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이상 없음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0412.

산이 하나 통째로 조용했다.

명지수는 사격지휘차 안에 있었다. 차라고 부르지만 바퀴 달린 방이다. 안에 사람 넷이 앉으면 무릎이 서로 닿는다.

“3호기 이동 완료. 위장망 전개 끝났습니다.”

“흔적은.”

“긁었습니다.”

“다시 봐.”

임도현 하사가 밖으로 나갔다.

바퀴 자국을 긁는 것이 마지막 순서다. 이동식 발사대(차량에 실어 옮기는 미사일 발사 장치)는 무겁다. 젖은 흙에 자국이 남고, 자국은 위에서 보면 화살표가 된다. 화살표 끝에 우리가 있다.

발사대는 산 안에 있었다.

정확히는 산을 파서 만든 갱도 안에 대기하고, 쏠 때만 밖으로 나온다. 나오는 길은 셋이고, 그중 어느 길로 나갈지는 그날 아침에 정한다.

진지도 하나가 아니다. 지도에 찍힌 발사 진지가 여럿이고, 그중 어디에 실제로 차가 서 있는지는 대대장과 몇 사람만 안다.

숨는 것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매달린다는 것을 지수는 임관하고 나서 알았다. 사관학교에서는 쏘는 법을 배웠지 숨는 법은 안 배웠다.

지수는 화면을 봤다. 표적란이 비어 있었다.

0418에 위성 통과 시간표가 갱신됐다.

정찰위성은 정해진 궤도로 돈다. 언제 머리 위를 지나는지 계산할 수 있다. 그 4분 동안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도 안 걷는다.

“통과 4분 전입니다.”

“정지.”

산이 더 조용해졌다.

지수는 그 4분이 싫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티가 나는 순간이라고 늘 생각했다. 숨을 참는 사람이 제일 눈에 띄는 것처럼.

0422에 통과가 끝났다.

“해제.”

절차 점검을 시작했다. 관성항법 장치(별도의 신호 없이 자기가 움직인 만큼을 계산해 위치를 아는 장치) 정렬, 발사관 압력, 냉가스 밸브.

우리 발사 방식은 발사관에서 미사일을 압축가스로 밀어 올린 다음 공중에서 점화한다. 그래야 발사대가 안 녹는다. 발사대가 살아야 다음 발을 쏜다.

“대위님.”

“말해.”

“오늘 우리 쏩니까?”

“표적이 안 왔어.”

“…예.”

“오면 쏘고, 안 오면 안 쏴.”

“…쏘고 싶으십니까?”

지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안 되는 질문이었다. 쏘고 싶다고 하면 이 아이가 오늘 하루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낼 것이고,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임도현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스물세 살이다. 지수보다 여덟 살 어리다.

지수가 이 병과를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여기는 완력으로 서는 자리가 아니다.

숫자를 두 번 확인하고, 절차를 건너뛰지 않고, 화면이 확신에 차 있어도 한 번 더 의심하는 사람이 필요한 자리다. 그 일이라면 자기가 남들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는 그 생각이 맞았다.

부대에 여자 간부가 지수 말고 둘 더 있다. 처음 왔을 때 그 둘이 지수에게 해 준 말은 하나였다. 잘하면 그냥 잘하는 거고, 틀리면 여자라서 틀린 게 된다.

그래서 지수는 두 번 확인한다.

0457에 대대 무전이 열렸다.

“전 진지. 상황 청취.”

지수는 볼륨을 올렸다.

“0451부, 서해안 방면 다수 피격. 평택, 군산, 오산. 반복한다. 평택, 군산, 오산.”

무전이 끊겼다가 다시 왔다.

“현 시점 우리 진지 피해 없음. 대기 상태 유지.”

“…유지요?”

“유지.”

지수는 문을 열고 밖으로 한 발 나갔다.

남서쪽이 군산이다. 여기서 90킬로미터쯤 된다.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새가 울고 있었다.

9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면 사람이 죽어도 소리가 안 난다. 그것이 이 나라의 크기다. 한쪽 끝이 부서지는 동안 다른 쪽 끝에서는 새가 운다.

지수는 다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지수는 표적란을 다시 봤다.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이것이 이 자리의 전쟁이다. 저쪽이 맞는 동안 이쪽은 아무 일도 없다.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임무다.

쏘면 위치가 드러난다. 발사 화염은 위성이 보고, 연기는 30초가 남는다. 한 번 쏜 진지에 무엇이 오는지는 계산이 이미 되어 있다. 그래서 쏘는 시점을 우리가 정하지 않는다.

지수는 표적을 고르지 않는다. 위에서 내려온 목록을 절차대로 확인하고 넣을 뿐이다.

고르지 않는 사람이 가장 정확히 안다. 무엇을 골랐는지를.

그리고 오늘은 아무것도 안 골랐다는 것도 안다.

전략사령부(미사일·위성·사이버 같은 전략 자산을 한데 묶어 지휘하는 합참 예하 사령부)에서 표적을 안 내리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쏘는 순간 우리가 이 전쟁의 참전국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맞고만 있다. 맞기만 하면 우리는 피해국이고, 한 발이라도 쏘면 그날부터 교전국이다.

