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종이 한 장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엿새째부터 부품이 안 왔다.
정확히는 안 온 게 아니라 온 것을 다 썼다. 기지에는 예비품을 며칠분씩 쌓아 둔다. 그 며칠분이 엿새 만에 없어졌다.
“타이어.”
“없습니다.”
“몇 개 남았어?”
“메인 휠 타이어 4개 남았습니다. 하루에 두 개씩 나갑니다.”
“…이틀.”
짧은 활주로에서 자꾸 뜨고 내리면 타이어가 빨리 닳는다. 1,620미터에 내리려면 급제동을 걸어야 하고, 급제동은 고무를 갈아 없앤다.
활주로가 짧아서 타이어가 닳고, 타이어가 없으면 못 뜬다. 활주로 구멍 하나가 주는 피해다.
“중사님. 나머지 활주로는 언제 고칩니까?”
“공병이 하고 있어.”
“얼마나 걸립니까?”
“…묻지 마.”
태우는 더 묻지 않았다.
이레째에 정비반에서 사람이 둘 빠졌다.
한 명은 다쳤고 한 명은 다른 기지로 갔다. 오산이 더 크게 맞아서 인력을 빼 간 것이다.
정비반 정원은 아홉이었다. 지금 일곱이다. 그런데 띄워야 하는 기체 수는 줄지 않았다.
사람이 줄면 일이 나눠지는 게 아니라 겹친다. 무장을 걸던 사람이 급유를 하고, 급유를 하던 사람이 견인을 한다. 겹치면 손이 익지 않은 일을 하게 되고, 익지 않은 손이 하는 일에서 사고가 난다.
정비 사고는 전투 중에 안 난다. 전투가 며칠 이어진 다음에 난다.
오상혁이 그 말을 자주 했다. 엿새째부터는 안 했다. 말할 시간이 없었다.
“강 병장. 오늘부터 네가 2번 조 맡아.”
“…제가요?”
“도영이랑 둘이 해.”
“둘이서 4대는 못 합니다.”
“알아.”
“…….”
“못 하는데 해야 되는 거야. 그게 지금부터야.”
여드레째 밤에 태우는 처음으로 절차를 건너뛰었다.
무장을 걸고 나면 두 사람이 따로 확인한다. 단 사람이 확인하고, 다른 사람이 다시 확인한다. 그것을 이중 점검이라고 한다.
그날은 김도영이 다른 기체에 붙어 있었다.
태우는 혼자 걸고 혼자 확인했다. 잠금등은 녹색이었다.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없는데 태우는 그날 밤 잠을 못 잤다.
없는 문제가 제일 무섭다. 있었으면 고쳤을 것이다.
아흐레째 아침에 오상혁이 태우를 불렀다.
“어제 2번기 혼자 했지.”
“…예.”
“왜 보고 안 했어.”
“…….”
“강태우.”
“…보고하면 그 기체 못 띄웁니다.”
오상혁이 한참 태우를 봤다.
“맞아. 못 띄우지.”
“…….”
“그런데 네가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
“오늘부터 우리는 안전보다 숫자를 고른다는 뜻이야.”
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그 선택을 해. 매일 해. 그런데 병장이 혼자 그 결정을 하면 안 돼.”
“…예.”
“다음부터는 나한테 말해. 내가 결정할게.”
“…왜요.”
“책임지는 사람 계급이 높아야 나중에 네가 안 다쳐.”
열흘째에 배가 안 들어왔다.
군산은 바닷가다. 큰 짐은 배로 온다. 항공유도 배로 온다.
“왜 안 옵니까?”
“서해에 배 못 띄워.”
“…….”
“중국 잠수함 때문이야.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기차로 오면 되지 않느냐고 태우가 물었다. 철도는 살아 있었다. 다만 순위가 있었다.
앞에 평택이 있고 오산이 있다. 미군 기지가 먼저다. 우리 기지는 그다음이다.
“…우리가 뒤입니까?”
“그래.”
“왜요.”
오상혁이 담배를 물었다가 다시 뺐다. 기지 안에서는 못 피운다.
“저쪽이 없으면 우리가 혼자 싸워야 되니까.”
열흘째 저녁에 신문이 들어왔다.
사흘 지난 것이었다. 우편이 그만큼 밀렸다.
“읽어 봐.”
김도영이 읽었다.
“일면입니다. 대만 해협 상륙 저지 계속. 그다음이 예상 손실 분석입니다.”
“분석?”
“전쟁 전에 미국 쪽 연구소가 돌려 본 게 있답니다. 조건을 스물네 가지로 바꿔 가면서요.”
“…뭐라고 나왔는데.”
“상륙은 대부분 실패한다고 나왔답니다. 그런데 미국도 항공기를 270대쯤 잃는 걸로 잡았습니다.”
태우가 손을 멈췄다.
“…270대.”
“예.”
“그거 대대로 치면 몇 개야?”
