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72자)

떼창

피켓팅 상대가 마왕? · 소하린

6월 19일 오후 세 시⁠, 광주 공연장 앞 광장은 햇볕이 뜨거웠다⁠. 굿즈 부스 줄이 광장을 두 바퀴 돌았다⁠. 가장 긴 줄은 공식 굿즈 부스 옆의 검은 천막 앞에 있었다⁠. 천막 꼭대기에서 「⁠흑요성 공식⁠」 깃발이 펄럭였다⁠. 깃발 아래에서 연두가 앞치마를 두르고 키링을 건네고 있었다⁠. 연두 옆에 아르바이트생 셋이 있었다⁠. 연두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3층 모래알 광주 조와 송정역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왔다⁠. 조원들이 천막 줄을 보며 웅성거렸다⁠.

「⁠방장님⁠, 저 줄 우리 오픈채팅방 사람들도 있어요⁠」

「⁠1열 마왕 키링 회색 버전 나왔대요⁠. 쇠뿔 에디션이래요⁠」

「⁠사도 돼요⁠? 배신 아니죠⁠?⁠」

“⁠사도 돼요⁠.⁠” 나는 말했다⁠. “⁠귀여운 건 죄가 없어요⁠.⁠”

천막 앞을 지날 때 연두와 눈이 마주쳤다⁠. 연두가 손에 든 회색 키링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두도 끄덕였다⁠. 둘 다 웃지는 않았다⁠. 연두 뒤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사장님⁠, 쇠뿔 에디션 백 개 남았어요⁠」 하고 외쳤다⁠. 사장님이라는 말에 연두가 잠깐 멈칫했다⁠.

*

저녁 일곱 시 반⁠, 3층 끝자리에서 공연장을 내려다보았다⁠. 1층 객석 한가운데가 붉었다⁠. 붉은 후드 사백이었다⁠. 부산의 두 배였다⁠. 가르쉬는 1층 맨 뒤 통로 끝에 서 있었다⁠. 중절모를 가슴에 대고 있었다⁠. 1층 앞 구역 양 가장자리와 2층 한 구역에 마족 응원단 백 명이 있었다⁠. 검은 깃털⁠, 은빛 비늘⁠, 회색 쇠뿔⁠, 그리고 등에 접힌 날개 무늬를 그린 후드가 있었다⁠. 밤나비 가문이었다⁠. 쇠뿔 가문 스무 명은 2층 맨 앞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다들 젊었다⁠. 굵은 회색 뿔에 회색 키링이 달려 있었다⁠. 2층 한가운데 관계자석에 도르마가 앉았다⁠. 이번에는 떡볶이가 없었다⁠. 지팡이만 무릎에 세워 놓았다⁠.

3층은 노랬다⁠. 모래알 삼천이었다⁠. 오픈채팅방 인원은 삼천이백이었다⁠. 열여드레 동안 취소표를 잡았고⁠, 열흘 동안 「⁠한 번 더⁠」를 외쳤다⁠. 하늘색 슬로건 사이로 내가 찍은 비뚤어진 슬로건 열한 장도 펼쳐져 있었다⁠. 조원들이 반듯한 것 대신 일부러 비뚤어진 것을 달라고 했다⁠. 「⁠방장님 손맛⁠」이라고 했다⁠.

두 번째 판의 곡은 「⁠한 번 더⁠」였다⁠. 모래시계 팬이면 누구나 따라 부르는 떼창곡이었다⁠. 공연 마지막 곡 바로 앞에 있었다⁠. 떼창곡까지 열여섯 곡 동안⁠, 나는 응원법을 외치면서도 1층의 붉은 덩어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붉은 덩어리는 부산처럼 팔짱을 끼고 있었다⁠. 몇몇 팔짱은 느슨했다⁠. 몇몇 허리띠에서 볼 빨간 마왕 키링이 반짝였다⁠.

