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47자)

의사봉 세 번, 자정의 첫걸음

국회 고양이 국밥이 · 소예찬

국밥은 굴 입구를 막은 등을 보고 있었다⁠.

남색 천에 왁스 냄새가 배어 있었다⁠. 등은 굴 입구 바로 앞 계단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고⁠, 숨을 쉴 때마다 천이 조금씩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등 너머가 시끄러웠다⁠. 문이 열릴 때마다 젖은 외투 냄새가 들어왔다⁠. 바깥에 차가운 것이 내리는 냄새였다⁠. 커피 냄새⁠, 꽃 같은 냄새⁠, 담배 냄새⁠. 바닥이 발소리로 떨렸다⁠.

새끼들은 등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수육과 깍두기는 등에 기대 잠들었고⁠, 순대는 등에서 늘어진 천 자락을 물고 있었다⁠. 부추만 깨어서 등과 계단 사이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국밥은 부추를 끌어오지 않았다⁠. 등이 막고 있는 자리까지는 부추가 가도 되는 자리였다⁠.

머리 위에서 높은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는 나무를 타고 굴 천장까지 내려왔다⁠. 국밥은 귀를 납작하게 눕혔다가⁠, 목소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알고 귀를 다시 세웠다⁠.

*

진바다는 방청석 난간에 이마를 대고 의원석을 세고 있었다⁠. 12월 31일 밤 열 시 이십 분⁠, 스물넷이었다⁠.

의장은 의장석에 앉아 있었다⁠. 의사봉 옆에 두 손을 모으고 움직이지 않았다⁠. 본회의를 열려면 예순 명이 있어야 했고⁠, 의장은 예순 명이 될 때까지 앉아 있기로 한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의장석 아래 계단에는 오만식이 등을 굴 입구에 대고 앉아 있었다⁠. 의원석 사이 통로에 금동하가 그물채를 지팡이처럼 짚고 서 있었다⁠. 그물채 끝에 그물은 없었다⁠. 바다는 금동하가 그물을 떼어 냈다는 것을 한참 뒤에 알았다⁠.

밤 열 시 삼십일 분⁠, 야당 출입문이 열렸다⁠. 탁원구였다⁠. 탁원구는 혼자 들어와 의원석 맨 뒷줄 자기 자리에 앉았다⁠. 남색 넥타이를 한 번 고쳐 매고⁠, 안주머니를 한 번 눌렀다⁠. 방청석 벽 모니터의 채팅창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생선 넥타이 의원 입장⁠」 「⁠남색으로 바꿈⁠」 「⁠첫 입장 야당 1⁠」⁠.

탁원구가 앉고 오 분 뒤⁠, 야당 출입문이 다시 열렸다⁠. 초선 의원 둘이었다⁠. 이어서 셋⁠, 다시 둘⁠. 여당 출입문도 열렸다⁠. 들어오는 의원들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바다는 들어오는 의원들 얼굴을 보다가 휴대전화 화면이 다 같은 것을 알아보았다⁠. 국밥 생중계 채팅창이었다⁠. 채팅창에서는 시청자들이 의원석 자리 배치도를 띄워 놓고 빈자리를 지역구 이름으로 하나씩 부르고 있었다⁠. 「⁠○○시 지역구 의원님 어디 계세요⁠」⁠.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이름이 채팅창에 오르면 일어나 들어왔다⁠.

밤 열한 시 오 분⁠, 예순한 명이 되었다⁠. 의장이 의사봉을 쥐지 않은 채 마이크를 당겼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개의를 선포합니다⁠.⁠”

열한 시 십이 분⁠, 야당 출입문이 한 번 더 열렸다⁠. 하정필이 맨 앞이었다⁠. 하정필 뒤로 야당 의원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하정필은 자리에 앉지 않고 의원석 사이 통로를 걸어 발언대로 갔다⁠. 발언대는 의장석 바로 앞⁠, 오만식이 앉은 계단 아래였다⁠. 하정필은 발언대에 오르기 전에 계단의 오만식을 내려다보았고⁠, 오만식 등 뒤의 틈을 한 번 보았다⁠.

