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72자) · 삼-일일사

칠 년 만의 입항

밤의 해안선에서 다시 만나요 · 서지오

재우야.

형이다. 이천이십육 년 삼월 십 일, 밤 열두 시가 조금 넘었다. 초곡 민박 이 층 끝방에서 쓴다. 창문이 바다 쪽으로 나 있어서 파도가 방파제 밑을 핥는 소리가 여기까지 온다. 한 번 밀려왔다가 콘크리트 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꼬르륵, 하고 목에 걸리는 소리. 너는 어릴 때 그걸 바다가 트림한다고 했다. 칠 년 동안 부산 영도에서 들은 바다는 그런 소리를 안 냈다. 거기 바다는 배 엔진 소리에 묻혀서 제 목소리가 없었다.

오늘 오후 네 시 십이 분에 초곡에 내렸다. 통영에서 오는 여객선이다. 하루 두 번 다니는 그 배는 원래 네 시 정각 도착인데 매번 늦는다. 오늘은 딱 십이 분 늦었다. 편지에 적힌 시각 그대로였다. 두 주 전에 영도 우리 회사 사무실 우편함에 우표 없는 봉투가 들어 있었다. 종이 한 장에 두 줄.

삼월 십 일 오후 네 시 십이 분에 도착하는 배로 오세요. 재우가 없어진 날 밤, 방파제 끝에 누가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아직 여기 있습니다.

글씨가 반듯했다.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줄이 곧았다. 형은 칠 년 동안 영도에서 물에 들어가는 일을 했다. 민간 구조 인양 회사. 가라앉은 배에 들어가 기름을 빼고, 부두에 빠진 차를 건지고, 가끔은 사람을 건졌다. 물속에서는 눈보다 귀가 먼저다. 수심 이십 미터 밑으로 내려가면 빛이 초록에서 회색으로 바뀌고, 그다음엔 내 숨소리하고 조절기가 공기를 내뱉는 소리만 남는다. 쉬익, 보글보글. 그 소리 사이로 멀리서 배 스크루 소리가 오면 올라가면 안 된다. 선배들이 제일 먼저 가르친 것이 그거였다. 위에서 뭐가 오는지는 귀로 안다. 나는 그걸 칠 년 배웠다. 그 칠 년 동안 한 번도 초곡 앞바다에는 안 들어갔다.

여객선이 몇 분 늦을지 맞히는 사람은 이 섬에 오래 산 사람이다. 물때와 바람을 아는 사람. 그리고 네 이름을 아직 이렇게 쓰는 사람.

부두에는 사람이 없었다. 삼호부두는 새벽 네 시에 붐비고 아홉 시면 빈다. 오후 네 시의 부두는 갈매기하고 얼음 녹은 물뿐이었다. 가방을 들고 내리면서 나는 편지 쓴 사람이 어디 서 있을까 봤다. 어판장 지붕 밑, 얼음 창고 옆, 녹슨 지게차 뒤. 사람이 서 있을 만한 데를 하나씩 봤다. 아무도 없었다.

대신 어촌계장이 있었다.

탁기춘. 너도 알지. 아버지 장례 때 제일 크게 울던 사람. 예순둘이 됐다. 머리는 하얘졌는데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부두 끝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슬리퍼를 끌고 나오면서 멀리서부터 이름을 불렀다.

“아이고, 도경이 아이가. 이기 몇 년 만이고.”

그 사람은 내 손을 잡았다. 두 손으로. 손바닥이 두껍고 뜨거웠다. 나는 그 손을 뺐다. 빼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 사람이 놓아주지 않았다.

“칠 년입니다.”

“칠 년. 느그 어무이 고생 많이 했다. 아부지 가고, 재우 그래 되고, 니까지 없고.”

그 사람은 재우, 라고 말할 때 목소리를 낮췄다. 남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름처럼. 그러고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누런 봉투. 어촌계 도장이 찍혀 있었다.

“니 온다는 소리 듣고 챙기 놨다. 삼일일사 말이다. 그 배 아직 니 이름으로 돼 있는 거 아나.”

나는 몰랐다. 아니, 알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칠 년 전 삼월 십오일, 내가 떠난 다음 날 우리 초곡 앞바다에 번호 하나가 새로 생겼다는 것을. 내 이름 밑으로. 영도에서 받은 선박 검사 통지서를 나는 여섯 해 동안 뜯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

“명석이가 그 배로 먹고산다. 니 후배 명석이. 칠 년을 그 배 몰았다. 근데 명의가 니 거라가 조합 대출도 안 되고 기름값 보조도 못 받는다. 여기 도장 하나만 찍어 도라. 명석이 이름으로 넘기는 기다. 니 좋고 명석이 좋고.”

