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74자)

0.1초

피켓팅 상대가 마왕? · 소하린

일곱 시 오십팔 분⁠,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꺾었다⁠. 똑⁠, 똑⁠, 똑⁠. 열 손가락을 다 꺾고 나서 한 번 더 꺾었다⁠. 연두가 옆자리에서 컵라면 국물을 후루룩 마시다 말고 나를 보았다⁠.

“⁠그거 할 때마다 뼈가 우는 소리 나⁠.⁠”

“⁠뼈도 같이 기도하는 거야⁠.⁠”

성내동 반지하⁠, 연두의 작업실이었다⁠. 연두는 이 방에서 키링과 스티커를 만들어 연두상회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벽에는 열압착기와 레이저 커팅기가 붙어 있었고⁠, 바닥에는 아크릴 판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모니터 두 대 가운데 한 대에는 바로티켓 예매 화면이⁠, 다른 한 대에는 서버 시간 창이 떠 있었다⁠. 서버 시간은 내 휴대전화 시계보다 0⁠.3초 빨랐다⁠. 다섯 해 동안 몸으로 익힌 숫자였다⁠.

오늘 여덟 시⁠, 모래시계 첫 단독 콘서트 표가 열렸다⁠. 다섯 해 만의 첫 단독이었다⁠. 데뷔하고 다섯 해 동안 모래시계는 남의 콘서트 게스트로⁠, 대학 축제 세 번째 순서로⁠, 음악 방송 아침 리허설로 버텼다⁠. 나는 그런 자리마다 맨 뒷줄에 있었다⁠. 이번만은 A구역 1열 7번이 목표였다⁠. 막내 우담의 정면이었다⁠. 무대 배치도를 백 번은 들여다보고 고른 자리였다⁠.

“⁠연두야⁠, 너는 B구역 아무 데나⁠. 나는 A구역 1열만 판다⁠.⁠”

“⁠1열 못 잡으면⁠?⁠”

“⁠3층 끝자리라도 두 장⁠. 그다음에 운다⁠.⁠”

연두가 컵라면 뚜껑을 덮고 마우스를 쥐었다⁠. 서버 시간 창의 숫자가 59초에서 넘어가는 순간 나는 새로 고침을 눌렀다⁠. 딸깍⁠. 좌석 배치도가 열렸다⁠. 파란 점이 빽빽했다가 눈앞에서 회색으로 꺼져 나갔다⁠. A구역 1열 7번은 아직 파랬다⁠. 나는 다섯 해 동안 단련한 검지로 파란 점을 눌렀다⁠.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나는 회색 창에 뜬 글자를 한참 보았다⁠. 모니터 불빛에 비친 내 얼굴이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연두가 옆에서 소리쳤다⁠.

“⁠3층⁠! 나린아⁠, 3층 R구역 끝에 두 개 붙어 있어⁠!⁠”

손이 먼저 움직였다⁠. 3층 R구역 마지막 줄 두 자리를 눌러 결제 단추까지 사십 초 만에 갔다⁠. 「⁠예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연두가 두 팔을 들고 만세를 불렀다⁠. 나는 만세를 부르지 못했다⁠. 화면 녹화를 켜 두었기 때문이다⁠. 녹화 파일을 열어 내가 누른 순간에서 멈췄다⁠. 서버 시간 창에 「⁠20⁠:00⁠:00⁠.31⁠」이 떠 있었다⁠. 같은 자리를 잡은 사람의 화면은 모르지만⁠, 바로티켓은 정각에 누른 순서대로 자리를 준다⁠. 정각부터 내가 누를 때까지 0⁠.31초⁠, 서버가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0⁠.2초⁠. 남은 틈은 0⁠.1초였다⁠.

