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78자)

흑요성

피켓팅 상대가 마왕? · 소하린

5월 29일 밤 아홉 시⁠, 잠실 공연장 천장 너머에서는 트로트 가수의 콘서트가 한창이었다⁠. 하역장까지 꺾는 소리가 내려왔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따라 부르는 어머님들의 떼창이 천장을 울렸다⁠. 녹색 철문 옆 벽에는 지난주에 없던 종이가 붙어 있었다⁠. 「⁠B3 비상구 무단 출입 금지 — 부산 공연 안전 사고 우려에 따른 서울시 협조 요청⁠」 부산 공연의 붉은 후드 단체 이야기가 저녁 뉴스에 나간 뒤 붙은 종이였다⁠.

연두는 오지 않았다⁠. 「⁠나 오늘 계약서 끝까지 읽어 볼 거야⁠. 다녀와서 얘기해 줘⁠.⁠」 메시지 끝에 마침표가 있었다⁠. 연두는 평소에 마침표를 안 찍었다⁠.

바르덴이 철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목의 하늘색 수건과 가방의 모래봉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 너머는 뜨겁소⁠. 숨을 짧게 쉬시오⁠.⁠”

“⁠얼마나 뜨거운데요⁠?⁠”

“⁠한여름 버스 정류장의 오후 두 시쯤이오⁠.⁠”

“⁠인간계 비유 많이 느셨네요⁠.⁠”

천장 너머에서 어머님들이 후렴을 한꺼번에 질렀다⁠. 철문이 열렸다⁠.

*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바르덴 말대로 한여름 버스 정류장이었다⁠. 철문 너머는 아래로 내려가는 검은 돌계단이었다⁠. 계단 벽에 박힌 돌 등잔에서 붉은 불이 흔들렸다⁠. 계단을 서른 칸쯤 내려가자 넓은 복도가 나왔다⁠. 천장이 높았다⁠. 검은 돌이 매끈하게 닦여 내 얼굴이 비쳤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 마계에는 안테나가 없었다⁠.

“⁠여기 와이파이 없어요⁠?⁠”

“⁠와이파이가 무엇이오⁠?⁠”

“⁠됐어요⁠.⁠”

복도는 조용했다⁠. 내 운동화 밑창이 돌바닥에 끌리는 소리⁠, 바르덴의 코트 자락이 쓸리는 소리⁠, 멀리서 쇠가 쇠를 두드리는 소리⁠. 소리마다 높은 천장에 부딪혀 늦게 돌아왔다⁠. 복도 양옆으로 마족 시종들이 서 있다가 바르덴을 보고 허리를 숙였다⁠. 시종들은 나를 보고 코를 벌름거렸다⁠. 하나가 옆 사람에게 속삭였다⁠. 나는 마계 말을 몰랐지만 「⁠인간⁠」이라는 낱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끝이 올라갔다⁠. 놀란 소리였다⁠.

복도 끝 넓은 계단을 올라가자 성벽 위로 나왔다⁠. 하늘이 붉었다⁠. 해가 진 뒤의 노을이 아니라 하늘 자체가 붉은색이었다⁠. 달이 떠 있었다⁠. 아직 덜 찬 달이 연한 분홍빛이었다⁠.

“⁠붉은 달 축제에는 저 달이 다 차오르오⁠. 피처럼 붉어지지⁠.⁠”

“⁠비유가 왜 그래요⁠.⁠”

“⁠마계 비유요⁠.⁠”

성벽 아래로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붉은 흙의 평원이었다⁠. 멀리 평원 끝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쇳소리가 늦게 도착했다⁠. 불빛 하나가 번쩍이고 셋을 세면 쇠 부딪치는 소리가 성벽까지 왔다⁠.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도 같이 왔다⁠. 콘서트 함성과 박자가 닮아 있었다⁠. 다른 점은 함성이 커졌다가 갑자기 끊긴다는 것이었다⁠. 끊긴 자리에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어왔다⁠.

“⁠붉은발톱과 은비늘이오⁠. 은비늘 우물을 두고 석 달째요⁠.⁠”

성벽 위에 도르마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도르마는 나를 보지 않고 평원만 보았다⁠.

