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39자) · 백쉰넷
흩어진 것은 안 없어진다
망각검 · 한도윤
— 줍는 자
나는 그 겨울에 본산에서 살았다.
걷지 못하니 갈 데가 없다.
서하가 방을 하나 줬다.
방에 앉아서 하루 종일 대전 소리를 들었다.
서른둘이 한꺼번에 나는 소리다.
들으면 내 입에 들어온다.
백서른둘에 서른둘이 더해지면 백예순넷이다.
나는 그것이 무서웠다.
무서워서 귀를 막았다.
막아도 들어왔다.
이레째에 서하한테 말했다.
“…젊은이, 나를 내보내 주시오.”
서하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나는 말했다.
“들어오오.”
서하가 말했다.
“입에 들어오는 것은 안 어긋납니다.”
나는 말했다.
“…어긋나오.”
서하가 나를 봤다.
나는 말했다.
“나는 입이 아니라 몸으로 받소.”
서하가 그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요?”
나는 말했다.
“오십 해 그렇게 줍고 살았소.”
“…”
“입에 붙은 것을 세 번 내면 몸에 들어간다고 했지 않소.”
“…예.”
“나는 세 번 안 내도 들어가오.”
서하가 물었다.
“언제부터요?”
나는 말했다.
“…쉰 넘어서부터요.”
“…”
“백을 넘기고 나서 그렇게 됐소.”
서하가 물었다.
“그럼 지금 몇입니까?”
나는 말했다.
“이레 동안 스물둘이 들어왔소.”
서하가 일어섰다.
“…백쉰넷입니까?”
나는 말했다.
“그렇소.”
서하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말했다.
“앉아 있으면 괜찮소.”
“…”
“앉아서 죽을 거요.”
서하가 그 자리에 섰다.
나는 말했다.
“젊은이, 하나 부탁하겠소.”
“말씀하십시오.”
나는 말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눠 가지시오.”
서하가 물었다.
“…어떻게 나눕니까?”
나는 말했다.
“내가 소리를 내겠소.”
“…”
“백쉰넷을 다 내겠소. 여든셋이 따라 하시오.”
서하가 물었다.
“다 내면 어찌 되십니까?”
나는 말했다.
“놓이겠지.”
“…”
“놓으면 걷겠지.”
서하가 물었다.
“…오십 해 만에요.”
나는 말했다.
“오십 해 만에.”
내는 데 아흐레가 걸렸다.
아흐레 동안 밥을 펴는 노파가 대전 문간에 앉아 있었다.
내가 소리를 내면 여든셋이 따라 하는데, 그 노파도 따라 했다.
문하가 아니라고 들었다.
나는 여드렛날에 서하한테 물었다.
“…저 노인은 뭐요?”
서하가 말했다.
“밥을 펴십니다.”
“…사십 해요?”
“사십 해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십 해 동안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이다.
나는 오십 해 동안 밤마다 숫자를 세서 백서른둘을 주웠다.
저 노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사십 해를 들었다.
나는 서하한테 물었다.
“…저 노인 입에 얼마나 있겠소?”
서하가 말했다.
“모릅니다.”
“…물어보시오.”
서하가 말했다.
“물어봤습니다.”
“…”
“세어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웃었다.
웃다가 그쳤다.
오십 해 동안 나는 세었다.
세면서 주웠고, 셀 때마다 하나씩 늘었고, 늘 때마다 걷는 것이 어려워졌다.
세지 않은 사람은 안 어긋난다.
나는 그것이 그날 제일 아팠다.
하루에 열여덟쯤 냈다.
내면 여든셋이 따라 했다.
따라 하는 소리가 대전을 채웠다.
닷샛날에 내 손이 떨렸다.
이렛날에 앉아 있기가 편해졌다.
아흐렛날에 다 냈다.
다 내고 나서 나는 일어서 보려고 했다.
못 일어섰다.
서하가 물었다.
