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64자) · 강태우 · 6월 4일(금)

턱끈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0451⁠, 태우는 KF-16 왼쪽 날개 밑에 누워 유도폭탄의 잠금 핀을 밀어 넣고 있었다⁠. 파일런(⁠무장을 매다는 날개 밑 장착대⁠)의 걸이 두 개는 이미 물렸고⁠, 핀만 절반에서 걸려 더 들어가지 않았다⁠. 등 밑의 콘크리트가 밤새 식어 작업복을 뚫고 차갑게 올라왔다⁠.

“⁠강 병장⁠, 몇 분 남았어⁠?⁠”

“⁠2분입니다⁠.⁠”

“⁠1분에 끝내⁠.⁠”

오상혁 중사가 카트 반대편에서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고⁠, 이 사람은 급할수록 목소리가 낮아졌다⁠. 태우는 핀을 빼서 다시 넣었다⁠. 이번에는 끝까지 들어갔고 잠금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중사님⁠, 오늘 왜 이렇게 급합니까⁠?⁠”

“⁠나도 몰라⁠. 위에서 안 알려 주면 아래에서는 손만 빨라지는 거야⁠.⁠”

무장 장착에는 순서가 있다⁠. 견인차로 폭탄을 날개 밑까지 밀어 넣고⁠, 카트의 유압 받침을 올려 높이를 맞추고⁠, 걸이 두 개를 동시에 물린다⁠. 하나만 물리면 폭탄이 기울어 나머지 하나가 안 들어간다⁠. 다음이 잠금 핀과 안전선이고⁠, 신관 안전핀은 맨 마지막에 뽑는다⁠. 뽑고 나면 이 쇳덩이는 살아 있는 것이 되었다⁠. 태우가 열아홉 달 동안 해 온 일이 이것이었다⁠.

새벽 네 시에 무장을 다는 날은 훈련이 아니다⁠. 훈련이면 전날 저녁에 붙인다⁠. 태우는 두 번째 기체로 옮겨 가면서 이 정도는 알았다⁠.

0457에 사이렌이 울렸다⁠. 훈련 사이렌은 세 번 끊어서 우는데 이것은 끊기지 않았다⁠.

“⁠엎드려⁠!⁠”

태우는 엎드리지 못했다⁠. 손에 신관 안전핀이 들려 있었고⁠, 이것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부터 몰라서 0⁠.5초쯤 서 있었다⁠. 나중에 그 0⁠.5초를 여러 번 생각하게 된다⁠. 오상혁이 등을 쳐서 태우를 바닥에 엎어 놓았다⁠.

첫 발은 활주로 북쪽 끝에 떨어졌다⁠. 소리보다 땅이 먼저 왔다⁠. 아스팔트가 아래에서 위로 한 번 밀렸고 턱이 콘크리트에 부딪혔으며⁠, 다음에 온 소리는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왔다⁠.

“⁠기어서 가⁠! 서지 마⁠!⁠”

태우는 무장 카트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카트에는 500파운드짜리가 세 발 실려 있었다⁠. 폭탄 밑에 숨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순간 지붕이 있는 곳은 거기뿐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가 같은 간격으로 왔다⁠. 일정한 간격은 사람이 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이 쏘는 것이었다⁠.

카트 밑 40센티미터 틈으로 활주로가 보였다⁠. 기체 하나가 이륙 활주 중이었고⁠, 후연소기(⁠연료를 한 번 더 태워 추력을 높이는 장치⁠) 불꽃이 파랗게 길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갔다⁠. 2초쯤 뒤에 활주로 한가운데가 솟았다⁠. 흙이 시야를 덮어서 이 기체가 떴는지는 보지 못했다⁠.

활주로를 치는 폭탄은 한 발이 여러 개로 갈라져 넓게 뿌려진다⁠. 구멍을 깊게 내는 것이 아니라 많이 내는 것이 목적이다⁠. 구멍 하나는 세 시간이면 메우지만 스무 개는 하루가 간다⁠. 비행기를 부수는 것보다 못 뜨게 하는 편이 싸게 먹혔다⁠. 이것이 이날 새벽에 누군가 계산해 놓은 것이었다⁠.

