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46자) · 어촌계 사무실
밥 두 그릇
밤의 해안선에서 다시 만나요 · 서지오
재우야.
삼월 십일일, 아니 벌써 십이일 새벽 다섯 시다. 방금 부두에서 올라왔다. 손이 아직 차서 글씨가 삐뚤다. 오늘은 쓸 게 많다. 순서대로 쓴다.
어제 아침 아홉 시에 집에 갔다. 계단 왼쪽 세 집이 비어 있었다. 유리창에 신문지가 붙어 있었고 신문지 날짜가 삼 년 전이었다. 대문마다 붉은 스프레이로 숫자가 찍혀 있었다. 누가 무엇을 세어 놓은 건지 모르겠다. 파란 대문은 그대로였다. 아래쪽 페인트가 벗겨져 붉게 녹슬었다. 문고리를 잡았다가 놓고, 그냥 밀었다. 잠겨 있지 않았다.
마당에 물소리가 있었다.
어머니가 수돗가에 앉아 계셨다. 고무 대야 두 개. 하나에는 물, 하나에는 미역. 검은 미역이 물속에서 천천히 풀어지고 있었다. 어머니 손등이 붉었다. 손가락 마디가 내 기억보다 굵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셨더라.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속으로 셋을 셌다. 하나, 둘, 셋. 어머니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미역을 뒤집었다. 물이 첨벙, 했다.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대야 물을 쏟아 버리고 수도를 틀었다. 물이 양철 대야 바닥을 때렸다. 그 소리가 마당을 다 채웠다. 칠 년 전 그날 오후, 네가 수도를 끝까지 틀었을 때와 같은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가 그칠 때까지 대문 안쪽에 서 있었다. 물이 차고, 어머니가 수도를 잠갔다.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채로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가방을 마루에 올려놓고 마당 구석의 스티로폼 상자를 옮겼다. 젖은 그물 두 폭을 담장에 널었다. 시키지 않은 일이었고, 하지 말라는 말도 없었다. 어머니는 미역을 씻으셨다. 한 시간 동안 우리 둘이 한 마당에서 낸 소리는 물소리, 그물 터는 소리, 스티로폼 긁히는 소리뿐이었다.
마루 건너 네 방 문고리에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새 자물쇠였다. 녹이 없고 열쇠 구멍이 반짝였다. 문고리 놋쇠는 손때로 반질반질했다. 매일 누가 잡는 문고리였다. 나는 손을 뻗다가 내렸다.
열두 시에 어촌계 사무실에 갔다. 수협 건물 이 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문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뚝 그쳤다. 소파에 선주 셋, 책상에 탁기춘. 선풍기가 돌고 있었다. 삼월에 선풍기. 그 사람은 늘 더워한다. 벽 게시판에 새 종이가 붙어 있었다.
초곡 어촌계 정기 총회. 삼월 이십일 오후 두 시. 안건 삼. 방치 선박 삼-일일사 폐선 및 어업권 반납 건.
방치. 명석이가 칠 년 동안 새벽마다 몰고 나가는 배가 방치였다.
“도장 찍으러 왔나?”
탁기춘이 의자를 뒤로 젖혔다. 소파의 선주들은 나를 안 봤다. 한 사람은 담배를 비벼 끄고, 한 사람은 휴대폰을 봤다. 휴대폰 화면이 꺼져 있었다.
“안건 삼 빼 주세요.”
“총회 안건은 계원 셋이 발의하면 올라간다. 여기 셋 있다.”
그 사람이 소파를 가리켰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발의한 사람들이 발의한 얼굴이 아니었다.
“명의자가 반대합니다.”
“명의자는 칠 년 동안 이 동네 없었다. 어업권은 쓰는 사람 거다. 칠 년 안 쓴 사람 거 아이다.”
“명석이가 씁니다.”
“명석이는 명의자가 아이지.”
그 사람은 웃었다. 양쪽을 다 가진 사람의 웃음이었다. 명의가 있는 나는 안 썼고, 쓰는 명석이는 명의가 없다. 둘 사이에 탁기춘이 서 있었다. 나는 게시판을 봤다. 종이 한 귀퉁이가 선풍기 바람에 들썩였다.
“그 배, 칠 년 전 삼월 십사일 밤에 누가 몰았습니까?”
