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05자) · 명지수 · 6월 4일(금)
이상 없음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0412, 산 하나가 통째로 조용했다. 명지수 대위는 사격지휘차 안에 있었다. 차라고 부르지만 바퀴 달린 방이었고, 넷이 앉으면 무릎이 서로 닿았다. 계기판의 초록 불빛이 사람들 얼굴 아래쪽만 비춰서 다들 턱이 먼저 보였다.
“3호기 이동 완료. 위장망 전개 끝났습니다.”
“흔적은?”
“긁었습니다.”
“다시 봐.”
임도현 하사가 밖으로 나갔다. 바퀴 자국을 긁는 것이 마지막 순서였다. 이동식 발사대(차량에 실어 옮기는 미사일 발사 장치)는 무거워서 젖은 흙에 자국이 남고, 이 자국은 위에서 보면 화살표가 된다. 화살표 끝에 우리가 있었다.
발사대는 산을 파서 만든 갱도 안에서 기다리다가 쏠 때만 밖으로 나왔다. 나가는 길이 셋이었고 어느 길로 나갈지는 이날 아침에 정했다. 지도에 찍힌 진지도 여럿이어서, 실제로 차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대대장과 몇 사람만 알았다. 숨는 일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매달린다는 것을 지수는 임관하고 나서 배웠다. 사관학교에서는 쏘는 법을 가르쳤지 숨는 법은 안 가르쳤다.
0418에 위성 통과 시간표가 갱신됐다. 정찰위성은 정해진 궤도로 돌기 때문에 머리 위를 언제 지나는지 계산할 수 있었고, 그 4분 동안은 사람도 걷지 않았다.
“통과 4분 전입니다.”
“정지.”
산이 한 겹 더 조용해졌다. 지수는 그 4분이 싫었다. 숨을 참는 사람이 제일 눈에 띄는 것처럼, 아무것도 안 하는 순간이 가장 티가 난다고 늘 생각했다. 0422에 해제가 났고 점검이 다시 돌았다. 관성항법 장치(바깥 신호 없이 자기가 움직인 만큼을 계산해 위치를 아는 장치) 정렬, 발사관 압력, 냉가스 밸브. 이 발사대는 미사일을 압축가스로 밀어 올린 뒤 공중에서 점화한다. 그래야 발사대가 녹지 않고, 발사대가 살아야 다음 발을 쏜다.
“대위님, 오늘 우리 쏩니까?”
“표적이 안 왔어. 오면 쏘고, 안 오면 안 쏴.”
“…쏘고 싶으십니까?”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쏘고 싶다고 하면 이 스물세 살이 오늘 하루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낼 것이고,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이 병과를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완력으로 서는 자리가 아니라 숫자를 두 번 확인하고, 화면이 확신에 차 있어도 한 번 더 의심하는 사람이 필요한 자리였다. 부대에 여자 간부는 지수 말고 둘 더 있었는데, 처음 왔을 때 이 둘이 해 준 말은 하나였다. 잘하면 그냥 잘하는 거고, 틀리면 여자라서 틀린 게 된다. 그래서 지수는 두 번 확인했다.
0457에 대대 무전이 열렸다.
“전 진지 상황 청취. 0451부, 서해안 방면 다수 피격. 평택, 군산, 오산. 반복한다, 평택, 군산, 오산. 현 시점 우리 진지 피해 없음. 대기 상태 유지.”
지수는 문을 열고 한 발 나갔다. 남서쪽으로 90킬로미터쯤이 군산이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산비탈 참나무 어딘가에서 새가 울었다. 9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면 사람이 죽어도 소리가 안 났다. 한쪽 끝이 부서지는 동안 다른 쪽 끝에서 새가 우는 것이 이 나라의 크기였다.
0503에 임도현의 펜이 밸브 점검표의 한 칸에서 멈췄다. 지수는 이것을 봤다.
“하사, 고향이 어디야?”
“군산입니다. 어머니가 시내에 계십니다. 기지에서 6킬로미터쯤 됩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은 세 가지였다. 괜찮을 거라고 하는 것, 나중에 확인해 보자고 하는 것, 지금은 임무에 집중하라고 하는 것. 셋 다 거짓말이거나 잔인했다.