“⁠0⁠.1초야⁠.⁠”

“⁠뭐가⁠?⁠”

“⁠1열 가져간 사람이랑 나 사이가⁠.⁠”

연두가 컵라면을 다시 집어 들고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다 식은 국물이었다⁠. 연두는 원래 위로를 못 하는 애였다⁠. 대신 책상 서랍에서 아크릴 키링 하나를 꺼내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우담이 모래시계를 끌어안고 웃는 그림이었다⁠. 연두상회에서 삼천 원에 파는 키링이었고⁠, 하나 팔면 삼백 원이 남았다⁠.

“⁠이거 신상⁠. 너한테는 공짜⁠.⁠”

“⁠삼백 원 손해 보는 거잖아⁠.⁠”

“⁠그러니까 울지 마⁠. 내 손해가 커져⁠.⁠”

“⁠3층 끝자리도 좋아⁠. 거기서는 다 보여⁠. 머리꼭지까지⁠.⁠”

*

밤 열한 시⁠, 팬 커뮤니티 모래알 광장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말머리는 「⁠1열 인증⁠」이었다⁠.

「⁠짐이 잡았노라⁠. 우담 정면⁠. 손가락만 썼다⁠.⁠」

글쓴이는 「⁠흑요성주인⁠」이었다⁠. 가입한 지 사흘 된 계정이었다⁠. 예매 완료 화면에 A구역 1열 7번이 또렷했다⁠. 아래에 셀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에 붉은 눈⁠, 검은 후드 코트⁠. 머리 위에 작은 검은 뿔이 두 개 돋아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화면을 향해 엄지를 들고 있었다⁠.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짐ㅋㅋㅋㅋ 컨셉 확실하시네⁠」

「⁠뿔 머리띠 어디서 사셨어요 정보 좀⁠」

「⁠1열 부럽다 진짜 부럽다 부러워서 뿔 날 것 같다⁠」

「⁠흑요성주인님 혹시 매크로 쓰신 거 아니죠⁠?⁠」

마지막 댓글에 흑요성주인이 답글을 달았다⁠. 「⁠매크로는 수치다⁠. 짐은 서버 시간을 보고 마흔 번 연습했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 흑요성주인의 답글을 세 번 읽었다⁠. 화가 나는 자리를 정확히 짚을 수 없어서 더 화가 났다⁠. 반칙이었으면 신고라도 했을 텐데⁠, 마흔 번 연습한 사람한테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쪽지 창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1열 7번 정가 양도 가능하실까요⁠? 수수료까지 다 드릴게요⁠. 저 다섯 해째 우담만 봤어요⁠.⁠」

답은 일 분 만에 왔다⁠.

「⁠팔지 않는다⁠. 짐도 다섯 해를 기다렸다⁠.⁠」

「⁠그럼 얼굴 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내일 정오⁠, 잠실 공연장 앞 광장⁠. 시계탑 아래에서 기다리겠다⁠.⁠」

휴대전화가 다시 떨렸다⁠. 엄마였다⁠. 「⁠다음 학기 등록금 고지서 나왔더라⁠. 이번엔 엄마가 반 낼게⁠. 콘서트 다녀오면 세탁소 일 좀 도와⁠.⁠」 나는 엄마의 문자에 하트를 누르고⁠, 흑요성주인의 마지막 메시지를 캡처했다⁠.

*

3월 16일 정오⁠, 잠실 공연장 앞 광장은 바람이 셌다⁠. 나는 검은 후드티를 입고 하늘색 응원 수건을 목에 둘렀다⁠. 가방 옆구리에는 노란 응원봉 모래봉을 꽂았다⁠. 처음 보는 팬끼리 만날 때 서로 알아보라고 꽂는 응원봉이었다⁠. 광장 한가운데 시계탑의 큰바늘이 12에 닿았고⁠, 광장 스피커에서는 공연장 팝업 매장이 트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다른 그룹의 노래였다⁠.

