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37자) · 3753일차
밖에서 본 창
관측자 K의 일지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3681일차. 유월 십삼일 토요일. 맑음.
A창: 06:50 열림 B창: 06:40 열림 / 커튼 새로 달림(연두색) C창: 16:20 열림(퇴원)
일지는 스물여덟 권이 아니라 지금 한 권이다. 스물여덟 권은 증거물 보관실에 있다. 압수 목록 영수증 한 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영수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관측 일지(추정) 28권. 추정이라는 말을 누가 붙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말을 보고 웃었다. 이십이 미터에서도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29권은 새 공책이다. 한결문구에서 산 것. 첫 장에 1일차를 옮겨 적지 않았다. 옮겨 적을 원본이 이 방에 없다. 첫 장은 오늘 날짜로 시작한다. 이십구 권 만에 처음이다.
16:20. C창에 불이 켜졌다. 서주안 씨가 퇴원했다. 창을 열자마자 이쪽으로 두 손으로 그릇 모양. 나는 쌀을 불렸다.
17:00. 노크 두 번, 짧고 세게. 사슬은 없다. 사슬은 문틀에서 떼어 서랍에 넣었다. 버리지는 않았다.
서주안 씨가 식탁에 앉아 내 창을 봤다. 창 옆 사진 자리에 사진이 없었다. 한수연에게 돌려주었다. 그 자리에 대신 편의점 재민 씨가 준 실종자 전단이 있었다. 한수연이 두고 갔다. 가족에게는 사진이 있으니 이건 아저씨 창에 두라고.
“이식 순번 스물아홉 번째 됐어요.”
서주안 씨가 말했다.
“줄었네요.”
“늘어나는 게 좋다고 하셨잖아요, 아저씨는.”
“창은 늘어나는 게 좋습니다. 순번은 줄어드는 게 좋습니다.”
“그걸 누가 정해요.”
“오늘 제가 정했습니다.”
서주안 씨가 웃었다. 두 그릇을 먹었다.
19:00. B창. 한수연이 사다리 대신 의자를 딛고 커튼 봉을 달았다. 연두색. 한 번에 안 달려서 세 번 내려왔다 올라갔다. 네 번째에 달렸다. 그 사람은 커튼을 한 번 닫았다가 열었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두 번. 열고, 닫고, 열고, 닫고. 삼 주 전 내가 이 창에서 한 것과 같은 신호였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을 열었다. 창틀에 팔을 얹었다. 십 년 동안 창을 열고 팔을 얹어 본 적이 없다. 창틀은 먼지가 두꺼웠다. 팔에 회색이 묻었다.
19:00. B창 커튼 설치. 연두색. 개폐 2회. 응답: 창 개방.
3753일차. 팔월 이십사일 월요일. 흐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법정 이 층.
오늘 일지는 법정 밖 복도 의자에서 쓴다. 법정 안에서는 쓸 수 없다. 쓰지 않고 본 것을 나중에 적는다. 이 방식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방청석은 거의 찼다. 나는 셌다. 버릇이다. 여든넷. 그 가운데 솔뫼동 얼굴이 스물여섯. 권 영감님은 개를 데려올 수 없어서 경위 사진을 지갑에 넣어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빨래집게 대신 손수건을. 재민 씨는 앞치마 없이. 서주안 씨는 링거 없이. 가동 이 층 아래층 여자, 나동 일 층 부부, 세탁소 아저씨, 러닝셔츠 청년은 넥타이를 매고. 맨 앞줄에 한수연. 그 옆에 한수연의 어머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딸 둘을 닮은 얼굴.
한수연의 어머니는 법정에 들어오기 전 복도에서 내 손을 잡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이 작고 거칠었다. 미용실 가위를 오래 쥔 손 같았다. 나중에 들으니 어머니도 미용사였다. 딸이 엄마를 따라 가위를 잡은 것이었다.
