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18자) · 명지수 · 6월 15일(화)
참고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6월 15일, 열이틀째부터 지수는 좌표를 세 번 봤다. 한 번은 자기가 보고, 한 번은 임도현이 보고, 마지막에 둘이 같이 봤다. 세 번 보면 발사 준비가 4분씩 밀렸고, 지수는 그 4분을 매번 다른 데서 깎아 냈다. 위장망을 걷는 순서를 바꾸고, 발사관 압력 점검을 이동 중에 당겨 하고, 좌표 읽는 목소리를 조금 빠르게 했다.
좌표 정정은 열이틀 동안 한 번뿐이었다. 이 한 번 때문에 나머지 스물몇 번을 세 번씩 봤다. 효율로 따지면 틀린 일이었고 지수는 이걸 알면서 했다. 열이틀 동안 대대는 스물여덟 발을 쐈다. 쏘고 나서 아는 것은 두 가지뿐이었다. 나갔다는 것, 그리고 다음에도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무엇을 맞혔는지는 며칠 뒤 종합 결과로 내려왔는데, 종합이라는 말이 붙으면 개별은 지워졌다. 지수는 종합 결과를 두 번 받았고 두 번 다 자기가 넣은 좌표가 어느 줄인지 세어 봤다. 세고 나서도 이게 왜 궁금했는지는 몰랐다.
0910에 목록이 왔다. 지수는 첫 줄에서 멈췄다. 좌표 앞에 글자 둘이 붙어 있었다. 참고.
여섯 줄이었다. 앞의 넉 줄은 늘 오던 북쪽 해안포와 방사포였다. 뒤의 두 줄이 서쪽이었다. 좌표를 지도에 얹자 점 두 개가 바다 건너에 앉았다.
“…비행장입니다. 두 곳 다 산둥반도 비행장입니다, 대위님.”
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수는 말없이 사거리를 계산했다. 여기서 저기까지 직선으로 500킬로미터가 조금 넘었고 우리 순항미사일은 닿았다. 닿는다는 것은 이미 알았다. 계산은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쏘는 겁니까?”
“참고라잖아.”
“참고가 뭔데요?”
지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규정집에 참고라는 표시는 없었다.
1030에 대대장이 사격지휘차로 왔다. 중령은 좁은 차 안에서 허리를 반쯤 굽힌 채 화면을 봤다.
“명 대위, 그거 어떻게 생각해?”
“규정에 없는 표시입니다. 어떻게 처리합니까?”
“넣어 두라는 뜻이야. 쏘라는 게 아니고.”
“넣어 두면 언제든 쏠 수 있게 됩니다.”
“그래. 그게 목적이야.”
지수는 몇 초 뒤에 이 말을 이해했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말이었다. 저쪽도 우리가 준비한 것을 알고, 이 앎이 저쪽의 다음 계산을 바꾼다. 쏘지 않고 쓰는 방법이었다. 다만 이 방법은 정말로 쏠 수 있을 때만 통했다.
“누가 요청한 겁니까?”
대대장이 지수를 봤다.
“그거 물으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런데 네가 짐작하는 게 맞아.”
“그러면 일지에 요청 부대라도 적겠습니다.”
“적지 마. 참고는 명령이 아니야. 명령이 아닌 걸 누가 요청했다고 적으면, 그 사람이 명령을 한 게 돼.”
“적지 않으면 아무도 안 한 게 됩니다.”
대대장이 허리를 펴다가 차 천장에 뒤통수를 부딪혔다. 대대장은 머리를 문지르지도 않고 지수를 내려다봤다.
“명 대위, 이 전쟁에서 아무도 안 한 일은 하나도 없어. 다 누가 했어. 그걸 전부 적기 시작하면 너는 쏘는 사람이 아니라 적는 사람이 돼. 넣어. 이번 건 내가 넣으라고 한 거다.”
서해안 기지는 우리 것이면서 저쪽 것이었다. 저쪽은 태평양으로 전력을 보내야 하는데 여기 묶여 있었다. 묶인 이유를 없애 달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을 우리가 하면 우리는 이 전쟁의 참전국이 됐다.
