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13자)

매크로

피켓팅 상대가 마왕? · 소하린

5월 3일 저녁 일곱 시 오십구 분⁠, 「⁠3층 모래알⁠」 방의 인원은 천구백 명이었다⁠. 나는 공지를 세 번 고쳐 올렸다⁠. 「⁠부산 · 대구 · 광주 세 도시⁠. 한 사람 두 장까지⁠. 남의 표 대신 잡아 주는 대리 티켓팅 금지⁠. 정가 아닌 거래 금지⁠.⁠」 공지 아래에 이모티콘이 수백 개 달렸다⁠. 연두는 작업실 바닥에 노트북을 펴고 부산 공연을 맡았다⁠. 나는 광주 막공이었다⁠. 두 번째 판⁠, 떼창이 열리는 날이었다⁠.

손가락을 꺾었다⁠. 똑⁠, 똑⁠. 연두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두도 손가락을 꺾고 있었다⁠.

서버 시간 창의 숫자가 넘어갔다⁠. 새로 고침⁠. 딸깍⁠.

「⁠매진⁠」

배치도도 뜨지 않았다⁠. 대기 순번 창도 없었다⁠. 정각에 누른 화면에 매진 두 글자만 떠 있었다⁠. 연두의 노트북에도 같은 글자가 떠 있었다⁠. 오픈채팅방이 폭발했다⁠.

「⁠?⁠?⁠?⁠?⁠?⁠?⁠」

「⁠저 정각에 눌렀는데요⁠」

「⁠대구도 매진 뜸 0초 매진 이게 말이 됨⁠?⁠」

「⁠서버 터진 거 아니에요⁠? 다시 열리는 거죠⁠?⁠」

「⁠방장님 이거 뭐예요⁠」

나도 몰랐다⁠. 나는 새로 고침을 서른 번 눌렀다⁠. 서른 번 다 매진이었다⁠. 다섯 해 동안 티켓팅을 하면서 표를 놓친 적은 많았다⁠. 놓쳤다는 것은 표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표가 처음부터 없었다⁠.

이십 분 뒤 연두가 휴대전화를 내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리셀 앱 표마켓이었다⁠. 「⁠모래시계 투어⁠」를 검색하자 판매 글이 끝없이 내려왔다⁠. 판매자는 전부 하나였다⁠. 「⁠붉은발톱⁠」 부산 1층 R석 한 장 백삼십이만 원⁠. 정가 십삼만 이천 원의 열 배였다⁠. 광주 막공 1층 앞 구역은 이백만 원이었다⁠.

“⁠매크로야⁠.⁠” 연두가 말했다⁠. “⁠한 사람이 이렇게 쓸어 가는 건 손으로는 안 돼⁠.⁠”

판매자 프로필을 눌렀다⁠. 가입일은 사흘 전⁠. 프로필 사진은 짐승 발톱 자국 같은 붉은 줄 네 개였다⁠. 사흘 전 가입한 계정이라는 데서 내 머릿속에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1열 인증 글을 올린 계정도 사흘 전 가입이었다⁠. 투어에 돈을 댄 후원사도 1열의 마왕이었다⁠.

“⁠나 잠실 간다⁠.⁠”

“⁠지금⁠? 오늘 공연 없잖아⁠.⁠”

“⁠있어⁠. 다른 그룹 막공⁠.⁠”

*

밤 열 시⁠, 지하 3층 하역장⁠. 천장 너머로 앙코르 곡이 쿵쿵 내려왔다⁠. 녹색 철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문 앞을 몸으로 막았다⁠. 붉은빛 속에서 나오던 바르덴이 나와 부딪칠 뻔하고 멈췄다⁠. 품에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 투어 기념 슬로건 견본이었다⁠.

“⁠아⁠, 3층⁠. 마침 잘 왔소⁠. 짐이 슬로건 글씨를 골랐는데⁠…⁠”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바르덴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표마켓의 붉은발톱 판매 목록이었다⁠.

