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601자)

3층의 함성

피켓팅 상대가 마왕? · 소하린

3월 20일 밤⁠, 나는 오픈채팅방을 하나 열었다⁠. 이름은 「⁠3층 모래알⁠」 들어오는 조건은 하나였다⁠. 「⁠4월 17일 잠실 3층 예매 인증⁠」 첫날 열두 명이 들어왔다⁠.

「⁠방장님 혹시 그 마왕 글 쓰신 분⁠…⁠?⁠」

「⁠네⁠」

「⁠아 ㅋㅋㅋㅋ 저 그 글 재밌게 봤어요 응원법 연습은 진짜로 하는 거죠⁠?⁠」

「⁠진짜로 해요⁠. 우리가 1열 이겨야 돼요⁠」

「⁠1열을 어떻게 이겨요 거긴 우담 침도 튀는 자리인데⁠」

나는 대답 대신 음성 파일을 하나 올렸다⁠. 모래시계 타이틀곡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에⁠」의 응원법을 내가 직접 녹음한 것이었다⁠. 전주 여덟 마디 뒤 멤버 이름 다섯을 차례로 부르고⁠, 후렴 앞 두 박을 비우고⁠, 우담의 고음 직전에 다 같이 숨을 참았다가 「⁠한 번 더⁠」를 외친다⁠. 숨 참는 자리가 핵심이었다⁠. 거기서 단 한 사람이라도 먼저 소리를 내면 우담의 고음이 함성에 묻힌다⁠. 다섯 해 동안 콘서트 게스트 무대에서는 숨 참는 자리가 늘 무너졌다⁠.

사흘 만에 방 인원이 백 명을 넘었다⁠. 일주일 만에 이백⁠. 3층 예매자들이 서로를 데려왔다⁠. 연두는 슬로건을 맡았다⁠. 하늘색 바탕에 노란 글씨로 「⁠3층에서도 다 보여⁠」 연두는 레이저 커팅기 앞에서 밤을 새우며 투덜거렸다⁠.

“⁠무료 배포 삼백 장⁠. 재료비 십팔만 원⁠. 이거 누가 갚아⁠?⁠”

“⁠우담이 갚아⁠.⁠”

“⁠우담이 우리 집 월세도 갚아 주면 좋겠다⁠.⁠”

연두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커팅기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오래 멈춰 있었다⁠.

4월 첫 주부터 일요일마다 올림픽공원 잔디밭에서 연습했다⁠. 처음 나온 사람은 스물두 명이었다⁠. 지나가던 강아지가 우리 함성에 놀라 주인 다리 사이로 숨었다⁠. 두 번째 일요일에는 예순 명⁠, 세 번째 일요일에는 백사십 명이 나왔다⁠. 숨을 참는 자리에서 백사십 명이 한꺼번에 숨을 참으면 잔디밭 전체가 조용해졌다⁠. 바람이 풀을 쓰는 소리만 남았다⁠. 다음 박자에 「⁠한 번 더⁠」가 터지면 비둘기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콘서트 전날 밤 방 인원은 삼백십이 명이었다⁠.

전날 밤에는 엄마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세탁소 다리미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칙칙 났다⁠.

“⁠너 내일 콘서트지⁠? 뉴스에 나오더라⁠. 모래시계 첫 단독 매진이라고⁠.⁠”

“⁠엄마 뉴스도 봐⁠?⁠”

“⁠손님이 틀어 놓고 갔어⁠. 근데 화면에 뿔 달린 사람이 1열 인증하는 것도 나오던데⁠. 요즘은 그런 게 유행이니⁠?⁠”

나는 대답을 못 하고 웃었다⁠. 지역 방송 연예 꼭지가 모래알 광장의 1열 인증 글을 화면에 띄웠다고 했다⁠. 마왕이 저녁 뉴스에 나왔는데 아무도 마왕인 줄 몰랐다⁠.