“⁠의장님⁠. 토론 신청합니다⁠.⁠”

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정필이 마이크를 잡았다⁠. 느린 목소리가 본회의장 끝까지 건너갔다⁠.

“⁠우리 당은 이 수정안에 찬성합니다⁠.⁠” 하정필이 한 번 숨을 골랐다⁠. “⁠정부의 국민 첫 집 사업에서 1조 원을 깎았습니다⁠. 지역 돌봄에 넣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방학 급식 단가가 한 끼에 천 원 오릅니다⁠. 우리 당 의원들 지역구 사업은 넣지 못했습니다⁠. 서른 개입니다⁠. 내년에 예결위에 정식으로 올리겠습니다⁠.⁠”

하정필이 방청석을 올려다보았다⁠. 바다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 핑계는 오늘로 끝내겠습니다⁠.⁠”

본회의장이 조용했다⁠. 여당 출입문이 열리고 맹준표가 여당 의원들을 이끌고 들어왔다⁠. 맹준표는 자리에 앉으며 하정필을 향해 웃어 보였다⁠. 웃음이 반 박자 늦었다⁠.

*

열한 시 사십 분⁠, 전자 투표가 시작되었다⁠. 의원석 앞 화면에 숫자가 올라갔다⁠. 재석⁠, 찬성⁠, 반대⁠, 기권⁠. 진바다는 난간을 쥐고 숫자를 보았다⁠. 탁원구가 맨 뒷줄에서 찬성 단추를 누르는 것이 보였다⁠. 누르고 나서 안주머니를 눌렀다⁠.

열한 시 사십칠 분⁠, 의장이 일어났다⁠.

“⁠재석 이백육십일 인 중 찬성 이백이십구 인⁠, 반대 십구 인⁠, 기권 십삼 인으로 2028년도 예산안 수정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의장이 의사봉을 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나무가 나무를 내려치는 소리가 의장석 단을 타고 내려갔다⁠. 계단에 앉은 오만식의 어깨가 소리마다 움찔했다⁠. 방청석 벽 모니터에서 틈 안의 노란 눈 다섯 쌍이 동시에 커졌다⁠.

채팅창이 하얗게 덮였다⁠. 「⁠가결⁠」 「⁠자정 13분 전⁠」 「⁠준예산 없음⁠」 「⁠순대 귀 섬⁠」 「⁠부추 놀람⁠」 「⁠안경 아저씨 어깨 들썩⁠」⁠. 방청석 뒷줄의 방호원이 바다 옆으로 와서 작게 말했다⁠.

“⁠이제 일어나셔도 됩니다⁠. 산회했어요⁠.⁠”

바다는 방호원을 따라 일어나며 주머니 속 휴대전화의 진동을 느꼈다⁠. 방청석을 나서자마자 화면을 켰다⁠. 엄마였다⁠. 「⁠엄마⁠: 천 원 올랐다⁠」⁠. 바로 밑에 한 줄이 더 와 있었다⁠. 「⁠엄마⁠: 센터 애들이 순대 귀 섰다고 난리다 너 거기 있지⁠」⁠.

*

국밥은 머리 위에서 나무가 세 번 우는 것을 들었다⁠.

소리는 위에서 내려와 굴 천장을 울리고 바닥까지 떨어졌다⁠. 한 번에 수육과 깍두기가 깼다⁠. 두 번에 순대가 천 자락을 놓쳤다⁠. 세 번에 넷이 한꺼번에 귀를 세우고 국밥의 배 밑으로 파고들었다⁠. 굴 입구를 막은 등이 소리마다 움찔했지만 비키지 않았다⁠. 등은 오히려 굴 쪽으로 조금 더 기대 왔다⁠.