공연장 외벽의 전광판에서는 낮 뉴스가 소리 없이 돌았다⁠. 「⁠공연 암표 매크로 처벌 강화법⁠, 국회 상임위 통과⁠… 리셀 플랫폼도 책임⁠」 팝업 매장 앞에는 벌써 줄이 길었다⁠. 줄 선 사람들 가방마다 키링이 주렁주렁 매달려 짤랑거렸다⁠. 나는 시계탑 기둥에 등을 붙이고 연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도착했어⁠. 뿔 아직 안 보여⁠.⁠”

“⁠삼십 분 지나도 안 오면 그냥 와⁠. 오다가 떡볶이 사 와⁠.⁠”

“⁠사람이 1열 담판 지으러 왔는데 떡볶이가 나와⁠?⁠”

“⁠담판은 배고프면 진다⁠.⁠”

남자는 정각에 왔다⁠. 사진과 똑같았다⁠. 검은 후드 코트 자락이 바람에 펄럭였고⁠, 머리 위 뿔 두 개는 햇빛을 받아 검게 반들거렸다⁠. 지나가던 고등학생 둘이 남자를 보고 수군거렸다⁠. “⁠뿔 머리띠 대박⁠.⁠” 남자는 고등학생들을 향해 점잖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대가 다섯 해째 우담만 봤다는 이요⁠?⁠”

“⁠네⁠. 표나린이에요⁠.⁠”

“⁠짐은 바르덴이오⁠.⁠”

바르덴이 시계탑 아래 벤치에 앉았다⁠. 나도 한 칸 떨어져 앉았다⁠. 붉은 눈이 가까이서 보니 더 붉었다⁠. 컬러 렌즈라면 아주 비싼 렌즈였다⁠.

“⁠정가의 두 배 드릴게요⁠.⁠”

“⁠아니 되오⁠.⁠”

“⁠세 배요⁠. 제 한 달 알바비예요⁠.⁠”

“⁠돈 문제가 아니오⁠. 1열 7번은 짐이 지켜야 할 약속이오⁠.⁠”

“⁠약속은 무슨 약속이요⁠. 어제 가입하셨잖아요⁠.⁠”

“⁠사흘 전이오⁠.⁠”

바르덴이 정색하고 고쳐 말했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준비해 온 말을 꺼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다섯 해 동안 3층에서만 봤어요⁠. 대학 축제 땐 무대가 안 보여서 남의 휴대전화 화면으로 봤어요⁠. 이번 한 번만 우담 얼굴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요⁠.⁠”

바르덴의 붉은 눈이 잠깐 흔들렸다⁠. 마침 광장 스피커의 노래가 바뀌었다⁠. 피아노 전주가 흘렀다⁠.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였다⁠. 우담이 혼자 부르는 발라드였다⁠. 팝업 매장에서 모래시계 첫 단독을 기념해 틀어 준 노래였다⁠.

웅⁠.

낮고 둥근 소리가 내 왼쪽 귀를 울렸다⁠. 음악 시간에 쓰던 소리굽쇠를 책상 모서리에 치고 귀에 갖다 댔을 때 나던 소리였다⁠. 소리는 바르덴의 머리 위에서 났다⁠. 작은 검은 뿔 두 개가 아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바르덴이 한 손으로 뿔을 덮었다⁠. 덮어도 소리는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거 머리띠 아니에요⁠?⁠”

“⁠머리띠면 울겠소⁠?⁠”

바르덴이 손을 내렸다⁠. 우담의 목소리가 후렴으로 올라가자 웅 소리도 따라 올라갔다⁠. 지나가던 사람 몇이 고개를 돌렸다가⁠, 블루투스 스피커인 줄 알고 그냥 지나갔다⁠. 노래가 끝나자 뿔도 잠잠해졌다⁠. 바르덴이 코트 소매로 눈가를 한 번 훔쳤다⁠.

“⁠짐은 마계 흑요성의 왕이오⁠. 인간들 말로는 마왕이라 하더군⁠.⁠”

나는 웃음이 터졌다⁠. 바르덴은 웃지 않았다⁠. 내 웃음이 혼자 남아 바람에 흩어졌다⁠.