*

4월 17일 오후 다섯 시⁠, 잠실 공연장 보안 검색대 앞이 시끄러웠다⁠. 검은 후드를 깊이 눌러쓴 사람 아홉이 줄을 서 있었다⁠. 키가 다들 컸고⁠, 후드 위로 뾰족한 것이 불룩 솟아 있었다⁠. 맨 앞 사람이 검색대 바구니에 은빛 삼지창을 내려놓았다⁠. 보안 요원이 삼지창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건⁠… 소품인가요⁠?⁠”

“⁠가문의 창이오⁠. 놓고 가라 하면 놓고 가겠소⁠.⁠”

“⁠네⁠, 놓고 가 주세요⁠. 응원봉은 되는데 창은 안 돼요⁠.⁠”

아홉 명이 차례로 삼지창과 짧은 칼과 쇠사슬 달린 철퇴를 맡겼다⁠. 보안 요원이 물품 보관 번호표를 아홉 장 써 주었다⁠. 내 앞에 서 있던 고등학생 팬이 “⁠컨셉 미쳤다⁠” 하고 휴대전화로 찍었다⁠. 마족 하나가 카메라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맨 뒤에 바르덴이 있었다⁠. 검색대를 지나며 바르덴이 나를 발견하고 모래봉을 들어 보였다⁠. 바르덴의 모래봉에는 검은 리본이 감겨 있었다⁠.

“⁠검은깃 가문의 젊은이들이오⁠. 짐과 함께 한 달을 연습했소⁠.⁠”

“⁠창 들고 연습했어요⁠?⁠”

“⁠창 대신 모래봉을 들었소⁠. 처음에는 셋이 모래봉을 부러뜨렸소⁠.⁠”

도르마는 2층 관계자석에 앉기로 했다⁠. 구문팔이 마련해 준 자리였다⁠. 도르마는 컵떡볶이 두 개를 무릎에 올려놓고 지팡이를 옆 좌석에 기대 두었다⁠. 공연장 안내 요원이 다가가 음식 반입은 안 된다고 말하자⁠, 도르마가 안내 요원을 올려다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안내 요원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갔다⁠.

3층 R구역 마지막 줄⁠. 나는 하늘색 수건을 목에 두르고 의자 위로 올라갔다가 연두에게 끌려 내려왔다⁠.

“⁠앉아서 해⁠. 경호원 온다⁠.⁠”

3층 좌석 곳곳에 하늘색 슬로건이 펼쳐져 있었다⁠. 삼백십이 장이 3층 전체에 퍼져 있었다⁠. 무대는 멀었다⁠. 무대 위 조명 틀이 성냥개비처럼 작게 보였다⁠. 1열은 점 하나였다⁠. 점 하나 위에 검은 뿔 두 개가 있었다⁠.

*

공연은 여덟 시에 시작했다⁠. 첫 곡의 전주가 울리자 공연장이 흔들렸다⁠. 모래시계 다섯 명이 무대 밑에서 솟아올랐다⁠. 우담은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3층에서도 셔츠 깃이 보였다⁠. 나는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가 연두가 옆구리를 찔러서 기억해 냈다⁠.

타이틀곡은 다섯 번째 곡이었다⁠.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에⁠」의 피아노 전주가 흐르자 1열에서 소리가 났다⁠. 아홉 마족과 바르덴의 목소리였다⁠. 멤버 이름 다섯이 낮고 굵게 울렸다⁠. 사람 목소리보다 한 옥타브 아래였고⁠,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박자는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1열 주변 관객들이 고개를 돌려 1열을 보았다⁠. 우담이 노래하다 말고 1열을 내려다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가 웃었다⁠.

2층 관계자석의 도르마는 떡볶이를 씹고 있었다⁠. 뿔은 조용했다⁠.

후렴 앞 두 박⁠. 숨 참는 자리⁠. 나는 3층 난간을 잡고 모래봉을 높이 들었다⁠. 삼백십이 개의 모래봉이 같이 올라갔다⁠. 3층 전체가 숨을 참았다⁠. 1열에서 마족 하나가 박자를 못 참고 「⁠한⁠」 하고 반 글자를 먼저 냈다⁠. 바르덴이 성급한 마족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우담의 고음이 공연장 천장까지 올라갔다⁠. 아무것도 우담의 목소리를 덮지 않았다⁠. 고음이 끝나는 자리에서 3층이 터졌다⁠.

