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09자)

팬심 겨루기

피켓팅 상대가 마왕? · 소하린

3월 17일 새벽 두 시⁠, 내가 모래알 광장에 올린 글의 조회수는 천이백이었다⁠. 제목은 「⁠1열 7번 계정 주인 진짜 마왕입니다 (⁠긴 글⁠)⁠」였다⁠. 뿔이 우는 소리를 휴대전화로 녹음해 붙였고⁠, 하역장 철문 사진도 붙였다⁠. 댓글은 마흔 개가 달렸다⁠.

「⁠소설 잘 읽었습니다 다음 화 언제 나와요⁠」

「⁠작성자님 1열 놓치고 많이 힘드셨구나⁠… 따뜻한 물 드세요⁠」

「⁠철문 사진 공연장 B3 맞네요 저기 흡연 구역임⁠」

「⁠마왕이면 1열 정도는 양보하는 아량을 보여 주세요 마왕님⁠」

마지막 댓글에 흑요성주인이 답글을 달았다⁠. 「⁠아량과 1열은 별개다⁠.⁠」 마왕의 답글에 좋아요가 삼백 개 붙었다⁠. 내 글보다 많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이불 속에 묻고 베개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옆방 사람이 벽을 두 번 두드렸다⁠. 나는 베개를 하나 더 얹고 한 번 더 질렀다⁠.

한 시간 뒤 연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너 글 캡처돼서 다른 커뮤에 돌아다님⁠. 제목이 ‘⁠1열 놓친 팬의 망상 레전드⁠’임⁠」 이어서 한 줄이 더 왔다⁠. 「⁠근데 뿔 소리 녹음 진짜 소리굽쇠 같긴 하더라⁠. 나 그거 듣고 소름 돋음⁠」 나는 연두의 마지막 한 줄을 붙들고 겨우 잠들었다⁠.

아침에는 시계탑 엔터테인먼트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모래시계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팬레터와 선물은 우편으로만 받습니다⁠.⁠」 자동 응답이 끝나자 신호음이 뚝 끊겼다⁠. 다섯 번을 걸었고 다섯 번 다 같은 목소리였다⁠. 마왕이 우리 애들을 데려간다는 말을 우편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

3월 19일은 우담의 생일이었다⁠. 해마다 연두와 나는 생일 서포트를 했다⁠. 올해는 떡이었다⁠. 성수동 떡집에서 우담 얼굴을 찍은 설기를 백 개 맞췄고⁠, 연두가 상자마다 손바닥만 한 스티커를 붙였다⁠. 스티커에는 「⁠우담아 다섯 해 동안 고마워 · 3층 모래알 일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획사는 성수동 골목의 낡은 오 층 건물 4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에 「⁠점검 중⁠」 종이가 붙어 있었다⁠.

“⁠계단으로 떡 백 개를 들고 4층⁠.⁠”

연두가 상자 다섯 개를 품에 안고 계단 첫 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상자를 안은 팔이 벌써 떨리고 있었다⁠.

“⁠덕질은 하체로 하는 거야⁠.⁠”

“⁠나 오늘 하체 휴무인데⁠.⁠”

연두는 투덜대면서도 나보다 먼저 올라갔다⁠. 휴대전화가 연두의 엉덩이 주머니에서 떨렸다⁠. 연두는 보지도 않고 손으로 눌러 껐다⁠. 계단참에서 쉬면서 연두가 꺼낸 화면이 잠깐 보였다⁠. 「⁠집주인 — 월세 석 달분 이번 달까지 안 되면 6월에 방 빼 주세요⁠」 연두는 화면을 얼른 뒤집었다⁠. 나는 못 본 척 상자를 고쳐 안았다⁠.

4층 복도 끝 유리문 안에서 매니저가 나왔다⁠. 서포트 상자를 받아 들고 인증 사진을 찍어 주었다⁠. 거기까지는 해마다 하던 대로였다⁠. 다른 것은 소리였다⁠. 매니저 등 뒤로 반쯤 열린 대표실 문에서 쇳소리가 났다⁠. 동전이 쏟아지는 소리였는데⁠, 오백 원짜리보다 무겁고 둔했다⁠. 그리고 웅⁠, 하고 낮은 울림이 한 번 지나갔다⁠.

