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03자) · 나무 여든셋
산 이름을 보고 간다
망각검 · 한도윤
— 서하
들어온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 열흘이 걸렸다.
박자는 안다. 둘 · 넷 · 하나다.
스물넷 가운데 없다.
나는 그것을 대사형한테 냈다.
대사형이 듣고 고개를 저었다.
“…없다.”
문주께 냈다.
문주도 고개를 저었다.
노인한테 냈다.
노인이 듣고 한참 있었다.
“…있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노인이 말했다.
“구룡문 것이오.”
“…”
“백십 해 전에 갈라질 때 저쪽에 남은 것이 여덟이오.”
나는 물었다.
“…스물넷이 다가 아닙니까?”
노인이 말했다.
“서른둘이오.”
“…”
“갈라질 때 스물넷을 이쪽이 가져오고 여덟을 저쪽이 가졌소.”
나는 물었다.
“그럼 그 여덟이 여기 왜 떠 있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구룡문에서도 버리니까.”
“…”
“버린 것이 밖으로 나가오. 나간 것이 여기로 들어올 수도 있소.”
나는 물었다.
“여기는 안 나간다면서요.”
노인이 말했다.
“안 나가는 것이지 안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나는 그날 밤에 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우리는 적지 않는다. 그것이 법도다.
나는 열셋에 한 번 적었다.
스물넷째 장이다.
스물넷째 초식은 아무도 안 가진다. 제일 어렵고 제일 길다. 백십 해 동안 그것을 가진 사람이 넷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대전에서 들은 소리로 적었다.
들은 것을 적으면 안 잊는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죽은 뒤였다.
얼굴이 안 떠오르는 것이 무서워서, 무엇이든 안 잊는 법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적었다.
적고 사흘 뒤에 문질러 지웠다.
지운 까닭은 하나다.
적어 놓고 보니 그것이 소리가 아니었다.
종이 위에 있는 것은 박자가 아니라 글자다.
글자는 아무한테도 안 들린다.
들리지 않는 것은 누구 입에도 안 남는다.
누구 입에도 안 남으면 그것은 나 혼자 가진 것이 된다.
나 혼자 가진 것은 내가 죽으면 같이 간다.
나는 열셋에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다.
다만 종이를 보고 무서웠다.
종이가 나를 안 불렀다.
대전에서 여든셋이 외울 때는 소리가 나를 부른다. 벽에 부딪쳐 돌아와서 내 귀로 들어온다.
종이는 안 그런다.
나는 그것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지웠다.
먹이 번져서 손바닥이 검어졌다.
그 종이를 나는 아직 가지고 있다.
글자는 없고 번진 자국만 있다.
오늘 밤에 그것을 꺼내 봤다.
여섯 해가 지났는데 자국이 그대로다.
나는 그 자국을 손끝으로 따라가 봤다.
박자가 아니다.
그런데 손이 그것을 따라가면서 셈을 했다.
하나 · 둘 · 둘 · 셋 · 하나 · 하나.
여섯 마디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지운 것이 손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백십 해 동안 이 골짜기는 받기만 했다.
안에서 버린 것도 여기 있고 밖에서 온 것도 여기 있다.
나는 문주께 갔다.
“문주님, 안개가 사천사백이 아닙니다.”
문주가 고개를 들었다.
“…몇이냐?”
나는 말했다.
“모릅니다. 더 많습니다.”
문주가 물었다.
“어떻게 아느냐?”
나는 말했다.
“제 나무에 구룡문 것이 들어왔습니다.”
문주가 붓을 놓았다.
나는 말했다.
“번호를 셋 적었는데 없는 것이 들어왔습니다.”
“…”
“번호를 보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문주가 물었다.
“그럼 무엇을 보고 가느냐?”
나는 말했다.
“이름입니다.”
문주가 나를 봤다.
나는 말했다.
“살아 있는 이름을 보고 갑니다.”
