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참고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열이틀째부터 지수는 좌표를 세 번 봤다.
한 번은 자기가 보고, 한 번은 임도현이 보고, 마지막에 둘이 같이 봤다.
세 번 보면 시간이 더 걸린다. 발사 준비 시각이 4분씩 밀렸다. 그 4분을 어디서 줄일지 지수는 매번 다른 데서 찾았다.
“대위님. 이번 건 이상 없습니다.”
“나도 없어.”
“…같이 한 번 더 봅니까?”
“봐.”
그래서 봤다. 이번에도 이상 없었다.
이상이 없는 날이 대부분이다. 좌표 정정은 열이틀 동안 한 번뿐이었다. 그 한 번 때문에 나머지 스물몇 번을 세 번씩 보는 것이다.
효율로 따지면 틀린 일이다. 지수는 그걸 알면서 했다.
열이틀 동안 대대는 스물여덟 발을 쐈다.
쏘고 나서 아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나갔다는 것과, 그다음에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무엇을 맞혔는지는 며칠 뒤에 종합 결과로 내려온다. 종합이라는 말이 붙으면 개별은 지워진다. 몇 번 표적 무력화, 몇 번 표적 재타격 필요. 그것뿐이다.
지수는 그 종합 결과를 두 번 받았고, 두 번 다 자기가 넣은 좌표가 어느 줄인지 세어 봤다. 세어 보고 나서 그게 왜 궁금했는지 자기도 몰랐다.
0910에 목록이 왔다.
지수는 화면을 열고 첫 줄에서 멈췄다.
좌표 앞에 글자가 하나 붙어 있었다.
참고.
“…참고요?”
“나도 처음 봐.”
여섯 줄이었다. 앞의 넉 줄은 늘 오던 것이었다. 북쪽 해안포와 방사포.
뒤의 두 줄이 달랐다.
서쪽이었다.
지수는 좌표를 지도에 얹었다. 점 두 개가 바다 건너에 앉았다.
산둥반도.
“…비행장입니다.”
임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두 곳 다 비행장입니다. 대위님.”
지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사거리를 계산했다.
여기서 저기까지 직선으로 500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우리 순항미사일은 닿는다. 닿는 것을 지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계산은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을 움직이기 위해서 했다.
“…쏘는 겁니까?”
“참고라잖아.”
“참고가 뭔데요.”
지수는 대답을 못 했다. 규정집에 참고라는 표시는 없다.
1030에 대대장이 왔다.
지수는 일어섰다. 대대장이 앉으라고 손짓했다.
“명 대위. 그거 봤지.”
“예.”
“어떻게 생각해?”
“…규정에 없는 표시입니다.”
“없지.”
“그러면 어떻게 처리합니까?”
대대장이 잠깐 웃었다. 웃는 소리는 아니었다.
“넣어 두라는 뜻이야. 쏘라는 게 아니고.”
“…넣어 두면 언제든 쏠 수 있게 됩니다.”
“그래.”
“…….”
“그게 목적이야.”
지수는 그 말을 이해했다.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말이다. 저쪽도 우리가 준비했다는 것을 안다. 그 앎이 저쪽의 다음 계산을 바꾼다.
쏘지 않고도 쓰는 방법이 있다. 다만 그 방법은 정말로 쏠 수 있을 때만 작동한다.
“대대장님.”
“말해.”
“누가 요청한 겁니까?”
대대장이 지수를 봤다.
“그거 물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예.”
“그런데 네가 짐작하는 게 맞아.”
지수는 더 묻지 않았다.
서해안 기지가 맞고 있고, 그 기지는 우리 것이면서 저쪽 것이다. 저쪽은 태평양으로 전력을 보내야 하는데 여기 묶여 있다. 묶여 있는 이유를 없애 달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하면, 우리는 이 전쟁의 참전국이 된다.
참고 표시가 붙은 표적은 준비 상태도 다르다.
북쪽 표적은 발사대 하나에 4발을 걸어 두고 돌아가면서 쓴다. 서쪽 표적은 그렇게 못 한다. 사거리가 다르고, 연료 장입량이 다르고, 비행 경로를 미리 넣어야 한다.
경로는 지형을 따라 그린다. 낮게 날면서 산과 골짜기를 짚어 가야 하니까, 어디를 넘고 어디로 돌아갈지를 미리 다 적어 넣는다.