선풍기 소리만 남았다. 담배를 비벼 끈 선주의 손이 재떨이 위에서 멈췄다. 휴대폰을 보던 사람이 꺼진 화면을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 탁기춘은 의자를 도로 세웠다. 천천히. 의자 다리가 바닥에 닿을 때 딱, 소리가 났다.
“도경아. 니 동생 일은 마음 아프다. 온 동네가 마음 아팠다. 근데 그날 밤에 그 배는 번호도 없었다. 번호 없는 배를 누가 몰았는지 누가 아노.”
“번호가 없었다는 건 아시네요.”
그 사람 눈이 가늘어졌다. 반 박자 늦게. 자기가 한 말을 되감아 보는 눈이었다. 그러고는 책상 서랍에서 도장을 꺼내 인주에 꾹 눌렀다. 무슨 서류에 찍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눌렀다가 들었다. 인주 냄새가 났다.
“이십일에 보자. 계원이면 발언권은 있다. 니 아직 계원이다. 명의가 있으니까.”
사무실을 나오면서 등 뒤에서 선풍기 소리가 따라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사무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내가 건물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웃음소리가 다시 났다. 문 여닫는 소리처럼 딱 맞춰서.
수협 건물 모퉁이를 돌았을 때 뒤에서 누가 불렀다. 담배를 비벼 끄던 선주였다. 황 선장. 아버지하고 같은 해에 배를 샀던 사람. 그 사람은 주위를 한 번 보고 나한테 바짝 붙었다. 입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도경아. 그날 밤에 말이다. 내가 열 시쯤 그물 손본다고 부두에 있었는데, 저 배가…….”
그 사람은 거기서 멈췄다. 수협 이 층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선풍기 소리가 창밖으로 새어 나왔다. 황 선장은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고, 나를 보고, 다시 창문을 봤다.
“아이다. 나는 암것도 모른다. 니 아부지 친구라서 한마디 할라 캤는데, 모른다.”
그 사람은 등을 돌려 부두로 내려갔다. 오른발을 조금 끌면서. 이 마을 남자들은 다 오른발을 끈다. 배 위에서 균형 잡느라 생긴 걸음이다. 나는 그 등을 보면서 알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르는 게 아니다. 말을 멈춘 거다. 멈춘 말은 어딘가에 쌓여 있다.
저녁상은 여섯 시에 나왔다. 밥 두 그릇, 미역국 두 그릇, 김치, 무말랭이, 갈치 한 토막. 어머니는 상을 방 가운데 놓고 수저를 두 벌 놓으셨다. 나는 그 수저를 오래 봤다. 두 벌이었다. 앉았다. 어머니는 앉지 않으셨다. 부엌 문지방에 걸터앉아 자기 밥그릇을 무릎에 올리셨다. 상에서 한 걸음 떨어진 자리. 국그릇은 상 위에 둔 채로 밥만 맨입에 떠 넣으셨다.
“왜 거기서 드세요?”
어머니는 무말랭이를 집으려고 팔을 뻗으셨다. 닿지 않았다. 내가 접시를 밀어 드렸다. 어머니는 접시를 받아 무릎 옆에 놓으셨다. 고맙다는 말도 됐다는 말도 없었다. 미역국은 소고기가 아니라 들깨를 넣은 국이었다. 네가 좋아하던 국. 나는 한 술 뜨고 목이 아팠다. 국물까지 다 마셨다. 어머니가 상을 치우면서 내 빈 그릇을 보셨다. 눈길이 반 박자 늦게 떨어졌다. 나는 그걸 봤다. 말하지 않았다.
내 방에 들어가니 이불이 개켜져 있었다. 먼지가 앉지 않은 이불. 누가 최근에 볕에 널어 털어서 다시 개킨 이불이었다. 이불을 펴니 햇빛 냄새가 났다. 칠 년 동안 아무도 안 덮은 이불에서 햇빛 냄새가 나려면 누가 볕 좋은 날마다 내다 널어야 한다. 나는 그 이불을 덮고 누웠다. 어머니 방에서 라디오가 작게 웅얼거렸다. 남해 동부 먼바다 풍랑주의보, 물결 이에서 삼 미터. 열두 시가 지나서도 꺼지지 않았다.