“⁠우물은 붉은발톱이 메우고⁠, 은비늘이 파고⁠, 붉은발톱이 또 메운다⁠. 백 년을 그랬다⁠. 쯧⁠.⁠”

“⁠왜 메워요⁠?⁠”

“⁠은비늘이 물이 없으면 붉은발톱 창을 사서 붉은발톱 땅을 치러 와야 하니까⁠.⁠”

나는 도르마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두 번 생각하고 나서 알아들었다⁠. 은비늘이 붉은발톱 땅을 치러 오려면 창이 필요했다⁠. 마계에서 창을 만드는 가문은 붉은발톱이었다⁠. 가르쉬가 부산 로비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장장이와 바느질꾼⁠, 하루 두 끼⁠.

*

은비늘 가문의 아이들은 성 동쪽 탑 아래 넓은 방에 있었다⁠. 열넷이었다⁠. 인간 나이로 치면 다섯 살에서 열 살 사이로 보였다⁠. 목덜미에 은빛 비늘이 돋아 있었고⁠, 이마에 작은 뿔이 콩알만 하게 나 있었다⁠. 뿔은 아직 말랑해서 손으로 누르면 들어간다고 했다⁠. 아이들은 돌바닥에 깐 짚 위에 모여 앉아 있었다⁠. 방 안에서 그을음 냄새가 났다⁠. 불탄 마을에서 따라온 냄새였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모였다⁠. 은빛 비늘 손가락이 내 하늘색 수건 끝을 잡아당겼다⁠. 하나가 모래봉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모래봉 옆구리 단추를 눌렀다⁠. 딸깍⁠. 노란빛이 켜지자 아이들이 동시에 뒤로 넘어졌다⁠. 넘어진 채로 꺅꺅 웃었다⁠.

시종 하나가 통역을 했다⁠. 아이들이 노래를 해 달라고 한다고 했다⁠. 나는 노래를 못했다⁠. 노래방에서 점수 기계가 육십 점을 주면 연두가 박수를 쳐 주는 수준이었다⁠. 대신 나는 응원법을 할 줄 알았다⁠.

“⁠따라 해⁠. 우⁠! 담⁠!⁠”

“⁠우⁠! 다⁠!⁠”

“⁠우담⁠.⁠”

“⁠우다⁠!⁠”

열넷이 「⁠우다⁠」를 외쳤다⁠. 받침이 없는 우다였다⁠. 나는 숨 참는 자리를 가르쳤다⁠. 손바닥을 입에 대고 하나⁠, 둘⁠. 아이들이 숨을 참았다⁠. 볼이 빵빵해졌다⁠. 하나는 너무 오래 참다가 얼굴이 하얘져서 시종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셋을 세고 내가 외쳤다⁠.

“⁠한 번 더⁠!⁠”

“⁠한 번 더⁠!⁠”

열네 목소리가 돌방을 울렸다⁠.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아이들 뿔은 울지 않았다⁠. 너무 말랑해서 아직 울 수 없다고 시종이 말했다⁠. 대신 아이들이 웃었다⁠. 맨 앞에 앉은 가장 작은 아이가 내 무릎에 올라와 모래봉 단추를 눌렀다⁠. 딸깍⁠, 딸깍⁠. 단추를 누를 때마다 아이가 깔깔거렸다⁠. 웃음소리가 돌벽에 부딪쳐 돌아왔다⁠. 성에 들어온 뒤로 처음 듣는 쇳소리 아닌 소리였다⁠.

문간에서 바르덴이 아이들과 나를 보고 있었다⁠. 뿔은 울지 않았다⁠. 바르덴은 울지 않는 뿔을 손으로 한 번 쓸었다⁠.

*

저녁은 성 한가운데 큰 방에서 먹었다⁠. 탁자가 길었다⁠. 탁자 위 일곱 군데에 서로 다른 깃발이 꽂혀 있었다⁠. 붉은 발톱⁠, 굵은 쇠뿔⁠, 은빛 비늘⁠, 검은 깃털⁠, 안개 낀 꼬리⁠, 돌 같은 이빨⁠, 날개 편 나방⁠. 일곱 가문의 깃발이었다⁠. 깃발마다 앞에 빈 의자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백 년 동안 일곱 의자가 한꺼번에 찬 적이 없다고 바르덴이 말했다⁠.