그 경로를 그리다 보면 지도 위의 마을 이름들이 지나간다. 지수는 그 이름들을 읽지 않으려고 했다.
읽으면 외워진다.
1114에 지수는 두 줄을 넣었다.
넣는 절차는 다른 표적과 똑같았다. 좌표를 확인하고, 두 번 확인하고, 임도현과 한 번 더 보고, 입력한다.
똑같은데 손이 무거웠다.
“대위님.”
“왜?”
“이거 넣은 기록은 어디에 남습니까?”
“체계에 남지.”
“누구 이름으로요.”
지수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체계에는 부대 이름이 남는다. 사람 이름은 안 남는다. 명령을 내린 사람 이름은 명령서에 남고, 넣은 사람 이름은 아무 데도 안 남는다.
“…안 남아.”
“…….”
“왜 물어?”
“나중에 누가 이거 왜 넣었냐고 물으면, 대답할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지수는 그날 일지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참고 좌표 2건 입력. 입력자 대위 명지수.
규정에 없는 줄이었다. 일지에는 입력자를 적는 칸이 없다.
없는 칸에 적으면 나중에 누가 물을 것이다. 왜 이런 걸 적었느냐고.
그때 대답할 것이 있어야 한다고 지수는 생각했다.
1640에 임도현이 밖에서 들어왔다.
지수는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알았다. 걸음이 달랐다.
“…연락 됐어?”
“…예.”
“어머니.”
“무사하십니다. 시내는 안 맞았답니다.”
지수는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자기가 그동안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잘됐다.”
“…예.”
“왜 아까 안 말했어?”
임도현이 잠깐 가만히 있었다.
“…여기 다른 사람들은 아직 소식 못 들었습니다.”
“…….”
“운전병 하나는 부모님이 평택이고, 통신병은 오산입니다.”
지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저만 좋은 소식 들었는데, 그걸 크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
“그래서 대위님한테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예.”
“그리고 하나만 더.”
“예.”
“좋은 소식은 작게 말해도 돼. 안 말하지는 마.”
임도현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 게 어색해서 금방 그만뒀지만, 웃긴 웃었다.
열나흘째 밤에 소리가 났다.
발사 소리가 아니었다. 훨씬 작았고 훨씬 높았다. 벌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능선 너머에서 났다가 사라졌다.
“…들었어?”
“예. 들었습니다.”
임도현이 문을 조금 열었다. 소리는 다시 안 났다.
“무인기입니다.”
“알아.”
작은 무인기는 소리로 먼저 온다. 레이더에 잘 안 잡히기 때문이다. 새보다 조금 큰 것이 100미터 높이로 지나가면 화면에는 아무것도 안 뜨고 귀에만 들린다.
잡으려면 쏘아야 하고, 쏘면 그 자리에서 우리가 드러난다.
새보다 조금 큰 것 하나를 잡자고 대대 위치를 알려 주는 셈이다. 그래서 안 쏜다. 지나가는 것을 듣고만 있는다.
이것이 이 전쟁의 방식이었다. 저쪽은 값싼 것을 보내고, 우리는 그것을 비싼 것으로만 잡을 수 있고, 그래서 안 잡는다.
한 대가 지나갔다는 것은 사진이 한 장 생겼다는 뜻이다.
“…대대에 보고합니다.”
“해.”
0143에 대대가 답을 줬다.
인접 대대에서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세 곳이다. 세 곳이면 지나간 게 아니라 훑은 것이다.
“진지 이동 준비.”
“지금요?”
“지금.”
야간 이동은 90분이다. 그런데 그날 밤에는 비가 왔다.
비가 오면 자국이 깊어지고, 자국을 긁는 데 시간이 더 든다. 긁어도 다 안 지워진다. 비 온 뒤의 흙은 사람이 손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위님. 이거 다 못 지웁니다.”
“알아.”
“…그러면요?”
“못 지운 채로 가는 거야.”
0320에 이동을 시작했다.
초록 등 하나씩만 보고 따라간다. 시속 20킬로미터. 앞차와 간격 50미터. 간격이 좁으면 한 발에 둘이 죽는다.
지수는 맨 뒤 차에 탔다. 뒤에서 보면 앞의 것들이 다 보인다.
빗속에서 초록 점 다섯 개가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저것이 40톤짜리 다섯 대라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안다.
모르는 사람 눈에는 그냥 초록 점이다.