“⁠석 달 뒤⁠, 마계에 붉은 달이 뜨는 밤에 축제가 열리오⁠. 짐은 그 축제 무대에 모래시계를 세울 것이오⁠.⁠”

“⁠네⁠?⁠”

“⁠마계에는 일곱 가문이 있소⁠. 백 년째 서로 죽이고 있지⁠. 마족의 뿔은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면 우오⁠. 일곱 가문의 뿔이 한 노래에 함께 울면 그해 전쟁을 멈춘다는 옛 법이 있소⁠. 짐의 뿔을 울린 노래는 우담의 노래뿐이었소⁠.⁠”

“⁠그러니까 우리 애들을 전쟁하는 데 데려가겠다고요⁠?⁠”

“⁠노래하는 데 데려가겠다는 것이오⁠.⁠”

“⁠칼 들고 싸우는 사람들 앞에서요⁠?⁠”

“⁠칼을 내려놓게 하려고⁠.⁠”

바르덴의 말투는 고요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모래봉이 가방에서 빠져 바닥에 떨어졌다⁠. 줍다가 옆구리 단추를 눌렀다⁠. 딸깍⁠, 응원봉이 노랗게 켜졌다⁠.

“⁠안 돼요⁠. 우담은 콘서트 무대에서도 계단 내려오다 발목 삐는 애예요⁠. 작년 연말 무대에서도 삐었어요⁠. 팬들이 다 알아요⁠.⁠”

“⁠알고 있소⁠. 짐도 그 영상을 서른 번 봤소⁠.⁠”

“⁠서른 번이나 보셨으면 더 잘 아시겠네요⁠. 데려가기만 해 봐요⁠. 가만 안 둬요⁠.⁠”

바르덴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 오래 연습한 일을 앞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대가 무엇으로 막겠소⁠?⁠”

*

바르덴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공연장 건물로 걸어갔다⁠. 나는 따라갔다⁠. 정문이 아니라 건물 옆구리의 화물 차량 통로였다⁠. 바르덴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 경사로를 내려갔다⁠. 지하 1층⁠, 지하 2층⁠. 경사로가 끝나는 곳에 하역장이 있었다⁠. 지게차 두 대가 잠들어 있었고⁠, 공연 장비 상자가 줄지어 쌓여 있었다⁠.

공연장 안에서 저녁 공연 리허설이 시작됐는지⁠, 천장 너머로 북소리가 둥둥 내려왔다⁠. 바르덴은 하역장 맨 끝의 녹색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철문 위에 「⁠B3 비상구⁠」라는 초록 표지가 붙어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문 너머는 사람에게 좀 뜨겁소⁠.⁠”

“⁠거기 비상구잖아요⁠.⁠”

“⁠인간에게는 비상구이고 짐에게는 현관이오⁠.⁠”

바르덴이 손잡이를 돌렸다⁠. 천장의 북소리가 커지는 순간 문이 열렸다⁠. 붉은빛이 하역장 바닥을 쓸었다⁠. 뜨거운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바르덴이 문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나는 달려가 손잡이를 잡았다⁠. 잠겨 있었다⁠. 쇠가 손바닥이 데일 만큼 따뜻했다⁠. 무릎을 꿇고 문 아래 틈에 귀를 댔다⁠. 붉은빛이 가는 줄로 새어 나와 내 운동화 코를 물들였다⁠. 틈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 멀리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지르는 소리⁠,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 콘서트 함성과 비슷했지만 끝에 비명이 섞여 있었다⁠.

휴대전화가 떨렸다⁠. 연두였다⁠.

「⁠야 어떻게 됐어 1열 받았어⁠?⁠」

나는 문틈에서 귀를 떼지 못한 채 한 손으로 답장을 쳤다⁠.

「⁠아니⁠. 1열 주인이 마왕이래⁠.⁠」

「⁠ㅋㅋㅋㅋ 뭐래⁠」

「⁠진짜야⁠. 우리 애들 데려간대⁠.⁠」

답장이 오기 전에 문틈 너머의 비명이 한 번 더 들렸다⁠. 나는 문에 손바닥을 붙이고 있었다⁠. 쇠가 점점 식어 갔다⁠.

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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