“…”
“위패는 죽은 이름이라 갈라지기만 합니다.”
문주가 오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산 이름을 여든셋 걸면 어찌 되느냐?”
나는 말했다.
“나눠 들어갈 것입니다.”
“…”
“다만 무엇이 들어갈지는 못 고릅니다.”
문주가 물었다.
“못 고르면 위험하지 않으냐.”
나는 말했다.
“위험합니다.”
“…”
“그런데 지금은 아무 데도 안 가고 골짜기에 떠 있습니다.”
문주가 물었다.
“떠 있으면 나쁘냐.”
나는 그 물음에 대답을 준비해 왔다.
“떠 있으면 누가 혼자 소리를 낼 때 그 사람한테 다 갑니다.”
문주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말했다.
“백십 해 동안 아무도 안 그랬습니다. 앞으로도 안 그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문주가 말했다.
“…한 사람이면 나쁘다고 내가 말했다.”
나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문주가 물었다.
“여든셋이면 안 나쁘냐.”
나는 말했다.
“덜 나쁩니다.”
문주가 웃었다.
백십 해 문주가 웃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
그해 여름에 대전 맞은편 벽에 나무가 여든셋 섰다.
산 사람 이름 여든셋이다.
번호는 안 적었다.
이레째부터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서넛 갈라졌다.
갈라진 사람이 제 몸을 짚었다.
“…들어왔습니다.”
무엇이 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박자만 안다.
박자를 소리로 내면 다른 사람 입에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아침에 같이 외우기로 했다.
여든셋이 동시에 외우는 소리에 새것이 섞이기 시작했다.
가을에 여든셋 가운데 예순이 들어왔다.
예순이 저마다 하나씩 가졌다.
예순 가운데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은 없었다.
하나면 안 어긋난다.
나무를 세우는 일을 나는 손으로 했다.
여든셋 이름을 하나씩 새겼다.
새기는 데 두 달이 걸렸다.
하루에 두엇 새겼다.
새기면서 나는 그 사람 얼굴을 봤다.
이름을 새기려면 그 사람을 봐야 한다. 안 보면 글자가 안 된다.
여든셋 얼굴을 두 달 동안 봤다.
보고 나서 알았다.
나는 여든셋 가운데 스물의 이름을 몰랐다.
두 해를 같이 외우고 같이 밥을 먹었는데 이름을 몰랐다.
은금 할머니가 우리를 밥그릇 수로 부르는 까닭을 나는 그때 알았다.
이름을 안 부르면 편하다.
편한 것이 할머니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 스물의 이름을 물어서 새겼다.
묻는 것이 부끄러웠다.
두 해 만에 이름을 묻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안 묻고 새길 수는 없다.
스물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형도 제 이름을 모르셨습니까?”
나는 말했다.
“몰랐다.”
그 사람이 말했다.
“저도 형 이름을 몰랐습니다.”
둘이 웃었다.
웃고 나서 이름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날 나무를 둘 새겼다.
내 것과 그 사람 것이다.
노인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오십 해를 헛살았소.”
나는 그 종이를 사형한테 가져갔다.
사형이 번진 자국을 봤다.
“…무엇이냐?”
나는 말했다.
“열셋에 적은 것입니다.”
사형이 붓을 놓았다.
“…적었느냐?”
“적었습니다.”
“…법도를 아느냐?”
나는 말했다.
“압니다.”
사형이 종이를 들었다.
들고 오래 봤다.
“…지웠구나.”
“사흘 만에 지웠습니다.”
사형이 물었다.
“왜 지웠느냐?”
나는 말했다.
“아무도 안 들려서요.”
사형이 그 말에 나를 봤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 말을 여섯 해 전에 했으면 내가 오른손을 안 놓아도 됐겠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사형이 말했다.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
“네가 열셋이었다. 열셋짜리가 그것을 알았으면 그게 더 무섭다.”
사형이 종이를 도로 줬다.
