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31자) · 강태우 · 6월 24일(목)

아홉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활주로가 1⁠,900미터로 열리고 사흘 동안은 나아졌다⁠. 타이어가 하루 한 개로 줄었고 급제동이 줄면서 브레이크 패드도 덜 닳았다⁠. 도영의 종이가 맞았다⁠. 나흘째인 6월 24일 아침부터는 다른 것이 모자랐다⁠.

“⁠오늘 몇 대 나갑니까⁠?⁠”

“⁠둘⁠.⁠”

“⁠기체는 넷 살아 있는데요⁠.⁠”

“⁠기체는 넷이야⁠.⁠”

오상혁 중사가 거기서 말을 끊었다⁠. 태우는 다음을 물어야 하나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조종사가 없느냐고⁠. 없다고 했다⁠.

정비병은 기체를 셌다⁠. 몇 대가 뜨느냐가 자기 일의 결과였다⁠. 조종사를 세어 본 적은 없었다⁠. 조종사는 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체는 부서지면 다시 만드는 데 몇 해가 걸려서 다들 기체 숫자를 셌다⁠. 조종사는 더 걸렸다⁠. 학교에 들어가 날개를 달기까지 몇 해⁠, 실제 전투에 쓸 만해지기까지 또 몇 해였다⁠. 그런데 이 숫자는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저쪽이 알았다⁠.

0730에 태우는 대대 게시판 앞에 섰다⁠. 게시판은 복도 끝 코르크판이었고⁠, 압정 대신 절연 테이프로 네 귀퉁이를 붙인 종이가 밤사이 습기를 먹어 가운데가 살짝 부풀어 있었다⁠. 비행복 차림의 조종사 하나가 태우 뒤로 지나가다가 이 종이를 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자기 이름이 어디 있는지 이미 아는 걸음이었다⁠. 출격 편성표에는 이름과 호출부호와 시각이 적혀 있었다⁠. 이름이 아홉이었다⁠. 같은 이름이 하루에 두 번 나오는 자리가 셋 있었고⁠, 한 이름은 세 번 나왔다⁠. 태우는 표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다시 셌다⁠. 잘못 봤기를 바랐는데 세 번이 맞았다⁠.

“⁠형님⁠, 이거 같은 사람 아닙니까⁠? 하루에 세 번 뜹니까⁠?⁠”

도영의 물음에 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투기 조종사가 하루에 몇 번 뜰 수 있는지는 정해져 있었다⁠. 사람이 지치면 실수하고⁠, 이 실수는 대개 착륙에서 났다⁠. 지친 사람은 뜨는 것보다 내리는 것을 못했다⁠.

0810에 첫 편성이 나갔다⁠. 태우는 무장을 걸면서 사다리를 올라가는 조종사의 뒷모습을 봤다⁠. 지금까지 조종사 얼굴을 잘 보지 않았다⁠. 볼 일이 없었다⁠. 정비병은 기체 밑에 있고 조종사는 위에 있었다⁠. 이름표가 헬멧 뒤가 아니라 비행복 가슴에 붙는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박준영⁠. 소령이었다⁠. 태우는 이 이름을 속으로 한 번 읽었다⁠.

*

1140에 돌아온 기체는 무장을 다 쓰고 왔다⁠. 박준영은 사다리를 내려오며 산소마스크 자국이 붉게 남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물을 달라는 말도 없이 날개 그늘에 쪼그려 앉아 40분 가운데 15분을 눈을 감고 있었다⁠. 40분 안에 급유하고 다시 걸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1220에 같은 사람이 같은 기체로 다시 나간다는 뜻이었다⁠.

재출격 준비에는 순서가 있었다⁠. 연료 주변에서 폭발물을 다루면 안 되니 급유와 무장을 따로 해야 했다⁠. 지금은 이걸 같이 했다⁠. 급유차가 오른쪽 날개에 붙고 반대쪽 날개에서 태우가 폭탄을 걸었다⁠. 거리는 10미터가 안 됐다⁠. 연료 증기는 눈에 안 보이고 아래로 깔렸으며⁠, 정전기 하나면 충분했다⁠. 그래서 접지선을 두 배로 걸었다⁠. 규정에 있는 대비는 같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이걸 못 지키니 다른 것을 더 했다⁠. 콘크리트 위로 등유 냄새가 낮게 깔려 목구멍 안쪽이 달았다⁠.

“⁠강 병장⁠, 급유차 옆에서 신관 다는 거 규정 위반인 거 알지⁠.⁠”

“⁠압니다⁠.⁠”

“⁠알고 해⁠.⁠”

태우는 알고 했다⁠. 오상혁이 옆에 서 있는 것이 허락이라는 것도 알았다⁠.