“⁠이것도 고르셨어요⁠?⁠”

바르덴이 화면을 보았다⁠. 처음에는 무슨 화면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표 한 장 가격 옆에 붙은 숫자를 읽고 나서 얼굴이 굳었다⁠. 품에 안았던 슬로건 견본이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 위의 뿔에서 웅 소리 대신 치익⁠, 하고 쇠가 식는 소리가 났다⁠. 뿔 둘레의 공기가 일렁였다⁠. 가까이 있던 내 볼이 화끈거렸다⁠.

“⁠이게 누구의 짓이오⁠?⁠”

“⁠그쪽 아니에요⁠? 사흘 전 가입⁠. 1열 계정도 사흘 전 가입이었잖아요⁠. 투어도 그쪽 돈이고요⁠. 표를 다 쥐고 있으면 떼창 판은 그쪽 마음대로잖아요⁠.⁠”

“⁠짐은 매크로를 쓰지 않는다 했소⁠.⁠”

바르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오체가 빠지고 있었다⁠. 하역장 형광등 하나가 지지직 떨다 꺼졌다⁠.

“⁠짐은 서버 시간을 보고 마흔 번 연습했소⁠. 1열 7번을 잡으려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소⁠. 그런 짐에게⁠, 이걸⁠, 짐이 했다고 하는 것이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바르덴은 바닥에 떨어진 견본을 주워 먼지를 털었다⁠. 털면서 화면을 다시 보았다⁠. 판매자 프로필의 붉은 줄 네 개에서 눈이 멈췄다⁠.

“⁠붉은발톱⁠.⁠”

“⁠아세요⁠?⁠”

“⁠일곱 가문 중 하나요⁠. 가주의 이름은 가르쉬⁠. 백 년 전 마지막 경연이 깨진 날⁠, 칼을 뽑은 가주의 손자요⁠. 붉은발톱은 전쟁으로 먹고사오⁠. 다른 가문들에 창과 갑옷을 대고⁠, 싸움이 멈추면 전사 삼천이 할 일이 없소⁠.⁠”

“⁠그 가문이 왜 인간계 표를 사요⁠?⁠”

“⁠축제를 깨려는 것이오⁠. 떼창 판에 마족도 인간도 노래하지 못하게⁠.⁠” 바르덴이 견본을 품에 다시 안았다⁠. “⁠표를 사는 것은 자리를 사는 것이오⁠. 자리를 사면 소리를 막을 수 있소⁠. 공연장 반을 입 다문 전사로 채우면⁠, 그대의 떼창도 짐의 떼창도 반쪽이 되오⁠.⁠”

천장 너머의 앙코르가 끝났다⁠. 함성이 잦아들자 철문 틈의 붉은빛도 가늘어졌다⁠. 나는 화면을 껐다⁠.

“⁠의심해서 죄송해요⁠.⁠”

“⁠사과는 받겠소⁠. 대신 도와주시오⁠.⁠”

“⁠제가요⁠? 그쪽을요⁠?⁠”

“⁠그대는 인간계 표를 짐보다 잘 아오⁠. 짐은 붉은발톱을 그대보다 잘 알고⁠.⁠”

나는 바르덴을 오래 보았다⁠. 마왕은 견본을 품에 안은 채 대답을 기다렸다⁠. 겨루기 상대와 손을 잡는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도 매크로 앞에서는 바르덴도 나도 똑같이 0초에 진 사람이었다⁠.

“⁠표마켓에서 직거래로 불러내요⁠. 현금으로 산다고 하면 얼굴을 보여 줄 거예요⁠.⁠”

*

메시지는 내가 보냈다⁠. 「⁠광주 막공 1층 스무 장 현금 직거래 원해요⁠. 한 번에 사겠습니다⁠.⁠」 답이 십 분 만에 왔다⁠. 「⁠내일 저녁 일곱 시⁠, 잠실새내역 4번 출구 앞⁠. 사천만 원⁠. 현금만⁠.⁠」

다음 날 아침⁠, 나는 작업실 바닥에 누워 공연 암표 신고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다는 매크로 처벌법 뉴스 아래 적힌 번호였다⁠. 연결음이 사 분 동안 이어지다 녹음된 목소리가 나왔다⁠.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매크로 사용 여부 확인에는 영업일 기준 삼십 일이 소요됩니다⁠.⁠」 삼십 일 뒤면 부산 공연이 끝나 있었다⁠.