김도영이 셈을 하려다 그만뒀다. 셀 필요가 없었다.
태우는 지금 여섯 대 중 두 대를 띄우고 있었다.
270대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누군가 계산해 놓은 숫자다. 계산해 놓고도 시작했다는 뜻이다.
“…형님.”
“왜?”
“그 270대에 우리도 들어갑니까?”
“…거기 미국 거야.”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들어갑니까?”
태우는 대답을 못 했다.
우리 숫자를 잡아 놓은 종이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다만 그건 신문에 안 나온다.
열하루째 아침에 출격이 넷에서 둘로 줄었다.
기체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기체는 여섯 대 있었다. 띄울 수 있는 것이 둘이었다.
하나는 타이어, 하나는 유압, 둘은 부품 대기, 하나는 조종사가 없었다.
태우는 그 목록을 보고 오래 서 있었다.
연평도 때 K-9 여섯 문 중에 세 문만 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두 문은 전자 장애였고 한 문은 불발탄이었다. 신병 교육 때 들었고, 그때는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여섯 대 중 두 대.
옛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날 저녁에 김도영이 태우에게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뭐야?”
“타이어 마모 기록입니다. 제가 열흘 동안 적었습니다.”
“…왜 적었어.”
“하루에 두 개씩 나간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세어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태우가 종이를 봤다. 날짜와 기체 번호와 착륙 횟수가 손으로 적혀 있었다.
“…어떻게 나왔는데.”
“착륙 횟수가 아니라 급제동 횟수랑 붙습니다. 급제동을 두 번 이상 건 날만 타이어가 나갑니다.”
“…….”
“그러니까 활주로가 1,620이 아니라 1,900만 돼도 하루에 한 개로 줄어듭니다.”
태우는 그 종이를 한참 봤다.
“도영아.”
“예.”
“이거 누가 시켰어?”
“아무도 안 시켰습니다.”
“…….”
“제가 단 기체가 안 돌아온 날부터 적기 시작했습니다.”
태우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날 밤 태우는 그 종이를 들고 오상혁에게 갔다. 오상혁은 그것을 대대에 올렸고, 대대는 공병에 넘겼다.
280미터였다.
이레 뒤에 활주로가 1,900미터로 열렸다. 원래 계획보다 사흘 빨랐다.
그 사흘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아무도 안 물어봤다. 종이 한 장에서 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셋뿐이었다.
활주로가 1,900미터로 열린 다음 날 새벽에 두 번째가 왔다.
이번에는 경보가 먼저 왔다.
0338. 첫 번째 때는 사이렌이 착탄 3분 전이었는데 이번에는 11분 전이었다. 8분을 더 벌었다.
8분이면 사람이 다 들어간다.
8분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태우는 안다. 첫날 이후로 조기경보기가 서해 상공에 상시로 떠 있다. 하나가 내려오면 하나가 올라간다. 사람이 안 자고 돌리는 것이다.
그 8분에 조종사 몇 명의 잠이 들어가 있다.
“전원 대피! 정비반 인원 확인!”
태우는 뛰면서 세었다. 일곱. 다 있었다.
엄폐호에 들어가 앉았을 때 태우는 자기 손을 봤다. 안 떨렸다.
떨리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그때는 몰랐다.
0349에 첫 요격이 있었다.
엄폐호 총안구로 하늘이 보였다. 남서쪽에서 흰 줄 두 개가 올라갔다. 우리 요격탄이다.
올라가는 것은 빠르고 조용하다. 소리는 나중에 온다.
들어오는 것은 두 가지다. 높게 오는 것과 낮게 오는 것.
탄도미사일은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진다. 궤적이 크게 그려지니까 일찍 보인다. 대신 떨어질 때가 빠르다.
순항미사일은 낮게 온다. 지형을 따라 기어 오듯이 온다. 늦게 보이면서도 빠르다.
늦게 보이는 쪽이 더 어렵다. 보고 나서 쏠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한참 위에서 점이 하나 반짝했다. 그게 다였다. 폭발이 크게 보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10킬로미터 위에서 터지면 그냥 점이다.
“…맞혔습니까?”
“맞혔지.”
“…….”
“두 발 쏴서 하나 잡은 거야.”
태우는 그 말을 셈해 봤다.
요격탄 두 발로 저쪽 한 발을 잡는다. 저쪽이 스무 발을 쏘면 우리는 마흔 발을 쏜다.
그리고 요격탄은 배로 온다. 배는 지금 안 들어온다.
막는 것도 소모다. 그것을 태우는 그날 아침에 알았다.
그리고 하나 더 알았다. 저쪽은 값싼 것을 많이 쏘고 우리는 비싼 것을 적게 쏜다.
들어오는 것 하나 값보다 그것을 잡는 요격탄 두 발 값이 더 나간다. 그래서 저쪽은 헛것을 섞어 보낸다. 아무것도 안 든 껍데기를 같이 날려서, 우리가 그것까지 잡게 만든다.