소리가 그친 뒤 넓은 방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의자 밀리는 소리⁠, 수많은 발소리⁠, 문 열리는 소리⁠. 사람 냄새가 굴 앞을 지나 문으로 빠져나갔다⁠. 국밥은 넷을 배 밑에 품은 채 귀를 세우고 기다렸다⁠. 발소리가 줄어들수록 등 너머 공기가 식었다⁠. 부추가 먼저 배 밑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

열한 시 오십이 분⁠, 진바다는 로텐더홀로 내려가는 계단 끝에서 탁원구와 마주쳤다⁠.

로텐더홀 대리석 바닥에 의원들이 빠져나가는 발소리가 겹쳤다⁠. 기자들이 하정필과 맹준표를 따라 소통관으로 몰려갔다⁠. 탁원구는 기자들이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기둥 옆에 서 있었다⁠. 안주머니에서 지역구 지도를 꺼내 들고 있었다⁠.

“⁠바다 씨⁠.⁠” 탁원구가 지도를 접었다⁠. “⁠사무처에 물어보니까 면직 요청이 아직 처리 안 됐대⁠. 연말이라⁠. 내가 철회하면 그냥 없던 일이 된대⁠.⁠”

“⁠없던 일이요⁠?⁠”

“⁠1월 2일에 출근하면 돼⁠. 고양이 담당 말고⁠, 우리 의원실 정책 담당으로⁠.⁠” 탁원구가 지도를 바다 쪽으로 반쯤 내밀었다⁠. “⁠그 길 설명서⁠, 같이 다시 쓰자⁠. 통학 버스 사진도 새로 찍고⁠. 정식으로⁠.⁠”

바다는 지도를 받지 않았다⁠. 지도 위의 빨간 줄이 접힌 자리에서 끊겨 있었다⁠.

“⁠의원님⁠. 그 설명서는 의원님이 쓰세요⁠.⁠”

“⁠나 그런 거 못 써⁠. 바다 씨가 알잖아⁠.⁠”

“⁠그러니까요⁠.⁠” 바다가 말했다⁠. “⁠의원님이 한 줄씩 쓰시면⁠, 그 길이 왜 필요한지 의원님이 제일 잘 아실 거예요⁠. 쪽지로는 몰라도 되잖아요⁠. 설명서로는 알아야 돼요⁠.⁠”

탁원구가 지도를 쥔 채 한참 서 있었다⁠. 기둥 너머로 하정필이 기자들에 둘러싸여 지나갔다⁠. 하정필은 바다를 보고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지만⁠, 지나가면서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무엇을 가리키는 손가락인지 바다는 알 수 없었다⁠. 기자들이 손가락을 따라 바다를 돌아보았다⁠. 로텐더홀 둥근 천장 아래에서 탁원구는 생각보다 작아 보였다⁠.

“⁠바다 씨는 그럼 뭐 해⁠?⁠”

“⁠설거지 언니요⁠.⁠” 바다가 목도리를 풀었다⁠. “⁠인천에서요⁠. 고양이 밥은 일요일마다 여기 와서 주고요⁠. 급식소는 방문자도 채울 수 있대요⁠.⁠”

탁원구가 웃었다⁠. 이번에는 웃다가 말지 않았다⁠. 탁원구는 지도를 안주머니에 넣고 손을 내밀었다⁠. 바다는 손을 잡았다⁠. 처음으로 손목이 아니라 손이었다⁠.

*

열한 시 오십팔 분⁠, 본회의장 문 앞에서 오만식이 진바다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회의장 조명이 절반쯤 꺼져 있었다⁠. 의원석은 다시 텅 비었고⁠, 의장석 위에 의사봉만 남아 있었다⁠. 오만식은 남색 조끼를 입고 이동장을 옆에 둔 채 문설주에 기대어 있었다⁠. 금동하가 그물 없는 그물채를 들고 오만식 뒤에 서 있었다⁠.