0451에 이동이 끝났다.
새 진지는 전에 쓰던 곳이었다. 두 주 전에 한 번 썼고, 그때 자국을 긁었다.
“…여기 전에 왔던 뎁니다.”
“그래.”
“두 번 쓰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안 되지.”
“…….”
“갈 데가 없어.”
진지는 정해진 수만 있다. 미리 닦아 놓고, 갱도를 파고, 진입로를 만들어 둔 곳만 쓸 수 있다. 아무 산에나 들어가서 세우는 것이 아니다.
열나흘 동안 네 번 옮겼고 진지는 다섯 개다.
“…대위님.”
“왜?”
“저쪽도 그거 압니까?”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형을 보면 발사대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경사가 몇 도 이하여야 하고, 진입로가 있어야 하고, 40톤이 지나갈 수 있는 다리가 있어야 한다. 그 조건을 지도에 걸면 후보가 수십 개로 줄고, 사진을 모으면 그중 몇 개가 하나씩 지워진다.
지수는 그 일을 사람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요즘은 기계가 사진을 본다. 어제 것과 오늘 것을 겹쳐 놓고 달라진 곳을 찾는 일은 기계가 사람보다 빠르다.
기계는 지치지 않고 계속 본다. 우리는 지친다.
숨는 쪽이 유리한 것은 처음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숨을 곳은 줄고 사진은 는다.
0612에 경보가 왔다.
“전 진지 대피. 반복한다. 전 진지 대피.”
지수는 처음으로 그 방송을 자기 부대 이야기로 들었다.
“인원 대피! 차량은 그대로 둔다!”
차량은 못 옮긴다. 40톤짜리를 6분 안에 어디로 옮기겠는가. 사람만 갱도 안쪽으로 들어간다.
갱도까지 90미터다. 뛰면 30초 안쪽이다.
30초는 짧은데, 그 30초 동안 사람은 여러 가지를 한다. 손에 든 것을 놓거나 안 놓거나, 옆 사람을 밀거나 잡거나, 뒤를 돌아보거나 안 돌아보거나.
지수는 뛰면서 세었다. 열여섯. 열일곱.
한 명이 안 보였다.
“운전병 어디 있어!”
“3호차에 있습니다! 시동 끄고 있습니다!”
“나오라고 해!”
임도현이 도로 뛰어나갔다.
지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지금 소리쳐서 사람 하나를 다시 밖으로 보냈다는 것을 알았다.
0616에 첫 발이 왔다.
능선 너머였다. 우리 자리가 아니었다.
두 번째도 능선 너머였다.
세 번째가 가까웠다. 갱도 안에서 흙이 떨어졌다. 전등이 한 번 꺼졌다가 들어왔다.
지수는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사람 수를 세었다.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이 없었다.
0624에 멎었다.
밖으로 나갔을 때 3호차 옆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임도현과 운전병이었다.
운전병은 헬멧을 안 쓰고 있었다. 임도현이 자기 것을 씌워 준 것이다.
지수는 두 사람 앞에 가서 섰다.
할 말이 있었다. 왜 시동을 끄느라 남아 있었느냐고 물어야 했고, 명령 없이 도로 뛰어나간 것도 짚어야 했다.
“…괜찮아?”
그 말이 먼저 나왔다.
“예.”
“괜찮습니다.”
“…….”
지수는 그 자리에 조금 더 서 있다가 돌아섰다.
피해는 1호차였다. 파편이 발사관 덮개를 뚫었다. 안에 든 것은 멀쩡했지만 덮개가 안 닫히면 못 쏜다.
발사대 다섯 대가 네 대가 됐다.
“…대위님. 이거 언제 고칩니까?”
“부품 와야 돼.”
“…언제 옵니까?”
지수는 그 질문에 답을 안 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답을 하면 이 아이가 그날부터 그 부품을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것이 제일 사람을 지치게 한다.
0730에 일지를 썼다.
이동 1회. 피격 1회. 인원 이상 없음. 장비 피해 1건.
지수는 마지막 줄에 하나를 더 적었다.
인원 이상 없음. 열여덟 명 전원.
숫자를 적을 필요는 없었다. 이상이 없으면 없다고만 쓰면 된다.
그런데 지수는 그날 그 숫자를 적고 싶었다.
열여덟 명이 몇 분 동안 열일곱 명이었다는 것을, 아무 데도 안 적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