그 선을 어디에 그을지는 서울이 정한다. 지수의 화면은 그 결정이 내려오는 자리일 뿐이다.

0503에 임도현의 손이 멈췄다.

지수는 그것을 봤다. 밸브 점검표에 체크를 하다가 펜이 한 칸에서 안 움직이고 있었다.

“하사.”

“…예.”

“고향이 어디야?”

“군산입니다.”

“…….”

“어머니가 시내에 계십니다. 기지에서 6킬로미터쯤 됩니다.”

지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이 세 가지 있었다. 괜찮을 거라고 하는 것, 나중에 확인해 보자고 하는 것, 지금은 임무에 집중하라고 하는 것.

세 개 다 거짓말이거나 잔인했다.

“임 하사.”

“예.”

“지금 이 차 안에서 밸브 압력 제일 정확하게 읽는 사람이 너야.”

“…….”

“그러니까 그 손 그대로 써. 다른 데 쓰지 말고.”

임도현이 펜을 다시 움직였다. 체크 하나가 들어갔다.

0540에 표적 하나가 내려왔다.

지수는 좌표를 확인하고, 두 번 확인하고, 입력했다. 발사 준비 상태가 녹색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옆에 한 글자가 붙어 있었다.

보류.

“…보류요?”

“보류.”

준비는 다 되어 있고 쏘지는 않는다. 이 상태로 몇 시간을 있을지는 아무도 안 알려 준다.

지수는 손을 무릎에 놓고 앉아 있었다.

발사 준비 상태를 유지하면 전지가 닳고, 관성항법 장치는 시간이 갈수록 오차가 쌓인다. 그래서 40분에 한 번씩 정렬을 다시 잡아야 한다.

정렬을 잡고, 기다리고, 또 잡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유지하는 데도 힘이 든다.

이 자리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쏘는 것이 아니다. 쏠 수 있는 상태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

0612에 교대 시간이 됐다.

“임 하사. 나가서 30분 쉬어.”

“괜찮습니다.”

“나가.”

“…예.”

임도현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지수는 알고 있었다. 밖에 나가도 통화는 안 될 것이다. 민간 통신은 새벽부터 끊겨 있었고, 군 회선으로 사적인 전화를 걸 수는 없다.

그래도 나가서 서 있는 것과 앉아서 밸브를 세는 것은 다르다. 서 있으면 적어도 남쪽을 볼 수 있다.

30분 뒤에 임도현이 들어왔다. 아무 말도 안 했고 지수도 묻지 않았다.

그날 지수의 부대는 한 발도 쏘지 않았다.

일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이상 없음.

사흘 동안 진지를 네 번 옮겼다.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안 된다. 오래 있으면 사진이 쌓이고, 사진이 쌓이면 사람이 판단한다. 사람이 판단하기 전에 옮기는 것이 규칙이다.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위장망을 걷고, 발사대를 갱도 밖으로 빼고, 이동하고, 다시 덮고, 자국을 긁는다. 밤에만 한다.

밤에 옮길 때는 등을 안 켠다. 운전병은 야간투시경을 쓰고, 앞차 뒤쪽에 붙은 작은 초록 등 하나만 보고 따라간다. 그 등은 위에서는 안 보이고 뒤에서만 보이도록 각도를 깎아 놓았다.

시속 20킬로미터를 못 넘긴다. 40톤짜리가 산길에서 그 이상 가면 자국이 깊어진다.

한 번 옮기는 데 90분이다. 90분 동안 대대 전체가 밖에 나와 있다. 지수는 그 90분이 하루 중 가장 싫었다.

나흘째 아침에 임도현의 눈이 빨갰다.

“몇 시간 잤어?”

“…2시간입니다.”

“오늘 낮에 자.”

“괜찮습니다.”

“괜찮은 거랑 자는 거랑 상관없어. 명령이야.”

지수도 사흘 동안 6시간을 잤다. 그 말을 하면서 자기 얼굴이 어떤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1140에 표적 목록이 내려왔다.

지수는 화면을 봤다. 표적란에 처음으로 무언가 떠 있었다.

“…대위님.”

“봤어.”

넉 줄이었다.

그런데 좌표가 예상과 달랐다.

지수는 사흘 동안 서해 쪽을 생각하고 있었다. 서해안 기지를 때리는 것은 중국 항공기고, 그 항공기가 뜨는 곳은 산둥반도다.

목록에 산둥은 없었다.

넉 줄 다 북쪽이었다. 해안포 진지 셋과 방사포 진지 하나.

해안포는 어려운 표적이다. 갱도 안에 넣어 두고, 문을 열고, 쏘고, 도로 들어간다.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몇 분뿐이다.

그래서 포를 맞히는 게 아니라 갱도 입구를 맞힌다. 문이 막히면 안에 있는 포는 살아 있어도 못 쏜다.

지수는 그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가 계산에 안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지수의 화면에는 안 뜬다.

“…중국이 아닙니까?”

“아니야.”