매니저가 상자를 들고 탕비실로 사라지자 나는 대표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 연두가 내 후드 모자를 잡아당겼다⁠.

“⁠야⁠. 야⁠. 표나린⁠. 우리 서포트하러 온 거야⁠.⁠”

“⁠1열 주인이 저 안에 있어⁠.⁠”

문틈으로 보였다⁠. 낡은 가죽 소파에 바르덴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배가 나온 쉰 줄의 남자가 있었다⁠. 시계탑 엔터테인먼트 대표 구문팔이었다⁠. 팬 사인회 때마다 무대 옆에서 휴대전화로 팬들 줄 길이를 찍던 사람이었다⁠. 탁자 위에 검은 가죽 주머니가 놓여 있었고⁠, 주머니 아가리로 금화가 쏟아져 나와 있었다⁠. 금화마다 뿔 달린 해골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다 진짜 금이에요⁠?⁠”

구문팔이 금화 하나를 집어 이빨로 깨물었다⁠.

“⁠어금니 조심하시오⁠. 마계 금은 단단하오⁠.⁠”

“⁠마계 금⁠. 하하⁠. 컨셉 좋네⁠. 회장님⁠, 아니 투자자님⁠, 우리 애들 해외 축제 출연은 언제라고 하셨죠⁠?⁠”

“⁠붉은 달이 뜨는 밤이오⁠. 석 달 뒤⁠.⁠”

구문팔의 휴대전화가 탁자 위에서 떨렸다⁠. 화면 맨 위에 「⁠대부 김 실장⁠」이 떴다⁠. 구문팔이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엎어 놓은 휴대전화가 다시 떨렸다⁠. 나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

“⁠안 돼요⁠.⁠”

구문팔이 금화를 떨어뜨렸다⁠. 금화가 탁자 위를 굴러 바르덴의 무릎 앞에서 멈췄다⁠. 바르덴은 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운 사람을 만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3층 R구역 마지막 줄이로군⁠.⁠”

“⁠제 좌석 어떻게 아세요⁠?⁠”

“⁠모래알 광장에 그대가 올린 예매 인증을 보았소⁠. 좋은 자리요⁠. 3층 끝에서는 조명이 다 보이오⁠.⁠”

구문팔이 소파에서 반쯤 일어났다⁠.

“⁠학생⁠, 여기 들어오면 안 돼요⁠. 서포트는 너무 고마운데⁠, 우리 애들 생일 떡은 매니저한테⁠…⁠”

“⁠대표님⁠. 이분 마왕이에요⁠. 진짜로요⁠. 마계에서 전쟁 중인 일곱 가문 앞에 우리 애들을 세운대요⁠. 칼 든 사람들 앞에서요⁠.⁠”

구문팔이 나를 보고⁠, 바르덴을 보고⁠, 금화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꺼이꺼이 넘어가는 웃음이었다⁠.

“⁠학생⁠, 요즘 애들 상상력 좋네⁠. 투자자님⁠, 팬들이 이렇게 애틋해요⁠. 이게 우리 애들 자산이에요⁠.⁠”

“⁠대표님⁠, 저 뿔 만져 보세요⁠.⁠”

“⁠투자자님 뿔을 내가 어떻게 만져⁠.⁠”

바르덴이 고개를 숙여 구문팔 앞으로 뿔을 내밀었다⁠. 구문팔이 머뭇거리다 검지로 뿔 끝을 톡 건드렸다⁠. 따뜻한 돌을 만진 얼굴이 되었다⁠. 구문팔이 손가락을 바지에 문질렀다⁠.

“⁠요즘 특수 분장 잘하네⁠.⁠”

말이 통하지 않았다⁠. 구문팔에게 보이는 것은 뿔이 아니라 금이었다⁠. 휴대전화가 세 번째로 떨렸다⁠. 나는 소파 사이에 서서 바르덴을 내려다보았다⁠.

“⁠돈으로 사면 그건 팬이 아니에요⁠.⁠”

“⁠짐은 표를 샀소⁠. 그대도 표를 사지 않소⁠?⁠”

“⁠표는 보러 가려고 사는 거고요⁠. 그쪽은 데려가려고 사는 거잖아요⁠.⁠”

바르덴의 눈썹이 꿈틀했다⁠. 꽤 아픈 데를 찌른 모양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어젯밤 이불 속에서 생각해 둔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이라 입에 올리면 끝까지 밀고 가야 했다⁠.

