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560자)

날아오르기

광장 비둘기들의 복수 · 문들레

해가 뜨기 전⁠, 구슬은 분수의 가장 높은 돌에서 날개를 세게 맞부딪쳤다⁠.

딱⁠. 위험하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구슬이 날개를 치고 몸을 띄우자 느티나무에서 무리가 따라 떠올랐다⁠. 광장 무리는 이제 구슬이 뜨면 떴다⁠. 구슬은 의원회관 지붕을 한 바퀴 돌고 의사당 둥근 지붕에 내려앉았다⁠. 지붕은 밤새 식어 발바닥이 차가웠다⁠. 무리가 구슬 둘레에 내려앉았다⁠. 둥근 지붕의 한쪽 비탈이 잿빛으로 덮였다⁠.

해가 떠오를 무렵⁠, 남서쪽 하늘에서 덩어리 하나가 다가왔다⁠. 몸이 둥글고 날갯짓이 무거운 새들이었다⁠. 시장 무리였다⁠. 새벽 시장 골목에 노란 알갱이가 쏟아지지 않은 지 열흘이 넘었다⁠. 빈 홈통을 쪼던 새들이 강을 건너왔다⁠. 맨 앞에 차양 위에서 구슬을 몰아냈던 가장 둥근 수비둘기가 있었다⁠. 둥근 수비둘기는 구슬 앞에 내려앉아 목털을 부풀렸다⁠. 구슬도 부풀렸다⁠. 둘은 한참 서로를 노려보다가⁠, 둥근 수비둘기가 먼저 목털을 가라앉히고 비탈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다리 밑 무리가 왔고⁠, 역 앞 광장 무리가 왔다⁠. 둥근 지붕이 다 덮였다⁠. 지붕 꼭대기의 깃대 둘레까지 잿빛이었다⁠.

아침 아홉 시⁠, 출근하던 신발들이 의사당 앞에서 멈췄다⁠. 휴대전화들이 하늘로 들렸다⁠. 길 건너 전광판에 둥근 지붕이 떴다⁠. 카메라 줄이 생겼다⁠.

“⁠비둘기 시위래⁠, 비둘기 시위⁠.⁠”

“⁠표결 날이라 그런가 봐⁠. 복수하러 왔대⁠.⁠”

*

둥근 지붕 아래 둘레에 창이 줄지어 있었다⁠. 열 시쯤⁠, 밧줄에 매달린 발판 하나가 내려와 창 하나 앞에 멈췄다⁠. 발판 위의 사람이 창을 열고 유리를 닦기 시작했다⁠. 구슬은 지붕 비탈을 걸어 내려가 열린 창틀에 앉았다⁠. 발판 위의 사람이 걸레를 든 채 구슬을 보았다⁠.

“⁠야⁠, 들어가면 안 돼⁠.⁠”

구슬은 들어갔다⁠.

안은 넓고 서늘했다⁠. 동그랗게 휘어진 천장 아래⁠, 기다란 조명틀이 원을 그리며 매달려 있었다⁠. 구슬은 조명틀에 내려앉았다⁠. 아래로 끝없이 책상이 펼쳐져 있었다⁠. 책상마다 사람이 앉아 있었고⁠, 책상 밑마다 신발이 있었다⁠. 구슬은 이렇게 많은 신발을 한꺼번에 본 적이 없었다⁠. 반들반들한 구두⁠, 굽 낮은 구두⁠, 끈 없는 구두⁠, 운동화⁠. 구슬은 고개를 까딱이며 신발을 하나씩 훑었다⁠.

앞쪽 단상에서 세 줄 뒤⁠, 갈색 구두가 있었다⁠. 왼쪽 끈이 풀려 있었다⁠. 오늘도⁠.

조명틀 아래로 누군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웃음소리가 번졌다⁠. 둥근 천장이 웃음소리를 모아 다시 내려보냈다⁠. 단상 맨 위의 사람이 망치로 탁자를 두드렸다⁠.

“⁠경위는 새를 내보내 주십시오⁠. 회의 진행하겠습니다⁠.⁠”

푸른 옷의 경위 둘이 긴 막대를 들고 조명틀 아래를 오갔다⁠. 구슬은 막대가 다가오면 조명틀을 따라 옆으로 걸었다⁠. 막대가 따라오면 또 걸었다⁠. 원을 그리는 조명틀이라 끝이 없었다⁠. 경위 하나가 막대를 내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의석에서 또 웃음이 났다⁠.