“…….”

“중국을 때리면 우리가 이 전쟁에 들어가는 거야. 저기는 원래부터 우리 상대였고.”

임도현이 화면을 한참 봤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때리는 건, 우리를 때린 쪽이 아니라…”

“말 끝까지 하지 마.”

지수는 그렇게 잘랐다. 자르면서 자기가 왜 자르는지 알았다. 그 문장을 끝까지 들으면 자기도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발사 준비를 시작했다.

관성항법 장치 정렬, 발사관 압력, 냉가스 밸브. 그다음이 좌표 입력이다.

지수는 좌표를 한 번 넣고, 화면에서 눈을 뗐다가, 다시 봤다.

세 번째 줄이 걸렸다.

좌표를 지도에 얹어 보면 그 점이 어디에 앉는지 나온다. 세 번째 점은 해안포 진지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와 있었다.

200미터쯤이었다.

200미터 남쪽에는 집이 스물 몇 채 있었다.

“…임 하사.”

“예.”

“이거 지도 다시 띄워 봐. 축척 크게.”

임도현이 띄웠다. 둘이 같이 봤다.

“…진지 끝자락 아닙니까?”

“진지 끝은 여기까지야.”

“…….”

“여기서부터는 진지가 아니야.”

절차대로 하면 그냥 넣으면 된다. 좌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고, 확인은 위에서 이미 했고, 발사대대의 일은 넣는 것이다.

넣으면 아무도 지수를 탓하지 않는다.

발사 예정 시각까지 12분 남아 있었다.

되물으면 12분 안에 답이 안 올 수도 있다. 답이 안 오면 발사가 밀리고, 밀리면 그 사이에 저쪽이 자리를 옮긴다. 그러면 넉 줄 중 하나가 헛것이 된다.

지수는 12분을 봤다.

그리고 선임 둘이 처음에 해 준 말을 생각했다. 잘하면 그냥 잘하는 거고, 틀리면 여자라서 틀린 게 된다.

되물었다가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그 이야기는 오래 남을 것이다.

“…확인 요청 올려.”

“예?”

“세 번째 좌표 재확인. 사유는 인접 민간 구역.”

“…예.”

임도현이 올렸다.

3분 뒤에 답이 왔다.

좌표 정정. 남 200. 재확인 요망 사항 확인함.

지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정정이었다. 처음 온 것이 틀렸던 것이다.

“…대위님.”

“넣어.”

“예.”

1203에 발사 명령이 내려왔다.

발사대가 갱도 밖으로 나갔다. 밖에 있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발사대는 나가서 먼저 다리를 편다. 차체 네 귀퉁이에서 유압 받침이 내려와 땅을 짚는다. 그래야 발사관을 세워도 안 흔들린다.

받침 밑에는 철판을 깐다. 안 깔면 받침이 흙에 박히고, 박히면 각도가 틀어진다. 각도가 0.1도 틀어지면 200킬로미터 밖에서 몇백 미터가 달라진다.

발사관이 섰다. 90도 가까이 곧게 섰다.

“안전 구역 이격 완료.”

“발사.”

압축가스가 미사일을 밀어 올렸다. 발사관 위로 하얀 것이 쑥 올라왔고, 공중에서 한 번 멈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다음에 점화했다.

멈춘 것처럼 보이는 그 0.5초가 지수는 늘 길게 느껴졌다.

소리가 늦게 왔다. 소리가 왔을 때는 이미 하늘에 흰 줄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4발이 나갔다. 간격은 8초였다.

지수는 그 흰 줄이 북쪽으로 휘어지는 것까지 봤다. 그다음은 못 본다.

어디에 떨어졌는지, 갱도 문이 막혔는지, 그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 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 본다.

“이탈. 지금.”

연기는 30초가 남는다. 30초면 저쪽 위성이 한 번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발사대가 갱도로 들어가고, 위장망이 덮이고, 임도현이 나가서 자국을 긁었다.

1226에 전 인원 복귀했다.

차 안이 조용했다.

“대위님.”

“왜?”

“아까 그거 그냥 넣었으면 어떻게 됐습니까?”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안 한 게 아니라 대답이 없었다. 그 집 스물 몇 채에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지수는 지금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른다.

1240에 일지를 썼다.

사흘 동안 지수는 같은 것을 적었다. 이상 없음, 이상 없음, 이상 없음.

오늘은 다른 것을 적었다.

발사 4발. 좌표 정정 1건.

그 한 줄을 적는 데 지수는 한참이 걸렸다. 좌표 정정 1건이라는 여섯 글자 안에, 되물을지 말지 12분을 재던 것과 200미터와 집 스물 몇 채가 다 들어가 있었다.

일지에는 그런 것을 적는 칸이 없다.

임도현이 지수 뒤에서 그 줄을 봤다.

“…대위님.”

“왜?”

“저 오늘 낮에 안 자겠습니다.”

“자라고 했잖아.”

“대위님이 두 번 보시는 거, 옆에서 같이 보겠습니다.”

지수는 펜을 놓았다.

“…그러면 세 번이 되네.”

“예.”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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