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509자)

마지막 날 팀장이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주었다

사내 연애 적발 감사팀 · 모세담

6월 5일 토요일 오전 열 시⁠, 문래동 철공소 골목 끝에 빵집이 하나 있었다⁠. 철문을 내린 공장들 사이에서 빵집만 유리문을 열어 두었다⁠. 쇠 깎는 기름 냄새와 버터 냄새가 골목 한가운데서 섞였다⁠. 간판은 나무판에 흰 페인트로 쓴 「⁠주희네 빵⁠」⁠. 옥경 팀장이 유리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빨간 정장 대신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처음 보는 차림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와⁠. 식빵 한 봉지 사서 나가⁠. 말은 안 하고⁠.⁠” 옥경 팀장이 유리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오늘은 말하려고 왔어⁠. 채가온 씨는 옆에 있어 줘⁠. 혼자 오면 또 식빵만 사서 나갈 것 같아서⁠.⁠”

빵집 안은 좁았다⁠. 진열대 하나⁠, 계산대 하나⁠, 안쪽에 오븐 두 대⁠.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바게트를 바구니에 세우고 있었다⁠. 서른 중반⁠, 머리를 질끈 묶고 팔뚝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오븐 앞에는 남자 하나가 등을 보이고 서서 반죽을 치대고 있었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옥경 팀장을 보고 손을 멈췄다⁠. 바게트 하나가 바구니 밖으로 기울었다⁠.

“⁠식빵이요⁠?⁠” 석주희가 물었다⁠. 목소리가 평평했다⁠.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손님에게 같은 말을 해 온 목소리였다⁠.

“⁠아니요⁠. 오늘은 할 말이 있어요⁠.⁠”

옥경 팀장이 계산대 앞으로 갔다⁠.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대륙증권 감사위원회가 5월 마지막 주에 금감원에 낸 문서의 사본이었다⁠. 2017년 동양정공 보고서 유출 건 보고에 잘못이 있었고⁠, 당시 해고된 두 직원은 유출과 관련이 없었다는 내용⁠. 석주희는 종이를 받지 않았다⁠. 옥경 팀장이 계산대 위에 내려놓았다⁠.

“⁠2017년에 보고서를 흘린 사람은 나예요⁠. 주희 씨가 아니었어요⁠. 나는 알면서 말하지 않았어요⁠. 십 년 동안⁠.⁠”

오븐 앞 남자의 손이 멈췄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석주희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한참 읽었다⁠. 읽는 동안 손에 묻은 밀가루가 종이 귀퉁이에 하얗게 찍혔다⁠.

“⁠알았어요⁠.⁠” 석주희가 말했다⁠. “⁠처음 식빵 사러 오셨을 때부터요⁠. 팀장님이 아니었으면 그 보고서 얘기를 그날 밤 누가 했겠어요⁠. 나랑 이 사람은 초안밖에 못 봤는데⁠.⁠” 석주희가 오븐 앞 남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이 그때 영업부 대리예요⁠. 그 일 있고 이 년 뒤에 결혼했어요⁠. 회사에서 잘린 사내 커플이 진짜 커플이 됐죠⁠.⁠”

“⁠미안해요⁠.⁠”

“⁠사과는 받을게요⁠.⁠” 석주희가 바구니 밖으로 기운 바게트를 바로 세웠다⁠. “⁠용서는 아직이에요⁠. 십 년을 식빵 한 봉지씩으로 갚으셨으니까⁠, 남은 것도 그렇게 갚으세요⁠. 해마다⁠.⁠”

옥경 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오래 숙였다⁠. 짧은 웨이브 머리가 앞으로 쏟아져 얼굴을 가렸다⁠. 나는 옥경 팀장 옆에 서서 진열대만 보았다⁠. 소금빵이 일곱 개 남아 있었다⁠.

오븐 앞 남자가 처음으로 돌아보았다⁠. 마흔 가까운 얼굴에 밀가루가 눈썹까지 묻어 있었다⁠. 남자가 나를 보았다⁠.

