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16자) · 문주
구룡문
망각검 · 한도윤
— 문주
내가 서하를 내보낸 까닭을 이제 적는다. 적는 것이 아니라 말해 둔다. 우리는 적지 않는다.
내 이름을 말해 두겠다.
나는 내 이름을 모른다.
문주가 되면 이름을 놓는다. 그것이 법도다.
놓는 법은 다른 것과 같다. 거꾸로 센다.
사십 해 전에 나는 내 이름을 거꾸로 세고 놓았다.
놓고 나서 아무도 나를 이름으로 안 부른다.
문주라고만 부른다.
까닭은 하나다.
문주는 골짜기에서 제일 크게 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이름이 있으면 떠 있는 것이 그 이름으로 온다.
이름이 없으면 안 온다.
그래서 백십 해 동안 문주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놓으면 무엇이 같이 나가는지 나는 사십 해 만에 알았다.
어제 일이 안 남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한 일이 없다. 열흘 전 일은 남는데 어제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사십 해 동안 어제부터 사는 사람이었다.
대사형이 그것을 안다.
대사형이 아침마다 내 방에 들어와 어제 한 일을 말해 준다.
말해 주면 나는 그것을 듣고 안다.
아는 것이지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남이 말해 준 것을 아는 것과 제가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
무엇이 다른지는 말로 못 하겠다.
다만 사십 해 동안 나는 남의 말로 살았다.
여든셋이 아침마다 남의 것을 입에 지고 있는데, 나는 내 어제를 남의 입에 지고 있다.
그러니 셈이 맞다.
나는 그 밤에 대전에 혼자 앉아 있었다.
사십 해 동안 대전에 혼자 앉은 적이 없다.
혼자 앉으면 소리를 안 낸다. 그것이 법도다.
나는 그 밤에 법도를 어겼다.
소리를 하나 냈다.
내 이름이다.
사십 해 전에 놓은 것이다.
두 글자를 소리로 냈다.
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한 번 더 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세 번째에 나는 그만뒀다.
그만둔 까닭은 하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줍는 자들이 하는 것과 같다.
혼자 소리를 내서 오게 하는 것이다.
문주가 그것을 하면 안 된다.
나는 일어서서 대전을 나왔다.
나오면서 생각했다.
사십 해 동안 나는 이 법도를 지켰다.
지킨 까닭이 문파를 위해서인 줄 알았다.
오늘 밤에 알았다.
무서워서였다.
내 이름이 돌아오면 사십 해 동안 없던 어제가 한꺼번에 돌아올 것이다.
사십 해 치 어제를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튿날 아침에 대사형이 내 방에 들어왔다.
들어와서 어제 한 일을 말했다.
사십 해 동안 하던 대로다.
말하다가 대사형이 멈췄다.
“…문주님.”
“말해라.”
대사형이 말했다.
“어젯밤에 대전에 혼자 계셨습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보았느냐?”
대사형이 말했다.
“보았습니다.”
나는 물었다.
“…무엇을 하더냐?”
대사형이 한참 있다가 말했다.
“소리를 두 번 내셨습니다.”
“…”
“세 번째는 안 내셨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대사형이 말했다.
“무슨 소린지는 안 들렸습니다.”
나는 물었다.
“…거짓말이냐?”
대사형이 말했다.
“거짓말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대사형이 말했다.
“두 글자였습니다.”
“…”
“사십 해 만에 처음 들었습니다.”
나는 물었다.
“…외웠느냐?”
대사형이 말했다.
“외웠습니다.”
나는 오래 아무 말도 못 했다.
대사형이 말했다.
“지고 있겠습니다.”
“…”
“문주님이 찾으실 때까지요.”
망각검은 우리 것이 아니다.
구룡문 것이었다.
백십 해 전에 구룡문이 갈라졌다. 갈라진 쪽이 이 골짜기로 들어와 본산을 세웠다.
들어온 까닭은 하나다.
안개다.
안개가 소리를 가둔다.
소리를 가두면 버린 초식이 안 나간다.
구룡문에서는 버린 것이 다 나갔다. 나가서 줍는 자들한테 갔다.
백십 해 전에 구룡문 문하가 삼백이었는데 오십 해 만에 마흔이 됐다.
