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18자) · 문주

구룡문

망각검 · 구슬안

— 문주

내가 서하를 내보낸 까닭을 이제 적는다⁠. 적는 것이 아니라 말해 둔다⁠. 우리는 적지 않는다⁠.

내 이름을 말해 두겠다⁠.

나는 내 이름을 모른다⁠.

문주가 되면 이름을 놓는다⁠. 이것이 법도다⁠.

놓는 법은 다른 것과 같다⁠. 거꾸로 센다⁠.

사십 해 전에 나는 내 이름을 거꾸로 세고 놓았다⁠.

놓고 나서 아무도 나를 이름으로 안 부른다⁠.

문주라고만 부른다⁠.

까닭은 하나다⁠.

문주는 골짜기에서 제일 크게 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이름이 있으면 떠 있는 것이 이 이름으로 온다⁠.

이름이 없으면 안 온다⁠.

그래서 백십 해 동안 문주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놓으면 무엇이 같이 나가는지 나는 사십 해 만에 알았다⁠.

어제 일이 안 남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한 일이 없다⁠. 열흘 전 일은 남는데 어제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사십 해 동안 어제부터 사는 사람이었다⁠.

대사형이 이것을 안다⁠.

대사형이 아침마다 내 방에 들어와 어제 한 일을 말해 준다⁠.

말해 주면 나는 이것을 듣고 안다⁠.

아는 것이지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남이 말해 준 것을 아는 것과 제가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

무엇이 다른지는 말로 못 하겠다⁠.

다만 사십 해 동안 나는 남의 말로 살았다⁠.

여든셋이 아침마다 남의 것을 입에 지고 있는데⁠, 나는 내 어제를 남의 입에 지고 있다⁠.

그러니 셈이 맞다⁠.

나는 이 밤에 대전에 혼자 앉아 있었다⁠.

사십 해 동안 대전에 혼자 앉은 적이 없다⁠.

혼자 앉으면 소리를 안 낸다⁠. 이것이 법도다⁠.

나는 이 밤에 법도를 어겼다⁠.

소리를 하나 냈다⁠.

내 이름이다⁠.

사십 해 전에 놓은 것이다⁠.

두 글자를 소리로 냈다⁠.

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한 번 더 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세 번째에 나는 그만뒀다⁠.

그만둔 까닭은 하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줍는 자들이 하는 것과 같다⁠.

혼자 소리를 내서 오게 하는 것이다⁠.

문주가 이것을 하면 안 된다⁠.

나는 일어서서 대전을 나왔다⁠.

나오면서 생각했다⁠.

사십 해 동안 나는 이 법도를 지켰다⁠.

지킨 까닭이 문파를 위해서인 줄 알았다⁠.

오늘 밤에 알았다⁠.

무서워서였다⁠.

내 이름이 돌아오면 사십 해 동안 없던 어제가 한꺼번에 돌아올 것이다⁠.

사십 해 치 어제를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튿날 아침에 대사형이 내 방에 들어왔다⁠.

들어와서 어제 한 일을 말했다⁠.

사십 해 동안 하던 대로다⁠.

말하다가 대사형이 멈췄다⁠.

“⁠…문주님⁠.⁠”

“⁠말해라⁠.⁠”

대사형이 말했다⁠.

“⁠어젯밤에 대전에 혼자 계셨습니다⁠.⁠”

나는 이 말에 고개를 들었다⁠.

“⁠…보았느냐⁠?⁠”

대사형이 말했다⁠.

“⁠보았습니다⁠.⁠”

나는 물었다⁠.

“⁠…무엇을 하더냐⁠?⁠”

대사형이 한참 있다가 말했다⁠.

“⁠소리를 두 번 내셨습니다⁠.⁠”

“⁠…⁠”

“⁠세 번째는 안 내셨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대사형이 말했다⁠.

“⁠무슨 소린지는 안 들렸습니다⁠.⁠”

나는 물었다⁠.

“⁠…거짓말이냐⁠?⁠”

대사형이 말했다⁠.

“⁠거짓말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대사형이 말했다⁠.

“⁠두 글자였습니다⁠.⁠”

“⁠…⁠”

“⁠사십 해 만에 처음 들었습니다⁠.⁠”

나는 물었다⁠.