*

6월 3일 2250⁠, 산둥반도의 비행단 작전실 벽에는 시계가 둘 걸려 있었다⁠. 왼쪽은 베이징⁠, 오른쪽은 서울이었고 오른쪽이 한 시간 빨랐다⁠.

팡 웨이 대령은 탁자에 펼친 군산 기지 도면 위로 몸을 숙였다⁠. 비행단 작전참모가 된 지 두 해째였다⁠. 도면에는 활주로 하나와 유도로 셋⁠, 남쪽의 강화 격납고 열과 북쪽의 정비 구역이 그려져 있었고⁠, 계획서가 이 위에 표적 번호를 매겨 놓았다⁠. 웨이는 연필 끝으로 첫 줄을 짚었다⁠. 격납고 파괴⁠, 기체 최대 격파⁠.

“⁠이 줄은 뺀다⁠.⁠”

참모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팡 웨이는 첫 줄에 줄을 긋고 이 아래에 짧게 적었다⁠. 부수지 말고⁠, 못 쓰게⁠.

“⁠격납고를 다 부수려면 세 파가 필요하다⁠. 활주로를 못 쓰게 하는 데는 한 파면 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미군 비행기가 대만 쪽으로 못 뜨는 거지⁠, 불타는 사진이 아니야⁠.⁠”

“⁠미국이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안 들어오게 하려고 이렇게 하는 거다⁠. 미국을 묶으려면 여기를 흔들면 된다⁠. 한국이 쏘게 하지는 말고⁠.⁠”

연필이 도면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정비 구역 위에서 멈췄다⁠. 옆에 작은 글씨로 한국 공군 제38전대라고 적혀 있었다⁠. 같은 활주로를 두 나라가 나눠 쓰는 기지였다⁠.

“⁠여기는 한국군입니다⁠.⁠”

참모가 말했다⁠. 팡 웨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필심이 이 글자 위에 1초쯤 머물렀다가 다시 움직였다⁠. 활주로 위에서 파편이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창밖 계류장에서는 정비병들이 작업등을 들고 H-6 폭격기 날개 밑을 오가고 있었다⁠. 저 비행기들이 돌아올 때쯤이면 군산의 활주로는 몇 조각이 나 있을 것이었다⁠. 계획서는 수정 한 줄을 단 채 결재판에 들어갔고⁠, 작전실의 두 시계는 계속 한 시간씩 어긋나 돌았다⁠.

*

카트 밑에서 태우는 혼자 셌다⁠. 여덟⁠, 아홉⁠, 열⁠.

열한 번째가 남쪽에서 터졌다⁠. 미군 구역이었고⁠, 콘크리트로 두껍게 덮은 강화 격납고가 늘어선 쪽이었다⁠. 거기서 나는 소리는 터지는 소리가 아니라 무너지는 소리였다⁠.

이때 카트 밑으로 누가 굴러 들어왔다⁠. 정비복을 입은 미군이었고⁠, 뛰어오느라 헬멧을 쓰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었다⁠. 둘은 30센티미터 거리에서 서로를 봤다⁠. 미군이 뭐라고 했는데 태우는 알아듣지 못했다⁠. 영어라서가 아니라 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였다⁠.

미군이 태우의 헬멧 턱끈을 가리켰다⁠. 풀려 있었다⁠. 태우는 손을 들어 채우려 했지만 손가락이 떨려 버클이 세 번 미끄러졌다⁠. 미군이 손을 뻗어 대신 채워 줬다⁠. 딸깍 하는 소리가 이 난리 속에서 이상하게 또렷했다⁠. 고맙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고 태우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미군도 끄덕였다⁠.

열두 번째는 가까웠다⁠. 파편이 카트 옆면을 때리는 소리가 쇠에 자갈을 한 줌 뿌리는 소리 같았다⁠. 태우는 눈을 감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감았다⁠. 눈을 떴을 때 미군은 헬멧을 쓰며 남쪽으로 굴러 나가고 있었다⁠.