봉투 안에는 명의 이전 동의서가 있었다. 양수인 칸은 비어 있었다. 명석이 이름이 아니었다. 비어 있었다.

“양수인이 비어 있는데요.”

“그건 내가 채우면 된다.”

“명석이 이름이면 지금 채우시지요.”

탁기춘의 얼굴에서 웃음이 한 겹 벗겨졌다. 그 밑에 다른 얼굴이 있었다. 부두 바닥에 고인 기름처럼 무지갯빛이 도는 얼굴.

“도경아, 니 칠 년 만에 와서 와 이리 까다롭노.”

“배를 한번 보고 찍겠습니다.”

“볼 거 뭐 있노. 낡아 빠진 배다. 조만간 폐선할라 캤다. 명석이 새 배 해 줄라고.”

폐선. 그 말이 방금 한 말하고 안 맞았다. 명석이 먹고살게 넘기자면서, 조만간 부순다고. 나는 봉투를 도로 내밀었다. 그 사람은 받지 않았다. 봉투가 우리 사이 허공에 떠 있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그 옆을 스쳐 갔다. 결국 내가 봉투를 부두 계선주 위에 올려놓았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자리였다. 그 사람이 얼른 집어 들었다.

“생각해 보고 오이소.”

그 사람은 존댓말로 바꿨다. 동네 어른이 동네 청년한테 존댓말을 쓰면 그건 끝났다는 뜻이다. 너도 알지.

마을로 올라가는 계단은 백열일곱 칸이다. 발이 먼저 기억했다. 마흔 칸쯤에서 숨이 한 번 걸리고, 여든 칸쯤에서 바다가 등 뒤로 넓어진다. 백열일곱 칸 끝에 해안수퍼가 있다. 수퍼 할매는 일흔넷이 됐다. 할매는 나를 한 번 보고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그러고는 물었다.

“니 윤 선장 큰아들이제. 걸음 보고 알았다. 느그 아부지하고 똑같이 오른발을 끈다.”

나는 내 발을 내려다봤다. 몰랐다. 할매는 두부 한 모를 비닐봉지에 넣어 계산대에 올렸다. 나는 두부를 산 적이 없다.

“밥은 묵고 다니나.”

“먹습니다.”

“묵는 얼굴이 아이다. 이거 갖고 가라. 돈은 됐다.”

“민박에서 두부를 어떻게 먹어요.”

“그냥 묵어라. 두부는 그냥 묵어도 된다.”

나는 두부를 받았다. 할매는 그러고 나서야 제대로 물었다.

“민박 잡았나?”

“네.”

“느그 집 안 가고.”

“내일 가 보려고요.”

“내일 가면 늦다. 느그 어무이 새벽 세 시 반에 나간다.”

할매는 그 말만 하고 라디오를 다시 키웠다. 남해 동부 앞바다 물결 일에서 1.5미터. 할매가 거스름돈을 세어 주면서 한 마디를 더 했다. 계산대 너머로, 라디오보다 작게.

“재우 방은 아직 잠가 놨다 카더라. 새 자물쇠로.”

이 마을은 사람이 백스물셋이다. 누가 무슨 일을 하면 사흘 안에 다 안다. 그리고 다 알면 말을 멈춘다. 그 집 앞을 지날 때 조용해지는 것으로 안다. 칠 년 전에도 그랬다. 네가 없어진 다음 날부터 사람들이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말을 끊었다. 나는 그 조용함을 등에 지고 새벽 배를 탔다.

밤 열한 시에 방파제로 나갔다.

방파제는 백이십 미터다. 가로등이 여섯 개인데 중간에서 끝난다. 끝 오십 미터는 빛이 없다. 발밑에서 파도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지고, 등대가 사 초에 한 번 빛을 돌린다. 빛이 없는 오십 미터를 걸을 때는 소리로 걷는다. 콘크리트 이음매마다 발소리가 달라지니까. 칠 년 전 그날 밤에도 나는 소리로 걸었다. 삼백 걸음쯤에서 멈췄다. 끝에 사람이 서 있었으니까.