시종이 내 앞에 돌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릇 안에서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불은 없었다⁠. 그릇 바닥에 깐 붉은 돌이 국물을 끓이고 있었다⁠. 국수 가닥이 검었다⁠.

“⁠이거 먹어도 돼요⁠? 사람이⁠?⁠”

“⁠사람도 먹는다⁠.⁠” 맞은편에 앉은 도르마가 젓가락을 들었다⁠. “⁠맵다⁠.⁠”

나는 한 가닥을 건져 입에 넣었다⁠. 처음에는 아무 맛도 없었다⁠. 세 번 씹자 혀가 불붙었다⁠. 나는 물그릇을 통째로 들이켰다⁠. 물도 미지근했다⁠. 도르마가 나를 보며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쇳소리 같은 웃음이었다⁠.

“⁠떡볶이 3단계보다 맵냐⁠?⁠”

“⁠오⁠, 오단계요⁠.⁠”

“⁠인간 녀석들은 다 똑같이 운다⁠. 전에 왔던 녀석도 이 국수를 먹고 울면서 세 그릇을⁠…⁠”

도르마가 말을 끊고 국수를 후루룩 넘겼다⁠. 바르덴이 헛기침을 했다⁠. 나는 혀가 너무 아파서 도르마의 말끝을 붙잡지 못했다⁠. 전에 왔던 인간이 누구인지 묻는 것은 혀가 식은 다음이었고⁠, 혀가 식었을 때 도르마는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

*

성벽으로 돌아왔을 때 평원의 불빛은 한 군데 더 늘어 있었다⁠. 나는 성벽 난간에 손을 짚었다⁠. 돌이 따뜻했다⁠. 낮의 열기가 아직 빠지지 않은 돌이었다⁠.

“⁠보여 주고 싶은 거 다 보여 주셨어요⁠?⁠”

“⁠그대가 보고 싶은 것은 다 보았소⁠?⁠”

“⁠전쟁은 그쪽 문제예요⁠.⁠”

말을 꺼내고 나서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목소리를 다시 키웠다⁠.

“⁠아이들 불쌍해요⁠. 마을 불탄 것도 끔찍해요⁠. 근데 그걸 우담이 노래 한 곡으로 끝내라는 건 말이 안 돼요⁠. 백 년이에요⁠. 노래 한 곡으로 백 년이 끝나요⁠?⁠”

“⁠한 곡으로는 안 끝나오⁠. 일곱 가문이 같은 노래를 함께 들어야 하오⁠. 붉은 달 아래⁠, 칼을 내려놓고⁠.⁠”

“⁠가르쉬는 칼 안 내려놓을 거예요⁠. 부산에서 봤잖아요⁠. 전사 이백 명을 팔짱 끼고 앉혀 놓는 사람이에요⁠. 축제에서는 이천 명을 데려올 거예요⁠. 그 앞에 우담을 세워요⁠? 계단 내려오다 발목 삐는 애를요⁠?⁠”

“⁠짐이 앞에 서겠다고 했소⁠.⁠”

“⁠그쪽이 서도 화살은 날아와요⁠.⁠”

바르덴은 대답하지 않았다⁠. 평원에서 쇳소리가 한 번 더 왔다⁠. 나는 난간을 놓았다⁠.

“⁠우담은 몰라요⁠. 여기가 이런 데인 줄⁠. 알면 안 와요⁠. 알면 기획사도 안 보내요⁠.⁠”

“⁠우담은 알고 있소⁠.⁠”

바르덴이 말했다⁠. 나는 바르덴을 보았다⁠. 바르덴은 나를 보지 않고 성벽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계단 아래에서 발소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가볍고 일정한 발소리였다⁠. 계단 아래 시종들이 차례로 허리를 숙이며 무어라 인사했다⁠. 인사말 끝에 낱말 하나가 붙었다⁠. 마계 말이 아니었다⁠.