“임 하사, 지금 이 차 안에서 밸브 압력 제일 정확하게 읽는 사람이 너야. 그러니까 그 손 그대로 써. 다른 데 쓰지 말고.”
임도현이 펜을 다시 움직였다. 체크 하나가 칸 안에 들어갔고, 펜 끝이 종이를 조금 세게 눌러 뒷장에 자국이 남았다.
*
0530, 서울. 국가안보회의가 끝난 회의실 앞 복도는 카펫이 두꺼워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국가안보실 차장 한도겸은 회의실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다가 벽 쪽에 서 있던 대령 하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전략사령부(미사일·위성·사이버 같은 전략 자산을 한데 묶어 지휘하는 합참 예하 사령부)에서 나온 연락관이었다. 한도겸은 쉰 중반이었고, 밤새 회의를 하고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지 않았다.
“합참은 산둥 비행장을 지금 목록에 올리자고 했습니다. 평택과 군산을 친 비행기가 거기서 떴습니다.”
연락관이 먼저 말했다. 한도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그 비행장을 치는 순간 우리는 이 전쟁의 당사국이 됩니다. 지금 우리는 맞은 나라예요. 맞은 나라는 버티면 이깁니다. 쏘지 않고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겁니다.”
“부대는 준비를 끝냈습니다.”
“준비는 그대로 두세요. 준비돼 있다는 것도 말이 됩니다. 저쪽이 그걸 읽게 두는 겁니다.”
한도겸은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 한 줄로 정리했다.
“북쪽만 합니다. 중국은 안 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북쪽도 보류입니다.”
연락관이 수첩에 받아 적었다. 한도겸은 자기 손으로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복도 끝 창으로 광화문 쪽 하늘이 막 밝아 오고 있었고, 이 아래 도로에는 출근하는 차가 평소처럼 신호에 걸려 서 있었다.
*
0540에 표적 하나가 내려왔다. 지수는 좌표를 확인하고, 두 번 확인하고, 입력했다. 발사 준비 상태가 녹색으로 올라갔고 이 옆에 글자 둘이 붙어 있었다. 보류.
준비는 다 되어 있는데 쏘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 상태로 몇 시간을 있을지는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 준비 상태를 유지하면 전지가 닳고 관성항법 장치에는 시간이 갈수록 오차가 쌓여서, 40분에 한 번씩 정렬을 다시 잡아야 했다. 잡고, 기다리고, 또 잡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유지하는 데도 힘이 들었다. 차 안 공기가 사람 넷의 숨으로 데워져 작은 창 안쪽에 김이 서렸다. 지수는 소매로 이것을 한 번 닦았다가 그만뒀다. 닦아도 밖에는 위장망의 그물눈과 이 너머 검은 참나무 둥치밖에 보이지 않았다.
0612에 지수는 임도현을 밖으로 내보냈다. 민간 통신은 새벽부터 끊겨 있었고 군 회선으로 사적인 전화를 걸 수는 없었다. 그래도 밖에 서 있으면 적어도 남쪽을 볼 수는 있었다. 30분 뒤에 들어온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수도 묻지 않았다.
이날 대대는 한 발도 쏘지 않았다. 일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이상 없음.
*
사흘 동안 진지를 네 번 옮겼다.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사진이 쌓이고, 사진이 쌓이면 누군가 판단을 한다. 판단하기 전에 옮기는 것이 규칙이었다. 밤에만 움직였고 등은 켜지 않았다. 운전병은 야간투시경을 쓰고 앞차 꽁무니에 붙은 작은 초록 등 하나만 보고 따라갔는데, 이 등은 위에서는 안 보이고 뒤에서만 보이도록 갓을 깎아 놓은 것이었다. 40톤짜리가 산길에서 시속 20킬로미터를 넘기면 자국이 깊어졌다. 한 번 옮기는 데 90분이었고, 그 90분 동안 대대 전체가 밖에 나와 있었다.
나흘째인 6월 8일 1140, 표적 목록이 내려왔다. 넉 줄이었다. 지수는 사흘 내내 서해 쪽을 생각하고 있었다. 서해안 기지를 친 것은 중국 항공기였고 이 항공기가 뜨는 곳은 산둥반도였다. 목록에 산둥은 없었다. 넉 줄 다 북쪽이었고, 해안포 진지 셋과 방사포 진지 하나였다.