피고인석에 오태민. 수의가 아니었다. 구속된 피고인도 재판에는 사복을 입고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흰 셔츠. 소매를 접지 않았다. 그 사람은 방청석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증인석에 김태식. 반장이 아니라 전 반장이다. 칠월에 정직 삼 개월을 받았다. 그 사람은 십 년 전 1일차 복사본을 받은 날부터 오 사장 댁에 간 날까지 날짜를 불렀다. 내 일지 방식으로. 3일차, 4일차. 검사가 왜 그런 식으로 날을 세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증인의 일지에 그렇게 적혀 있어서, 그 날짜를 따라가야 자기가 한 일이 어디에 들어가는지 보인다고 대답했다.
마 씨가 증언했다.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덧붙였다. 매주 월요일 화단을 쓸면서 흙을 한 번도 쓸어 넣지 않았다고. 쓸어 넣으면 흙이 깊어질까 봐.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 나서 한참 증인석 난간을 잡고 있었다.
권 영감님이 증언했다. 순경이가 짖었고, 창을 열었고, 흰 차가 있었고, 그 집 아들이 손을 흔들었다고. 변호인이 십 년 전 기억을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물었다. 영감님은 지갑에서 경위 사진을 꺼내 보였다. 이놈이 그 화단만 가면 짖는다고. 변호인이 그건 개 얘기 아니냐고 했다. 영감님은 개 얘기라고 했다. 방청석에서 누가 웃었다. 판사가 조용히 해 달라고 했다.
14:30. 내 차례였다.
증인석은 창이 없었다. 법정 전체에 창이 없었다. 창이 없는 방에서 창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나는 증인석 난간 모서리를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창틀처럼. 높은 천장에 형광등. 나는 증인 선서를 읽었다. 목소리가 이상했다. 십 년 동안 거의 쓰지 않은 목소리가 석 달 사이에 조금 돌아왔다. 다 돌아오지는 않았다.
검사가 1일차를 물었다. 나는 불렀다. 02:10, 02:14, 02:31, 02:40. 6일차 07:30, 14:10, 16:00. 검사가 추정 두께 이십 센티미터, 실측 이십일 센티미터라고 덧붙였다. 오차 일 센티미터.
변호인이 일어섰다. 마흔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부드러운 목소리는 섬의 남서풍 같다. 먼저 따뜻하고 나중에 비를 데려온다.
“증인은 이천십육 년 오월부터 올해 오월까지 십 년 동안 거주지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않았지요.”
“예.”
“그 기간 사회적 교류가 거의 없었고요.”
“예.”
“하루 스무 시간 가까이 창밖만 보셨다고 수사 기록에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증인, 그런 상태의 사람이 새벽 두 시에 이십이 미터 떨어진 창을 보고 한 기록을,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재판에서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방청석이 조용해졌다. 한수연의 어깨가 굳는 것이 보였다. 서주안 씨가 무릎 위에서 손을 쥐었다. 나는 변호인을 봤다. 그 사람은 내가 대답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한 발 다가왔다.
“그날 밤 달은 어땠습니까? 밝았습니까?”
“그믐 이틀 전이었습니다. 달은 없었습니다. 나동 현관 등이 켜져 있었고, 골목 가로등 둘 가운데 하나는 나가 있었습니다. 나간 쪽은 편의점 쪽입니다. 사흘 뒤 7일차에 구청이 갈았습니다. 일지에 있습니다.”
변호인이 서류를 넘겼다. 검사석에서 누가 수사 기록을 짚었다. 구청 가로등 교체 기록. 7일차 날짜.
“그렇게 정확하게 보신 분이 왜 십 년 동안 한 번만 신고하셨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십 년 동안 준비했다.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지 않는 것이다. 열쇠는 안쪽에 있다. 관측원은 개입하지 않는다. 그 문장들은 여러 번 고쳐서 반들반들했다.
나는 그 문장을 쓰지 않았다.
“무서웠습니다.”