“⁠…외웠느냐⁠?⁠”

대사형이 말했다⁠.

“⁠외웠습니다⁠.⁠”

나는 오래 아무 말도 못 했다⁠.

대사형이 말했다⁠.

“⁠지고 있겠습니다⁠.⁠”

“⁠…⁠”

“⁠문주님이 찾으실 때까지요⁠.⁠”

망각검은 우리 것이 아니다⁠.

구룡문 것이었다⁠.

백십 해 전에 구룡문이 갈라졌다⁠. 갈라진 쪽이 이 골짜기로 들어와 본산을 세웠다⁠.

들어온 까닭은 하나다⁠.

안개다⁠.

안개가 소리를 가둔다⁠.

소리를 가두면 버린 초식이 안 나간다⁠.

구룡문에서는 버린 것이 다 나갔다⁠. 나가서 줍는 자들한테 갔다⁠.

백십 해 전에 구룡문 문하가 삼백이었는데 오십 해 만에 마흔이 됐다⁠.

버릴수록 밖이 세졌다⁠.

그래서 갈라진 쪽이 안개를 찾아 들어왔다⁠.

들어와서 백십 해를 살았다⁠.

그동안 이 골짜기 안에 버린 것이 쌓였다⁠.

얼마나 쌓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해에 마흔쯤 버린다⁠. 백십 해면 사천사백이다⁠.

이것이 다 여기 떠 있다⁠.

떠 있는 것을 우리는 「⁠안개⁠」라고 부른다⁠.

밖에서 보면 안개가 낀 골짜기다⁠. 우리가 보면 버린 것이 떠 있는 골짜기다⁠.

문하가 아침마다 소리를 내는 것은 맡은 것을 지키려는 것도 되지만⁠, 그보다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떠 있는 것을 안 줍는 것이다⁠.

소리를 내면 온다⁠.

그러니 여든셋이 동시에 소리를 내면 떠 있는 것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

한 사람이 혼자 소리를 내면 이 사람한테 온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같이 외운다⁠. 혼자 외우는 것을 금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셋이다⁠. 나와 대사형과 위패 지키는 노인이다⁠.

서하가 이 물음에 닿았다⁠.

「⁠우리는 왜 소리 내어 외우는가⁠.⁠」

이 물음에 닿은 문하가 백십 해에 일곱이다⁠.

일곱 가운데 다섯을 내보냈다⁠.

둘은 안 내보냈다⁠.

안 내보낸 둘이 위패 벽에 있다⁠.

내보내는 까닭은 하나다⁠.

이 물음에 닿은 자는 혼자 소리를 내게 된다⁠.

혼자 내면 줍는다⁠.

주우면 본산 안에서 줍는 것이라 아무도 안 잃는다⁠. 떠 있는 것을 줍는 것이니 임자가 없다⁠.

임자가 없는 것을 주우면 이 사람이 커진다⁠.

커지면 문파가 못 막는다⁠.

그래서 내보낸다⁠.

내보낼 때 셋을 맡기게 한다⁠.

맡기면 빈 몸으로 나간다⁠.

빈 몸으로 나간 자는 밖에서 줍는다⁠.

밖에서 주우면 임자가 있다⁠.

임자가 있는 것을 주우면 어디선가 누가 잃는다⁠.

이것을 알면 대개 돌아온다⁠.

다섯 가운데 넷이 돌아왔다⁠.

하나가 안 돌아왔다⁠.

안 돌아온 하나가 「⁠연⁠」이다⁠.

백십 해 전 사람이다⁠.

서하가 돌아온 것은 같은 해 봄이다⁠.

늙은이를 하나 업고 왔다⁠.

업고 온 것이 뜻밖이었다⁠.

나는 서하를 불렀다⁠.

“⁠다 알았느냐⁠?⁠”

서하가 말했다⁠.

“⁠…반쯤 알았습니다⁠.⁠”

“⁠무엇을 알았느냐⁠?⁠”

서하가 말했다⁠.

“⁠밖에서는 소리가 나가고 여기서는 안 나갑니다⁠.⁠”

“⁠그렇다⁠.⁠”

“⁠그러면 여기서 버린 것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

서하가 물었다⁠.

