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78자) · 강태우 · 6월 9일(수)

종이 한 장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6월 9일⁠, 엿새째 되는 날 0700에 부품이 바닥났다⁠. 안 온 것이 아니라 온 것을 다 썼다⁠. 기지에는 예비품을 며칠분씩 쌓아 두는데 이 며칠분이 엿새 만에 없어졌다⁠.

“⁠타이어 몇 개 남았어⁠?⁠”

“⁠메인 휠 타이어 넷입니다⁠. 하루에 두 개씩 나갑니다⁠.⁠”

“⁠…이틀이네⁠.⁠”

1⁠,620미터에 내리려면 급제동을 걸어야 했고⁠, 급제동은 고무를 갈아서 없앴다⁠. 활주로가 짧아서 타이어가 닳고 타이어가 없으면 못 뜨니⁠, 구멍 하나의 피해가 결국 바퀴까지 내려왔다⁠. 나머지 활주로는 언제 고치느냐고 태우가 물었을 때 오상혁 중사는 공병이 하고 있다고만 했다⁠. 얼마나 걸리느냐고 한 번 더 묻자 묻지 말라고 했다⁠.

이레째에 정비반에서 사람이 둘 빠졌다⁠. 하나는 다쳤고 하나는 오산으로 차출됐다⁠. 정원 열여섯이 열넷이 됐는데 띄워야 할 기체 수는 줄지 않았다⁠. 사람이 줄면 일이 나눠지는 게 아니라 겹쳤다⁠. 무장을 걸던 사람이 급유를 하고 급유를 하던 사람이 견인을 하면서⁠, 손에 안 익은 일을 하는 시간이 늘었다⁠. 정비 사고는 전투 중에 나지 않고 전투가 며칠 이어진 다음에 난다고 오상혁은 자주 말했는데⁠, 엿새째부터는 이 말을 할 시간도 없었다⁠.

“⁠강 병장⁠, 오늘부터 네가 2번 조 맡아⁠. 도영이랑 둘이 해⁠.⁠”

“⁠둘이서 네 대는 못 합니다⁠.⁠”

“⁠알아⁠. 못 하는데 해야 되는 거야⁠. 그게 지금부터야⁠.⁠”

이날 밤 둘은 네 대를 돌았다⁠. 태우가 걸이를 물리면 도영이 잠금 핀을 밀었고⁠, 도영이 안전선을 감는 동안 태우는 다음 기체 밑으로 카트를 끌었다⁠. 카트 바퀴 하나가 한쪽으로 쏠려서 끌 때마다 손목이 꺾였다⁠. 새벽 세 시쯤 도영이 기체 밑에 앉은 채 10초쯤 눈을 감았고⁠, 태우는 이것을 보고도 깨우지 않았다⁠. 10초가 지나자 도영이 스스로 눈을 떴다⁠.

*

여드레째 밤에 태우는 처음으로 절차를 건너뛰었다⁠. 무장을 걸고 나면 단 사람이 확인하고 다른 사람이 한 번 더 확인하는데⁠, 이날 도영은 다른 기체에 붙어 있었다⁠. 태우는 혼자 걸고 혼자 확인했다⁠. 잠금등은 녹색이었고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없는데도 이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있는 문제는 고치면 되지만 없는 문제는 손댈 데가 없었다⁠.

아흐레째 아침에 오상혁이 태우를 격납고 뒤로 불렀다⁠.

“⁠어제 2번기 혼자 했지⁠. 왜 보고 안 했어⁠?⁠”

“⁠…보고하면 그 기체 못 띄웁니다⁠.⁠”

말하면서 태우는 오상혁의 얼굴 대신 뒤쪽 벽에 걸린 소화기를 봤다⁠. 점검표 칸에 누가 지난달 날짜로 서명을 해 놓았는데⁠, 이후로는 칸이 비어 있었다⁠.

