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438자)

그네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8월 27일 아침 아홉 시 사십 분⁠, 서교동 문 앞에서 예봄이를 안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떨었다⁠. 혜결이었다⁠.

「⁠끝⁠. 안 더듬었어⁠.⁠」

이어서 하나 더 왔다⁠.

「⁠본부장이 마지막에 물었어⁠. 남편분 오늘 아침 뉴스 나오던데 괜찮으시냐고⁠. 그래서 대답했어⁠. 저희 집은 오늘 아침에도 일곱 시 반에 교대했습니다⁠. 오 분 늦었지만요⁠.⁠」

주먹 쥔 토끼 이모티콘이 따라왔다⁠. 예봄이가 화면 속 토끼를 눌렀다⁠. 토끼가 혜결에게 하나 날아갔다⁠. 혜결의 답은 「⁠?⁠」 대신 하트였다⁠.

*

9월 1일⁠, 협회 총회가 다시 열렸다⁠. 나는 가지 않았다⁠. 예봄이 낮잠 시간이었다⁠. 결과는 B급 엄마 헌터가 사진으로 보내 주었다⁠. 강당 화면을 찍은 사진이었다⁠. 「⁠S급 헌터 휴직 제한안 — 부결⁠. 찬성 87⁠, 반대 112⁠.⁠」 사진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휴직 신청서 마흔 장 답장 받았어요⁠. 우리 애 발한테 제일 먼저 말해 줬어요⁠.⁠」

상임이사가 반대에 표를 던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표결 뒤 상임이사가 며느리에게 아기 띠를 하나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협회 단톡방에서 놀이터 단톡방으로⁠, 놀이터 단톡방에서 대구 노인정 단톡방으로 내려갔다⁠. 색깔까지 내려갔다⁠. 호랑이 무늬였다⁠. 같은 주에 오사카 균열이 닫혔다는 소식이 왔다⁠. 서열 2위는 들것에서 일어나 목발을 짚고 귀국했다⁠. 공항 사진 속 2위의 목에는 아기 띠 대신 깁스 끈이 둘려 있었다⁠.

9월 3일 저녁⁠, 혜결이 현관에서 구두를 벗다 말고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사내 메신저였다⁠. 「⁠본부장⁠: 한혜결 차장⁠, 축하합니다^^^⁠」

“⁠웃음 표시가 셋이야⁠.⁠” 혜결이 말했다⁠. “⁠차장 되면 웃음이 하나 늘어⁠.⁠”

“⁠그래서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냈어⁠?⁠”

“⁠응⁠.⁠” 혜결이 구두를 마저 벗었다⁠. 계단참에서 숨을 고르지 않고 들어온 첫날이었다⁠. “⁠그냥 웃음이야⁠. 별것도 아니었어⁠.⁠”

혜결은 바탕 화면의 이력서 파일을 지웠다⁠. 내가 보는 앞에서 지웠다⁠. 휴지통까지 비웠다⁠. 휴지통 비우는 소리가 났다⁠. 종이 구기는 소리를 흉내 낸 효과음이었다⁠. 예봄이가 효과음을 따라 입으로 바스락거렸다⁠.

*

9월 5일 토요일 아침⁠, 물빛마을 3단지 놀이터에 덤프트럭이 들어왔다⁠.

경계선은 8월 27일 아침에 물러났다⁠. 핵이 깨지고 균열이 날숨만 쉬며 오므라들자⁠, 경계선 안에 들어갔던 것들이 하나씩 바깥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것들은 들어갈 때와 달랐다⁠. 101동 외벽이 군데군데 녹아 흘러내렸다가 굳었다⁠. 놀이터는 더했다⁠. 코끼리 미끄럼틀의 코가 녹아 땅에 닿아 있었다⁠. 모래밭은 검게 그을렸다⁠. 그네 쇠사슬은 녹았다가 굳어서 엿가락처럼 꼬여 있었다⁠. 등나무는 살았다⁠. 잎이 반쯤 타고 반쯤 남았다⁠.