중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끈 없는 구두가 카펫을 디뎠다⁠. 중진이 마이크 앞에서 천장을 가리켰다⁠.

“⁠보십시오⁠, 의장님⁠. 비둘기가 의사당 안까지 들어왔습니다⁠. 지붕에는 수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 도시입니다⁠. 원안이 답입니다⁠. 수정이 아니라 원안입니다⁠.⁠”

박수가 났다⁠. 구슬은 조명틀에서 목털을 부풀렸다⁠. 큰 동물이 구슬을 가리키며 큰 소리를 내면 무리가 박수를 쳤다⁠. 첫날 광장에서와 똑같았다⁠.

*

의장이 정학의 이름을 불렀다⁠. 갈색 구두가 단상으로 걸어갔다⁠. 풀린 끈이 계단에서 바닥을 쓸었다⁠. 구슬은 조명틀을 따라 단상 위로 옮겨 갔다⁠.

정학은 단상에 서서 셔츠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귀퉁이에 누런 물 자국이 있는 봉투였다⁠. 정학은 봉투를 단상 위 마이크 옆에 내려놓았다⁠. 의석이 조용해졌다⁠.

“⁠존경하는 의장님⁠, 그리고 동료 의원 여러분⁠.⁠”

유리창 앞에서 연습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확성기 앞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창틈에 대고 이야기하던 밤의 목소리와 가까웠다⁠.

“⁠이 봉투는 6월 15일⁠, 방역 업체 사장이 제 사무실 화분 밑에 두고 간 것입니다⁠. 저는 그날 밤 봉투를 찾았고⁠, 돌려주지 않고 서랍에 넣고 잠갔습니다⁠. 석 주 동안 잠가 두었습니다⁠. 한 번은 열어서 반쯤 세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돌려주려고 했다는 말은 석 주 동안 아무 힘도 없었습니다⁠.⁠”

의석이 웅성거렸다⁠. 정학은 웅성거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새벽 골목이 찍힌 사진이었다⁠. 흰 트럭⁠, 바가지⁠, 쏟아지는 비둘기⁠.

“⁠같은 업체 사장이 한 달 동안 새벽마다 제 지역구 시장 뒷골목에 비둘기 먹이를 뿌렸습니다⁠. 상인회가 차양에 단 감시 카메라에 찍혔습니다⁠. 시장 비둘기가 두 배로 늘었고⁠, 저는 그 숫자를 들고 이 법을 밀었습니다⁠.⁠”

정학이 사진을 내려놓았다⁠.

“⁠상인들의 고통은 진짜입니다⁠. 차양을 닦다 다리가 부러진 분이 계시고⁠, 고등어를 버리는 분이 계십니다⁠. 제 어머니 국숫집 차양도 썩었습니다⁠. 그 고통은 오늘도 진짜입니다⁠. 그래서 이 수정안은 차양 지원을 그대로 둡니다⁠. 포획 조항을 빼고⁠, 먹이를 뿌려 비둘기를 불러 모은 업체를 처벌합니다⁠. 광장마다 급식대를 두고⁠, 급식대에서는 번식을 줄이는 모이만 줍니다⁠. 몇 년 걸립니다⁠. 몇 년 걸리니까 오늘 시작해야 합니다⁠.⁠”

정학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조명틀 위의 구슬과 눈이 마주쳤다⁠.

“⁠저 위의 비둘기는 제가 이 법을 낸 날부터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제 구두 끈만 쫍니다⁠. 저는 아직도 저 새가 무섭습니다⁠.⁠”

의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정학은 웃지 않았다⁠.

“⁠이 수정안이 통과되든 안 되든⁠, 저를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해 주십시오⁠. 봉투는 오늘 수사기관에 내겠습니다⁠.⁠”

*

중진이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끈 없는 구두가 카펫을 세게 밟았다⁠.

