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턱끈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0451.

태우는 KF-16 왼쪽 날개 밑에 누워 있었다. 파일런(무장을 매다는 장착대)에 유도폭탄을 걸고 잠금 핀을 밀어 넣는 중이었다. 핀이 절반에서 걸렸다.

“강 병장. 몇 분?”

“2분입니다.”

“1분에 끝내.”

오상혁 중사가 카트 반대편에서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낮으면 급한 것이다.

태우는 핀을 빼서 다시 넣었다. 이번엔 들어갔다. 잠금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걸렸습니다.”

“다음.”

“중사님. 오늘 왜 이렇게 급합니까?”

“나도 몰라.”

“…….”

“위에서 안 알려 주면 아래에서는 손만 빨리 움직이는 거야.”

무장 장착은 순서가 정해져 있다. 견인차로 폭탄을 날개 밑까지 밀어 넣고, 카트의 유압 받침을 올려 높이를 맞추고, 걸이 두 개를 파일런 고리에 동시에 물린다. 하나만 물리면 폭탄이 기울어져 다른 하나가 안 들어간다. 물리고 나면 잠금 핀, 그다음 안전선, 마지막이 신관 안전핀이다.

안전핀은 마지막에 뽑는다. 뽑고 나면 그 폭탄은 살아 있는 것이 된다.

태우가 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

두 번째 기체로 옮겨 갔다. 새벽 4시에 무장을 다는 날은 훈련이 아니다. 훈련이면 전날 저녁에 붙인다. 태우는 그 정도는 알았다. 스물두 달째였다.

0457에 사이렌이 울렸다.

훈련 사이렌은 세 번 끊어서 운다. 이건 안 끊겼다.

“엎드려!”

태우는 엎드리지 않았다. 손에 폭탄 신관 안전핀이 들려 있었고, 그것부터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0.5초쯤 서 있었다. 나중에 그 0.5초를 여러 번 생각하게 된다.

오상혁이 태우의 등을 쳐서 엎어 놓았다.

첫 발이 활주로 북쪽 끝에 떨어졌다.

소리가 먼저 오지 않았다. 땅이 먼저 왔다. 아스팔트가 아래에서 위로 한 번 밀렸고, 태우의 턱이 콘크리트에 부딪혔다. 그다음에 소리가 왔다. 소리는 귀로 들어오지 않고 가슴으로 들어왔다.

“기어! 서지 마!”

태우는 기었다.

무장 카트 밑으로 들어갔다. 카트에는 500파운드짜리가 세 발 실려 있었다. 폭탄 밑에 숨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순간 지붕이 있는 곳이 거기뿐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간격이 일정했다.

일정한 간격은 사람이 쏘는 것이 아니다. 계획이 쏘는 것이다.

카트 밑에서 태우가 볼 수 있는 것은 지면에서 40센티미터 높이뿐이었다. 그 틈으로 활주로가 보였다.

기체 하나가 활주로에 있었다. 이륙 활주 중이었다.

바퀴 세 개가 다 붙어 있었으니 아직 뜨기 전이었다. 후연소기(연료를 한 번 더 태워 추력을 높이는 장치) 불꽃이 파랗게 길었다. 그 불꽃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갔다.

지나가고 나서 2초쯤 뒤에 활주로 중간이 솟았다.

태우는 그 기체가 떴는지 못 떴는지 보지 못했다. 흙이 시야를 덮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기로, 활주로 파괴용 폭탄은 한 발이 여러 개로 갈라져 넓게 뿌려진다. 구멍을 깊게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많이 내는 것이 목적이다. 구멍 하나는 세 시간이면 메운다. 스무 개는 하루가 간다.

비행기를 부수는 것보다 못 뜨게 하는 편이 싸게 먹힌다. 그것이 그날 새벽에 누군가 계산해 놓은 것이었다.

“몇 발입니까?”

대답이 없었다. 오상혁은 다른 카트 밑에 있었다. 15미터쯤 떨어져 있었는데 목소리가 안 닿았다.