결희가 놀이터를 다시 짓자는 공지를 올린 것은 경계선이 물러난 날 저녁이었다⁠. 「⁠다들 아시죠⁠. 관리사무소 공사 기다리면 내년 봄이에요⁠. 우리가 해요⁠.⁠」 공지 아래 엄지가 줄줄이 달렸고⁠, 엄지 사이에 협회 엄마 아빠 헌터 방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대화명이 섞여 있었다⁠. 단톡방 이름은 다시 「⁠물빛놀이터 엄마들⁠」로 돌아와 있었다⁠. 「⁠(⁠임시⁠)⁠」가 빠졌다⁠.

덤프트럭이 새 모래를 쏟았다⁠. 손주가 셋이라는 기사님이 택시를 정문 밖에 세우고 목장갑을 끼고 들어왔다⁠. 미터기는 끄고 왔다고 했다⁠. 예봄이가 기사님에게 경례를 했다⁠. 보급반장 할아버지가 삽을 들었다⁠. 떡뻥 부적의 B급이 그을린 모래를 퍼냈다⁠. B급 엄마 헌터가 아들을 아기 띠에 안은 채 새 모래를 고르게 폈다⁠. 화염 계열 C급이 녹아 꼬인 그네 쇠사슬을 손끝으로 다시 달궈 폈다가⁠, 결희에게 그냥 새 걸로 바꾸라는 말을 듣고 머쓱해했다⁠. 새 쇠사슬은 협회 트럭이 싣고 왔다⁠. 서류 한 장과 함께⁠. 「⁠놀이터 복구 협조 — 작전부⁠」 서명란의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하솜은 등나무 그늘에 접이식 탁자를 펴고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 바구니 셋이 있었다⁠. 「⁠찢김⁠」 「⁠물림⁠」 「⁠데임⁠」 삽질하다 손바닥이 벗겨진 아빠들이 줄줄이 찾아왔다⁠. 하솜의 목에 새 협회 신분증이 달려 있었다⁠. 「⁠돌봄 힐러 · 낮 근무⁠」 돌봄방은 서교동 주민센터에서 협회 전진기지 옆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열기로 했다⁠. 서류에 서명한 사람이 작전부장 자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결재한 일이었다고 했다⁠.

재련은 목발을 짚고 그네 기둥 옆에 서서 새 쇠사슬을 거는 것을 지휘했다⁠. 지휘라기보다 콧노래였다⁠. 곡조가 맞았다⁠. 하솜이 붙인 발목은 다음 주에 목발을 뗀다고 했다⁠. 쇠사슬 고리를 하나 달 때마다 재련은 고리를 하나씩 손으로 당겨 보았다⁠. 당길 때마다 콧노래가 한 음씩 올라갔다⁠.

“⁠놀이터 S급님⁠.⁠” 재련이 나를 불렀다⁠. “⁠이제 S급 아니죠⁠?⁠”

“⁠아닙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예봄이 아빠요⁠.⁠”

“⁠재미없다⁠.⁠” 재련이 콧노래를 한 소절 불렀다⁠. “⁠그냥 놀이터님 할게요⁠.⁠”

*

열한 시⁠, 단지 정문으로 택시가 한 대 들어왔다⁠. 검은 승용차가 아니었다⁠. 문 닫는 소리가 가벼웠다⁠. 왼쪽 무릎을 끄는 발소리가 아스팔트를 지나 새 모래로 넘어왔다⁠. 무릎 보호대 위에 반바지를 입었다⁠. 회색 반팔 티셔츠에⁠, 발에는 형광 끈이 달린 새 운동화⁠.

결희가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사진을 찍지 않고 내렸다⁠. 대신 소리를 냈다⁠.

“⁠검은 양복 아저씨⁠, 오늘은 영피프티네⁠.⁠”

주완이 걸음을 멈추고 제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운동화가 뽀득 소리를 냈다⁠.

“⁠재련이가 골라 줬습니다⁠.⁠”

재련이 그네 기둥 옆에서 고개를 돌렸다⁠. 콧노래가 멈췄다⁠. 주완은 재련을 보았고⁠, 재련은 주완의 운동화를 보았다⁠. 두 사람이 목례를 했다⁠. 각도가 처음으로 달랐다⁠. 재련이 조금 더 깊이 숙였고⁠, 주완이 조금 더 오래 숙였다⁠.