열여섯 번째 곡이 끝났다⁠. 우담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 끝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다 같이 부르는 노래예요⁠. 마지막에서 두 번째⁠. 준비됐어요⁠?⁠”

공연장이 대답했다⁠. 3층이 가장 크게 대답했다⁠. 전주의 첫 드럼이 울렸다⁠.

불이 꺼졌다⁠.

*

무대 조명⁠, 객석 조명⁠, 대형 화면⁠, 스피커⁠. 전부 한꺼번에 꺼졌다⁠. 드럼 소리가 반 박자 만에 끊겼다⁠. 공연장이 캄캄해졌다⁠. 비상구 초록 불만 벽 군데군데 떠 있었다⁠. 일 초 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다음 일 초에 비명이 터졌다⁠. 1층 어딘가에서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3층 난간 옆에서 누가 「⁠뭐야⁠, 뭐야⁠」 하고 울먹였다⁠.

“⁠움직이지 마세요⁠!⁠”

무대에서 목소리가 났다⁠. 마이크를 거치지 않은 우담의 목소리였다⁠. 작았다⁠. 그래도 들렸다⁠.

“⁠다들 제자리에 있어요⁠! 괜찮아요⁠! 저 여기 있어요⁠!⁠”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손이 저절로 녹음 단추를 눌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녹음부터 하는 버릇이었다⁠. 화면에 「⁠녹음 중 00⁠:01⁠」이 떴다⁠. 휴대전화를 목에 건 수건 주름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모래봉을 들었다⁠. 옆구리 단추를 눌렀다⁠.

딸깍⁠.

노란빛 하나가 3층 끝에서 켜졌다⁠. 옆자리 조원이 따라 눌렀다⁠. 딸깍⁠. 옆의 옆이 눌렀다⁠. 딸깍⁠, 딸깍⁠, 딸깍⁠. 3층 끝에서부터 노란빛이 번져 나갔다⁠. 십 초 만에 3층 전체가 노랬다⁠. 2층이 따라 켰다⁠. 1층 앞 구역이 켰다⁠. 공연장 안에 노란 빛의 바다가 생겼다⁠. 빛의 바다 한가운데에 꺼진 것처럼 붉고 어두운 섬이 있었다⁠. 사백 자리였다⁠.

옆자리 조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방장님⁠, 이거 연출이에요⁠?⁠” “⁠아니요⁠.⁠” “⁠그럼 우리 뭐 해요⁠?⁠” 나는 대답 대신 모래봉을 머리 위로 올렸다⁠. 1층 앞 구역 가장자리에서 검은 리본 감은 모래봉 하나가 똑같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바르덴이었다⁠. 바르덴은 모래봉을 들고 3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먼저 시작하라는 얼굴이었다⁠. 마왕이 3층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 위의 우담이 보였다⁠. 모래봉 불빛에 비친 하얀 셔츠였다⁠. 우담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반주는 없었다⁠. 스피커도 없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다섯 해 동안 목에 붙어 있던 첫 소절이었다⁠.

“⁠한 번만 더 불러 줘⁠…⁠”

내 목소리는 작았다⁠. 3층 끝자리에서 무대까지 닿을 리 없는 목소리였다⁠. 옆자리 조원이 따라 불렀다⁠. 앞줄이 따라 불렀다⁠. 3층 삼천이 첫 소절을 불렀다⁠. 노래가 3층 난간을 넘어 2층으로 흘렀다⁠. 반주가 없으니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했다⁠. 박자가 흔들릴 때마다 무대에서 우담의 목소리가 박자를 잡아 주었다⁠. 마이크 없는 우담의 목소리는 공연장 전체가 노래할 때만 들렸다⁠. 우리가 조용해지면 우담이 들렸고⁠, 우담이 들리면 우리가 따라갔다⁠.

1절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어왔다⁠. 2층 맨 앞줄이었다⁠. 쇠뿔 가문 스무 명이었다⁠.