“⁠감사팀이세요⁠?⁠”

“⁠네⁠.⁠”

“⁠감사팀이 빵집까지 오는 거 보니⁠, 세상 많이 바뀌었네⁠.⁠” 남자가 반죽 위에 밀가루를 한 줌 뿌렸다⁠. “⁠소금빵 드세요⁠. 그건 공짜 아니고 사 가세요⁠. 감사팀은 공짜 받으면 안 되잖아요⁠.⁠”

나는 소금빵 일곱 개를 다 샀다⁠. 옥경 팀장은 식빵 한 봉지를 샀다⁠. 해마다 사던 것이었다⁠. 계산대 위의 종이는 석주희가 접어서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빵집을 나와 철공소 골목 끝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옥경 팀장이 소금빵 봉지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가 결국 하나를 꺼냈다⁠.

“⁠팀장님⁠, 사직서 정말 내셨어요⁠?⁠”

“⁠냈어⁠. 7월 14일까지 인수인계⁠.⁠”

“⁠내지 마세요⁠.⁠” 나는 소금빵을 쥔 채 말했다⁠. “⁠준서한테 사표 쓰지 말라고 한 거 저예요⁠. 사표 쓰면 도망간 사람 말이 된다고요⁠. 팀장님도 같아요⁠.⁠”

“⁠방 대리는 자기 몫을 다 받고 남았어⁠. 정직 두 달⁠, 자격 정지⁠, 통장 삼천⁠.⁠” 옥경 팀장이 소금빵을 반으로 쪼갰다⁠. 바삭한 껍질이 무릎 위로 떨어졌다⁠. “⁠나는 십 년 전 몫을 아직 하나도 안 받았어⁠. 회사도 금감원도 지금 와서 나한테 줄 벌이 없대⁠. 그럼 내가 정해야지⁠. 남이 안 주는 벌을 내가 안 받으면⁠, 나는 또 규정을 만들어서 남한테 줄 거야⁠. 그건 이제 안 해⁠.⁠”

“⁠감사팀은요⁠?⁠”

“⁠육 차장이 있잖아⁠. 형광펜 열두 자루하고⁠.⁠” 옥경 팀장이 소금빵을 한 입 먹었다⁠. “⁠짜다⁠. 짠 건 괜찮아⁠.⁠”

나는 대답 대신 내 소금빵을 먹었다⁠. 버터가 손가락에 묻었다⁠. 놀이터 미끄럼틀 위로 철공소 지붕이 보였고⁠, 지붕 위로 비둘기가 앉았다 날아갔다⁠. 옥경 팀장은 식빵 봉지를 무릎에 올려놓고 오래 앉아 있었다⁠. 우리는 소금빵 일곱 개 중 넷을 먹었다⁠. 남은 셋은 육 차장 몫이었다⁠.

*

6월 내내 일이 정리되었다⁠. 정리되는 일은 대개 화면으로 왔다⁠.

5월 21일 이사회는 위상진 대표의 사임을 받았다⁠. 6월 9일 경제 신문 인터넷판에 기사가 떴다⁠. 「⁠금감원⁠, 대륙증권 前 영업본부장 차명 선행매매 혐의 수사기관 통보 예정⁠… 제재심의위원회 8월 개최 전망⁠」⁠. 기사 맨 아래에 회사 이름 없이 「⁠책무구조도 도입 이후 대표이사 내부통제 관리의무가 쟁점이 될 첫 사례들 가운데 하나⁠」라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첫 사례가 되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내 징계는 6월 16일에 나왔다⁠. 견책⁠. 이해충돌 신고를 늦게 한 데 대한 것이었다⁠. 대기 발령이 풀린 다음 날 아침⁠, 19층 출입 게이트에 사원증을 댔다⁠. 삑⁠, 하고 초록 불이 들어왔다⁠. 육 차장이 게이트 안쪽에서 형광펜 필통을 받으며 뚜껑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열두 자루 다 닫혀 있었다⁠.