그날 오후 우리가 싸운 건 너도 기억하지. 마당 수돗가에서. 나는 다음 날 새벽 배로 부산에 간다고 했고, 너는 가지 말라고 했다. 할 말이 있다고. 밤 열한 시에 방파제 끝으로 오라고.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너는 대답 대신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었다. 양철 대야 바닥을 때리는 물소리가 마당을 다 채웠다. 그 소리 밑에서 네가 뭐라고 했는데, 나는 못 들었다. 다시 말해 달라고 안 했다. 그날 밤 방파제 끝에 서 있는 형태를 보고 나는 네가 나를 붙잡으려고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붙잡히면 못 떠날 것 같았다. 그래서 돌아섰다. 칠 년 동안 나는 그 물소리 밑의 말을 생각했다.

오늘도 서 있었다.

같은 자리였다. 등을 보이고. 키가 크지 않고 어깨가 좁았다. 바람이 옷자락을 한쪽으로 밀었다. 등대 빛이 돌아와 그 사람 옆얼굴을 한 번 핥고 지나갔다. 사 초 뒤에 또. 나는 멈췄다. 칠 년 전처럼 삼백 걸음쯤에서. 발이 먼저 멈췄다.

그리고 이번에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게 오늘 너한테 제일 먼저 쓰고 싶은 말이었다. 형이 오늘은 안 돌아섰다.

끝까지 걸어갔다. 오십 걸음. 그 사람이 돌아섰다. 휴대폰 불빛이 켜졌다. 얼굴 밑에서 위로. 젊은 여자였다. 스물 대여섯. 항구 사무소 조끼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알았다.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칠 년 전에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네 뒤를 따라다니던 아이. 네 오토바이 뒷자리에 헬멧도 없이 앉던 아이.

“하린이.”

“오셨네요.”

그 애는 존댓말을 썼다. 칠 년 전에는 오빠라고 했다. 네 형이라서 따라 부르던 오빠.

“편지.”

“제가 보냈어요.”

“왜 나를?”

하린이는 대답하기 전에 바다를 봤다. 어두운 바다에서 소리만 올라왔다. 방파제 테트라포드 사이로 물이 빠지면서 우는 소리. 그러고는 휴대폰 불을 껐다. 다시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그 애 목소리가 왔다. 떨리지 않았다. 칠 년 동안 연습한 목소리였다.

“그날 밤 열 시 사십 분에, 오빠가 저기까지 왔다가 돌아간 거 알아요. 저 여기 있었거든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열 시 반부터 새벽 두 시 십 분까지. 세 시간 사십 분. 재우가 형 온다고 했으니까 기다렸어요. 재우 대신에요. 재우는 배를 탔으니까.”

“무슨 배?”

“번호 없는 배요.”

하린이가 방파제 아래를 가리켰다. 삼호부두 세 번째 계선주. 흰 페인트 숫자가 부두 가로등 밑에서 희미했다. 삼-일일사.

“저 배요. 그날 밤에는 번호가 없었어요. 다음 날 오빠 이름이 붙었고요. 작년에 탁 계장이 저 배 명의를 바꾸려고 했어요. 우리 사무소로 서류가 왔어요. 명의자 본인 확인이 안 돼서 반려됐고요.”

“누가 반려했는데?”

“제가요.”

그 애는 그 말을 할 때 처음으로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자랑이 아니었다. 겁이었다. 이 마을에서 어촌계장 서류를 반려한 사무소 막내가 한 해 동안 무슨 말을 들었을지 나는 짐작이 갔다.

“그랬더니 이번엔 폐선이래요. 이번 달 총회에서요. 폐선은 명의를 안 바꿔도 총회 의결로 밀어붙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오빠를 불렀어요. 저 배는 오빠 거라서, 오빠만 막을 수 있어요.”

등대 빛이 한 바퀴 돌아와 그 애 얼굴을 지나갔다. 울고 있지 않았다. 사 초 뒤에 다시 어두워졌다.

재우야. 형은 오늘 칠 년 만에 방파제 끝까지 갔다. 거기서 네가 탄 배 이름을 들었다. 그 배에 내 이름이 붙어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쓴다. 파도가 또 트림을 한다.

형이.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서지오작가2026.10.09· 1화

    작가 서지오입니다. 동생이 사라진 밤 방파제에서 돌아선 형이 칠 년 만에 돌아옵니다. 1화의 입항을 읽고, 여러분은 도경이 그날 돌아선 까닭을 무엇이라고 보셨나요?

  • 달밤에책2026.04.26· 1화

    첫 문단에서 이미 분위기가 잡히네요. 다음 화 기다립니다.

    • 서지오작가2026.04.27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두 줄은 저도 오래 고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