태우는 혼자 셌다. 여덟, 아홉, 열.

열한 번째가 남쪽에서 터졌다. 남쪽은 미군 구역이다. 강화 격납고(콘크리트로 두껍게 덮어 폭격을 견디게 만든 것)가 늘어선 쪽이었다. 거기서 나는 소리는 달랐다. 터지는 소리가 아니라 무너지는 소리였다.

태우 옆으로 누가 굴러 들어왔다.

미군이었다. 정비복 차림이었고 헬멧을 손에 들고 있었다. 뛰어오느라 못 쓴 것이다.

둘은 30센티미터 거리에서 서로를 봤다.

미군이 뭐라고 했다. 태우는 못 알아들었다. 영어라서가 아니라 귀가 아직 안 돌아왔기 때문이다.

미군이 손짓을 했다. 태우의 헬멧 턱끈을 가리켰다. 풀려 있었다.

태우는 손을 들어 채우려 했다. 손이 떨려서 안 됐다. 세 번 미끄러졌다.

미군이 손을 뻗어 대신 채워 줬다. 딸깍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 잘 들렸다.

태우는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 못 했다.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미군도 끄덕였다.

열두 번째가 왔다. 이번에는 가까웠다.

파편이 카트 옆면을 때렸다. 쇠에 자갈을 뿌리는 소리였다. 태우는 눈을 감았고, 감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았다.

0512에 멎었다.

15분이었다.

태우는 카트 밑에서 기어 나왔다. 일어서려는데 무릎이 안 펴졌다. 무릎을 다친 게 아니라 몸이 아직 일어서도 된다고 안 믿는 것이었다. 손으로 카트를 잡고 밀어 올려서야 섰다.

활주로 북쪽에 구멍이 세 개 있었다. 하나는 지름이 10미터쯤 됐다.

남쪽 격납고 두 동이 없어졌다. 없어졌다는 말이 맞다. 부서진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강 병장!”

오상혁이었다. 얼굴 왼쪽이 검었다. 흙인지 피인지 그때는 몰랐다.

“예!”

“몇 대 살았어?”

태우는 그제야 자기 쪽을 봤다.

자기가 무장을 다 건 첫 번째 기체는 없었다. 0451에 잠금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던 그 기체다. 0503에 떴다고 나중에 들었다.

두 번째 기체는 서 있었다. 무장을 반만 걸어 놓은 채였다. 파편이 오른쪽 날개를 훑고 지나가서 연료가 새고 있었다.

“…한 대는 떴고, 한 대는 못 뜹니다.”

“정확히 말해.”

“…제가 늦게 단 쪽이 못 뜹니다.”

오상혁이 태우를 봤다.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네가 늦은 게 아니야. 핀이 늦은 거지.”

“…….”

“그리고 그 말은 오늘 하지 마. 오늘 하면 평생 해.”

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0521에 활주로 피해 판정조가 나갔다.

구멍 수를 세고, 어느 구멍을 먼저 메우면 가장 짧은 이착륙 구간이 나오는지를 계산하는 일이다. 활주로 전체를 고칠 필요는 없다. 한 줄만 살리면 된다.

그 계산이 끝나야 몇 시에 몇 대가 뜰 수 있는지가 나온다.

“강 병장. 오늘 우리가 몇 대 띄우느냐가 오늘 몇 명이 사느냐야.”

“…예.”

“그러니까 손 떨리는 건 나중에 떨어.”

0540에 대대 전체 인원 확인이 돌았다. 111대대는 다 있었다. 미군 쪽은 늦게 나왔다.

태우는 남쪽 격납고 쪽을 봤다. 아까 그 미군을 찾을 생각이었다. 이름을 물어보지도 못했다.

명찰을 보긴 했다. 30센티미터 거리였으니까. 그런데 읽지 못했다. 흙이 덮여 있었고, 태우는 그때 그 흙을 털어 줄 생각을 못 했다.

그 사람이 굴러 나간 방향이 남쪽이었다.

남쪽에는 격납고가 두 동 없었다.