“…중국이 아닙니까?”
“아니야. 중국을 때리면 우리가 이 전쟁에 들어가는 거야. 저기는 원래부터 우리 상대였고.”
“그러면 우리가 지금 때리는 건, 우리를 때린 쪽이 아니라….”
“말 끝까지 하지 마.”
지수는 자르면서 자기가 왜 자르는지 알았다. 이 문장을 끝까지 들으면 자기도 대답을 해야 했다.
좌표를 넣고 화면에서 눈을 뗐다가 다시 봤을 때 세 번째 줄이 걸렸다. 좌표를 지도에 얹으면 점이 어디에 앉는지 나왔다. 세 번째 점은 해안포 진지에서 남쪽으로 200미터쯤 내려와 있었고, 그 200미터 남쪽에 집이 스물 몇 채 있었다.
“임 하사, 지도 다시 띄워. 축척 크게.”
“…진지 끝자락 아닙니까?”
“진지 끝은 여기까지야. 여기서부터는 진지가 아니야.”
절차대로라면 그냥 넣으면 됐다. 좌표는 위에서 내려왔고 확인도 위에서 했으며, 발사대대의 일은 넣는 것이었다. 넣으면 아무도 지수를 탓하지 않았다. 발사 예정 시각까지 12분이 남아 있었다. 되물으면 12분 안에 답이 안 올 수도 있었고, 답이 안 오면 발사가 밀리고, 밀리는 사이에 저쪽 포가 자리를 옮기면 넉 줄 중 하나가 헛것이 됐다. 되물었다가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이 이야기는 오래 남을 것이었다. 여자라서 틀린 것으로.
지수는 화면 구석의 12를 봤다. 11로 바뀌었다.
“확인 요청 올려. 세 번째 좌표 재확인, 사유는 인접 민간 구역.”
3분 뒤에 답이 왔다. 좌표 정정, 남 200, 재확인 요망 사항 확인함. 지수는 이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처음 온 것이 틀렸던 것이다.
“넣어.”
1203에 발사 명령이 내려왔다. 발사대가 갱도 밖으로 나가 네 귀퉁이에서 유압 받침을 내렸다. 받침 밑에는 철판을 깔았다. 안 깔면 받침이 흙에 박히고, 박히면 각도가 틀어지고, 0.1도가 틀어지면 200킬로미터 밖에서 몇백 미터가 달라졌다. 발사관이 거의 곧게 섰다.
“안전 구역 이격 완료.”
“발사.”
압축가스가 미사일을 밀어 올렸다. 하얀 몸통이 관 위로 쑥 솟아 공중에서 한 번 멈추는 것처럼 보였고, 다음에 불이 붙었다. 멈춘 것처럼 보이는 그 0.5초가 지수에게는 늘 길었다. 소리는 늦게 왔고, 소리가 왔을 때는 이미 하늘에 흰 줄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8초 간격으로 4발이 나갔다. 지수는 흰 줄이 북쪽으로 휘는 데까지 봤다. 다음은 볼 수 없었다. 어디에 떨어졌는지, 갱도 문이 막혔는지, 이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 쏘는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탈, 지금.”
연기는 30초 남았고, 30초면 저쪽 위성이 한 번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발사대가 갱도로 들어가고 위장망이 덮이고 도현이 나가서 자국을 긁었다. 1226에 전 인원이 복귀했다.
“대위님, 아까 그거 그냥 넣었으면 어떻게 됐습니까?”
지수는 대답이 없었다. 이 집 스물 몇 채에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지수는 지금도 몰랐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었다.
1240에 일지를 썼다. 사흘 동안 같은 것을 적었다. 이상 없음, 이상 없음, 이상 없음. 오늘은 다른 것을 적었다. 발사 4발, 좌표 정정 1건. 이 한 줄 안에 12분과 200미터와 집 스물 몇 채가 다 들어가 있었지만 일지에는 그런 것을 적는 칸이 없었다.
도현이 뒤에서 이 줄을 봤다.
“저 오늘 낮에 안 자겠습니다. 대위님이 두 번 보시는 거, 옆에서 같이 보겠습니다.”
“…그러면 세 번이 되네.”
지수는 펜을 놓았다. 뚜껑을 닫지 않은 펜이 일지 위를 굴러 좌표 정정이라는 글자 앞에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