“⁠합격⁠.⁠” 육 차장이 말했다⁠. 육 차장은 7월부터 감사팀장 대행이었다⁠. 첫 지시는 탕비실 원두를 감사팀 예산으로 채워 놓으라는 것이었다⁠. 3층 커피 머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징계가 나온 날 저녁⁠, 나는 새로 저장한 이름으로 처음 메시지를 보냈다⁠. 「⁠채가온⁠: 견책 받았어⁠. 조사 끝났어⁠. 장 다시 열어⁠?⁠」 답은 일 분 만에 왔다⁠. 「⁠방준서⁠: 망원동 편의점⁠. 딸기 우유 두 개 들고 감⁠.⁠」

망원동 골목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우리는 우유를 마셨다⁠. 준서는 정직 중이라 머리를 넘기지 않아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었다⁠. 넥타이도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교제 신고서 같이 내자⁠.⁠” 준서가 빨대를 꽂으며 말했다⁠. “⁠이번엔 진짜로⁠. 커피 머신 말고⁠.⁠”

“⁠비고 칸에 장기 보유 희망 쓰면 반려야⁠.⁠”

“⁠그럼 뭐라고 써⁠?⁠”

“⁠아무것도 쓰지 마⁠. 인사팀은 그런 칸 안 읽어⁠.⁠”

준서가 웃었다⁠. 이번에는 둘 다 웃음을 참지 않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유리문 안에서 우리를 한 번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회사 밖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감사하지 않았다⁠.

*

7월 14일 수요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대륙증권 1층 로비⁠. 보안 데스크 앞에 회색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가 서 있었다⁠. 노강철⁠.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금색 넥타이핀도 없었다⁠. 해임은 지난주에 확정되었다⁠. 보안 요원이 반납 상자를 내밀었다⁠. 노강철이 목에서 사원증을 벗어 상자에 넣었다⁠. 파란 목줄이 상자 바닥에 동그랗게 내려앉았다⁠.

회전문이 돌았다⁠. 준서가 들어왔다⁠. 남색 정장에 빨간 넥타이⁠, 목에 새 사원증⁠. 「⁠리테일지원팀 방준서⁠」⁠. 정직 두 달이 어제로 끝났다⁠. 투자권유 자격 정지는 아직 몇 달 남아서⁠,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상품을 권하는 일은 당분간 할 수 없었다⁠. 리테일지원팀이 준서를 받았다⁠. 내가 사 년 동안 계좌 원장을 읽던 7층 자리였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준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강철과 준서가 로비 한가운데서 마주쳤다⁠. 둘 다 걸음을 멈췄다⁠.

“⁠지원팀이네⁠.⁠” 노강철이 준서의 사원증을 보았다⁠. “⁠영업 1등이 서류 넘기는 데로 갔어⁠. 업계에서 너 받아 줄 데 없다⁠. 소문 다 났어⁠.⁠”

“⁠지원팀이 받아 줬어요⁠.⁠” 준서가 말했다⁠. 목소리가 커지지 않았다⁠. “⁠본부장님은 어디로 가세요⁠?⁠”

“⁠나는 본부장이 아니야⁠, 이제⁠.⁠”

“⁠그럼 뭐라고 불러요⁠?⁠”

노강철이 대답하지 못했다⁠. 십 년 넘게 불리던 이름이 사원증과 같이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다⁠. 노강철이 상자를 내려다보았다가 나를 보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나를⁠, 오래⁠.

“⁠채가온 씨⁠. 하나만 묻자⁠. 처제 계좌⁠, 언제 알았어⁠?⁠”

“⁠3월 8일 오후요⁠. 육 차장님이 형광펜 뚜껑을 열어 주셨을 때⁠.⁠”

“⁠형광펜⁠.⁠” 노강철이 짧게 웃었다⁠. 3월 탕비실에서 들었던 웃음과 달랐다⁠. 입에서 끝나지 않고 어깨까지 내려갔다⁠. “⁠숫자 크다고 다 사고는 아니라고 했는데⁠.⁠”

“⁠크게 봤어요⁠. 돋보기가 있었거든요⁠.⁠”

노강철이 회전문으로 걸어 나갔다⁠. 회전문 유리에 노강철의 등이 한 번⁠, 두 번 비쳤다가 여의도의 아침 햇빛 속으로 빠져나갔다⁠. 보안 요원이 반납 상자의 뚜껑을 덮었다⁠.