“…안 되십니까?”
나는 말했다.
“안 되오.”
“…”
“놓으면 걸을 줄 알았소.”
서하가 물었다.
“왜 안 됩니까?”
나는 말했다.
“오십 해 앉아 있었소.”
“…”
“다리가 다리를 잊었소.”
서하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말했다.
“그건 초식이 아니라 다리요.”
“…”
“다리는 안 돌려주오.”
노파가 낸 것은 그해 봄이다.
내가 다 내고 못 일어선 뒤 석 달이 지나서였다.
노파가 먼저 말했다고 한다.
“…나도 내겠다.”
여든셋이 대전에 섰다.
노파가 문간이 아니라 가운데 섰다.
사십 해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노파가 소리를 냈다.
낸 것이 무엇인지 노파는 몰랐다.
무슨 소린지 모르고 사십 해 들은 것을 그대로 냈다.
여든셋이 따라 했다.
첫날에 열둘을 냈다.
이튿날에 열일곱을 냈다.
사흗날에 스물셋을 냈다.
내면 낼수록 더 나왔다.
닷샛날에 서하가 물었다.
“할머니, 얼마나 더 있습니까?”
노파가 말했다.
“모른다.”
“…”
“내니까 또 나온다.”
나는 그 말을 문간에서 들었다.
내니까 또 나온다는 말을 나는 오십 해 동안 한 번도 못 했다.
나는 낼 때마다 줄었다.
노파는 낼 때마다 나왔다.
무엇이 다른지 나는 이레째에 알았다.
나는 몸으로 받았다.
몸에 든 것은 내면 없어진다.
노파는 귀로만 받았다.
귀로 받은 것은 입에 있고, 입에 있는 것은 내도 안 없어진다.
말하는 것과 같다. 남한테 말해 줘도 제 안에 남는다.
나는 오십 해 동안 그것을 몰랐다.
알았으면 나는 줍지 않고 들었을 것이다.
노파가 다 내고 나서 나는 한 가지를 물었다.
“…할머니, 아깝지 않소?”
노파가 나를 봤다.
“…무엇이 아까우냐?”
나는 말했다.
“사십 해 지고 있던 것이오.”
노파가 웃었다.
“그게 내 것이냐?”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노파가 말했다.
“밥을 사십 해 폈는데 그 밥이 내 것이냐?”
“…”
“내 것이 아닌 것은 안 아깝다.”
나는 그 말에 오래 앉아 있었다.
나는 오십 해 동안 주운 것을 내 것으로 알았다.
내 것으로 알았으니 아까웠다.
아까우니 안 내놓았다.
안 내놓으니 무거웠다.
무거우니 못 걸었다.
셈이 그렇게 돈다.
노파가 물었다.
“…댁은 아까웠냐?”
나는 말했다.
“아까웠소.”
노파가 말했다.
“그럼 댁 것이었구먼.”
“…”
“내 것인 줄 알면 아깝고, 남의 것인 줄 알면 안 아깝다.”
노파가 주걱을 들었다.
“아까워하는 건 옆에서 보는 사람 몫이다.”
나는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노파가 말했다.
“내가 내놓는 걸 보고 아깝다고 한 건 댁이지 내가 아니다.”
서하가 물었다.
“…후회하십니까?”
나는 그 물음에 오래 있다가 대답했다.
“백쉰넷을 오십 해 지고 있었소.”
“…”
“지금 여든셋이 나눠 지고 있소.”
“…”
“한 사람이 둘씩이오.”
나는 말했다.
“둘은 아무것도 아니오.”
서하가 말했다.
“어르신 것이 없어졌습니다.”
나는 말했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흩어진 것이오.”
“…”
“흩어진 것은 안 없어지오.
노파가 낸 것이 열이틀에 이백열한 가지였다.
여든셋이 다 따라 했다.
열사흗날 아침에 노파가 문간에 앉아서 말했다.
