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스물셋
두 번째 초식은 없다 · 한도윤
이것은 내가 스물아홉이 되던 해 겨울의 일이다. 적어 두는 이유는 하나다. 나 말고는 이 일을 기억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초식이 사라지면 그것을 본 사람도 잊는다. 그래서 나는 종이에 적는다. 종이는 잊지 않는다.
초식은 쓰면 사라진다.
세 번째에 알았다. 두 번째까지는 잊어버린 줄 알았다. 검을 들고 몸이 기억하는 대로 움직이려는데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것과 잊은 것은 다르다. 잊은 것은 더듬으면 가장자리가 잡힌다. 비어 있는 것은 더듬을 자리가 없다.
세 번째를 쓴 밤에 나는 스승의 서찰을 다시 읽었다. 스물네 개를 물려준다, 라고만 적혀 있었다. 한 번 쓰면 사라진다는 말은 없었다. 스승도 몰랐거나, 알면서 안 적었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알았으면 나는 첫 번째를 아꼈을 것이고, 아꼈으면 그날 죽었을 것이다.
그 뒤로는 세면서 살았다.
객잔 이 층 구석에서 나는 스물셋을 썼다.
아래층에서 아이가 울었다. 열 살쯤 된 계집아이였고, 사내 셋이 그 아이의 아비를 마당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빚 때문이라고 했다. 마당에는 눈이 얇게 깔려 있었다.
이 층 난간에서 마당까지는 한 길 반이었다. 나는 그 높이를 재면서 동시에 내려간 뒤의 발 자리를 정했다. 눈이 얇게 깔린 곳은 미끄럽고 처마 아래 마른 데는 딛기 좋다. 나는 마른 데를 골랐다.
아래층에서 아이가 다시 울었다.
나는 난간을 넘었다. 눈 위에 발이 닿는 소리가 났다. 셋이 동시에 돌아봤다.
왼쪽 사내가 먼저 왔다. 도를 세로로 들고 왔으니 위에서 아래로 내릴 참이었다. 나는 그것을 기다리지 않고 반 보 안으로 들어갔다. 도가 내려올 자리를 내가 먼저 차지하면 도는 내려오지 못한다. 사내의 팔꿈치가 내 어깨에 걸렸다. 나는 어깨를 돌려 그 팔꿈치를 바깥으로 밀었다. 도가 손에서 떨어졌다. 눈에 박히는 소리가 났다.
두 번째 사내는 창이었다. 창은 거리를 먹고 사는 병기다. 나는 창끝이 오는 선을 따라 옆으로 두 걸음 갔다. 창은 곧게 오는 것만 빠르다. 옆으로 도는 것은 느리다. 두 걸음이면 그 느린 부분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창대 중간을 왼손으로 눌러 땅에 붙이고 오른 무릎으로 사내의 명치를 쳤다. 사내가 접혔다.
세 번째가 문제였다.
셋째는 늙은 자였다. 늙은 자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아이 아비의 목 뒤에 칼을 대고 서 있었다. 나에게 오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내가 한 걸음 오면 칼을 반 치 눌렀다. 계산을 아는 자였다.
마당은 열 걸음이었다. 늙은 자와 나 사이가 여섯 걸음이고, 그와 아이 아비 사이는 없었다. 눈이 발목까지 오지 않았으니 발은 미끄러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을 늘 먼저 센다. 걸음 수, 바닥, 병기의 길이, 상대의 어깨 높이. 세고 나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갈린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가 있었다. 남은 초식 스물넷 중 두 개.
하나는 짧은 거리에서 상대의 손목 관절을 꺾는 것이었다. 그것은 닿아야 쓴다. 여기서 그자에게 닿으려면 세 걸음이 필요하고, 세 걸음이면 그자는 손을 눌러 버린다.
다른 하나는 거리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것은 몸이 어떻게 가는지 나도 설명하지 못한다. 눈을 감았다 뜨면 상대 앞이다. 스승은 그것을 두 번째로 가르쳤고, 나는 그것을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내가 셌다. 남은 것 둘. 쓰면 하나.
나는 썼다.
거리가 없어졌다. 늙은 자의 눈이 커지는 것을 아주 가까이서 봤다. 나는 그자의 팔목을 잡고 바깥으로 틀었다. 칼이 눈 위에 떨어졌다.
그런데 아이 아비가 앞으로 쓰러졌다.
늙은 자의 칼은 목 뒤에 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미 들어가 있었다. 내가 난간을 넘기 전에.
나는 그자의 팔목을 놓았다. 놓고 무릎을 꿇고 아비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눈이 아직 열려 있었는데 초점이 없었다. 아이가 마루 아래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울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는 울음은 처음 봤다.
아이가 마당으로 내려왔다. 맨발이었다. 눈 위를 걸어와서 아비 옆에 앉았는데, 울음을 멈추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나는 그 아이를 말리지 않았다. 말릴 자격이 없었다.
늙은 자는 도망갔다. 나는 쫓지 않았다.
눈이 계속 내렸다. 나는 그 마당에 한참 앉아 있었다.
이십 년 동안 아끼던 것을 썼다. 쓰고도 못 지켰다.
남은 것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