1216에 준비가 끝났다⁠. 박준영이 헬멧을 들고 사다리 앞에 서 있었다⁠.

“⁠무장 뭐 달았어⁠?⁠”

“⁠공대공 넷입니다⁠. 바깥 파일런(⁠무장을 매다는 날개 밑 장착대⁠)까지 다 찼습니다⁠.⁠”

“⁠그래⁠. 고맙다⁠.⁠”

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비병에게 고맙다고 하는 조종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루에 두 번째 뜨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455에 돌아온 기체는 활주로에 내리자마자 왼쪽 메인 바퀴에서 흰 연기를 뿜었다⁠. 짧은 활주로에서 급제동을 두 번 걸다 브레이크가 과열된 것이었다⁠. 소방차가 사이렌 없이 따라붙었고 태우는 소화기를 들고 유도로까지 뛰었다⁠. 타이어는 터지지 않았다⁠. 바퀴 쪽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얼굴을 때려 눈썹이 따가웠다⁠. 이 기체는 왼쪽 파일런 하나만 비어 있었다⁠. 한 발만 쓰고 왔다는 것은 한 발로 끝났거나 더 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정비병은 결과를 묻지 않았다⁠. 다만 기체 배 쪽에 검은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손으로 만져 보니 그을음이었다⁠. 가까이서 뭔가 터졌다⁠.

세 번째 편성은 1620이었다⁠. 1620 자리에 또 박준영이 있었다⁠. 태우는 공구를 내려놓고 활주로 건너편 대대 작전과 건물까지 걸어갔다⁠. 정비병이 거기 가는 일은 없었다⁠. 문 앞에서 운항 담당 대위가 서류철을 들고 나오다가 태우를 봤다⁠.

“⁠무슨 일이야⁠?⁠”

“⁠1620 편성 말입니다⁠. 박 소령님 세 번째입니다⁠. 다른 분 넣으면 안 됩니까⁠?⁠”

대위는 화를 내지 않았다⁠. 서류철을 펼쳐 보여 줬다⁠. 이름이 아홉이었다⁠.

“⁠병장⁠, 조종사가 아홉이다⁠. 네가 열 번째를 데려와⁠. 그럼 바꿔 줄게⁠.⁠”

돌아오는 길에 오상혁이 격납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거 우리가 정하는 거 아니야⁠. 물어본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물어본 건 잘했어⁠.⁠”

1602에 무장을 다 걸었다⁠. 박준영이 왔다⁠. 걸어오는 속도가 아침보다 느렸다⁠. 사다리를 올라가다가 세 번째 칸에서 한 번 멈췄다⁠. 1초쯤이었다⁠. 태우는 그 1초를 봤고⁠, 사다리 아래쪽을 두 손으로 잡았다⁠.

사다리는 기체에 고정돼 있어서 잡을 필요가 없었다⁠. 흔들리지도 않았다⁠. 박준영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잡고만 있었다⁠. 알루미늄 난간이 오후 볕에 달궈져 손바닥이 뜨거웠는데 태우는 손을 떼지 않았다⁠. 박준영도 아무 말 없이 나머지 칸을 올라갔다⁠.

1620에 떴고 1841에 돌아왔다⁠. 세 대가 나가서 세 대가 왔다⁠.

*

이튿날 0450에 태우가 격납고에 갔을 때 박준영이 먼저 와 있었다⁠. 어제 그을음이 난 자리를 보고 있었다⁠. 태우가 밤에 닦아 놨는데도 도장까지 타 들어가 자국이 남았다⁠.

“⁠이거 안 지워지지⁠.⁠”

“⁠열에 탄 겁니다⁠. 다시 칠하려면 정비창에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은 못 가지⁠.⁠”

박준영이 손으로 이 자국을 한 번 훑었다⁠. 어디서 난 거냐고 태우가 물었다⁠. 묻고 나서 물으면 안 되는 것이었나 생각했다⁠.

“⁠3번기 옆에 있었어⁠. 3번기가 맞았고⁠, 파편이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까 이건 3번기 자국이야⁠. 내 게 아니고⁠. 닦지 말고 놔둬⁠.⁠”

이날 무장은 공대공 둘에 대지 무장 둘이었다⁠. 절반씩 달았다는 것은 막으러 가는지 때리러 가는지를 뜨고 나서 정한다는 것이었다⁠. 위에서 아직 안 정했다고 오상혁이 말했다⁠. 정하는 사람은 여기 없고⁠, 여기 있는 사람은 다는 일만 했다⁠.

편성은 넷이었다⁠. 청주에서 조종사 하나가 넘어왔다고 했다⁠. 아홉이 열이 됐다⁠. 태우는 이 하나가 얼마나 큰지 그제야 알았다⁠. 열 명이면 세 번 뜨는 사람이 없어졌다⁠. 박 소령은 오늘 두 번이라고 오상혁이 말했다⁠. 어제보다 하나 줄었다⁠.