“⁠방호원이 들여보내 줬습니다⁠. 순대 보러 왔다고 하시면 된다고⁠.⁠” 오만식이 공손하게 말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보호소 인계는 그대로입니다⁠. 사무총장님 지시가 바뀌지 않았어요⁠.⁠”

“⁠알아요⁠. 저 입양 신청했어요⁠. 넷 다⁠.⁠”

“⁠규정상 한 사람에 두 마리까지입니다⁠.⁠”

“⁠그럼 둘이요⁠. 순대랑 부추⁠.⁠”

“⁠수육이랑 깍두기는요⁠?⁠”

바다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만식이 조끼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보호소 입양 신청서 사본이었다⁠. 신청인 칸에 반듯한 글씨가 있었다⁠. 오만식⁠. 희망 개체⁠, 삼색 둘⁠.

“⁠집사람이 고양이 털 알레르기라 제 사무실에서 키웁니다⁠. 보일러실 옆 창고요⁠.⁠” 오만식이 신청서를 도로 접었다⁠. “⁠징계위원회에서 사무실 고양이 사육 금지 규정 있느냐고 물으면⁠, 없다고 대답할 겁니다⁠. 찾아봤어요⁠. 없었습니다⁠.⁠”

금동하가 뒤에서 코를 훌쩍였다⁠. 오만식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금동하 씨⁠, 소등⁠.⁠”

금동하가 벽의 스위치를 내렸다⁠. 본회의장 천장 조명이 하나씩 꺼지고⁠, 의장석 위 작은 등 하나만 남았다⁠. 전광판 시계가 23⁠:59에서 멈칫거리다 00⁠:00으로 넘어갔다⁠.

*

국밥은 굴 입구를 막고 있던 등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왁스 냄새가 굴 앞에서 멀어져 문으로 갔다⁠. 문 앞에서 귤 냄새가 났다⁠. 오래 나지 않던 냄새였다⁠. 왁스 냄새와 귤 냄새가 같은 자리에 있었다⁠. 넓은 방은 조용했다⁠. 발소리도⁠, 높은 목소리도⁠, 나무 내려치는 소리도 없었다⁠. 바닥만 아직 따뜻했다⁠.

국밥은 굴 밖으로 나왔다⁠. 계단 앞에서 한 번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부추가 먼저 나왔다⁠. 깍두기와 수육이 서로 밀치며 나왔다⁠. 순대가 마지막으로 나와서 울었다⁠. 국밥은 순대를 물어 오지 않았다⁠. 순대가 혼자 걸어올 때까지 계단 앞에서 기다렸다⁠.

국밥이 걸었다⁠. 의자들 사이로 길게 뻗은 카펫 위를 꼬리를 세우고 걸었다⁠. 넷이 뒤를 따랐다⁠. 부추는 바로 뒤에⁠, 깍두기와 수육은 나란히⁠, 순대는 넘어졌다 일어나며 맨 끝에⁠. 카펫의 털이 새끼들 배에 닿았다⁠. 의자 다리 냄새⁠, 식은 사람 냄새⁠, 젖은 외투가 남긴 물방울 냄새⁠. 국밥은 하나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뒤에서 작은 발톱 소리 넷이 따라왔다⁠.

문 앞에 열린 상자가 있었다⁠. 상자 안에서 따뜻한 냄새가 났다⁠. 상자 옆에 왁스 냄새 나는 사람이 쪼그려 앉아 있었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 귤 냄새 나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귤 냄새 나는 사람의 무릎 앞에 분홍색 봉지가 놓여 있었다⁠.

국밥은 상자 앞에서 멈췄다⁠. 상자 냄새를 맡고⁠, 왁스 냄새 나는 사람의 손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상자를 지나 분홍색 봉지에 머리를 박았다⁠.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뒤따라오던 부추가 국밥의 엉덩이에 코를 박았고⁠, 깍두기가 부추에게⁠, 수육이 깍두기에게 차례로 코를 박았다⁠. 순대는 맨 끝에서 넘어진 채⁠, 귤 냄새 나는 사람의 신발 끈을 물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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