법정이 조용했다. 형광등 소리가 들렸다.
“4일차 밤에 피고인이 제 문 앞에 와서 제 창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스스로 불렀지만, 무서워서 못 나간 것입니다. 그 십 년 동안 저는 창만 봤습니다. 제가 본 것 가운데 틀린 것이 있으면 그 십 년이 틀린 것입니다. 틀린 것이 없으면, 그 십 년 동안 저 화단 밑에 그분이 계셨던 것입니다.”
변호인은 다음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앉았다.
나는 증인석에서 피고인석을 봤다. 오태민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를 봤다. 이번에는 한 뼘도, 한 걸음도, 이십이 미터도 아니었다. 법정 하나만큼. 그 사람의 입꼬리는 올라가지 않았다. 어느 쪽도.
3753일차 14:30~15:20. 증언.
15:30. 법정 밖 복도. 서주안 씨가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맞았다.
“아저씨, 무서웠습니다 할 때요.”
“예.”
“그 말 하기 전에 삼 초 셌어요.”
“이 초였을 겁니다.”
“삼 초였어요. 제가 셌어요. 아저씨만 세는 거 아니에요.”
그 사람 뒤로 김태식 전 반장이 지나갔다. 사복. 넥타이 없이. 그 사람은 나를 보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였다. 오래. 복도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18:40. 솔뫼동. 버스에서 내렸다. 골목 입구. 편의점. 이백십 걸음. 세지 않았다.
나동 화단은 새 흙이었다. 칠월 둘째 주 일요일, 나는 창으로 그 일을 봤다. 아니다. 창으로 보지 않았다. 내려가서 삽을 들었다. 서른여덟 개의 창에서 내려온 사람들 사이에서. 한 삽씩. 흙이 한 뼘에서 무릎까지 올라오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나는 그 시간을 재지 않았다. 콘크리트가 걷힌 자리에 흙이 무릎 깊이로 들어가 있었다. 회양목은 다시 심지 않았다. 대신 빨간 꽃이 한 줄. 제라늄. 권 영감님이 물을 주고 있었다. 경위가 화단 앞에서 짖지 않고 앉아 있었다.
B창에 연두색 커튼. 창턱에 주황 토분 하나. 빨간 꽃. 한수연은 아직 법원에 있다. 어머니와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C창에 불. 서주안 씨가 창틀에 팔을 얹고 나를 내려다봤다. 손을 흔들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처음이다. 창 안에서가 아니라 창 밖에서.
그러고 나서 나는 몸을 돌렸다.
가동. 사 층 빌라. 붉은 벽돌. 삼 층. 가운데.
나는 올려다봤다.
창은 작았다. 가로 백이십 센티미터, 세로 구십 센티미터. 커튼이 반쯤 열려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창 안에 의자 하나의 등받이가 보였다. 창을 향해 놓인 의자. 비어 있었다. 창 옆에 종이 한 장. 이십이 미터쯤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크기의 전단. 증명사진 속 웃지 않는 얼굴.
십 년 동안 저 네모 안에 앉아 있던 사람을, 서주안 씨는 새벽마다 봤다. 한수연은 그 네모 하나를 보고 이 동네로 왔다. 오태민은 그 네모를 두려워했다. 나는 그 네모 안에서 밖을 봤다. 밖에서 그 네모를 본 적은 없었다.
저녁 해가 창유리에 걸렸다. 유리에 나동이 비쳤다. 사 층 창 셋. A, B, C. 불이 둘 켜져 있고 하나는 커튼이 연두색이었다. 내 창 안에, 건너편 창들이 들어 있었다. 십 년 동안 내가 본 것이 내 창에 비쳐 있었다.
나는 오래 서 있었다. 시각을 보지 않았다. 해가 창유리에서 내려와 벽돌로 옮겨 갔다. 창이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창은 그냥 창이었다.
3753일차 저녁. 가동 앞 보도. 시각 없음. 처음으로 내 창을 밖에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