껍데기인지 아닌지는 잡고 나서야 안다. 안 잡으면 껍데기가 아니었을 때 사람이 죽는다.
그래서 다 잡는다. 다 잡으면 먼저 떨어지는 것은 우리 쪽 재고다.
0351부터 0404까지 열세 번 올라갔다.
여덟은 잡혔고 다섯은 안 잡혔다.
안 잡힌 다섯 중 셋은 활주로 남쪽 빈 땅에 떨어졌다. 저쪽도 정확하지는 않다. 하나는 유도로에 떨어졌고, 마지막 하나가 남쪽 구역으로 갔다.
남쪽은 미군 구역이다.
0416에 해제가 났다.
밖으로 나오면서 태우는 활주로부터 봤다. 이번에는 구멍이 둘이었다. 그것도 가장자리 쪽이었다.
1,900미터 중에 1,700은 살아 있었다.
“…이번엔 됐습니다.”
“됐지.”
오상혁이 그렇게 말했는데 남쪽을 보고 있었다.
0530에 남쪽 구역 지원 요청이 왔다.
미군 정비 인력이 모자랐다. 첫날에 아홉을 잃었고, 그 뒤로 보충이 안 왔다. 태평양 건너에서 오는 것은 대만 쪽으로 먼저 간다.
“두 명 보내라는데.”
“…제가 가겠습니다.”
태우가 먼저 말했다. 오상혁이 잠깐 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영이 데리고 가.”
남쪽 구역은 처음 가 봤다.
강화 격납고가 줄지어 있었는데, 두 동은 첫날에 없어졌고 오늘 하나가 더 깨졌다. 콘크리트가 두께 1미터 넘는데도 깨진다. 깨지라고 만든 것이 오기 때문이다.
미군 정비병 하나가 태우를 보고 손짓했다.
말은 안 통했다. 정확히는 통하는 단어가 열 개쯤 있었고, 그걸로 충분했다.
“Tire.”
“타이어. 예.”
“Jack. Here.”
손짓과 숫자와 공구 이름. 정비는 원래 그 세 가지로 한다. 나머지는 안 해도 된다.
태우는 그날 6시간을 남쪽에서 일했다. 잭을 받쳐 주고, 렌치를 건네주고, 볼트를 셌다.
미군 F-16과 우리 KF-16은 같은 기체에서 갈라져 나왔다. 그래서 손이 기억하는 자리가 대부분 같다. 패널 나사 자리도 같고, 유압 배관이 지나가는 길도 같다.
다른 것은 몇 군데였다. 태우가 손을 잘못 뻗으면 옆에서 손목을 잡아 방향을 돌려 줬다. 말은 안 했다.
김도영이 중간에 물었다.
“형님. 저 사람들 우리한테 고맙다고 안 합니까?”
“일하는 중에는 아무도 고맙다고 안 해.”
“…….”
“끝나고 나서 하지.”
끝나고 나서 그 사람이 태우에게 물통을 하나 건넸다. 그게 고맙다는 말이었다.
세 시간쯤 지나서 알았다. 여기 사람들도 아침에 손이 안 떨리고 있었다.
1140에 잔해 정리를 시작했다.
깨진 격납고 안에서 부서진 것들을 밖으로 냈다. 대부분 쇳조각이었다.
태우는 그 안에서 헬멧을 하나 주웠다.
정비용 헬멧이었다. 흙이 두껍게 앉아 있었고, 한쪽이 눌려 있었다.
턱끈이 채워져 있었다.
태우는 그것을 한참 들고 서 있었다.
턱끈은 다들 채운다. 채우라고 있는 것이다. 이 헬멧이 그 사람 것이라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태우는 그것을 잔해 더미에 안 놓았다.
“…형님. 그거 뭡니까?”
“…….”
“태우 형님.”
“…아무것도 아니야.”
태우는 그 헬멧을 들고 나왔다.
밖에서 흙을 털었다. 명찰 자리가 나왔다. 정비용 헬멧에는 명찰이 없다. 이름은 정비복에 붙는다.
당연한 것이었는데 태우는 그제야 알았다.
1620에 우리 구역으로 돌아왔다.
태우는 공구함을 열고 그 헬멧을 넣었다. 공구함은 각자 하나씩 쓰고 아무도 남의 것을 안 연다.
“강 병장. 남쪽 어땠어?”
“…똑같았습니다.”
“뭐가?”
“손 안 떨리는 게요.”
오상혁이 태우를 봤다.
“그거 좋은 거 아니야.”
“…예.”
“떨릴 때 조심하거든. 안 떨리면 안 조심해.”
그날 밤 태우는 공구함을 한 번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 자기 헬멧 턱끈을 풀었다. 열이틀 만이었다.
푸는 데 오래 걸렸다. 손이 조금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