0612에 넷이 20초 간격으로 떴다⁠. 태우는 마지막 기체까지 다 보고 나서 격납고로 들어갔다⁠.

0741에 격납고 스피커가 한 번 시끄러웠다⁠. 정비반은 조종사 무전을 못 듣는데⁠, 지상 통제 쪽 소리가 스피커로 조금씩 샜다⁠. 대개는 말투만 들리고 말은 안 들렸다⁠. 이날은 한 마디가 또렷하게 샜다⁠. 장거리 미사일⁠, 먼저 쏘지 마⁠.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는 몰랐다⁠. 이후로 지직거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고⁠, 말투가 평소와 달랐다⁠.

도영이 손을 멈췄다⁠.

“⁠형님⁠, 먼저 쏘지 말라는 게 무슨 말입니까⁠?⁠”

“⁠모르지⁠.⁠”

태우는 정말 몰랐다⁠. 서해 위 어딘가에서 서로 겨눈 채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는지 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먼저 당기는 편이 전쟁을 한 칸 키운다는 것을 이날 몰랐다⁠.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만 들었다⁠. 격납고 문 밖으로 나가 서쪽을 보자 바다 쪽 높은 하늘에 비행운 두 줄이 엇갈려 그어져 있었다⁠. 한 줄이 갑자기 꺾이더니 이 끝에서 작은 불꽃이 하나 번졌다가 연기로 풀렸다⁠. 소리는 오지 않았다⁠. 너무 멀어서 이것이 누구 것인지 알 수 없었고⁠, 태우는 이 연기가 바람에 다 흩어질 때까지 문간에 서 있었다⁠.

0847에 셋이 돌아왔다⁠. 넷이 나갔는데 셋이었다⁠. 착륙 간격이 평소보다 길었다⁠. 관제가 하나를 더 기다리고 있었다⁠. 세 번째 기체가 활주로를 빠져나간 뒤에도 유도로 끝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태우는 이 빈 유도로를 한참 봤다⁠. 아스팔트 위 열기가 아지랑이로 떨렸고⁠, 이 너머로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0902에 편성표가 다시 붙었다⁠. 태우는 게시판으로 가는 동안 다리가 무거웠다⁠. 이름이 아홉이었다⁠. 어제 아홉이었다가 오늘 아침 열이 됐다가 다시 아홉이었다⁠. 박준영은 있었다⁠. 없어진 이름은 청주에서 넘어온 사람이었다⁠. 어제 온 사람이었고⁠, 이 기체에는 다른 조가 무장을 걸었다⁠. 태우는 이 이름을 몰랐다⁠. 얼굴도 몰랐다⁠. 어제 저녁 식당에서 낯선 비행복 하나가 창가 자리에서 혼자 국을 뜨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0915에 격납고로 돌아오니 박준영이 헬멧을 벗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얼굴이 젖어 있었는데 땀인지 아닌지 태우는 보지 않았다⁠. 물통을 건네자 반쯤 마시고 내려놓았다⁠.

“⁠강 병장⁠, 어제 사다리 잡았지⁠. 그거 왜 잡았어⁠? 사다리 안 흔들리는데⁠.⁠”

“⁠한 칸에서 멈추셔서요⁠.⁠”

“⁠어제 그 자리에서 못 올라갈 뻔했어⁠. 올라가면 뜨고⁠, 뜨면 또 내려야 되고⁠, 내리면 또 올라가야 되잖아⁠. 그게 갑자기 한꺼번에 생각났어⁠. 그런데 밑에서 누가 잡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안 나⁠.⁠”

1130에 두 번째 편성이 나갔다⁠. 박준영은 사다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태우는 그래도 밑에서 잡고 있었다⁠.

이날 저녁 태우는 게시판 앞에 다시 가서 내일 편성표의 이름 아홉을 다 외웠다⁠. 도영이 옆에 와서 뭐 하시느냐고 물었다⁠. 외운다고 하자 도영은 이걸 왜 외우느냐고 묻지 않고⁠, 자기도 따라서 입술을 달싹이며 첫 줄부터 읽었다⁠. 둘이 나란히 서서 남의 이름을 외우는 것을 지나가던 행정병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홉이면 외워졌다⁠. 열둘이었으면 안 외웠을 것이고 스물이었으면 셀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숫자가 줄어야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 태우는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외웠다⁠.

숙소로 돌아와 공구함을 열었다⁠. 남쪽에서 주워 온 헬멧이 눌린 자리 그대로 들어 있었다⁠. 태우는 이 옆에 종이를 한 장 넣었다⁠. 볼펜으로 또박또박 눌러 쓴 이름 아홉이 적힌 종이였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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