0512에 폭음이 멎었지만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두 번째 파가 첫 번째로 끌려 나온 사람을 때리는 경우가 있어서⁠, 규정은 5분을 더 엎드려 있으라고 했다⁠. 이 규정은 누군가 그렇게 죽고 나서 생긴 것이었다⁠.

0517에 오상혁이 먼저 일어섰다⁠. 태우는 카트 밑에서 기어 나와 일어서려 했는데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다친 것이 아니라 몸이 아직 일어서도 된다고 믿지 않는 것이었다⁠. 카트 손잡이를 잡고 밀어 올리고서야 섰다⁠. 6월 새벽은 다섯 시면 밝았고⁠, 이날은 밝아지는 것이 잔인했다⁠. 어두웠으면 안 보였을 것이 순서대로 보였다⁠. 활주로 북쪽에 구멍 셋⁠, 가운데 둘⁠, 남쪽 유도로에 하나가 있었다⁠. 남쪽 격납고 두 동은 부서진 것이 아니라 없어져 있었고⁠, 이 자리에서 콘크리트 가루와 타는 고무 냄새가 섞여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

“⁠강 병장⁠, 몇 대 살았어⁠?⁠”

태우는 그제야 자기 쪽을 봤다⁠. 0451에 잠금등이 녹색으로 바뀐 첫 번째 기체는 없었다⁠. 0503에 떴다고 나중에 들었다⁠. 무장을 반만 건 두 번째 기체는 서 있었지만 오른쪽 날개를 파편이 훑고 지나가 연료가 새고 있었다⁠.

“⁠…제가 늦게 단 쪽이 못 뜹니다⁠.⁠”

오상혁이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늦은 게 아니야⁠. 핀이 늦은 거지⁠. 그리고 그 말은 오늘 하지 마⁠. 오늘 하면 평생 해⁠.⁠”

*

0730에 피해 집계가 돌았다⁠. 우리 쪽 전사 셋⁠, 부상 열넷이었고 미군은 숫자가 나오지 않았다⁠. 폭발물 처리반이 불발탄 자리에 노란 깃발 열한 개를 꽂았다⁠. 깃발이 뽑힐 때까지 이 근처로는 아무도 가지 못했다⁠.

0800에 내려온 복구 계획은 짧았다⁠. 2⁠,740미터를 다 메우려면 이틀이 걸리니 구멍 없는 구간을 이어 한 줄만 살린다는 것이었고⁠, 이것을 최소 운영 활주로라고 불렀다⁠. KF-16은 무장을 가볍게 하면 1⁠,500미터에서도 떴다⁠.

0900부터 시설대대 덤프트럭이 줄지어 들어왔다⁠. 트럭이 자갈을 쏟을 때마다 활주로 위로 흰 먼지가 일었다가 바닷바람에 남쪽으로 쓸려 갔고⁠, 이 먼지 속에서 불도저 두 대가 구멍 가장자리의 들린 아스팔트를 밀어 넣었다⁠. 쇠 삽날이 아스팔트 조각을 긁는 소리는 한 번 들으면 이 사이에 남았다⁠.

“⁠중간 두 개를 메우면 남쪽에서 1⁠,600 나옵니다⁠.⁠”

“⁠계산 잘하네⁠. 그 계산 틀리면 비행기가 못 서⁠.⁠”

태우의 몫은 활주로가 아니라 못 뜬 기체였다⁠. 오른쪽 날개에 파편 구멍이 열일곱 개 있었고 그중 셋이 연료 탱크까지 들어갔다⁠. 날개 안쪽은 따로 통이 든 것이 아니라 구조물 자체를 밀봉해 연료를 담기 때문에⁠, 패널을 뜯고 실런트(⁠연료가 새지 않도록 발라 굳히는 밀봉제⁠)를 긁어낸 뒤 새로 발라야 했다⁠. 굳는 데 6시간이었다⁠. 아무도 줄일 수 없는 그 6시간 앞에서 태우는 어금니를 물었고⁠, 주걱을 쥔 손가락에 힘이 너무 들어가 한 번 미끄러졌다⁠.