“…버려라.”
나는 말했다.
“안 버리겠습니다.”
“…왜?”
나는 말했다.
“손이 기억합니다.”
사형이 제 왼손을 봤다.
“…손이 기억한다고.”
“예.”
사형이 말했다.
“나도 그렇다.”
“…”
“육 초식은 놓았는데 오른손이 아직 그 자리를 안다.”
사형이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들었다가 내렸다.
“놓은 것은 못 찾는다. 그런데 손은 그 자리를 안다.”
“…”
“그러니 나는 여섯 해 동안 무엇이 없는지를 날마다 안다.”
나는 물었다.
“어째서요.”
노인이 말했다.
“나는 혼자 백서른둘을 주웠소.”
“…”
“백서른둘을 백서른둘이 하나씩 가졌으면 아무도 안 어긋났을 거요.”
나는 그 여든셋 나무를 세우고 나서 하나를 더 세우고 싶었다.
세우지 못했다.
어머니 이름이다.
세우려면 문주께 여쭤야 하는데, 문하가 아닌 사람 이름을 세우는 법도가 없다.
없는 것을 여쭈면 안 된다고 하실 것이다.
안 된다고 하시면 그다음에는 못 한다.
그래서 나는 안 여쭀다.
여쭙지 않으면 아직 안 된 것이 아니다.
여섯 해 동안 나는 그런 식으로 미뤄 왔다.
미루는 것이 지키는 것인 줄 알았다.
— 위패를 지키는 노인
그 가을에 나는 위패를 다시 세었다.
이백스물넷이다.
갈라지는 것이 줄었다.
전에는 한 해에 둘이었는데 그해 가을부터 없다.
떠 있는 것이 산 이름 쪽으로 가니 위패에 안 걸린다.
나는 그것을 세 달 동안 봤다.
세 달 동안 하나도 안 갈라졌다.
삼십 년 만에 처음이다.
나는 그것이 좋은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겨울에 하나가 갈라졌다.
「연」이다.
아홉 번 갈라진 것이 열 번째로 갈라졌다.
나는 그것을 서하한테 가져갔다.
“…또 갈라졌다.”
서하가 그것을 봤다.
“…산 이름이 여든셋인데요.”
“그렇지.”
“…그런데 위패로 갔습니다.”
나는 말했다.
“산 이름 여든셋이 다 찼다.”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찼습니까?”
나는 말했다.
“여든셋 가운데 여든이 하나씩 받았다. 셋이 남았는데 그 셋은 나무가 안 갈라졌다.”
서하가 물었다.
“왜 안 갈라집니까?”
나는 말했다.
“모른다.”
서하가 그 셋의 이름을 봤다.
셋 가운데 하나가 열한 살짜리였다.
서하가 그 아이를 불렀다.
“너 나무가 안 갈라졌다.”
아이가 말했다.
“…예.”
“왜 안 갈라지는지 아느냐?”
아이가 말했다.
“모릅니다.”
서하가 물었다.
“너 지금 몇을 외우느냐?”
아이가 말했다.
“…스물셋입니다.”
서하가 그 자리에 섰다.
“…한 해에 아홉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이가 말했다.
“가을부터 늘었습니다.”
서하가 물었다.
“어떻게 늘었느냐?”
아이가 말했다.
“새것이 섞여서요.”
서하가 말했다.
“그건 다들 그렇다.”
아이가 말했다.
“저는 맨 뒤에 섭니다.”
“…”
“맨 뒤면 앞소리가 다 섞여서 들립니다.”
서하가 물었다.
“…그럼 너는 여든둘 것을 다 듣느냐?”
아이가 말했다.
“다 듣습니다.”
서하가 나를 봤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 아이 나무가 안 갈라지는 까닭은 받을 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입에 다 있어서다.
떠 있는 것이 들어갈 자리를 보는데, 이 아이 입에 이미 그것이 있다.
있는 데는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