버릴수록 밖이 세졌다.
그래서 갈라진 쪽이 안개를 찾아 들어왔다.
들어와서 백십 해를 살았다.
그동안 이 골짜기 안에 버린 것이 쌓였다.
얼마나 쌓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해에 마흔쯤 버린다. 백십 해면 사천사백이다.
그것이 다 여기 떠 있다.
떠 있는 것을 우리는 「안개」라고 부른다.
밖에서 보면 안개가 낀 골짜기다. 우리가 보면 버린 것이 떠 있는 골짜기다.
문하가 아침마다 소리를 내는 것은 맡은 것을 지키려는 것도 되지만, 그보다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떠 있는 것을 안 줍는 것이다.
소리를 내면 온다.
그러니 여든셋이 동시에 소리를 내면 떠 있는 것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
한 사람이 혼자 소리를 내면 그 사람한테 온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같이 외운다. 혼자 외우는 것을 금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셋이다. 나와 대사형과 위패 지키는 노인이다.
서하가 그 물음에 닿았다.
「우리는 왜 소리 내어 외우는가.」
이 물음에 닿은 문하가 백십 해에 일곱이다.
일곱 가운데 다섯을 내보냈다.
둘은 안 내보냈다.
안 내보낸 둘이 위패 벽에 있다.
내보내는 까닭은 하나다.
이 물음에 닿은 자는 혼자 소리를 내게 된다.
혼자 내면 줍는다.
주우면 본산 안에서 줍는 것이라 아무도 안 잃는다. 떠 있는 것을 줍는 것이니 임자가 없다.
임자가 없는 것을 주우면 그 사람이 커진다.
커지면 문파가 못 막는다.
그래서 내보낸다.
내보낼 때 셋을 맡기게 한다.
맡기면 빈 몸으로 나간다.
빈 몸으로 나간 자는 밖에서 줍는다.
밖에서 주우면 임자가 있다.
임자가 있는 것을 주우면 어디선가 누가 잃는다.
그것을 알면 대개 돌아온다.
다섯 가운데 넷이 돌아왔다.
하나가 안 돌아왔다.
안 돌아온 하나가 「연」이다.
백십 해 전 사람이다.
서하가 돌아온 것은 그해 봄이다.
늙은이를 하나 업고 왔다.
업고 온 것이 뜻밖이었다.
나는 서하를 불렀다.
“다 알았느냐?”
서하가 말했다.
“…반쯤 알았습니다.”
“무엇을 알았느냐?”
서하가 말했다.
“밖에서는 소리가 나가고 여기서는 안 나갑니다.”
“그렇다.”
“그러면 여기서 버린 것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
서하가 물었다.
“문주님.”
“말해라.”
“이 골짜기에 사천사백이 떠 있습니까?”
나는 그 수에 놀랐다.
서하가 셈을 했다.
“…맞습니까?”
나는 말했다.
“맞다.”
서하가 물었다.
“그럼 왜 안 줍습니까?”
나는 말했다.
“주우면 커진다.”
서하가 말했다.
“커지면 나쁩니까?”
나는 말했다.
“커진 자가 하나면 나쁘다.”
서하가 물었다.
“여럿이면요.”
나는 그 물음에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백십 해 동안 아무도 그것을 안 물었다.
서하가 말했다.
“문주님, 여든셋이 같이 외우면 아무도 안 줍습니다.”
“…그렇다.”
“그러면 여든셋이 같이 주우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서하가 말했다.
“사천사백을 여든셋이 나누면 쉰셋씩입니다.”
“…”
“쉰셋을 가지면 걷지 못합니다. 업고 온 저 어르신이 백서른둘입니다.”
나는 물었다.
“그럼 안 되지 않느냐?”
서하가 말했다.
“한 사람이 쉰셋을 가지면 안 됩니다.”
“…”
“여든셋이 하나씩 여든세 번 나누면 됩니다.”
나는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서하가 말했다.
“한 사람이 하나를 줍고, 다음 사람이 하나를 줍고, 그렇게 돌면 됩니다.”
“…”
“한 바퀴에 여든셋이 줄고 사천사백이 없어지는 데 쉰셋 바퀴입니다.”
나는 물었다.
“쉰셋 바퀴면 몇 해냐?”
서하가 말했다.