새벽 세 시 사십 분에 마루 널이 삐걱했다. 나는 옷을 입은 채로 누워 있었다. 신발장에서 고무장화 끄는 소리. 대문 걸쇠가 조심스럽게 들리는 소리. 조심한다는 것은 깨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집 안에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고 계셨다.
스무 걸음 거리를 두고 따라 내려갔다. 계단은 내려가는 쪽이 더 가팔랐다. 어머니 손에 보온 가방이 하나 들려 있었다. 네 시의 삼호부두는 낮보다 밝았다. 형광등이 물 위에 길게 누웠고, 지게차가 얼음 상자를 실어 날랐다. 스티로폼 부딪히는 소리, 얼음 쏟아지는 소리, 누가 누구를 부르는 소리. 경매사가 종을 치는 소리, 장화가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 누군가 초단파 무전기를 켜 놓아서 십육 번 채널의 잡음이 지지직 섞였다. 이 부두는 새벽마다 목소리가 제일 많은 곳이다. 아홉 시가 되면 그 목소리들이 다 어디 가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그 소리들 사이를 익숙하게 걸으셨다. 누가 아지매, 오늘 일찍 나왔네, 했고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여기서는 어머니가 사람들과 말을 하셨다. 그게 이상하게 아팠다.
세 번째 계선주. 흰 글씨. 삼-일일사. 선실 문이 열리고 명석이가 나왔다. 방수복 상의를 반쯤 걸치고 목장갑을 이빨로 당겨 끼면서.
“어이구, 어머니 오늘 와 이리 일찍 나오셨어요. 물때가 좀 이르긴 한데 제가 얼음 어제 미리 받아 놨거든요. 그라고 저번에 주신 젓갈, 그거 아껴 묵느라 아직도…….”
어머니가 보온 가방을 내미셨다. 명석이가 말을 멈추고 받았다. 어머니가 입을 여셨다.
“밥은 묵고 나가라.”
나는 컨테이너 그늘에 서 있었다. 칠 년 만이었다. 어제 하루 동안 어머니가 나한테 한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소리 내어 말씀하셨다. 명석이한테.
어머니가 돌아서다가 컨테이너 쪽을 보셨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도 움직이지 않으셨다. 형광등 불빛이 우리 사이 젖은 바닥에서 번졌다. 지게차가 뒤로 가면서 삑, 삑, 경고음을 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계단 쪽으로 가셨다.
명석이가 그제야 나를 봤다.
“……형.”
“보온 가방에 몇 그릇이냐.”
명석이는 늘 말이 많다. 너도 알지. 그런데 이번에는 짧았다.
“두 그릇이요.”
“칠 년 동안.”
“……예.”
“한 그릇은 네 거고.”
명석이가 선실 안에 들여놓은 보온 가방을 봤다. 그러고는 목장갑 낀 손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저 혼자 묵기엔 많아서, 절반은 얼음칸에 넣어 놨다가 점심에 묵는데, 그래도 남아요. 진짜 남아요. 남은 거는 바다에 줘요. 바다에 주면 괭이갈매기가 먼저 와요.”
두 그릇이면 한 그릇은 남는다. 남는 것을 칠 년 동안 매일 싸는 사람은 남을 줄 알고 싸는 거다.
“괭이갈매기가 네 밥 먹는 거 알면 재우가 뭐라 할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명석이가 웃다가 말았다. 웃어도 되는지 몰라서.
“재우 형이면요, 갈매기한테 반찬 투정할 거라 했을 거예요. 무말랭이만 골라 먹는다고.”
맞다. 너는 무말랭이를 안 먹었다. 갈매기도 안 먹더라고, 명석이가 덧붙였다.
재우야. 어머니는 칠 년 동안 매일 새벽 네 밥을 이 배에 실어 보내셨다. 네가 탔던 배에. 명의는 내 거고, 밥은 명석이 거고, 남은 한 그릇은 바다가 먹었다.
명석이가 밧줄을 풀기 전에 말했다.
“형, 이십일 총회 들으셨죠. 저는요, 저는 이 배 없으면…….”
그 뒤는 엔진 소리에 묻혔다. 배가 부두를 밀고 나갔다. 흰 글씨가 물결을 따라 오르내렸다. 나는 글씨가 안 보일 때까지 서 있었다.
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