“⁠맞아⁠, 못 띄우지⁠. 그런데 네가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오늘부터 우리는 안전보다 숫자를 고른다는 뜻이야⁠.⁠”

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상혁이 담배를 물었다가 도로 뺐다⁠. 기지 안에서는 피울 수 없었다⁠.

“⁠나도 그 선택을 해⁠. 매일 해⁠. 그런데 병장이 혼자 그 결정을 하면 안 돼⁠. 다음부터는 나한테 말해⁠. 내가 결정할게⁠.⁠”

“⁠…왜 중사님이 합니까⁠?⁠”

“⁠책임지는 사람 계급이 높아야 나중에 네가 안 다쳐⁠.⁠”

열흘째에는 배가 안 들어왔다⁠. 군산은 바닷가라 큰 짐과 항공유가 배로 왔는데⁠, 서해 어딘가에 중국 잠수함이 있다는 말이 돌면서 배가 뜨지 않았다⁠. 철도는 살아 있었지만 순위가 있었다⁠. 평택이 먼저였고 오산이 다음이었으며 우리 기지는 뒤였다⁠. 저쪽이 없으면 우리가 혼자 싸워야 해서 그렇다고 오상혁이 말했다⁠.

*

열흘째 저녁에 사흘 지난 신문이 들어왔다⁠. 우편이 그만큼 밀려 있었다⁠. 도영이 정비고 벤치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일면입니다⁠. 대만 해협 상륙 저지 계속⁠. 그 밑에 예상 손실 분석이 있습니다⁠. 전쟁 전에 미국 쪽 연구소가 조건을 스물네 가지로 바꿔 가며 돌려 본 게 있답니다⁠. 상륙은 대부분 실패한다고 나왔는데⁠, 미국도 항공기를 270대쯤 잃는 걸로 잡았답니다⁠.⁠”

태우가 렌치를 내려놓았다⁠. 270대는 전쟁이 나기 전에 누군가 계산해 놓은 숫자였고⁠, 계산해 놓고도 시작한 숫자였다⁠.

“⁠형님⁠, 그 270대에 우리도 들어갑니까⁠?⁠”

“⁠거기는 미국 거야⁠.⁠”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들어갑니까⁠?⁠”

태우는 대답을 못 했다⁠. 우리 숫자를 잡아 놓은 종이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다⁠. 그런 건 신문에 안 나왔다⁠. 도영이 신문을 넘겼다⁠. 사회면에는 사진이 한 장 있었다⁠. 군산 시내 대형마트의 빈 진열대였고⁠, 라면과 생수 칸의 철제 선반이 바닥까지 드러나 있었다⁠. 제목은 라면·생수 사재기⁠, 주유소 줄 3킬로미터였다⁠. 도영이 사진 속 마트 간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자기 어머니가 다니는 곳이라고 했다⁠.

열하루째 아침에는 출격이 넷에서 둘로 줄었다⁠. 기체는 여섯 대 있었는데 뜰 수 있는 것이 둘이었다⁠. 하나는 타이어⁠, 하나는 유압⁠, 둘은 부품 대기⁠, 하나는 조종사가 없었다⁠. 태우는 이 목록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연평도 포격 때 K-9 여섯 문 가운데 세 문만 쐈다는 이야기를 신병 교육 때 들었다⁠. 두 문은 전자 장애였고 한 문은 불발탄이었다⁠. 당시에는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태우는 목록을 손가락으로 짚어 내려가며 다시 셌다⁠. 여섯 대 중 두 대였다⁠. 옛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날 저녁 도영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날짜와 기체 번호와 착륙 횟수가 볼펜으로 빼곡했다⁠.