쇠뿔 가문의 목소리는 낮았다⁠. 인간 목소리보다 한 옥타브 아래였고⁠,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스무 명이 2절 첫 소절을 불렀다⁠. 가사는 한국말이었는데 발음이 서툴렀다⁠. 「⁠한 번만⁠」이 「⁠한 버만⁠」이었다⁠. 서툰 발음 아래로 화음이 깔렸다⁠. 스무 명이 세 갈래로 나뉘어 서로 다른 음을 냈다⁠. 사람이 배워서 내는 화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몸에 있던 화음이었다⁠. 쇠뿔 가문의 화음이 공연장 천장에 닿아 돌아올 때⁠, 3층 삼천이 노래를 멈추었다⁠. 아무도 멈추자고 하지 않았다⁠. 다들 듣고 싶어서 멈췄다⁠.

검은깃이 따라 불렀다⁠. 은비늘이 따라 불렀다⁠. 밤나비가 따라 불렀다⁠. 마족 백 명의 화음이 어둠 속에서 차오르자 3층이 다시 따라 불렀다⁠. 인간의 높은 목소리가 마족의 낮은 화음 위에 얹혔다⁠. 우담이 둘 사이에서 노래했다⁠. 반주보다 좋았다⁠. 다섯 해 동안 들은 어느 반주보다 좋았다⁠.

후렴 직전⁠, 숨 참는 자리⁠. 삼천의 인간과 백의 마족이 함께 숨을 참았다⁠. 공연장이 고요해졌다⁠. 고요 속에서 1층 붉은 섬 어딘가에서 웅 소리가 났다⁠. 작았다⁠. 하나인 줄 알았는데 셋이었다⁠. 붉은 후드 셋의 뿔이 울고 있었다⁠.

“⁠한 번 더⁠!⁠”

공연장이 외쳤다⁠. 외침이 끝나는 자리에서 2층 한가운데 관계자석의 뿔이 울었다⁠.

웅⁠.

도르마의 뿔이었다⁠. 노란 빛의 바다 속에서 도르마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있었다⁠. 도르마는 무대를 보지 않았다⁠. 2층 맨 앞줄을 보고 있었다⁠. 쇠뿔 가문 스무 명이 서로 어깨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도르마의 부러진 뿔 밑동이 가장 크게 울었다⁠.

*

불은 칠 분 뒤에 들어왔다⁠. 공연장 전기실 문이 바깥에서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경호원들이 쇠사슬을 끊었을 때 전기실 안에 붉은 후드 넷이 앉아 있었다고 했다⁠. 붉은 후드 넷은 순순히 손을 들었다⁠. 넷 가운데 하나는 모래봉을 쥐고 있었다고 했다⁠.

조명이 들어오자 공연장이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이번엔 다른 비명이었다⁠. 모래시계 다섯이 무대 위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우담은 땀과 눈물이 섞인 얼굴로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여러분⁠, 방금 저 평생 못 잊어요⁠. 진짜로요⁠.⁠”

마지막 곡이 끝나고 객석 조명이 켜졌다⁠. 나는 3층 계단을 내려갔다⁠. 1층 객석 통로 중간에 바르덴이 있었다⁠. 1층 붉은 섬은 비어 가고 있었다⁠. 가르쉬는 보이지 않았다⁠. 바르덴의 코트 어깨에 쇠뿔 가문 젊은 마족 하나가 얼굴을 묻고 있었다⁠. 바르덴은 마족의 등을 두드려 보내고 나를 보았다⁠.

도르마가 지팡이를 짚고 2층 계단을 내려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도르마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목소리는 말라 있었다⁠.

“⁠두 번째 판⁠. 뿔은 쇠뿔 아이들 노래에 울었다⁠.⁠” 도르마가 지팡이로 바르덴을 가리켰다⁠. “⁠마왕 편이다⁠.⁠”

나는 도르마를 보았다⁠. 도르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 보았다⁠. 원망하지 말라던 말이 눈에 있었다⁠.

“⁠불 꺼지길 기다렸어요⁠?⁠”

나는 바르덴에게 물었다⁠. 물으면서도 답은 알고 있었다⁠.