“⁠한 번 더⁠!⁠”

삼백십이 명의 목소리였다⁠. 바로 아래 2층이 따라 했다⁠. 2층 관객들은 연습한 적이 없었다⁠. 다만 3층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다음 박자에 같이 외쳤다⁠. 함성은 2층 난간을 넘어 1층 객석으로 흘러내렸다⁠. 세 번째 「⁠한 번 더⁠」에서는 공연장 전체가 같은 박자로 외치고 있었다⁠. 1열의 마족 아홉도⁠, 바르덴도 같이 외쳤다⁠. 우담이 마이크를 내리고 고개를 들어 3층을 보았다⁠. 손가락으로 3층 끝을 가리켰다⁠.

웅⁠.

함성 사이로 낮은 울림이 들렸다⁠. 3층 끝에서도 들릴 만큼 컸다⁠. 2층 관계자석에서 도르마가 떡볶이 컵을 떨어뜨렸다⁠. 도르마의 오른쪽 뿔이⁠, 그리고 부러진 왼쪽 뿔의 밑동이 웅웅 울고 있었다⁠. 도르마는 두 손으로 뿔을 감싸 쥐었다⁠. 육백 년 산 노파가 공연장 의자에서 어깨를 떨었다⁠. 웅 소리는 「⁠한 번 더⁠」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연두가 내 팔을 붙잡았다⁠.

“⁠야⁠. 저 할머니 우는 거야⁠, 뿔이 우는 거야⁠?⁠”

“⁠둘 다⁠.⁠”

*

중간에 영상이 나오는 십 분 동안 3층 통로가 소란해졌다⁠. 지팡이 방울 소리가 계단을 올라왔다⁠. 도르마였다⁠. 안내 요원 둘이 어쩔 줄 모르고 뒤따라왔다⁠. 도르마는 R구역 마지막 줄까지 올라와 내 옆 통로 계단에 털썩 앉았다⁠. 숨이 가빴다⁠. 육백 살에게 3층은 높았다⁠.

“⁠여기서 들어 보려고 왔다⁠. 아까 그 소리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여기서요⁠. 여기 R구역 끝에서⁠.⁠”

도르마가 3층 난간 너머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무대가 손톱만 했다⁠.

“⁠이렇게 먼 데서 저렇게 큰 소리를 냈구나⁠. 쯧⁠.⁠”

도르마가 부러진 뿔 밑동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백 년 전 마지막 경연 날⁠, 나는 무대 맨 앞에 있었다⁠. 붉은발톱 가문의 가객이 노래를 하다가 목이 갈라졌지⁠. 다른 가문들이 웃었다⁠. 가객이 무대에서 내려가자 붉은발톱 가주가 칼을 뽑았다⁠. 경연은 거기서 깨졌다⁠.⁠”

“⁠그 뒤로 백 년이요⁠?⁠”

“⁠그 뒤로 백 년⁠. 뿔이 우는 소리보다 칼 소리를 더 많이 들었다⁠.⁠”

도르마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영상이 끝나고 무대에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인간 편을 든 게 아니다⁠. 소리 편을 든 거다⁠.⁠”

도르마는 말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갔다⁠. 안내 요원 둘이 다시 뒤따랐다⁠.

*

앙코르는 열 시 반이었다⁠. 다섯 멤버가 땀에 젖은 티셔츠 차림으로 나왔다⁠. 리더가 마이크를 잡고 한참 말을 고르다가 우담에게 넘겼다⁠. 우담이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쥐었다⁠.

“⁠저희 다섯 해 동안 이런 자리 꿈만 꿨는데요⁠. 꿈을 하나 더 꿔도 될까요⁠? 저희⁠, 전국 투어 해요⁠.⁠”

공연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무대 뒤 대형 화면에 투어 일정이 떴다⁠. 「⁠모래시계 첫 전국 투어 · 5월 부산 · 6월 대구 · 6월 광주⁠」 화면 맨 아래에 작은 글씨가 지나갔다⁠. 「⁠후원 흑요성⁠」 함성 속에서 작은 글씨까지 본 사람은 몇 없었다⁠. 나는 보았다⁠. 1열의 점 하나가 뒤를 돌아 3층을 올려다보는 것도 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퇴장 계단은 사람으로 꽉 찼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거슬러 1층으로 내려갔다⁠. 1층 출구 앞 계단참에 바르덴이 있었다⁠. 검은깃 마족 아홉이 물품 보관소 앞에 줄을 서 번호표를 내밀고 있었다⁠.