*

여덟 시 오십팔 분⁠, 출근 엘리베이터는 이번에도 사람으로 꽉 찼다⁠. 나는 맨 안쪽 거울 앞에 밀려 있었고⁠, 준서가 내 앞을 막아 주듯 등을 보이고 있었다⁠. 누가 뒤에서 한 번 밀자 파란 목줄 두 개가 또 한데 꼬였고⁠, 집게 둘이 기다렸다는 듯 서로를 물었다⁠. 「⁠감사팀 채가온⁠」과 「⁠리테일지원팀 방준서⁠」가 등을 맞대고 빙글 돌았다⁠.

준서가 집게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나도 손을 뻗지 않았다⁠. 이제 떼어 놓을 까닭이 없었다⁠. 지난달 인사팀에 낸 교제 신고서는 한 장이었고⁠, 교제 상대 칸에는 서로의 이름이⁠, 비고 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장기 보유 희망은 준서가 끝내 지웠다⁠. 쓰지 않아도 아는 말이라고 했다⁠.

닫히던 문 사이로 손 하나가 들어왔다⁠. 빨간 소매였다⁠. 문이 다시 열렸다⁠. 옥경 팀장이 작은 종이 상자를 한 팔에 안고 들어왔다⁠. 상자 위에 놋쇠 돋보기 상자 하나가 얹혀 있었다⁠. 다음 신입에게 줄 것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었다⁠. 빨간 정장에 진주 목걸이를 다시 걸었다⁠.

옥경 팀장이 문 앞에 서서 우리를 돌아보았다⁠. 엉킨 목줄 두 개를 보았다⁠. 사원증 두 장이 서로 등을 대고 돌다가 멈췄다⁠. 옥경 팀장의 눈이 목줄을 따라 내려가 우리 두 사람 사이⁠, 손이 있는 자리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탁자가 없었다⁠. 준서의 손가락 사이로 내 손가락이 들어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이 조용했다⁠.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옥경 팀장이 상자를 고쳐 안았다⁠. 팔짱을 낄 수 없는 자세였다⁠.

“⁠사십 초⁠.⁠” 옥경 팀장이 말했다⁠. “⁠이번엔 세지 마⁠.⁠”

3층에서 문이 열렸다⁠. 영업본부 층이었다⁠. 준서는 내리지 않았다⁠. 준서는 이제 7층에서 내린다⁠. 문이 닫히려 할 때 바깥에서 영업팀 여직원 둘이 뛰어왔다⁠. 옥경 팀장이 상자를 한 팔로 옮겨 안고 남은 손을 문틈에 넣었다⁠. 문이 다시 열렸다⁠. 여직원 둘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다가 우리 손을 보고⁠, 옥경 팀장을 보고⁠, 다시 우리 손을 보았다⁠.

“⁠감사팀장님⁠…⁠… 저거⁠…⁠…⁠.⁠”

“⁠신고된 거야⁠.⁠” 옥경 팀장이 말했다⁠. “⁠타⁠.⁠”

여직원들이 타고 문이 닫혔다⁠. 아홉 시 정각⁠, 준서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준서가 깍지 낀 손을 풀지 않은 채 다른 손으로 전화를 꺼냈다⁠. 화면에 「⁠염명숙 고객님⁠」이 떴다⁠. 준서가 받았다⁠.

“⁠네⁠, 고객님⁠. 먹었어요⁠. 커피 말고 밥이요⁠.⁠”

수화기 너머에서 가곡 한 소절이 새어 나왔다⁠. 빨간 넥타이 맨 날의 노래였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4⁠, 5⁠, 6으로 올라갔다⁠. 옥경 팀장은 열림 단추 옆에 서서⁠, 상자를 두 팔로 안은 채 거울 속 우리를 보고 있었다⁠. 팔짱을 끼지 않은 두 팔이 상자를 꼭 안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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