연두는 책상에 엎드려 표마켓을 내리고 있었다⁠. 붉은발톱의 판매 글 아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백삼십만 원이면 제 석 달 월세인데요⁠」 「⁠신고했어요 다들 신고해 주세요⁠」 「⁠근데 저 하나 샀어요⁠… 우담 보고 싶어서⁠… 죄송해요⁠」 마지막 댓글에 비난 답글이 쉰 개 달려 있었다⁠. 연두가 화면을 끄고 천장을 보았다⁠.

“⁠석 달 월세래⁠. 나랑 똑같네⁠.⁠”

“⁠너 집주인 문자 왔지⁠?⁠”

연두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서랍을 열어 쌓여 있는 키링 재고를 보여 주었다⁠. 우담 모래시계 키링이 백 개 넘게 있었다⁠. 지난주 주문은 일곱 개였다⁠.

“⁠투어 표가 없으면 투어 굿즈도 안 팔려⁠. 사람들이 공연장에 못 가는데 키링을 왜 사⁠.⁠”

나는 붉은발톱의 판매 목록을 다시 열었다⁠. 숫자 하나하나가 연두의 월세와 3층 사람들의 알바비로 보였다⁠.

“⁠사천만 원이 어디 있어⁠.⁠” 연두가 말했다⁠. 연두는 직거래에 따라오겠다고 끝까지 우겼다⁠. 혹시 몰라 연두상회 이름이 박힌 쇼핑백도 하나 챙겼다⁠. 쇼핑백 안에는 신문지 뭉치가 들어 있었다⁠.

“⁠돈 보여 달라고 하면⁠?⁠”

“⁠그때는 뛰자⁠.⁠”

바르덴은 4번 출구 맞은편 편의점 앞에 있었다⁠. 머리에 회색 비니를 쓰고 있었다⁠. 내가 어제 뿔을 좀 가리라고 했던 것이었다⁠. 비니 정수리에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고⁠, 구멍마다 검은 뿔이 삐죽 나와 있었다⁠.

“⁠가렸소⁠.⁠”

“⁠뚫으면 가린 게 아니에요⁠.⁠”

“⁠안 뚫으면 비니가 터지오⁠.⁠”

연두가 편의점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웃음을 참았다⁠. 어깨가 들썩거렸다⁠. 지나가던 대학생 하나가 바르덴을 보고 “⁠뿔 비니 귀엽다⁠” 하고 친구에게 속삭였다⁠. 바르덴은 정색을 하고 대학생에게 고개를 숙였다⁠. 연두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투자자님⁠, 아니 마왕님⁠. 혹시 현금은 있으세요⁠?⁠” 연두가 웃음을 겨우 삼키고 물었다⁠.

“⁠금화라면 있소⁠.⁠”

“⁠금화 내밀면 저쪽이 바로 알아보겠죠⁠.⁠”

“⁠알아보라고 내밀 것이오⁠.⁠”

바르덴이 코트 주머니를 두드렸다⁠. 주머니에서 금화끼리 부딪치는 둔한 소리가 났다⁠. 직거래에 나온 사람 셋 가운데 돈을 가진 사람은 마왕 하나였다⁠.

일곱 시 정각⁠, 4번 출구 계단을 남자 하나가 올라왔다⁠. 바르덴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짙은 붉은색 정장에 검은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중절모 아래로 짧게 잘린 뿔 두 개가 보였다⁠. 잘린 단면이 녹슨 쇠처럼 붉었다⁠. 남자는 내 앞에서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붉은발톱입니다⁠. 현금은 준비하셨습니까⁠?⁠”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은행 창구 직원보다 공손했다⁠. 나는 쇼핑백을 꽉 쥐었다⁠.

“⁠표 먼저 보여 주세요⁠.⁠”

“⁠물론이지요⁠.⁠”

남자가 정장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 광주 막공 1층 앞 구역 좌석 스무 개가 떴다⁠. 예매자 이름 칸에 처음 보는 이름들이 줄줄이 있었다⁠. 나는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남자의 손을 보았다⁠. 손톱이 붉고 길었다⁠. 손등에 오래된 칼자국이 세 줄 나 있었다⁠.

