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53자) · 사형
입에 있는 것은 잊는다
망각검 · 한도윤
— 사형
서하가 나간 것은 그해 정월이다.
문주가 허락했다.
허락한 까닭을 문주가 대지 않았다. 문주는 까닭을 잘 안 댄다.
나가기 전에 서하가 셋을 맡겼다.
맡기는 자리는 대전이다.
맡기는 법은 이렇다.
맡기는 자가 제 셋을 소리 내어 세 번 낸다.
남은 자들이 그것을 따라 한다.
따라 한 사람 입에 그것이 남는다.
서하가 셋을 냈다.
일 초식. 하나 · 둘 · 둘.
칠 초식. 하나 · 셋 · 하나 · 하나.
십일 초식. 둘 · 둘 · 하나 · 셋 · 하나.
여든둘이 따라 했다.
세 번 했다.
끝나고 서하가 제 몸을 짚었다.
“…어긋납니다.”
나는 말했다.
“셋을 한꺼번에 놓으면 많이 어긋난다.”
“…얼마나 갑니까?”
나는 말했다.
“보름쯤 간다.”
서하가 맡기고 나서 나는 붓을 들었다.
왼손으로 들었다.
서하가 그것을 봤다.
“…사형은 왜 왼손으로 쓰십니까?”
여섯 해 동안 아무도 안 물었다.
문하는 내가 원래 왼손잡이인 줄 안다.
나는 말했다.
“오른손이 박자를 못 잡는다.”
서하가 물었다.
“…다치셨습니까?”
나는 말했다.
“안 다쳤다.”
“…”
“놓았다.”
서하가 물었다.
“무엇을요?”
나는 말했다.
“오른손 쓰는 것을 놓았다.”
서하가 그 자리에 섰다.
“…초식을요?”
나는 말했다.
“육 초식이다. 하나 · 둘 · 하나 · 넷.”
“…”
“오른손으로 나가는 것이다.”
서하가 물었다.
“언제 놓으셨습니까?”
나는 붓을 놓았다.
“여섯 해 전이다.”
서하가 셈을 했다.
여섯 해 전이면 서하가 열셋이다.
서하가 물었다.
“…사형.”
“왜?”
“제가 열셋에 물었을 때입니까?”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서하가 다시 물었다.
“사형.”
나는 말했다.
“법도가 있다.”
“…”
“왜 소리 내어 외우느냐고 묻는 자는 내보낸다.”
서하가 그 자리에 섰다.
“…저는 안 나갔습니다.”
나는 말했다.
“열셋짜리를 내보내면 죽는다.”
“…”
“겨울이었고 네 어미가 막 죽었다.”
서하가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말했다.
“문주께 청했다. 대신 내가 하나를 놓겠다고.”
“…”
“놓는 것은 맡기는 것과 다르다. 맡기면 찾는다. 놓으면 못 찾는다.”
서하가 물었다.
“…왜 하필 오른손입니까?”
나는 왼손을 폈다.
“가장 아까운 것을 놓아야 값이 된다.”
서하가 그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한참 있었다.
“…사형, 저는 그것을 여섯 해 동안 몰랐습니다.”
나는 말했다.
“알면 무거워진다.”
“…”
“그래서 안 말했다.”
서하가 말했다.
“…지금은 왜 말씀하십니까?”
나는 말했다.
“네가 나가니까.”
“…”
“나가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
서하가 물었다.
“사형은 나가 보셨습니까?”
나는 말했다.
“나가 봤다.”
“…언제요?”
“열두 해 전이다.”
서하가 물었다.
“얼마나 계셨습니까?”
나는 말했다.
“두 해다.”
서하가 물었다.
“돌아와서 다 찾으셨습니까?”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서하가 다시 물었다.
“사형.”
나는 말했다.
“둘 찾았다.”
“…셋을 맡기셨을 텐데요.”
나는 말했다.
“셋을 맡겼다.”
서하가 물었다.
“하나는요.”
나는 말했다.
“외우던 사람이 죽었다.”
대전이 조용해졌다.
나는 말했다.
“그 사람이 위패 벽에 있다.”
서하가 물었다.
“…그럼 그 초식은 없어졌습니까?”
나는 말했다.
“없어지지 않는다.”