“⁠팬이면 팬답게 붙어요⁠. 세 판이에요⁠. 응원법⁠, 떼창⁠, 굿즈⁠. 제가 두 판 이기면 우리 애들은 마계에 안 가요⁠. 그쪽이 두 판 이기면⁠…⁠”

“⁠이기면⁠?⁠”

“⁠제가 마계 축제에 따라가서 마족들한테 응원법을 가르칠게요⁠. 방해도 안 하고요⁠.⁠”

연두가 문간에서 “⁠미쳤나 봐⁠” 하고 중얼거렸다⁠. 구문팔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바르덴만 진지했다⁠. 바르덴은 탁자 위 금화를 하나씩 주워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한 닢도 남기지 않았다⁠. 구문팔의 눈이 금화를 따라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마계에서는 겨루기를 받으면 물릴 수 없소⁠. 짐도⁠, 그대도⁠.⁠”

“⁠알아요⁠. 저도 안 물려요⁠.⁠”

“⁠그렇다면 받겠소⁠. 대표⁠, 축제 계약은 겨루기가 끝난 뒤에 하겠소⁠. 오늘 금화는 첫 콘서트 무대에 보태시오⁠. 조명이 모자라다 들었소⁠.⁠”

바르덴이 주머니에서 금화 한 줌을 다시 꺼내 탁자에 놓았다⁠. 구문팔이 두 손으로 금화를 감싸 쥐었다⁠. 대표실 창밖으로 성수동 공장 굴뚝이 보였다⁠. 굴뚝에서 흰 김이 곧게 올라가다 바람에 꺾였다⁠.

“⁠판정은 누가 해요⁠? 그쪽이 하면 반칙이에요⁠.⁠”

“⁠판정은 뿔이 하오⁠. 짐의 뿔 말고⁠, 인간 편도 마족 편도 들지 않는 뿔⁠.⁠”

*

밤 아홉 시⁠, 잠실 공연장 지하 3층 하역장⁠. 천장 너머에서는 다른 그룹의 콘서트가 한창이었다⁠. 둥둥 울리는 베이스에 천장 형광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연두는 떡 상자 하나를 끌어안고 지게차 뒤에 숨어 있었다⁠. 서포트하고 남은 설기 열 개였다⁠.

“⁠이거 우리 저녁이야⁠. 마왕한테 뺏기면 나 운다⁠.⁠”

“⁠마왕은 떡 안 뺏어⁠.⁠”

녹색 철문이 열렸다⁠. 붉은빛 속에서 먼저 나온 것은 지팡이였다⁠. 검은 나무 지팡이 끝에 쇠 방울이 달려 있었다⁠. 이어서 허리가 굽은 노파가 나왔다⁠. 키는 내 어깨쯤 왔다⁠. 하얗게 센 머리를 뒤로 묶었고⁠, 머리 양옆에 굵은 회색 뿔이 휘어 있었다⁠. 왼쪽 뿔은 중간에서 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자리가 매끈하게 닳아 있었다⁠. 바르덴이 뒤따라 나와 노파에게 허리를 숙였다⁠.

“⁠흑요성 재상 도르마요⁠. 쇠뿔 가문 출신이고⁠, 육백 해를 살았소⁠. 백 년 동안 뿔이 한 번도 울지 않았소⁠.⁠”

도르마가 지팡이로 하역장 바닥을 짚고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냄새를 맡듯 코를 킁킁거렸다⁠.

“⁠이게 마왕한테 겨루기를 건 인간이냐⁠? 키가 쬐끄맣구나⁠. 쯧⁠.⁠”

“⁠제 키가 평균이에요⁠.⁠”

“⁠인간 평균은 내 알 바 아니다⁠.⁠”

도르마는 판정 방법을 짧게 말했다⁠. 한 판마다 양쪽이 각자 한 일을 도르마가 직접 듣는다⁠. 도르마의 뿔을 울린 사람이 이긴다⁠. 둘 다 울지 않으면 판을 다시 한다⁠. 바르덴이 덧붙였다⁠. 재상의 뿔이 울지 않은 지 백 년이라⁠, 마계에서 재상의 뿔보다 정직한 저울은 없다고 했다⁠.