“⁠우담 님⁠.⁠”

*

우담이 성벽 계단을 올라왔다⁠. 회색 연습복에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부산 퇴근길의 승합차 창문 너머로 본 차림 그대로였다⁠. 우담은 시종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시종 하나가 우담에게 물그릇을 건넸고 우담은 마계 말로 짧게 고맙다고 했다⁠. 발음이 자연스러웠다⁠. 한두 번 해 본 말이 아니었다⁠.

우담이 성벽 위로 올라와 바르덴에게 고개를 숙였다⁠. 바르덴도 고개를 숙였다⁠. 마왕과 아이돌이 서로 허리를 숙이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우담이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내 목의 하늘색 수건에서 눈이 멈췄다⁠.

“⁠아⁠. 오셨네요⁠.⁠”

우담이 웃었다⁠. 승합차 창문 너머에서 본 웃음과 같았다⁠. 나는 웃지 못했다⁠.

“⁠여기 어떻게 와요⁠?⁠”

“⁠다섯 해 전에요⁠. 데뷔 쇼케이스를 잠실 소공연장에서 했어요⁠. 끝나고 지하 대기실 찾다가 길을 잃었어요⁠. 지하 3층까지 내려갔는데 출구가 안 보이고⁠, 녹색 문이 하나 있길래 열었어요⁠. 위층에서 다음 팀 리허설 노래가 울리던 때였어요⁠.⁠”

우담이 성벽 난간에 팔꿈치를 올렸다⁠. 붉은 평원을 내려다보는 우담의 얼굴이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왔는데 너무 뜨겁고 무서웠어요⁠. 그래서 노래를 불렀어요⁠. 무서울 때 노래하는 버릇이 있어서요⁠. 「⁠마지막 모래⁠」 아직 발매도 안 했을 때였어요⁠. 반주 없이 불렀는데⁠, 복도 끝에서 웅 하는 소리가 났어요⁠. 처음엔 기계 소리인 줄 알았어요⁠.⁠”

우담이 바르덴을 보았다⁠. 바르덴이 자기 뿔을 손으로 덮었다⁠.

“⁠이분 뿔이었어요⁠. 태어나서 처음 울었대요⁠. 이분이 울면서 저한테 물었어요⁠. 다시 와서 노래해 줄 수 있냐고⁠. 제가 그랬어요⁠. 저희 아직 아무도 몰라요⁠. 단독 콘서트는 꿈도 못 꿔요⁠. 그래도 언젠가 단독 콘서트를 하게 되면⁠, 맨 앞자리를 드릴게요⁠.⁠”

“⁠그게 1열 7번이에요⁠?⁠”

“⁠제 정면이요⁠.⁠”

나는 바르덴을 보았다⁠. 바르덴은 마흔 번 연습한 손가락을 코트 소매 안으로 감추고 있었다⁠.

“⁠그 대신 저도 부탁했어요⁠.⁠” 우담이 말했다⁠. “⁠언젠가 여기서 노래하게 해 달라고⁠. 저희 노래로 누가 덜 싸울 수 있으면⁠, 저는 그런 무대에 서 보고 싶다고⁠. 다섯 해 동안 여기 몰래 왔어요⁠. 은비늘 아이들한테 노래도 가르쳐 주고⁠, 쇠뿔 가문 할머니들이랑 떡도 먹고요⁠. 재상님이 매운 거 좋아하시는 것도 제가 처음 알았어요⁠. 제가 들고 온 매운 새우 과자를 한 봉지 다 드셨거든요⁠.⁠”

평원에서 불빛이 하나 번쩍였다⁠. 셋을 세기 전에 쇳소리가 왔다⁠. 이번에는 가까웠다⁠. 나는 숨 쉬는 것을 잊고 있었다⁠. 우담은 난간에서 팔꿈치를 떼고 나를 똑바로 보았다⁠. 낮고 느린 목소리였다⁠.

“⁠마계 무대는 제가 먼저 부탁했어요⁠, 하늘색 수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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