“⁠타이어 마모 기록입니다⁠. 열흘 동안 적었습니다⁠. 하루에 두 개씩 나간다고 하셨는데 세어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착륙 횟수가 아니라 급제동 횟수랑 붙습니다⁠. 급제동을 두 번 이상 건 날만 타이어가 나갑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활주로가 1⁠,620이 아니라 1⁠,900만 돼도 하루에 한 개로 줄어듭니다⁠.⁠”

“⁠이거 누가 시켰어⁠?⁠”

“⁠아무도 안 시켰습니다⁠. 제가 단 기체가 안 돌아온 날부터 적기 시작했습니다⁠.⁠”

태우는 한참 종이를 봤다⁠. 줄마다 끝에 작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고⁠, 동그라미 친 날짜가 전부 짧은 활주로에서 급제동을 두 번 넘게 건 날이었다⁠. 이날 밤 태우는 이 종이를 들고 오상혁에게 갔다⁠. 오상혁은 대대에 올렸고 대대는 공병에 넘겼다⁠. 280미터를 더 살리는 계획이 이 종이 한 장에서 나왔다⁠.

6월 21일⁠, 이레 만에 활주로가 1⁠,900미터로 열렸다⁠. 원래 계획보다 사흘 빨랐다⁠. 활주로 끝에 새로 칠한 흰 선이 아직 덜 말라 군화 밑창에 묻어났다⁠. 이 사흘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

이튿날 0327⁠, 기지 담장 너머 오식도동 쪽 불빛이 한꺼번에 꺼졌다⁠. 가로등이 먼저 꺼지고 교차로 신호등이 뒤따라 꺼졌다⁠. 발전소 제어망에 장애가 났다는 말은 한참 뒤에 들었고⁠, 누가 그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태우는 야간 정비를 하다가 격납고 문간에서 이 어둠을 봤다⁠. 시내 쪽 하늘이 갑자기 기지 하늘보다 검어졌다⁠. 이 어둠 속 어딘가에 도영이 사진에서 짚었던 마트가 있었다⁠.

0338에 경보가 왔다⁠. 첫날에는 사이렌이 착탄 3분 전이었는데 이번에는 11분 전이었다⁠. 첫날 이후 조기경보기가 서해 상공에 늘 떠 있었다⁠. 하나가 내려오면 하나가 올라갔고⁠, 그 8분에는 조종사 몇 명의 잠이 들어가 있었다⁠. 태우는 엄폐호로 뛰면서 정비반을 셌다⁠. 열넷⁠, 다 있었다⁠. 엄폐호 안에 앉아 자기 손을 봤는데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당시에는 몰랐다⁠. 옆에서 도영이 헬멧 턱끈을 두 번 당겨 보고 있었다⁠. 첫날 밤 이후로 도영은 끈을 채울 때마다 두 번씩 당겼다⁠.

0349에 첫 요격이 있었다⁠. 총안구 틈으로 남서쪽에서 흰 줄 두 개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들어오는 것은 높게 오는 것과 낮게 오는 것 두 가지였다⁠. 탄도미사일은 궤적이 커서 일찍 보이는 대신 떨어질 때가 빨랐고⁠, 순항미사일은 지형을 따라 기어 오듯 낮게 와서 늦게 보였다⁠. 한참 위에서 점 하나가 반짝했다⁠. 10킬로미터 위에서 터지면 폭발도 그냥 점이었다⁠.

“⁠두 발 쏴서 하나 잡은 거야⁠.⁠”

오상혁의 말을 태우는 셈해 봤다⁠. 요격탄은 배로 오는데 배는 지금 안 들어왔다⁠. 저쪽은 값싼 것을 많이 쏘고 우리는 비싼 것을 적게 쏘았다⁠. 아무것도 안 든 껍데기를 섞어 날려서 우리가 이것까지 잡게 만들었고⁠, 껍데기인지는 잡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안 잡았다가 껍데기가 아니면 사람이 죽으니 다 잡았고⁠, 그러면 먼저 바닥나는 것은 우리 쪽 재고였다⁠. 막는 것도 소모였다⁠.