“한 바퀴에 한 해면 쉰세 해입니다.”
나는 말했다.
“그동안 또 버린다.”
서하가 말했다.
“한 해에 마흔을 버립니다. 한 바퀴에 여든셋을 줍습니다.”
“…”
“마흔셋씩 줍니다.”
나는 그 셈을 세 번 했다.
세 번 다 맞았다.
백 해쯤이면 이 골짜기의 안개가 걷힌다.
서하가 물었다.
“문주님, 이름을 놓으시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그 물음을 사십 해 만에 처음 들었다.
“…어제가 안 남는다.”
서하가 그 자리에 섰다.
“…어제가요.”
“그렇다.”
서하가 물었다.
“그럼 지금 저하고 하는 이 말도 내일이면 없습니까?”
나는 말했다.
“없다.”
서하가 물었다.
“…그럼 제 셈도 잊으십니까?”
나는 말했다.
“잊는다.”
서하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제가 내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사십 해 동안 대사형이 그것을 했다.
대사형 말고 아무도 안 했다.
서하가 말했다.
“날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물었다.
“…몇 해나 하겠느냐?”
서하가 말했다.
“문주님 계실 때까지요.”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앉아서 생각했다.
내 이름은 지금 어디 있는가.
놓은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골짜기에 떠 있다.
사십 해 동안 내 이름이 이 골짜기 안개 속에 떠 있었다.
누가 소리를 내면 그리로 갈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어느 날 누구한테 갈지 모른다.
다만 하나는 안다.
그것이 누구한테 가든, 그 사람은 제 이름이 하나 더 생긴 줄만 알 것이다.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모를 것이다.
나는 그날 밤에 대사형과 위패 노인을 불렀다.
셋이 앉았다.
나는 서하의 셈을 말했다.
대사형이 먼저 말했다.
“…백 해입니다.”
“그렇다.”
“백 해면 지금 있는 여든셋이 다 죽습니다.”
“그렇다.”
대사형이 말했다.
“그럼 그 셈은 지금 사람 것이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다.”
노인이 말했다.
“문주.”
“말하시오.”
노인이 말했다.
“위패가 갈라지는 까닭을 나는 삼십 년 몰랐소.”
“…”
“오늘 알았소.”
나는 물었다.
“무엇이오.”
노인이 말했다.
“떠 있는 것이 위패에 걸리는 것이오.”
“…”
“위패에 이름이 있고 초식 번호가 있소. 떠 있는 것이 제 번호를 보고 그리로 가오.”
나는 그 말에 일어섰다.
노인이 말했다.
“가서 못 들어가니 나무가 갈라지오.”
대사형이 물었다.
“…그럼 위패가 줍고 있다는 겁니까?”
노인이 말했다.
“주우려다 못 줍는 것이오.”
나는 물었다.
“왜 못 줍소?”
노인이 말했다.
“죽은 사람이라서.”
셋이 오래 앉아 있었다.
대사형이 말했다.
“…그럼 산 사람 이름을 걸면 됩니까?”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대사형이 말했다.
“위패 벽에 산 사람 이름을 걸고 번호를 적으면, 떠 있는 것이 그리로 갑니다.”
나는 물었다.
“가면 어찌 되느냐?”
대사형이 말했다.
“…모릅니다.”
노인이 말했다.
“해 보면 아오.”
이튿날 서하가 제 이름을 나무에 새겼다.
새기고 번호 셋을 적었다.
일 · 삼 · 칠이다.
대전 벽에 세웠다.
위패 벽이 아니라 맞은편 벽이다.
사흘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나흘째 새벽에 나무가 갈라졌다.
가로로 갈라졌다.
위패는 세로로 갈라진다.
서하가 그것을 들고 왔다.
“문주님.”
“말해라.”
서하가 제 몸을 짚었다.
“…박자가 맞습니다.”
나는 물었다.
“…무슨 말이냐.”
서하가 말했다.
“셋을 맡기고 나갔다 와서 아직 못 찾았습니다. 두 달 동안 어긋나 있었습니다.”
“…”
“오늘 새벽에 맞았습니다.”
나는 물었다.
“찾았느냐?”
서하가 말했다.
“찾은 것이 아닙니다.”
“…”
“다른 것이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