*
1114에 지수는 두 줄을 넣었다. 서쪽 표적은 북쪽 것처럼 발사대 하나에 몇 발을 걸어 두고 돌려 쓸 수가 없었다. 사거리와 연료 장입량이 달랐고, 비행 경로를 미리 넣어야 했다. 경로는 낮게 날며 산과 골짜기를 짚어 가도록 지형을 따라 그렸다. 그리다 보면 지도 위로 마을 이름들이 지나갔다. 지수는 이 이름들을 읽지 않으려고 했다. 읽으면 외워졌다. 그런데도 해안선 근처에서 한 이름이 눈에 걸렸고, 지수는 이 이름을 다음 날까지 잊지 못했다.
절차는 다른 표적과 똑같았다. 좌표를 확인하고, 두 번 확인하고, 도현과 한 번 더 보고 넣었다. 똑같은데 손목이 무거웠다.
“대위님, 이거 넣은 기록은 누구 이름으로 남습니까?”
체계에는 부대 이름이 남았다. 명령을 내린 사람 이름은 명령서에 남고 넣은 사람 이름은 아무 데도 남지 않았다. 지수가 그렇게 말하자 도현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나중에 누가 이거 왜 넣었냐고 물으면, 대답할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이날 지수는 일지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참고 좌표 2건 입력, 입력자 대위 명지수. 일지에는 입력자를 적는 칸이 없었다.
1640에 도현이 밖에서 들어왔다. 걸음이 달랐다. 어머니가 무사하고 시내는 안 맞았다고 했다. 왜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도현은 운전병 부모님이 평택이고 통신병 집이 오산이라고 했다. 자기만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 이걸 크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잘했어. 그리고 하나만 더. 좋은 소식은 작게 말해도 돼. 안 말하지는 마.”
도현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 게 어색해서 금방 그만뒀지만 웃긴 웃었다.
*
열나흘째 밤 0128, 능선 너머에서 벌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가 사라졌다. 발사 소리보다 훨씬 작고 훨씬 높았다.
“무인기입니다.”
“알아.”
작은 무인기는 레이더보다 귀에 먼저 잡혔다. 새보다 조금 큰 것이 100미터 높이로 지나가면 화면에는 아무것도 안 뜨고 소리만 남았다. 잡으려면 쏘아야 하고, 쏘면 이 자리에서 우리가 드러났다. 새보다 조금 큰 것 하나를 잡자고 대대 위치를 알려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한 대가 지나갔다는 것은 사진이 한 장 생겼다는 것이었다.
*
같은 시각 산둥반도의 비행단 작전실에서는 벽시계가 0028을 가리키고 있었다. 팡 웨이 대령은 정찰 영상 분석관이 넘긴 화면을 한 장씩 넘겼다. 서해안 기지들의 복구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이 사이에 한국 내륙 어느 산의 사진이 한 장 끼어 있었다. 참나무 숲과 능선과 흙길 하나였고 표시된 것은 없었다.
“이건 뭔가?”
“무인기가 돌아오는 길에 찍은 겁니다. 내륙이라 우선순위 밖입니다.”
팡 웨이는 이 사진 위에 손가락을 잠깐 올려 두었다가 다음 장으로 넘겼다. 웨이의 표적은 활주로였다. 산은 아직 웨이의 일이 아니었다. 분석관은 넘어간 사진을 따로 모아 두는 폴더에 옮겼다. 폴더 이름은 내륙, 미분류였다. 이 폴더에는 이미 사진이 서른 장 넘게 들어 있었고, 누구도 이것을 한 번에 겹쳐 본 적은 없었다. 팡 웨이는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군산 활주로 복구 사진으로 돌아갔다. 한국인들은 생각보다 빨리 구멍을 메우고 있었다.
*
0143에 대대가 답을 줬다. 인접 대대 세 곳에서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세 곳이면 지나간 게 아니라 훑은 것이었다.
“진지 이동 준비. 지금.”
이날 밤에는 비가 왔다. 비가 오면 자국이 깊어지고, 긁어도 다 지워지지 않았다. 비 온 뒤의 흙은 사람 손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위님, 이거 다 못 지웁니다.”
“알아. 못 지운 채로 가는 거야.”
0320에 이동을 시작했다. 앞차와 간격 50미터, 간격이 좁으면 한 발에 둘이 죽었다. 지수는 맨 뒤 차에 탔다. 빗물이 앞유리를 타고 흘러내려 초록 점 다섯 개가 번졌다 모였다 했고, 와이퍼가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산길을 올라가는 다섯 점이 다시 또렷해졌다. 저것이 40톤짜리 다섯 대라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알았다.