“⁠기다리지 않았소⁠. 불은 가르쉬가 껐소⁠. 꺼진 뒤에 짐의 아이들은 그대의 노래를 따라 불렀을 뿐이오⁠.⁠” 바르덴이 3층을 올려다보았다⁠. “⁠노란 불을 먼저 켠 것은 그대였소⁠. 짐은 3층에서 불빛이 번지는 것을 보았소⁠.⁠”

“⁠알아요⁠.⁠” 나는 숨을 내쉬었다⁠. “⁠졌어요⁠.⁠”

말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덜 아팠다⁠. 공연장 바닥에 떨어진 슬로건 하나가 내 발치에 있었다⁠. 비뚤어진 「⁠한 번 더⁠」였다⁠. 나는 슬로건을 주웠다⁠. 목에 낀 휴대전화가 아직 녹음 중이었다⁠. 「⁠녹음 중 31⁠:47⁠」 나는 정지 단추를 누르고 파일 이름을 바꾸지 않은 채 주머니에 넣었다⁠.

“⁠한 판씩이오⁠.⁠” 바르덴이 말했다⁠. “⁠마지막 판은 굿즈⁠. 붉은 달 축제 전날⁠, 흑요성 아래 전야 시장에서 하겠소⁠. 일곱 가문이 다 모이는 시장이오⁠.⁠”

“⁠거기서 제 굿즈랑 그쪽 굿즈를 겨루는 거죠⁠.⁠”

“⁠그렇소⁠.⁠”

바르덴이 몸을 돌려 1층 출구를 보았다⁠. 출구 앞에 검은 앞치마를 두른 사람이 서 있었다⁠. 굿즈 부스를 정리하고 들어온 연두였다⁠. 앞치마 주머니에 회색 키링이 한 움큼 꽂혀 있었다⁠. 연두는 출구 앞에서 더 다가오지 않았다⁠.

“⁠짐의 굿즈는 곽연두가 만드오⁠.⁠”

연두가 나를 보았다⁠. 나도 연두를 보았다⁠. 연두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키링끼리 부딪쳐 짤랑 소리가 났다⁠. *

공연장 로비는 빠져나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정전 이야기로 다들 시끄러웠다⁠. 「⁠우담 생목 들었어⁠?⁠」 「⁠마족 코스프레 단체 화음 실화냐⁠」 「⁠불 꺼진 거 연출 아니래 경찰 왔대⁠」 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 로비 기둥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가르쉬가 기둥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중절모를 가슴에 대고 있었다⁠. 정장 소매 끝에 쇠사슬 녹이 묻어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아가씨⁠. 아⁠, 지셨지요⁠. 위로드립니다⁠.⁠”

“⁠전기 끊은 거 그쪽이죠⁠.⁠”

“⁠제 전사 넷이 전기실에서 길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인간계 건물은 복잡합니다⁠.⁠” 가르쉬가 웃었다⁠. 웃음이 오늘은 조금 늦게 나왔다⁠. “⁠셋이 울었습니다⁠. 제 전사 셋의 뿔이요⁠. 부산에서는 하나였는데⁠.⁠”

“⁠그러니까 그만하세요⁠.⁠”

“⁠그만하면 셋이 먹을 밥은 누가 줍니까⁠?⁠” 가르쉬가 중절모를 썼다⁠. “⁠마지막 판이 남았지요⁠. 굿즈라⁠. 아가씨는 무엇을 만드실 생각입니까⁠? 손이 느리다고 들었습니다⁠.⁠”

“⁠누구한테요⁠?⁠”

“⁠시장에는 귀가 많습니다⁠.⁠” 가르쉬가 로비 출구로 걸어가다 돌아보았다⁠. “⁠다음은 아가씨 차례입니다⁠. 기억해 두세요⁠. 저는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지만⁠,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가르쉬가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쥐었다⁠. 삼십일 분 사십칠 초짜리 녹음 파일이 손바닥 안에서 따뜻했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