“⁠의장님⁠, 의사진행 발언입니다⁠. 봉투를 받은 의원이 내는 수정안을 지금 표결에 부치는 게 맞습니까⁠? 본인 입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수정안은 업체 하나 망하게 하자는 개인 감정입니다⁠.⁠”

의석 반대편에서 반대편 초선 의원이 일어났다⁠. 하얀 운동화가 책상 밑에서 나왔다⁠. 의장이 손짓하자 마이크가 켜졌다⁠.

“⁠받았다고 말한 사람은 저기 단상에 서 있고⁠, 같은 업체 후원금에 대해 아무 말 안 한 사람들은 다 앉아 있네요⁠. 저는 서른 번째로 서명했습니다⁠. 철회하지 않습니다⁠.⁠”

의석이 소란스러워졌다⁠. 고함이 오가고⁠, 누군가 책상을 쳤다⁠. 구슬은 소리가 커질 때마다 조명틀에서 몸을 낮췄다⁠. 둥근 천장 아래 소리가 빙빙 돌았다⁠. 광장에서 매가 뜰 때의 소리와 닮았다⁠. 모두가 한꺼번에 떠들고⁠,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 소리⁠.

망치가 세 번 울렸다⁠.

“⁠수정안을 표결에 부치겠습니다⁠. 투표해 주십시오⁠.⁠”

갑자기 조용해졌다⁠. 구슬은 조명틀 위에서 목을 길게 뺐다⁠.

책상마다 머리들이 아래로 숙여졌다⁠. 고개 몇 개가 먼저 까딱였다⁠. 옆의 고개들이 따라 까딱였다⁠. 손가락들이 책상 위의 무언가를 눌렀다⁠. 구슬은 이 순간을 알았다⁠. 무리가 날아오르기 전⁠, 땅에서 쌀을 쪼던 새들이 하나둘 고개를 드는 순간⁠. 몇 마리가 먼저 고개를 들고⁠, 옆의 새들이 따라 들고⁠, 누가 먼저 날개를 펴는지 서로 보는 순간⁠. 이 순간이 지나면 무리는 한꺼번에 뜨거나⁠, 한꺼번에 다시 고개를 숙인다⁠.

앞쪽 벽의 큰 화면에 숫자들이 떠올랐다⁠. 구슬은 숫자를 모른다⁠. 화면의 빛이 바뀌는 것만 보았다⁠.

“⁠재석 이백팔십일 인 중 찬성 백사십구 인으로 수정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망치가 울렸다⁠.

갈색 구두가 단상 아래에서 멈췄다⁠. 정학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의석 맨 뒤 방청석에서 고무 장화가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쳤다⁠. 경위가 장화에게 손짓했다⁠. 장화는 손뼉을 멈추지 않았다⁠.

경위 하나가 둥근 천장 아래 창 하나를 열었다⁠. 구슬은 조명틀을 박찼다⁠. 수백 켤레 신발 위를 한 바퀴 돌았다⁠. 갈색 구두 위를 지날 때 정학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구슬은 열린 창으로 빠져나갔다⁠.

둥근 지붕 위에서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슬이 지붕에 닿기 전에 날개를 세게 맞부딪쳤다⁠. 딱⁠. 지붕을 덮었던 잿빛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수천 개의 날개가 동시에 공기를 쳤다⁠. 광장의 카메라 줄이 한꺼번에 하늘로 렌즈를 들었다⁠. 무리는 의사당 위를 크게 한 바퀴 돌고⁠, 광장으로⁠, 강 건너로⁠, 다리 밑으로⁠, 역 앞으로 흩어졌다⁠.

*

8월 중순⁠, 광장 분수 옆에 낮은 울타리가 둥글게 둘러졌다⁠. 구청이 세운 급식대였다⁠. 울타리 안의 돌바닥만 비둘기 밥상이었다⁠. 울타리 밖에서 먹이를 주면 과태료라고⁠, 초록 조끼들이 말했다⁠.

할아버지는 초록 조끼를 입고 울타리 안에 앉아 있었다⁠. 조끼 등에 글자가 있었다⁠. 구청이 할아버지에게 급식대를 맡겼다⁠. 할아버지는 쌀 대신 흰 알갱이를 뿌렸다⁠. 흰 알갱이는 밍밍했다⁠. 묵은 쌀의 먼지 맛도⁠, 노란 알갱이의 고소함도 없었다⁠. 구슬은 흰 알갱이를 쪼았다⁠. 하나를 더 쪼았다⁠.