1140에 0503에 뜬 기체가 청주에 내렸다는 소식이 왔다⁠. 조종사는 무사했고⁠, 연료가 모자라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살아 있는데 못 오는 것도 있다는 것을 태우는 이날 알았다⁠. 자기가 단 폭탄이 어디에 떨어졌는지는 끝내 듣지 못했다⁠.

1620에 최소 운영 활주로가 열렸다⁠. 계산보다 20미터 긴 1⁠,620미터였다⁠.

“⁠1620에 1⁠,620이네⁠.⁠”

오상혁이 웃자고 한 말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1643에 네 대가 떴다⁠. 넷 다 공대공 유도탄만 바깥 파일런까지 꽉 채워 달았다⁠. 정비병은 작전 명령을 못 보는 대신 날개 밑을 봤고⁠, 공대공만 달았으면 막으러 가는 것이었다⁠.

“⁠…막으러 가는 겁니까⁠? 우리가 때리러 가는 게 아니고요⁠.⁠”

“⁠오늘은 아니야⁠.⁠”

태우는 이 말을 기억해 뒀다⁠. 오늘은 아니라는 말은 언젠가는 맞았다⁠. 짧은 활주로에서는 후연소기를 처음부터 최대로 쓰기 때문에⁠, 엔진 소리가 밀어내는 소리가 아니라 쥐어짜는 소리로 들렸다⁠.

1905에 세 대가 돌아왔다⁠. 태우는 착륙하는 순서대로 하나⁠, 둘⁠, 셋을 세고⁠, 네 번째를 기다리며 활주로 끝의 아지랑이를 한참 봤다⁠. 무엇을 맞혔는지는 모르고 몇 발이 남았는지만 알았다⁠. 정비병이 아는 것은 늘 뺄셈이었다⁠. 무전이 조용했고⁠, 조용한 것이 답이었다⁠.

네 번째 기체에 무장을 단 사람은 넉 달 된 김도영 일병이었다⁠. 도영은 격납고 앞 시멘트 바닥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서 있었다⁠.

“⁠왼쪽 파일런 걸이를 두 번 확인했습니다⁠. 세 번 할걸 그랬습니다⁠.⁠”

“⁠도영아⁠, 네가 늦은 게 아니야⁠.⁠”

아침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자기 입으로 하고 나서야 태우는 알았다⁠. 이 말은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안 해 주면 이 사람이 오늘 밤 무너지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 오늘 하지 마⁠. 오늘 하면 평생 해⁠.⁠”

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 않았고⁠, 우는 것보다 이게 더 안 좋아 보였다⁠.

2140에 미군 집계가 나왔다⁠. 전사 아홉이었다⁠. 태우는 이 아홉 안에 카트 밑의 이 사람이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명찰을 보긴 했지만 흙에 덮여 읽지 못했고⁠, 이 흙을 털어 줄 생각을 당시에는 못 했다⁠.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물어봐서 없으면 이 사람은 이때부터 사라지고⁠, 안 물으면 아직은 어디 있었다⁠.

2210에 실런트가 굳었다⁠. 압력 시험에서 누출은 없었고⁠, 못 뜬 기체는 내일 뜰 것이었다⁠. 태우는 침상에 누워 헬멧 끈을 풀려다가 손을 내렸다⁠. 턱 밑에서 버클 한 개가 채워진 채로 식어 가고 있었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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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오작가2026.10.09· 1화

    작가 네오입니다. 3차대전 3부작의 3부는 군산 활주로에서 시작합니다. 1화의 턱끈을 읽고, 우리를 노린 것이 아니었는데 맞은 그날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수치는 예상 시나리오이며 사실이 아닙니다.

  • 단풍국2026.09.06· 1화

    파일런 설명을 괄호로 풀어 주셔서 처음 보는 말인데도 따라갔어요. 첫 장면 긴장감이 대단해요.

    • 네오작가2026.09.06

      정비사 눈으로 전쟁 첫날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낯선 말은 처음 나올 때 한 번 풀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