0351부터 0404까지 요격탄이 열세 번 올라갔다⁠. 여덟은 잡혔고 다섯은 안 잡혔다⁠. 다섯 중 셋은 활주로 남쪽 빈 땅에 떨어졌고 하나는 유도로에⁠, 마지막 하나는 남쪽 미군 구역에 떨어졌다⁠. 0416에 해제가 났다⁠. 이번 구멍은 가장자리 쪽 둘이었고 1⁠,900미터 중 1⁠,700이 살아 있었다⁠. 오상혁은 됐다고 말하면서 남쪽을 보고 있었다⁠.

0530에 남쪽 구역에서 지원 요청이 왔다⁠. 미군은 첫날 아홉을 잃은 뒤로 보충을 받지 못했다⁠. 태평양을 건너오는 것은 대만 쪽으로 먼저 갔다⁠. 태우가 먼저 가겠다고 했고 오상혁은 도영을 데려가라고 했다⁠.

남쪽 강화 격납고 하나가 새로 깨져 있었다⁠. 콘크리트가 두께 1미터가 넘었는데도 깨졌다⁠. 깨진 틈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식은 연기와 유압유와 젖은 시멘트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왔고⁠, 천장에서 끊어진 전선 한 가닥이 바람도 없는데 느리게 흔들리고 있었다⁠. 미군 정비병 하나가 태우에게 손짓했다⁠. 통하는 단어는 열 개쯤이었고 이걸로 충분했다⁠. 타이어⁠, 잭⁠, 여기⁠. 정비는 원래 손짓과 숫자와 공구 이름으로 했다⁠. 미군 F-16과 우리 KF-16은 같은 기체에서 갈라져 나와서 손이 기억하는 자리가 대부분 같았다⁠. 다른 몇 군데에서 태우가 손을 잘못 뻗으면 옆 사람이 말없이 손목을 잡아 방향을 돌려 줬다⁠.

“⁠형님⁠, 저 사람들 우리한테 고맙다고 안 합니까⁠?⁠”

“⁠일하는 중에는 아무도 고맙다고 안 해⁠. 끝나고 하지⁠.⁠”

6시간 뒤 이 사람은 태우에게 물통 하나를 건넸다⁠. 이게 고맙다는 말이었다⁠.

1140에 깨진 격납고 잔해를 치우다가 태우는 헬멧 하나를 주웠다⁠. 정비용이었고 흙이 두껍게 앉아 한쪽이 눌려 있었는데⁠, 턱끈이 채워진 채였다⁠. 턱끈은 다들 채우니 이것이 누구 것이라는 근거는 없었다⁠. 태우는 흙을 털었다⁠. 정비용 헬멧에는 명찰이 없고 이름은 정비복에 붙는다는 것을 그제야 떠올렸다⁠. 이것을 잔해 더미에 놓지 않고 들고 나왔다⁠.

1620에 우리 구역으로 돌아와 공구함을 열고 헬멧을 넣었다⁠. 공구함은 각자 하나씩 쓰고 아무도 남의 것을 열지 않았다⁠.

“⁠강 병장⁠, 남쪽은 어땠어⁠?⁠”

“⁠똑같았습니다⁠. 손 안 떨리는 게요⁠.⁠”

“⁠그거 좋은 거 아니야⁠. 떨릴 때 조심하거든⁠. 안 떨리면 안 조심해⁠.⁠”

이날 밤 태우는 자기 헬멧 턱끈을 풀었다⁠. 열여드레 만이었고⁠, 푸는 데 오래 걸렸다⁠. 버클에서 빠진 끈 끝이 턱 밑 살갗에 붉은 줄 하나를 남겨 놓았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한줄요약2026.09.06· 3화

    활주로가 짧아서 타이어가 닳는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말인 줄 몰랐어요.

    • 네오작가2026.09.07

      구멍 하나가 바퀴까지 내려오는 과정을 차례대로 쓰고 싶었어요. 3화가 그 이야기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