“…”
“그 사람 입에 있다.”
서하가 물었다.
“죽은 사람 입에요.”
나는 말했다.
“그렇다.”
서하가 물었다.
“…그럼 못 찾습니까?”
나는 말했다.
“못 찾는다.”
서하가 오래 서 있었다.
그리고 물었다.
“사형, 무엇을 잃으셨습니까?”
나는 말했다.
“모른다.”
“…”
“찾을 수 없으니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서하가 물었다.
“위패에 적혀 있지 않습니까?”
나는 말했다.
“그 사람 것이 적혀 있지 내 것이 적혀 있지 않다.”
서하가 물었다.
“그럼 아무 데도 안 적혀 있습니까?”
나는 말했다.
“한 군데 있다.”
“…어디입니까?”
나는 말했다.
“맡길 때 따라 한 여든둘이다.”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그 여든둘한테 물으면 됩니까?”
나는 말했다.
“열두 해 전 여든둘 가운데 지금 남은 사람이 열아홉이다.”
“…”
“열아홉한테 다 물었다.”
서하가 물었다.
“…아무도 모릅니까?”
나는 말했다.
“열아홉이 다 잊었다.”
서하가 물었다.
“어떻게 잊습니까?”
나는 말했다.
“입에 있는 것은 안 쓰면 잊는다.”
“…”
“몸에 있는 것은 안 잊는다. 입에 있는 것은 잊는다.”
서하가 그 자리에 섰다.
나는 말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외운다.”
“…”
“하루라도 안 외우면 누가 하나를 잃는다.”
서하가 물었다.
“…여든셋이 다 그것을 압니까?”
나는 말했다.
“모른다.”
“…”
“나는 안다. 나가 봤으니까.”
서하가 물었다.
“왜 안 알려 줍니까?”
나는 말했다.
“알려 주면 무거워진다.”
“…”
“여든셋이 아침마다 남의 것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외우기가 싫어진다.”
서하가 나를 봤다.
“…그럼 저는 왜 알려 주셨습니까?”
나는 말했다.
“네가 나가니까.”
“…”
“나가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
— 서하
돌계단 백스무 단을 내려가는 데 한나절이 걸렸다.
나가기 전에 나는 부엌에 들렀다.
은금 할머니가 밥을 펴고 있었다.
“…나가냐.”
“나갑니다.”
할머니가 주걱을 놓았다.
“몇 번째인지 아느냐?”
나는 물었다.
“…무엇이 몇 번째입니까?”
할머니가 말했다.
“사십 해 동안 나간 것이 몇 번째냐고 물었다.”
나는 셈을 못 했다.
할머니가 말했다.
“백일흔둘이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할머니가 말했다.
“돌아온 것이 아흔여섯이다.”
“…”
“일흔여섯이 안 돌아왔다.”
나는 물었다.
“…세셨습니까?”
할머니가 말했다.
“밥그릇을 세면 사람이 세어진다.”
“…”
“아침마다 몇 그릇을 펴는지 나는 안다.”
나는 물었다.
“…그럼 이름도 아십니까?”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모른다.”
“…”
“수만 안다.”
할머니가 솥을 닦았다.
“이름을 알면 세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 된다.”
나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사십 해 동안 세기만 했다.”
“…”
“기다리면 못 살았다.”
할머니가 주먹밥을 하나 싸서 내밀었다.
“가져가라.”
나는 받았다.
받으면서 물었다.
“할머니.”
“…왜?”
“제가 백일흔셋입니까?”
할머니가 솥뚜껑을 덮었다.
“아니다.”
“…”
“너는 아흔일곱이다.”
나는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돌아온 수로 세었다.”
“…”
“나가는 수로 세면 일흔여섯이 남는다. 돌아오는 수로 세면 아무도 안 남는다.”
나는 주먹밥을 품에 넣었다.
넣고 돌계단을 내려갔다.
셋을 다 놓았더니 발이 제 박자를 못 찾았다.
한 단 내려가고 한 박자 쉬었다.
내려가서 골짜기 초입에 섰다.
안개가 여기서 끝난다.
안개 밖은 소리가 다르다. 소리가 멀리 간다.
나는 거기 서서 한 번 소리를 내 봤다.
“…아.”