“⁠이거 매크로로 잡으신 거죠⁠?⁠”

“⁠기계를 빌렸을 뿐입니다⁠. 인간계 기계가 참 빠르더군요⁠.⁠”

“⁠가르쉬⁠.⁠”

편의점 앞에서 바르덴이 걸어왔다⁠. 비니 구멍으로 나온 뿔에서 열기가 일렁였다⁠. 가르쉬는 바르덴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얼굴로 중절모를 다시 가슴에 댔다⁠.

“⁠마왕 폐하⁠. 인간계 비니가 잘 어울리십니다⁠.⁠”

“⁠표를 내놓아라⁠.⁠”

“⁠팔고 있는 물건입니다⁠. 사시면 됩니다⁠.⁠”

“⁠그 표로 공연장을 입 다문 전사로 채우려는 것이 아니냐⁠.⁠”

바르덴의 목소리가 출구 앞 보도블록을 울렸다⁠. 퇴근길 사람들이 우리를 비켜 갔다⁠. 가르쉬는 웃었다⁠. 웃는 얼굴이 정중했다⁠.

“⁠저는 표를 샀습니다⁠. 앉을 자리를 산 것이지요⁠. 앉은 사람이 소리를 낼지 말지는 앉은 사람 마음입니다⁠. 인간계 법에도 응원하지 않는 관객을 내쫓는 조항은 없더군요⁠.⁠”

“⁠전쟁을 이어 가려고 하는 짓이잖아요⁠.⁠”

내가 끼어들었다⁠. 가르쉬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보았다⁠. 노란 눈이었다⁠. 가운데가 세로로 갈라져 있었다⁠.

“⁠아가씨⁠. 붉은발톱에는 전사가 삼천 있습니다⁠. 전사들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있고⁠, 아이들은 하루 두 끼를 먹습니다⁠. 창을 만드는 대장장이⁠, 갑옷을 깁는 바느질꾼도 붉은발톱 사람입니다⁠. 전쟁이 멈추면 그 사람들 밥은 누가 줍니까⁠? 마왕 폐하가 노래 한 곡으로 주십니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가르쉬의 말은 차분했고⁠, 틀린 데를 짚기 어려웠다⁠. 바르덴이 한 발 다가갔다⁠. 가르쉬가 한 발 물러나 계단 난간에 손을 얹었다⁠.

“⁠폐하⁠, 여기서 뿔을 세우시면 인간들이 다칩니다⁠. 마계의 왕이 인간계 지하철역에서 싸움을 걸었다는 소문은 축제에 좋지 않겠지요⁠.⁠”

바르덴의 뿔에서 일렁이던 열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연두가 내 등 뒤에서 숨을 내쉬었다⁠. 가르쉬는 휴대전화를 안주머니에 넣고 중절모를 썼다⁠.

“⁠거래는 없던 것으로 하지요⁠. 아가씨 쇼핑백에는 신문지 냄새가 납니다⁠.⁠”

연두가 쇼핑백을 등 뒤로 숨겼다⁠. 가르쉬는 계단을 두 칸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철역 안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정장 자락을 흔들었다⁠.

“⁠아⁠, 아가씨⁠. 표마켓 판매 기록은 오래 남더군요⁠. 2025년 12월⁠, 모래시계 팬미팅 표 한 장⁠. 십일만 원에 사서 사십오만 원에 파셨지요⁠. 판매자 이름이 표나는팬이었습니다⁠. 이름 참 잘 지으셨습니다⁠.⁠”

나는 쇼핑백을 놓쳤다⁠. 신문지 뭉치가 보도블록 위로 쏟아졌다⁠. 연두가 무릎을 꿇고 신문지를 주웠다⁠. 연두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바르덴이 나를 보았다⁠. 가르쉬는 중절모 챙을 손가락으로 살짝 들어 올렸다⁠.

“⁠아가씨도 표를 팔아 본 사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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