“⁠백 년 동안 안 울었으면 이번에도 안 울 수 있잖아요⁠.⁠”

“⁠그러니 열심히 해라⁠. 쯧⁠.⁠”

도르마가 지팡이 끝 방울을 흔들었다⁠. 짤랑⁠.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지게차 뒤를 보았다⁠.

“⁠거기 숨은 인간⁠. 품에 든 게 뭐냐⁠? 쌀 냄새가 난다⁠.⁠”

연두가 떡 상자를 들고 엉거주춤 나왔다⁠. 도르마가 상자를 열어 설기 하나를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우담 얼굴이 반쪽 사라졌다⁠. 연두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밍밍하다⁠. 매운 건 없냐⁠?⁠”

“⁠떡볶이요⁠?⁠”

“⁠그게 뭔지 모르지만⁠, 맵다는 소리가 맛있게 들린다⁠.⁠”

연두가 휴대전화를 꺼내 배달 앱을 열었다⁠. 도르마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떡볶이 · 매운맛 3단계⁠」를 지팡이 끝으로 콕 찍었다⁠. 바르덴이 헛기침을 했다⁠.

“⁠재상⁠, 맹세를 하셔야 하오⁠.⁠”

도르마가 설기를 마저 삼키고 바르덴의 뿔에 지팡이 방울을 갖다 댔다⁠. 바르덴이 자기 왼쪽 뿔을 손가락 마디로 한 번 두드렸다⁠. 통⁠, 하고 맑은 소리가 하역장에 울렸다⁠. 도르마가 내 손을 잡아 바르덴의 뿔에 대게 했다⁠. 뿔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결이 나무처럼 거칠었다⁠.

“⁠두드려라⁠. 마계에서는 이렇게 맹세한다⁠.⁠”

나는 손가락 마디로 뿔을 두드렸다⁠. 통⁠. 바르덴의 소리보다 조금 작았다⁠. 뿔의 떨림이 손가락뼈를 타고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이제 물릴 수 없다⁠.⁠” 도르마가 말했다⁠. “⁠첫 판은 4월 17일⁠, 여기 위층 첫 콘서트⁠. 응원법이다⁠.⁠”

도르마가 철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붉은빛에 섞여 멀리서 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르마가 걸음을 멈추고 문틈에 귀를 기울였다⁠.

“⁠붉은발톱 놈들이 은비늘 우물을 또 메웠다는구나⁠. 쯧⁠.⁠”

도르마는 문 안으로 한 발을 넣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가씨⁠. 나는 육백 해 동안 인간 편을 든 적이 없다⁠.⁠”

“⁠떡볶이 시켜 드렸잖아요⁠.⁠”

“⁠떡볶이는 떡볶이고⁠.⁠”

문이 닫혔다⁠. 하역장에 붉은빛이 사라지고 형광등 불빛만 남았다⁠. 천장 너머에서 다른 그룹의 앙코르가 시작됐다⁠. 바르덴이 코트 깃을 세우고 나를 보았다⁠.

“⁠한 달 남았소⁠. 짐은 응원법을 이미 다 외웠소⁠.⁠”

“⁠저는 다섯 해 전부터 외웠어요⁠.⁠”

“⁠외운 것과 부르는 것은 다르오⁠.⁠”

바르덴이 철문 손잡이를 돌렸다⁠. 앙코르 함성이 터지는 순간 문이 열렸다⁠. 바르덴이 사라진 뒤 연두의 휴대전화에서 배달 알림이 울렸다⁠. 「⁠주문하신 떡볶이 매운맛 3단계⁠, 출발했습니다⁠.⁠」 받을 사람은 이미 마계로 돌아가고 없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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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리온2026.10.31· 2화

    「소설 잘 읽었습니다 다음 화 언제 나와요」 댓글에서 빵 터졌어요. 진짜 마왕인데 아무도 안 믿어요.

    • 소하린작가2026.11.01

      제일 진지하게 쓴 글이 제일 소설 같았던 밤이에요. 뿔 우는 소리 녹음까지 붙였는데 말이죠.

팬심 겨루기 · 피켓팅 상대가 마왕?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