소리가 앞으로 갔다. 안 돌아왔다.
본산에서는 늘 돌아왔다.
나는 그 차이에 한참 서 있었다.
바깥에 나와서 사흘째에 사람을 만났다.
고갯마루 주막이었다.
주막 마당에서 사내 둘이 겨루고 있었다. 돈을 걸고 하는 것이다.
하나가 도를 들었다.
나는 그 박자를 봤다.
하나 · 둘 · 둘.
일 초식이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내가 이레 전에 맡긴 것이다.
사내가 그 박자로 셋을 눕혔다.
눕히고 돈을 받았다.
나는 그 앞에 갔다.
“…어디서 배우셨소?”
사내가 나를 봤다.
“댁이 뭐요?”
“…그 박자를 어디서 배우셨소?”
사내가 웃었다.
“배우긴. 그냥 되는 거요.”
나는 물었다.
“언제부터 되오?”
사내가 말했다.
“…엿새쯤 됐소.”
나는 셈을 했다.
내가 맡긴 것이 이레 전이다.
엿새 전이면 하루 뒤다.
사내가 물었다.
“…왜 묻소?”
나는 말했다.
“그거 제 것이오.”
사내가 웃음을 멈췄다.
“…뭐라고 했소?”
나는 말했다.
“일 초식이오. 하나 · 둘 · 둘.”
사내가 그 박자를 들었다.
듣고 얼굴이 굳었다.
“…댁, 그걸 어떻게 아오?”
나는 말했다.
“제가 열여섯 해 가지고 있었소.”
사내가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면서 손이 떨렸다.
나는 물었다.
“엿새 전에 어디 계셨소?”
사내가 말했다.
“…여기 있었소.”
“여기서 무엇을 하셨소?”
사내가 말했다.
“…자고 있었소.”
나는 물었다.
“자다가 되었소?”
사내가 말했다.
“깨니까 되었소.”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사내가 물었다.
“…댁, 이게 뭐요?”
나는 말했다.
“주우신 것이오.”
“…”
“어디서 온 것인지는 나도 모르오.”
사내가 물었다.
“…돌려줘야 하오?”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돌려주는 법을 나는 모른다.
본산에서는 맡기고 찾는다. 소리로 맡기고 소리로 찾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소리를 안 냈다.
자다가 받았다.
나는 물었다.
“한 가지 여쭙겠소.”
“…물으시오.”
“엿새 전에 여기서 소리를 낸 사람이 있소?”
사내가 생각했다.
“…있었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누구요?”
사내가 말했다.
“…웬 늙은이가 마당에서 밤새 중얼거렸소.”
“…무엇을요?”
사내가 말했다.
“숫자를 셌소.”
주막에서 나오는데 마당에 아이가 하나 있었다.
여섯쯤 됐다.
그 사내의 아이라고 했다.
아이가 마당에서 그 박자를 따라 하고 있었다.
하나 · 둘 · 둘.
손을 흔들면서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아이는 소리만 내는 것이다. 몸에는 안 들어갔다.
그런데 세 번 내면 들어간다.
나는 아이 앞에 앉았다.
“…얘야.”
“…예?”
“그거 몇 번 했느냐?”
아이가 말했다.
“몰라요.”
“…많이 했느냐?”
아이가 말했다.
“아버지가 하니까 따라 해요.”
나는 아이 손을 봤다.
손이 박자를 잡고 있었다.
세 번을 넘긴 손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아이는 이미 가졌다.
가진 줄도 모르고 가졌다.
여섯 살이 하나를 가지면, 여섯 살부터 어긋난다.
나는 사내한테 갔다.
“…아이가 따라 합니다.”
사내가 웃었다.
“애들이 다 그렇지 않소.”
나는 말했다.
“그만두게 하십시오.”
사내가 물었다.
“…왜요?”
나는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이 사내한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주우면 누가 잃는다고 하면, 이 사내는 제가 주웠다는 것부터 안 믿을 것이다.
나는 말했다.
“…아이 발이 어긋납니다.”
사내가 아이를 봤다.
아이가 마당에서 뛰고 있었다.
사내가 말했다.
“…잘 뛰는데.”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아직 어긋나지 않았다.
어긋나는 것은 나중이다.
나중에 어긋나면 이 사내는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