“⁠이거 먹으면 알을 덜 낳는댜⁠. 미안혀⁠, 얘들아⁠. 구구구구⁠.⁠”

할아버지는 여전히 넷을 했다⁠.

울타리 끝에 잿빛 새 둘이 내려앉았다⁠. 내려앉는 꼴이 서툴렀다⁠. 하나는 발을 헛디뎌 앞으로 고꾸라졌고⁠, 하나는 날개를 너무 일찍 접어 엉덩이부터 떨어졌다⁠. 구슬의 새끼들이었다⁠. 의원회관 창틀을 떠나 처음 광장 바닥을 밟는 날이었다⁠. 아침에 구슬이 6층 창틀 앞을 지날 때⁠, 창틀에는 뾰족한 쇠침이 줄지어 박혀 있었다⁠. 새끼들이 둥지를 떠난 이튿날 정학이 박아 달라고 한 것이었다⁠. 유리 안쪽 책상의 연필꽂이에 회색 깃털 하나가 꽂혀 있었다⁠.

새끼 하나가 흰 알갱이를 쪼다가 할아버지의 운동화 끈을 쪼았다⁠. 할아버지가 웃었다⁠. 외발이 앉던 높은 돌은 비어 있었다⁠. 구슬은 이제 가끔만 높은 돌에 올라갔다⁠.

고무 장화가 철벅거리며 울타리 앞에 왔다⁠. 상인회장이 할아버지에게 종이 봉지를 내밀었다⁠. 국수 가락이 든 봉지였다⁠.

“⁠형님⁠, 새 차양 다음 달에 들어가요⁠. 법으로 나오는 돈으로요⁠. 그 사장 양반은 경찰 조사받는대요⁠. 업체 문 닫았대요⁠.⁠”

“⁠직원들은⁠?⁠”

상인회장이 대답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도 더 묻지 않았다⁠.

*

일곱 시 사십 분⁠, 지하철역에서 갈색 구두가 올라왔다⁠. 우산은 없었다⁠. 확성기도 없었다⁠. 가슴에 달린 작은 배지는 그대로였지만⁠, 사람들은 이제 정학을 보면 휴대전화부터 들었다⁠. 카메라를 멘 사람 하나가 정학을 따라붙었다⁠.

“⁠의원님⁠, 당에서 제명 절차 들어갔는데 심경 한 말씀 해 주시죠⁠.⁠”

“⁠구두 끈 묶을 시간이 생겼습니다⁠.⁠”

정학은 급식대 옆 벤치에 앉아 김밥 은박지를 벗겼다⁠. 손수건은 꺼내지 않았다⁠. 한입 베어 물자 밥알 몇 개와 단무지 끝이 돌바닥에 떨어졌다⁠. 울타리 밖이었다⁠.

“⁠의원 양반⁠, 거기는 급식대 밖이여⁠. 과태료⁠.⁠”

할아버지가 울타리 안에서 소리쳤다⁠. 정학이 밥알을 내려다보았다⁠. 둘레를 한 번 둘러보더니⁠, 구두 앞코로 밥알과 단무지 끝을 슬쩍 밀었다⁠. 한 번⁠, 두 번⁠. 밥알이 울타리 밑을 지나 급식대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구슬은 밥알을 따라 걸었다⁠. 고개를 까딱이며 울타리 밑을 지나 급식대 안으로 들어갔다⁠. 밥알을 쪼아 삼켰다⁠. 고개를 드니 갈색 구두가 바로 앞에 있었다⁠. 왼쪽 끈이 풀려 있었다⁠. 구슬은 끈 끝을 물고 당겼다⁠.

정학이 김밥을 벤치에 내려놓고 쪼그려 앉았다⁠. 물러나지 않았다⁠. 구슬이 끈을 물고 있는 채로 끈을 묶었다⁠. 매듭이 구슬의 부리 바로 앞에서 지어졌다⁠. 한 번⁠, 두 번⁠. 구슬은 끈을 놓지 않았다⁠. 정학도 손을 떼지 않았다⁠. 둘은 매듭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참 그러고 있었다⁠. 새끼 둘이 고개를 까딱이며 구두 둘레로 모여들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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