“⁠문주님⁠.⁠”

“⁠말해라⁠.⁠”

“⁠이 골짜기에 사천사백이 떠 있습니까⁠?⁠”

나는 이 수에 놀랐다⁠.

서하가 셈을 했다⁠.

“⁠…맞습니까⁠?⁠”

나는 말했다⁠.

“⁠맞다⁠.⁠”

서하가 물었다⁠.

“⁠그럼 왜 안 줍습니까⁠?⁠”

나는 말했다⁠.

“⁠주우면 커진다⁠.⁠”

서하가 말했다⁠.

“⁠커지면 나쁩니까⁠?⁠”

나는 말했다⁠.

“⁠커진 자가 하나면 나쁘다⁠.⁠”

서하가 물었다⁠.

“⁠여럿이면요⁠.⁠”

나는 이 물음에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백십 해 동안 아무도 이것을 안 물었다⁠.

서하가 말했다⁠.

“⁠문주님⁠, 여든셋이 같이 외우면 아무도 안 줍습니다⁠.⁠”

“⁠…그렇다⁠.⁠”

“⁠그러면 여든셋이 같이 주우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이 자리에 앉았다⁠.

서하가 말했다⁠.

“⁠사천사백을 여든셋이 나누면 쉰셋씩입니다⁠.⁠”

“⁠…⁠”

“⁠쉰셋을 가지면 걷지 못합니다⁠. 업고 온 저 어르신이 백서른둘입니다⁠.⁠”

나는 물었다⁠.

“⁠그럼 안 되지 않느냐⁠?⁠”

서하가 말했다⁠.

“⁠한 사람이 쉰셋을 가지면 안 됩니다⁠.⁠”

“⁠…⁠”

“⁠여든셋이 하나씩 여든세 번 나누면 됩니다⁠.⁠”

나는 이 말을 못 알아들었다⁠.

서하가 말했다⁠.

“⁠한 사람이 하나를 줍고⁠, 다음 사람이 하나를 줍고⁠, 그렇게 돌면 됩니다⁠.⁠”

“⁠…⁠”

“⁠한 바퀴에 여든셋이 줄고 사천사백이 없어지는 데 쉰셋 바퀴입니다⁠.⁠”

나는 물었다⁠.

“⁠쉰셋 바퀴면 몇 해냐⁠?⁠”

서하가 말했다⁠.

“⁠한 바퀴에 한 해면 쉰세 해입니다⁠.⁠”

나는 말했다⁠.

“⁠그동안 또 버린다⁠.⁠”

서하가 말했다⁠.

“⁠한 해에 마흔을 버립니다⁠. 한 바퀴에 여든셋을 줍습니다⁠.⁠”

“⁠…⁠”

“⁠마흔셋씩 줍니다⁠.⁠”

나는 이 셈을 세 번 했다⁠.

세 번 다 맞았다⁠.

백 해쯤이면 이 골짜기의 안개가 걷힌다⁠.

서하가 물었다⁠.

“⁠문주님⁠, 이름을 놓으시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이 물음을 사십 해 만에 처음 들었다⁠.

“⁠…어제가 안 남는다⁠.⁠”

서하가 이 자리에 섰다⁠.

“⁠…어제가요⁠.⁠”

“⁠그렇다⁠.⁠”

서하가 물었다⁠.

“⁠그럼 지금 저하고 하는 이 말도 내일이면 없습니까⁠?⁠”

나는 말했다⁠.

“⁠없다⁠.⁠”

서하가 물었다⁠.

“⁠…그럼 제 셈도 잊으십니까⁠?⁠”

나는 말했다⁠.

“⁠잊는다⁠.⁠”

서하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제가 내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말에 고개를 들었다⁠.

사십 해 동안 대사형이 이것을 했다⁠.

대사형 말고 아무도 안 했다⁠.

서하가 말했다⁠.

“⁠날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물었다⁠.

“⁠…몇 해나 하겠느냐⁠?⁠”

서하가 말했다⁠.

“⁠문주님 계실 때까지요⁠.⁠”

나는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앉아서 생각했다⁠.