태우는 한참 서 있다가,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물어봐서 없으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사라지는 것이고, 안 물어보면 아직은 어디 있는 것이다.

그날 밤 태우는 헬멧 턱끈을 풀지 않고 잤다.

0512에 멎었지만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두 번째 파도가 오는 경우가 있다. 첫 번째로 사람을 밖으로 끌어내고 두 번째로 그 사람들을 때린다. 그래서 5분을 더 엎드려 있는다. 규정에 그렇게 되어 있고, 그 규정은 누군가 그렇게 죽고 나서 생긴 것이다.

0517에 오상혁이 먼저 일어섰다.

“나와.”

태우는 나왔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6월 새벽은 5시면 밝다. 밝아지는 것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태우는 그날 처음 알았다. 어두우면 안 보였을 것들이 순서대로 보였다.

활주로 북쪽에 구멍이 세 개. 중간에 두 개. 남쪽 유도로에 하나.

여섯 개였다. 어젯밤에 태우가 세어 본 활주로는 하나였는데 오늘 아침에는 여섯 조각이 되어 있었다.

“불발탄 조심해. 밟지 마.”

활주로 파괴탄은 갈라져 뿌려지고, 그중 몇 개는 안 터진다. 안 터진 것이 더 위험하다. 진동으로 터지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나가는 진동으로도 터진다.

0602에 폭발물 처리반이 노란 깃발을 꽂기 시작했다.

깃발이 열한 개 꽂혔다. 열한 개를 다 처리할 때까지 그 근처로는 아무도 못 간다.

“중사님. 그럼 복구는 언제 시작합니까?”

“깃발 뽑히면.”

“그때까지는요.”

“기다려.”

기다리는 것이 일이 될 때가 있다. 태우는 그날 그것을 배웠다.

0730에 피해 집계가 돌았다.

우리 쪽 전사 셋, 부상 열넷. 미군 쪽은 숫자가 안 나왔다. 남쪽 구역은 아직 세는 중이었다.

태우는 그 숫자를 듣고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나중에 나겠지 싶었고, 실제로 사흘 뒤 밤에 났다.

0800에 복구 계획이 내려왔다.

활주로 전체는 못 고친다. 3,000미터를 다 메우려면 이틀이다. 대신 구멍이 없는 구간을 이어 붙여 한 줄을 만든다. 그것을 최소 운영 활주로라고 부른다.

KF-16은 1,500미터면 뜬다. 무장을 가볍게 하면 더 짧아도 된다.

“1,500만 살리면 됩니다.”

“그래서 어디를 살릴 건데.”

“…중간 두 개를 메우면 남쪽에서 1,600 나옵니다.”

“계산 잘하네.”

“…예.”

“그 계산 틀리면 비행기가 못 서.”

태우의 일은 활주로가 아니었다. 태우 앞에는 어제 못 뜬 기체가 있었다.

오른쪽 날개에 파편 구멍이 열일곱 개였다. 대부분은 표면만 긁었고, 문제는 세 개였다. 그 세 개가 연료 탱크까지 들어갔다.

“누출량.”

“분당 20cc 정도입니다.”

“많네.”

날개 안쪽은 통짜 탱크다. 따로 통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날개 구조물 자체를 밀봉해서 연료를 담는다. 그래서 구멍이 나면 날개를 열어야 한다.

패널을 뜯고, 실런트(연료가 새지 않도록 발라 굳히는 밀봉제)를 긁어내고, 새로 바르고, 굳기를 기다린다. 굳는 데 6시간이다.

6시간은 아무도 줄일 수 없다. 그것이 태우를 화나게 했다.

1140에 소식이 왔다.

“강 병장. 어제 0503에 뜬 거 있지.”

“예.”

“청주에 내렸대.”

태우는 손을 멈췄다.

“…조종사는요.”

“무사해.”

“…….”

“연료 부족으로 최소 잔량 걸려서 내린 거야. 여기 못 오니까.”

태우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실런트 주걱을 쥔 손가락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한 번 미끄러졌다.