주완은 8월 28일에 작전부장 자리를 내놓았다⁠. 재련을 대체 팀에 넣은 일과 8월 19일 밤의 명령을 스스로 징계위원회에 올렸다⁠. 징계위원회는 견책으로 끝냈다⁠. 주완은 견책을 받은 다음 날 휴가 신청서를 냈다⁠. 스물두 해 만의 첫 휴가였다⁠. 한 달짜리⁠. 휴가가 끝나면 교대 편성실로 간다고 했다⁠. 부모 헌터들의 두 시간을 짜는 자리였다⁠. 결희가 교대 편성실 소식을 듣고 단톡방에 한 줄을 올렸었다⁠. 「⁠물류센터 출신 자문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유료⁠.⁠」

주완이 등나무 벤치로 걸어왔다⁠. 나는 예봄이를 무릎에 앉히고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넉 달 동안 지킨 자리였다⁠. 주완이 벤치 반대편 끝에 앉았다⁠. 벤치 가운데가 비었다⁠.

“⁠정하셨습니까⁠?⁠” 주완이 물었다⁠.

나는 카고 바지 주머니에서 누런 종이를 꺼냈다⁠. 「⁠복귀 명령서⁠」 귀퉁이가 침에 젖었다 마른 자국⁠. 착불로 협회까지 갔다가 들것 위에서 돌아온 종이였다⁠.

“⁠서열은 반납했습니다⁠. 어제 협회 인사과에 냈습니다⁠. 7위 자리는 비워 두시든 채우시든 협회가 정하시면 됩니다⁠.⁠” 내가 말했다⁠. “⁠휴직은 끝까지 씁니다⁠. 내년 3월까지⁠. 그다음에는 교대 헌터로 등록하겠습니다⁠. 부장님이 짜시는 두 시간에 제 귀가 필요하면 부르십시오⁠. 두 시간씩⁠.⁠”

“⁠이제 부장이 아닙니다⁠.⁠”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주완이 잠깐 생각했다⁠. “⁠재련이 아빠라고 하시지요⁠.⁠”

재련이 그네 기둥 옆에서 콧노래를 크게 불렀다⁠. 곡조가 또 엉망이었다⁠. 일부러 엉망으로 부르는 콧노래였다⁠.

“⁠은빛 장검은요⁠?⁠” 주완이 물었다⁠.

“⁠금 간 채로 다용도실 세탁기 옆에 있습니다⁠. 고치지 않을 겁니다⁠. 고치면 또 들고 나갈 것 같아서요⁠.⁠”

주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명령서를 보았다⁠. 내 손에 들린 명령서를⁠.

“⁠그건요⁠?⁠”

예봄이가 대답했다⁠. 명령서 귀퉁이를 작은 손으로 움켜쥐더니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이가 하나 더 나는 중이었다⁠. 주완이 손을 뻗으려다 멈췄다⁠. 7월 13일 오후 다섯 시와 똑같은 손이었다⁠.

“⁠협회 직인이 젖습니다⁠.⁠” 주완이 말했다⁠.

“⁠이가 나는 중이라서요⁠.⁠”

주완이 웃었다⁠. 공손하지 않은 웃음이었다⁠. 웃음소리가 등나무 잎 사이로 퍼졌다⁠. 결희가 삽을 든 채 돌아보았고⁠, 하솜이 바구니에서 손을 멈췄다⁠. 주완이 웃는 것을 처음 본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재련은 돌아보지 않았다⁠. 콧노래만 조금 길어졌다⁠.

*

열두 시 반⁠, 혜결이 김밥 스무 줄을 들고 왔다⁠. 토요일인데 회사에 잠깐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차장 명함이 나왔다고 했다⁠. 혜결은 김밥 상자를 등나무 탁자에 내려놓고 명함 한 장을 꺼내 하솜의 「⁠찢김⁠」 바구니 옆에 꽂았다⁠. 「⁠솔빛식품 마케팅팀 차장 한혜결⁠」 결희가 명함을 사진으로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예봄이 엄마 차장 되심⁠. 김밥 쏘심⁠.⁠」 엄지가 서른 개 넘게 달렸다⁠.

