이었나 생각했다.
박준영은 잠깐 말이 없었다.
“…3번기 옆에 있었어.”
“…….”
“3번기가 맞았고, 나는 그 옆에 있었고, 파편이 여기까지 왔어.”
“…….”
“그러니까 이건 3번기 자국이야. 내 게 아니고.”
태우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랐다.
“…닦을까요?”
“놔둬.”
0530에 무장을 걸었다.
이날 무장은 어제와 달랐다. 공대공 둘에 대지 무장 둘이었다.
날개 밑을 보면 어디 가는지 안다고 태우는 2화에서 배웠다. 절반씩 달았다는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막으러 가는지 때리러 가는지를 뜨고 나서 정한다. 그런 날이 있다.
“중사님. 이거 혼합입니까?”
“응.”
“…왜요.”
“위에서 아직 안 정했대.”
태우는 그 말을 오래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하는 사람은 여기 없고, 여기 있는 사람은 다는 일만 한다.
이날은 편성이 넷이었다. 조종사가 하나 늘었다. 청주에서 한 명이 넘어왔다고 했다.
아홉이 열이 됐다.
태우는 그 하나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제야 알았다. 열 명이면 세 번 뜨는 사람이 없어진다.
“강 병장. 오늘 편성 봤어?”
“…봤습니다.”
“박 소령님 오늘 두 번이야.”
“…예.”
“어제보다 하나 줄었지.”
태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0612에 넷이 떴다.
이륙은 순서대로였다. 1번, 2번, 3번, 4번. 간격 20초.
태우는 마지막 것까지 다 보고 나서 격납고로 들어갔다.
0741에 무전이 한 번 시끄러웠다.
정비반은 조종사 무전을 못 듣는다. 대신 지상 통제 쪽 소리가 격납고 스피커로 조금 샌다.
무슨 말인지는 안 들리고 말투만 들린다. 그날 그 말투는 평소가 아니었다.
김도영이 손을 멈췄다.
“…형님.”
“들었어.”
“무슨 일입니까?”
“모르지.”
0847에 셋이 돌아왔다.
넷이 나갔는데 셋이었다.
태우는 활주로 끝을 봤다. 아무것도 안 왔다.
무전이 조용했다. 조용한 것이 답이라는 것을 태우는 2화에서 배웠다.
“…누굽니까?”
김도영이 물었다.
오상혁이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온 셋은 다 무장을 썼다. 파일런(무장을 매다는 날개 밑 장착대)이 다 비어 있었다.
착륙 간격이 평소보다 길었다. 관제가 하나를 더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기체가 활주로를 빠져나가고 나서도 유도로 끝에 아무도 안 들어왔다.
태우는 그 빈 유도로를 한참 봤다.
0902에 편성표가 다시 붙었다.
태우는 게시판 앞으로 갔다. 가면서 다리가 무거웠다.
이름이 아홉이었다.
어제 아홉이었다가 오늘 아침에 열이 됐다가 지금 다시 아홉이었다.
태우는 그 아홉 개를 하나씩 읽었다.
박준영이 있었다.
태우는 그 이름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 없어진 이름을 찾았다.
청주에서 넘어온 사람이었다. 어제 온 사람이고, 태우는 그 사람 기체에 무장을 안 걸었다. 다른 조가 했다.
이름을 몰랐다.
0915에 태우는 격납고로 돌아왔다.
박준영이 있었다. 헬멧을 벗고 앉아 있었다. 얼굴이 젖어 있었는데 땀인지 아닌지 태우는 안 봤다.
태우는 물통을 들고 갔다.
“…드십시오.”
박준영이 받았다. 반쯤 마시고 내려놓았다.
“강 병장.”
“예.”
“어제 사다리 잡았지.”
태우는 잠깐 대답을 못 했다.
“…예.”
“그거 왜 잡았어.”
“…….”
“사다리 안 흔들리는데.”
태우는 사실대로 말했다.
“…한 칸에서 멈추셔서요.”
박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그 자리에서 못 올라갈 뻔했어.”
“…….”
“올라가면 뜨고, 뜨면 또 내려야 되고, 내리면 또 올라가야 되잖아. 그게 갑자기 한꺼번에 생각났어.”
“…….”
“그런데 밑에서 누가 잡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안 나.”
태우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오늘 아침에도 잡을 줄 알았는데 안 잡더라.”
“…오늘은 안 멈추셨습니다.”
“그래?”
“예.”
박준영이 처음으로 웃었다.
1130에 두 번째 편성이 나갔다.
박준영이 사다리를 올라갔다. 안 멈췄다.
태우는 그래도 밑에서 잡고 있었다.
1408에 셋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셋이 나가서 셋이었다.
그날 저녁 태우는 게시판 앞에 다시 갔다.
내일 편성표가 붙어 있었다.
이름이 아홉이었다.
태우는 그 아홉 개를 다 외웠다. 외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홉이면 외워진다. 열둘이었으면 안 외웠을 것이고, 스물이었으면 셀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숫자가 줄어야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 태우는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도 외웠다.
숙소로 돌아와서 공구함을 열었다.
안에 헬멧이 하나 들어 있었다. 6화에 남쪽에서 주워 온 것이다. 흙은 다 털었는데 눌린 자리는 그대로였다.
태우는 그 옆에 종이를 한 장 넣었다.
아홉 개의 이름을 적은 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