“…이제 없다.”
서하가 물었다.
“다 내셨습니까?”
노파가 말했다.
“모른다.”
“…”
“안 나온다.”
노파가 주걱을 들었다.
“밥 펴러 가야겠다.”
여든셋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노파가 부엌으로 갔다.
가다가 문턱에서 한 번 멈췄다.
멈춰서 발로 높이를 재고 넘었다.
나는 그것을 봤다.
사십 해 넘던 문턱을 발로 재서 넘는 것이다.
그날 밥이 안 설었다.
여든셋이 다 먹었다.
먹으면서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했다.
서하가 그날 저녁에 나한테 왔다.
“어르신.”
“…왜 그러오?”
서하가 말했다.
“할머니가 이백열한 가지를 내셨습니다.”
“…들었소.”
“그 가운데 예순셋이 저희한테 없던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서하가 말했다.
“사십 해 전에 나가서 안 돌아온 사람들 것입니다.”
“…”
“저희는 그것을 다 잃은 줄 알았습니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노파한테 있소?”
서하가 말했다.
“그분들이 나가기 전에 대전에서 맡겼습니다.”
“…”
“맡을 사람이 여든둘이었는데, 부엌에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
“아무도 그것을 안 세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서하가 말했다.
“사십 해 동안 저희가 잃은 것을 저 할머니가 지고 계셨습니다.”
“…”
“지는 줄도 모르고요.””
그해 겨울에 나는 대전에서 잤다.
여든셋이 아침마다 외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 안에 내가 낸 것이 다 있었다.
백쉰넷이다.
듣고 있으면 내 것이 아직 내 것 같았다.
정월에 나는 형 이름을 물었다.
“…연이 어느 위패요?”
노인이 갈라진 것을 들어 줬다.
나는 그것을 무릎에 놨다.
아홉 번 갈라지고 열 번째로 갈라진 것이다.
붙인 자국이 열이다.
나는 그것을 만졌다.
나무가 차다.
백십 해 된 나무는 차다. 손을 대면 손이 먼저 식는다.
나는 그것을 오래 만졌다.
형 얼굴은 안 떠오른다.
오십 해 전에도 안 떠올랐다.
형이 나간 것이 내가 열여덟 때다. 그때부터 안 떠올랐으니, 형 얼굴이 나간 것은 내가 줍기 시작하기 전이다.
그러면 줍느라 잃은 것이 아니다.
그냥 오래돼서 없어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오십 해 만에 생각했다.
오십 해 동안 나는 잃은 것을 다 줍는 값이라고 셈해 왔다.
셈해 놓으면 편하다. 값을 치렀으니 무엇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값이 아니면 그냥 없어진 것이다.
없어진 것에는 갚을 사람이 없다.
나는 위패를 무릎에 놓고 그것을 알았다.
알고 나니 오십 해가 가벼워졌다.
가벼워진 것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서하가 옆에 앉아서 물었다.
“…어르신,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나는 말했다.
“형 얼굴을 생각했소.”
“…떠오르십니까?”
나는 말했다.
“안 떠오르오.”
“…”
“그런데 이 나무가 차오.”
서하가 나를 봤다.
나는 말했다.
“차다는 건 아오.”
“…”
“오십 해 만에 형한테 손을 댔소.”
서하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말했다.
“얼굴은 없고 찬 것만 있소.”
“…”
“그래도 오십 해 전보다 낫소.”
오십 해 동안 찾은 것이 이것이다.
찾았는데 무엇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서하가 옆에 앉았다.
“어르신.”
“…왜 그러오?”
서하가 말했다.
“형님 것이 무엇인지 아실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서하가 말했다.
“연의 이름으로 나무를 세우면 됩니다.”
“…”
“산 이름만 받는다고 했지만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물었다.
“죽은 사람 이름을 세우면 어찌 되오?”
서하가 말했다.
“모릅니다.”
나는 말했다.
“세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