혜결이 벤치의 주완 앞으로 갔다⁠. 주완이 일어나려다 무릎 때문에 반쯤만 일어났다⁠. 혜결은 주완을 내려다보지 않으려고 같이 반쯤 몸을 숙였다⁠. 둘이 엉거주춤한 높이에서 마주 보았다⁠.

“⁠한 시간 오십 분 남았다고 하셨다면서요⁠. 그날 아침에⁠.⁠”

“⁠그랬습니다⁠.⁠”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칼을 한 번 더 들었대요⁠. 덕분에 저는 아홉 시에 본부장 앞에 섰고요⁠.⁠” 혜결이 김밥 한 줄을 은박지째 주완 손에 쥐여 주었다⁠. “⁠고맙다는 말은 남편이 못 할 테니까 제가 할게요⁠. 고맙습니다⁠.⁠”

주완이 김밥을 내려다보았다⁠. 고맙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손이 김밥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했다⁠.

“⁠아내분 발표 시각을 지우지 못한 보고서 덕입니다⁠.⁠” 주완이 말했다⁠. 하솜이 탁자 너머에서 고개를 숙였다⁠. 귀 끝이 빨갰다⁠.

혜결이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내 무릎에 있던 예봄이가 엄마에게 팔을 뻗었다가⁠, 엄마가 아니라 김밥에 팔을 뻗은 것으로 드러났다⁠. 혜결이 김밥 꽁다리를 손톱만큼 떼어 예봄이 입에 넣어 주었다⁠.

*

오후 세 시⁠, 새 쇠사슬을 그네 기둥에 다 달았다⁠. 결희가 첫 그네를 누가 탈지 공지를 올리려다 말고 나를 보았다⁠.

“⁠예봄이부터요⁠. 다들 아시죠⁠.⁠”

그네 앞에 예봄이를 내려놓았다⁠. 예봄이가 그네 기둥을 붙잡고 일어났다⁠. 소파를 잡고 일어나던 것처럼⁠. 기둥을 잡은 채 옆으로 두 걸음을 갔다⁠. 나는 그네 앞에 쪼그려 앉아 두 팔을 벌렸다⁠. 예봄이가 나를 보았다⁠.

예봄이가 기둥을 놓았다⁠.

한 걸음⁠.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두 걸음⁠. 모래가 작은 발바닥 밑에서 사각 소리를 냈다⁠. 새 모래였다⁠. 세 걸음⁠. 예봄이가 내 팔 안으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웃었다⁠. 놀이터의 어른들이 숨을 멈췄다가 한꺼번에 내쉬었다⁠. 혜결이 내 등 뒤에서 내 어깨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손이 떨렸다⁠. 웃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한 숨에 섞여 났다⁠. 결희가 박수를 쳤고⁠, 엄마들이 따라 쳤다⁠. B급 엄마 헌터가 아들의 발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엄지발가락이 긴 왼발이었다⁠. 주완은 벤치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앉은 채 손뼉을 쳤다⁠. 손뼉 소리가 박자를 놓쳤다⁠. 재련이 주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처음으로⁠.

화면으로 보지 않았다⁠. 내 팔 안에서 보았다⁠.

예봄이를 그네에 앉히고 등을 밀었다⁠. 그네가 앞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새 쇠사슬이 삐걱였다⁠. 예봄이가 웃었다⁠. 나는 귀를 열었다⁠. 홍대 앞에서는 더 이상 숨소리가 오지 않았다⁠. 매미 소리⁠, 삽 소리⁠, 결희의 공지 알림⁠, 재련의 콧노래⁠, 주완의 운동화가 모래를 밟는 소리⁠. 그리고 바로 앞에서⁠, 그네가 나갈 때 들이쉬고 돌아올 때 내쉬는 딸의 숨⁠.

들이쉬는 데 이 초⁠, 내쉬는 데 삼 초⁠. 나는 딸의 박자에 맞춰 그네를 밀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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