“⁠첫 판은 그대의 것이오⁠. 축하하오⁠.⁠”

“⁠투어를 사셨어요⁠?⁠”

“⁠사지 않았소⁠. 무대가 모자라다길래 무대를 보탰을 뿐이오⁠.⁠”

“⁠그게 사는 거예요⁠.⁠”

바르덴이 계단 난간에 등을 기댔다⁠. 나보다 두 칸 아래였는데도 눈높이가 같았다⁠.

“⁠그대가 이긴 덕에 알게 되었소⁠. 짐의 응원단 아홉으로는 공연장 하나도 못 이기오⁠. 판이 커져야 하오⁠. 짐은 더 많은 마족을 데려와야 하고⁠, 그대는 더 많은 팬을 모아야 할 것이오⁠.⁠”

“⁠투어 무대마다 그쪽 응원단 데리고 오겠다는 거죠⁠?⁠”

“⁠둘째 판은 떼창이오⁠. 투어 마지막 날⁠, 광주⁠.⁠”

“⁠제가 그때까지 안 지면요⁠?⁠”

“⁠그대가 이기면 우담은 마계에 오지 않소⁠. 일곱 가문은 다시 싸우고⁠.⁠”

바르덴이 담담하게 말했다⁠. 계단 위에서 내려오던 팬 하나가 바르덴의 뿔을 보고 “⁠1열 마왕님이다⁠!⁠” 하고 소리쳤다⁠. 바르덴은 팬을 향해 모래봉을 흔들어 주었다⁠. 팬이 꺅 소리를 지르며 사진을 찍었다⁠.

물품 보관소에서 삼지창을 돌려받은 검은깃 마족 하나가 바르덴에게 다가왔다⁠. 다른 마족들보다 어려 보였다⁠. 아까 박자를 못 참고 반 글자를 먼저 냈던 마족이었다⁠. 마족은 바르덴에게 무어라 낮게 말하고⁠, 나를 한 번 보더니 삼지창을 등 뒤로 숨겼다⁠.

“⁠뭐래요⁠?⁠”

“⁠다음에는 숨을 참겠다고 하오⁠. 그리고 3층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고⁠.⁠”

계단 위에서 연두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연두는 휴대전화를 머리 위로 흔들고 있었다⁠. 내 휴대전화도 주머니에서 쉬지 않고 떨렸다⁠. 꺼내 보니 「⁠3층 모래알⁠」 방에 입장 요청이 쌓여 있었다⁠. 육백⁠, 칠백⁠. 숫자가 눈앞에서 올라갔다⁠.

「⁠투어 같이 가요⁠!⁠!⁠!⁠」

「⁠방장님 부산 응원법도 하시는 거죠⁠?⁠?⁠?⁠」

「⁠흑요성이 어디예요⁠? 후원사 검색해도 안 나와요⁠」

계단 위에서 구문팔이 사람들을 헤치고 내려왔다⁠. 땀에 젖은 셔츠 단추가 하나 풀려 있었다⁠. 구문팔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바르덴에게 달려가 두 손을 잡았다⁠.

“⁠투자자님⁠! 투어 예매 페이지 오픈 공지만 띄웠는데 서버가 벌써 출렁출렁해요⁠. 우리 애들 인생에 이런 날이 와요⁠.⁠”

“⁠대표⁠, 표는 한 사람이 한 장만 사게 하시오⁠.⁠”

“⁠두 장까지는 되죠⁠, 보통⁠?⁠”

“⁠그럼 두 장⁠.⁠”

바르덴은 구문팔에게 손을 잡힌 채로 나를 보았다⁠. 구문팔이 그제야 나를 알아보고 “⁠아⁠, 떡 학생⁠” 하고 반가워했다⁠. 나는 떡 학생이 되었다⁠.

휴대전화 속 마지막 메시지를 쓴 사람의 프로필 사진은 우담이었다⁠. 나는 화면에서 고개를 들었다⁠. 계단참에는 아무도 없었다⁠. 1층 출구 너머로 검은 코트 자락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하 하역장으로 내려가는 경사로를 향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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