내 이름은 지금 어디 있는가⁠.

놓은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골짜기에 떠 있다⁠.

사십 해 동안 내 이름이 이 골짜기 안개 속에 떠 있었다⁠.

누가 소리를 내면 그리로 갈 것이다⁠.

나는 이것이 어느 날 누구한테 갈지 모른다⁠.

다만 하나는 안다⁠.

이것이 누구한테 가든⁠, 이 사람은 제 이름이 하나 더 생긴 줄만 알 것이다⁠.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모를 것이다⁠.

나는 이날 밤에 대사형과 위패 노인을 불렀다⁠.

셋이 앉았다⁠.

나는 서하의 셈을 말했다⁠.

대사형이 먼저 말했다⁠.

“⁠…백 해입니다⁠.⁠”

“⁠그렇다⁠.⁠”

“⁠백 해면 지금 있는 여든셋이 다 죽습니다⁠.⁠”

“⁠그렇다⁠.⁠”

대사형이 말했다⁠.

“⁠그럼 그 셈은 지금 사람 것이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다⁠.⁠”

노인이 말했다⁠.

“⁠문주⁠.⁠”

“⁠말하시오⁠.⁠”

노인이 말했다⁠.

“⁠위패가 갈라지는 까닭을 나는 삼십 년 몰랐소⁠.⁠”

“⁠…⁠”

“⁠오늘 알았소⁠.⁠”

나는 물었다⁠.

“⁠무엇이오⁠.⁠”

노인이 말했다⁠.

“⁠떠 있는 것이 위패에 걸리는 것이오⁠.⁠”

“⁠…⁠”

“⁠위패에 이름이 있고 초식 번호가 있소⁠. 떠 있는 것이 제 번호를 보고 그리로 가오⁠.⁠”

나는 이 말에 일어섰다⁠.

노인이 말했다⁠.

“⁠가서 못 들어가니 나무가 갈라지오⁠.⁠”

대사형이 물었다⁠.

“⁠…그럼 위패가 줍고 있다는 겁니까⁠?⁠”

노인이 말했다⁠.

“⁠주우려다 못 줍는 것이오⁠.⁠”

나는 물었다⁠.

“⁠왜 못 줍소⁠?⁠”

노인이 말했다⁠.

“⁠죽은 사람이라서⁠.⁠”

셋이 오래 앉아 있었다⁠.

대사형이 말했다⁠.

“⁠…그럼 산 사람 이름을 걸면 됩니까⁠?⁠”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대사형이 말했다⁠.

“⁠위패 벽에 산 사람 이름을 걸고 번호를 적으면⁠, 떠 있는 것이 그리로 갑니다⁠.⁠”

나는 물었다⁠.

“⁠가면 어찌 되느냐⁠?⁠”

대사형이 말했다⁠.

“⁠…모릅니다⁠.⁠”

노인이 말했다⁠.

“⁠해 보면 아오⁠.⁠”

이튿날 서하가 제 이름을 나무에 새겼다⁠.

새기고 번호 셋을 적었다⁠.

일 · 삼 · 칠이다⁠.

대전 벽에 세웠다⁠.

위패 벽이 아니라 맞은편 벽이다⁠.

사흘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나흘째 새벽에 나무가 갈라졌다⁠.

가로로 갈라졌다⁠.

위패는 세로로 갈라진다⁠.

서하가 이것을 들고 왔다⁠.

“⁠문주님⁠.⁠”

“⁠말해라⁠.⁠”

서하가 제 몸을 짚었다⁠.

“⁠…박자가 맞습니다⁠.⁠”

나는 물었다⁠.

“⁠…무슨 말이냐⁠?⁠”

서하가 말했다⁠.

“⁠셋을 맡기고 나갔다 와서 아직 못 찾았습니다⁠. 두 달 동안 어긋나 있었습니다⁠.⁠”

“⁠…⁠”

“⁠오늘 새벽에 맞았습니다⁠.⁠”

나는 물었다⁠.

“⁠찾았느냐⁠?⁠”

서하가 말했다⁠.

“⁠찾은 것이 아닙니다⁠.⁠”

“⁠…⁠”

“⁠다른 것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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