살아 있는데 못 온다.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자기가 단 폭탄이 어디에 떨어졌는지는 끝내 못 들었다.

1620에 최소 운영 활주로가 열렸다.

1,620미터였다. 계산보다 20미터 길게 나왔다.

“1620에 1,620이네.”

오상혁이 그렇게 말했다.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아무도 안 웃었다.

1630에 무장 장착이 끝났다.

태우는 네 대에 무엇이 걸렸는지 봤다. 정비병은 작전 명령을 못 본다. 대신 날개 밑을 본다.

날개 밑을 보면 어디 가는지 안다.

공대공 유도탄만 달았으면 요격이다. 하늘에 있는 것을 막으러 간다. 대지 무장을 달았으면 때리러 가는 것이다.

네 대 다 공대공이었다. 그것도 바깥 파일런(무장을 매다는 날개 밑 장착대)까지 꽉 채웠다.

“…막으러 가는 겁니까?”

“그래.”

“우리가 때리러 가는 게 아니고요.”

“오늘은 아니야.”

태우는 그 말을 기억해 뒀다. 오늘은 아니라는 말은 언젠가는 맞다는 뜻이다.

1643에 네 대가 떴다.

이륙 활주가 짧았다. 짧은 활주로에서는 후연소기를 처음부터 최대로 쓴다. 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밀어내는 소리가 아니라 쥐어짜는 소리였다.

태우는 날개 밑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1905에 세 대가 돌아왔다.

착륙하는 순서를 태우는 셌다. 하나. 둘. 셋.

두 번째로 내린 기체의 파일런이 비어 있었다. 네 발을 다 쓴 것이다. 세 번째 기체는 두 발이 남아 있었다.

무엇을 맞혔는지 태우는 모른다. 몇 개가 남았는지만 안다. 정비병이 아는 것은 항상 뺄셈이다.

조종사가 사다리로 내려왔다. 마지막 두 칸에서 다리가 안 펴져서 손으로 난간을 잡고 천천히 내려왔다.

태우는 그 모습을 알아봤다. 아침에 자기가 카트 밑에서 기어 나왔을 때와 같았다.

물통을 하나 들고 갔다. 조종사가 받아서 반쯤 마시고, 나머지를 얼굴에 부었다.

“고맙다.”

“…예.”

그게 전부였다. 조종사는 곧 브리핑실로 갔다.

그다음이 없었다.

무전이 조용했다. 조용한 것이 답이었다.

네 번째 기체의 무장을 단 사람은 김도영 일병이었다. 태우 옆자리다. 들어온 지 넉 달 됐다.

김도영은 자기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다. 격납고 앞 시멘트 바닥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안 들고 아무 데도 안 보고 있었다.

태우가 옆에 가서 섰다.

“…제가 왼쪽 파일런 걸이를 두 번 확인했습니다.”

“…….”

“두 번 확인했는데 세 번 할걸 그랬습니다.”

“도영아.”

“…예.”

“네가 늦은 게 아니야.”

김도영이 태우를 봤다.

태우는 그 말을 어제 들었다. 들었을 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어른이 아랫사람한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자기 입으로 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 말은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을 안 해 주면 이 사람이 오늘 밤에 무너지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오상혁도 어제 그걸 알고 한 것이었다.

“…예.”

“그리고 그 말 오늘 하지 마. 오늘 하면 평생 해.”

김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면서 울지는 않았다. 우는 것보다 그게 더 안 좋아 보였다.

2140에 미군 쪽 집계가 나왔다.

전사 아홉.

태우는 그 숫자를 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아홉 명 중 하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름을 못 물었고 명찰은 흙에 덮여 있었다. 아홉이라는 숫자 안에 그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면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태우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숫자는 사람을 세지만 사람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2210에 실런트가 굳었다.

태우는 압력 시험을 걸었다. 누출 없음. 어제 못 뜬 기체가 내일은 뜬다.

“강 병장. 들어가서 자.”

“예.”

침상에 누웠다.

턱끈을 풀려다가 그만뒀다. 이틀째였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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