0451에 도착한 진지는 두 주 전에 한 번 쓴 곳이었다. 진지는 미리 닦아 놓고 갱도를 파고 진입로를 만들어 둔 곳만 쓸 수 있었다. 열나흘 동안 네 번 옮겼고 진지는 다섯이었다. 입구 흙바닥에는 두 주 전에 긁어 둔 자국이 비에 씻겨 도로 희미하게 떠올라 있었다.
“저쪽도 그거 압니까?”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경사와 진입로와 40톤이 건널 다리를 지도에 걸면 후보가 수십 개로 줄고, 사진이 모이면 그중 몇 개가 하나씩 지워졌다. 요즘은 이 일을 기계가 했다. 어제 사진과 오늘 사진을 겹쳐 달라진 곳을 찾는 일은 기계가 사람보다 빨랐고 기계는 지치지 않았다.
6월 18일 0612에 경보가 왔다. 전 진지 대피. 지수는 처음으로 이 방송을 자기 부대 이야기로 들었다.
“인원 대피! 차량은 그대로 둬!”
40톤짜리를 6분 안에 옮길 수는 없었다. 사람만 갱도 안쪽으로 들어갔다. 갱도까지 90미터, 뛰면 30초 안쪽이었다. 밤새 내린 비에 진입로가 곤죽이 되어 있어서, 뛰는 사람들의 군화가 한 걸음마다 진흙에서 빠지며 쩍 하는 소리를 냈다. 누군가 넘어졌고 뒤에 오던 사람이 이 허리띠를 잡아 일으켜 끌고 갔다. 그 30초 동안 사람은 여러 가지를 했다. 손에 든 것을 놓거나 안 놓거나, 옆 사람을 밀거나 잡거나, 뒤를 돌아보거나 안 돌아보거나. 지수는 뛰면서 셌다. 열다섯, 열여섯. 둘이 안 보였다.
“운전병 어디 있어?”
“3호차에 있습니다! 시동 끄고 있습니다!”
“나오라고 해!”
도현이 도로 뛰어나갔다. 지수는 이 뒷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방금 소리를 질러 사람 하나를 다시 밖으로 보냈다는 것을 알았다.
0616에 첫 발이 왔다. 능선 너머였다. 두 번째도 능선 너머였고 세 번째가 가까웠다. 갱도 천장에서 흙이 떨어지고 전등이 한 번 꺼졌다가 들어왔다. 지수는 벽에 등을 대고 사람 수를 셌다. 열여섯이었다.
0624에 포성이 멎었다. 밖으로 나갔을 때 3호차 옆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운전병은 헬멧을 쓰고 있었고 도현은 맨머리였다. 도현이 자기 것을 씌워 준 것이었다. 명령 없이 뛰어나간 것을 짚어야 했고, 왜 시동 끄느라 남아 있었느냐고 물어야 했다.
“…괜찮아?”
이 말이 먼저 나왔다. 둘이 괜찮다고 했다. 운전병은 시동을 끄지 않으면 배터리가 방전될까 봐 남았다고 했다. 스무 살이었고, 자기 차를 두고 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몰랐다. 지수는 이 말을 끝까지 들었다. 도현의 앞머리에서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뚝뚝 떨어졌다.
피해는 1호차였다. 파편이 발사관 덮개를 뚫었다. 안의 것은 멀쩡했지만 덮개가 안 닫히면 쏠 수 없었다. 발사대 다섯이 넷이 됐다. 언제 고치느냐고 도현이 물었을 때 지수는 부품이 와야 한다고만 했다. 언제 오느냐는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답을 하면 이 아이가 이날부터 이 부품을 기다릴 것이었다.
0730에 일지를 썼다. 이동 1회, 피격 1회, 장비 피해 1건, 인원 이상 없음. 지수는 이후에 여섯 글자를 더 적었다. 열여덟 명 전원. 이상이 없으면 없다고만 쓰면 됐다. 그런데 열여덟 명이 몇 분 동안 열여섯이었다는 것을 아무 데도 안 적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됐다. 볼펜이 전원이라는 글자에서 한 번 헛돌아서, 이 두 글자만 다른 글자보다 진하게 눌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